나도 내가 어쩌자고 이랬는지 모르겠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최지혁을 밀쳐냈다.
그 순간, 최지혁의 뒤에 있던 남자의 눈이 새하얗게 빛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푸른색 마법진이 내 발목을 잡아챘다.
나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최지혁을 쳐다보았고, 최지혁은 재빠르게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나를 보고 있는 최지혁의 표정이 이상했다.
“안 돼, 채유라!”
하지만 그의 손은 나에게 닿지 못했고, 최지혁의 비명과 함께 점점 시야가 뒤집히기 시작했다.
“허억!”
한순간 숨이 훅 막혔다가 뻥 뚫린 것처럼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때.
최지혁과는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미친. 잘못 데려왔잖아.”
나는 숨을 죽이고 재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대리석으로 된 바닥의 고급 주택 같았다.
남자는 심드렁한 얼굴을 하고 중얼거렸다.
“하씨, 어떡하지.”
심장이 기묘한 공포감으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미쳤다. 최지혁 대신 내가 잡혀 와서 뭘 어쩌자고…….
“너 뭐야? 하, 미치겠네. 왜 깝쳐서 일을 망치고 그러냐, 진짜…….”
나는 이 남자를 알고 있었다.
최지혁의 유일한 라이벌.
처음부터 S급으로 각성한 한국 헌터 랭킹 1위였던 사람.
“이걸 죽여, 말아.”
지성준.
모를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사사건건 최지혁이 S급 던전을 선점하려 할 때마다 대놓고 훼방 놓던 미친놈.
세상이 완벽히 붕괴되기 시작할 즈음부터 거의 만날 때마다 서로 죽이려고 들었던 것 같았다.
이유?
“…….”
사실, 최지혁이 먼저 잘못했다.
딱 최지혁이 A급에서 S급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당시 최지혁은 강해지고 싶은 욕망이 극에 달했고, 때마침 그 타이밍에 대규모 S급 게이트가 열렸었다.
S급 게이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기 때문에 당시 한국 정부는 네임드 랭커들을 있는 대로 긁어모았다.
그래서, 한국의 랭커들이 다수 참여했고, 지성준도 그중 한 명이었다.
당연히 최지혁은 그때도 홀로 움직였고, 거기서 나온 SS급 마정석도 홀로…….
돌아버리겠다.
내가 진짜,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말 더럽게 안 들어 처먹더니! 도움이 안 돼, 최지혁!
“당신 뭐야.”
나는 최대한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지성준이 왜 최지혁을 납치하려고 든 거지?
분명, 지성준과 최지혁이 처음으로 마주치는 순간은 분명 지금으로부터 2년 후다.
그런데 왜 지금?
“너야말로 뭐냐?”
나는 일단 손에 있는 핸드폰을 꽉 쥐었다.
큰일이었다.
눈앞에 있는 지성준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최지혁과 비슷하게 성격이 글러 먹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네가 뭔데 그 새끼 옆에……. 아무튼, 그건 중요하지 않지.”
지성준은 짜증 나는 듯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곧 씩 웃으며 내게 말했다.
“됐고, 그냥 죽어라.”
지성준은 나를 바닥에 내려놓고 허공에서 꼭 물결치는 듯한 날을 가지고 있는 검 하나를 쑥 빼 들었다.
이 인간 정말 나를 죽일 생각이다.
“자, 잠깐!”
“뭐야?”
나는 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심장이 너무 쿵쾅대서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다, 당신 나 죽이면 큰일 날 텐데?”
“왜?”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당신 나 죽이면 깜방 간다고! 살인죄야, 살인죄!”
기껏 머리 굴려서 한 말이 고작 이거였다.
‘망했다!’
역시나, 지성준은 표정을 와락 구기고는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 날 쳐다보았다.
하지만 다행히 내 개소리가 효과가 있긴 한 모양이었다.
놈은 내 앞에 바짝 다가와 쭈그려 앉더니 신기해 죽겠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차피 잡혀가도 금방 풀려날걸? 이 나라에 S급 헌터는 아주아주 귀하고 나는 그 귀한 S급 헌터니까 말이야.”
순식간이었다.
지성준은 망설임 없이 들고 있던 검으로 내가 있던 자리를 콱! 찍었다.
다행히 최지혁의 1대1 PT가 효과가 있긴 한 모양이었다.
나는 잽싸게 자리에서 굴러 놈의 공격을 피했다.
‘저 미친놈이, 진짜 사람 죽이려고 작정했나!’
대리석 바닥이 지성준의 검에 찍혀 쩌적 갈라지는 게 보였다.
소름이 쫙 돋았다.
“뭐야? 왜 피해?”
저게 질문이야, 지금? 나는 어이가 없어서 소리를 빽 지를 수밖에 없었다.
“너 뭐야! 너 뭔데 나한테, 아니 왜 그러는데! 말로 하라고, 말로!”
“귀찮게 자꾸 쫑알쫑알 댈래?”
큰일 났다. 진짜 위험하다. 진짜 진짜 뒤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저놈의 태도로 보아 이건 절대 장난 같은 게 아니었다.
“자자자잠깐! 최지혁은 왜 찾는 건데!”
“내 성좌가 원해서?”
성좌라고? 지성준의 성좌가? 최지혁을? 왜?
나는 덜덜덜 떨면서 놈에게 소리를 질렀다.
“당신 나 죽이면 최지혁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지가 날고 기어봤자 아직 F급인데 뭔 상관.”
하지만 놈은 가소롭다는 듯이 나를 대놓고 비웃으며 말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상황으로 봐서 이 인간은 최지혁한테 앙심을 품고 있다.
만약에 나 대신 최지혁이 잡혔으면 그가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걔 대신 내가 잡혔으니 내가 죽을 거다.
제발, 머리를 굴려보자, 채유라.
지금 최지혁이 S급인 지성준을 제압하려면…….
‘A급인 강준우가 도와주면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내가 여기서 살아나갈 방법은 솔직히 하나밖에 없었다.
최지혁을 이쪽으로 부르는 것.
“목표는 최지혁 아니야? 나는 왜 죽이려고 하는 건데!”
나는 우선 놈의 정신을 빼놓기 위해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다행히 놈은 착실하게 내 질문에 대답해주고 있는 중이었다.
“최지혁하고 붙어있었잖아. 꼴 보기 싫어서.”
놈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위아래로 쓱 훑었다.
그리고는 내 팔을 덥석 잡아서 일으켰다.
“나야말로 물어보자.”
놈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긴장감 때문에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너 진짜 뭐냐?”
에라이. 혼자 죽나 둘 다 죽나.
나는 최지혁을 팔기로 했다.
“여자친구다!”
“푸핰!”
“…….”
잠깐 침묵이 흘렀다.
음, 정확히 말하면 나만 했다. 그 침묵.
“야, 구라까지 마.”
내 앞에 있는 놈은 나를 죽이려 든 것도 잊고 열심히 나를 비웃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아씨.”
순간 지성준의 앞에 반투명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하지만 글씨도 너무 작은 데다가 거꾸로 뒤집힌 바람에 잘 보이지 않았다.
성좌 메시지같이 생겼는데. 맞나?
“아, 알았어요. 알았어. 씨…… 짜증 나게 하네, 진짜.”
지성준은 메시지를 읽자마자 짜증 난다는 듯이 제 화려하기 그지없는 머리칼을 마구 헝클이더니 허공에서 밧줄을 쑥 꺼내 들었다.
“자, 잠깐. 그건 왜 꺼내는…….”
“야. 네가 헛소리하는 바람에 내 성좌가 열 받았잖아. 어쩔 거야?”
저게 뭔 개소리야!
지성준은 내가 뭐라 반박하기도 전에 밧줄로 날 둘둘 묶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짜증 난다는 듯 툴툴거렸다.
“후……. 그러니까 걍 죽으랄 때 얌전히 입 닫고 죽지 헛소리를 왜 해?”
식은땀이 등 뒤로 주르르 흘렀다.
“그래도 당장은 안 죽여.”
지성준이 빵긋 웃으며 내게 핸드폰을 내밀며 말했다.
“자, 전화해.”
최지혁의 핸드폰 번호는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이미 최지혁에게로 신호가 가고 있었다.
뚜르르, 정확히 딱 한 번 벨이 울리고 최지혁의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들려왔다.
-“뭐야.”
그에 지성준이 어이없다는 듯 허허 웃으며 내 턱을 붙잡고 속삭였다.
“남친이라며. 빨리 애원해. 왜 멍 때려?”
아, 맞다. 잠깐 잊고 있었다.
나 이 인간 여자친구라고 구라쳤었지!
나는 눈을 도르륵 굴리며 빠르게 고민했다.
최대한 돌려 돌려 사람을 데려 오라고 말해야 했다.
최지혁 혼자는 무리다.
“어서.”
-“이 개자식아, 당장 그 여자……!”
지성준의 말에 스피커 너머 최지혁이 차마 서술하기 어려운 욕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와. 진짜 살벌하네. 지리겠어.”
지성준은 내게 어서 대답하라는 듯 인상을 찌푸렸고,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전화기에다 대고 소리쳤다.
“자, 자기야!”
-“…….”
최지혁은 당황한 듯 답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호칭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일단 중요한 것만 냅다 말했다.
“꼭! 혼자 와! 혼자! 혼! 자!”
지성준은 내 외침에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심장이 불안으로 쿵덕거렸다.
이 정도로 강조했으면 최지혁이 내 반어법을 이해했겠지?
내가 평소에 입이 마르도록,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혼자 다니지 말라고 강조했으니까, 반어법으로 이해했을 거다.
이해해야 했다.
솔직히 말해서 좀 불안했다. 진짜 혼자 오면 어떡하지?
“와, 진짜 여자친구였어? 완전 화났는데? 막 전화 오고 난리도 아니네.”
지성준은 제 핸드폰의 전원을 꺼버리며 흥미롭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얌전한 척 조심스럽게 지성준에게 물었다.
“나 죽이면 감당할 수 있겠어?”
내 말에 지성준이 귀찮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야, 네 남친이 뭐라도 된 것처럼 단단한 착각을 하고 있나 본데, 최지혁이 나랑 어떻게 해 볼 깜냥이 안 된다니까?”
“그건 네 생각이고.”
지가 뭘 안다고? 나는 괜히 그를 깔보는 듯한 지성준의 말에 도끼눈을 뜨고 지성준을 노려보았다.
“내 걱정 말고 네 걱정이나 해. 우리 잘나신 성좌님께서 최지혁 바로 앞에서 널 죽여야겠다고 ‘특별히’ 부탁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