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145)

Chapter.3

최지혁은 차를 몰고 집으로 갈 때까지 똥 씹은 표정으로 운전만 했다.

나는 가만히 조수석에서 최지혁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싸게 산 차라 그런지 음질이 매우 구렸다.

그리고 플레이리스트는 죄다 2000년대 초반 발라드 노래였다.

노래 취향 참…….

“왜. 자꾸 봐.”

“음, 그러게요. 내가 그쪽을 왜 쳐다볼까요.”

최지혁은 내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인상을 팍 찌푸리며 내게 말했다.

“할 말 있으면 말해.”

“나한테 불만 있어요?”

내 물음에 뒷좌석에 탑승한 리온이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지혁은 운전대를 잡고 여전히 뚱한 얼굴로 대답했다.

“없어.”

“정말?”

“없다니까.”

“아닌데, 있는데.”

“없어.”

“오, 아무리 봐도 있어 보이는데.”

“……없다고! 없다고 몇 번 말해!”

“네 번 말했어요. 방금 것까지 해서.”

내 말에 최지혁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곧 짜증 난다는 얼굴로 입술을 꾹 깨물더니 아주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불만 없어.”

“아, 짜증 나게 하지 말고 빨리 말해요. 아까부터 똥 씹은 얼굴이거든요?”

최지혁의 눈길이 내게 살짝 닿았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지키다가 이내 꾹꾹 눌러둔 짜증을 터트리듯 내게 말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데?”

“뭘요?”

그리고 어이없는 질문을 내뱉었다.

“왜, 자꾸 쓸데없는 짓 하냐고.”

“쓸데없는 짓? 뭐가 쓸데가 없어?”

최지혁은 핸들을 엄지로 만지작거리며 흘끔흘끔 나를 쳐다보았다.

본인도 말하고 아차 싶었나 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최지혁은 대화할 때 상대방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되는대로 막 뱉는 스타일이었다.

지금도 그랬다.

“나로는 부족해?”

“…….”

뒤에서 한참 부스럭거리던 리온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름 3년 동안 최지혁어를 마스터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저게 도대체 무슨 질문이람.

내가 얼탱이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으니, 최지혁이 갑자기 차를 확 틀어 갓길에 세워버렸다.

집 거의 다 왔는데.

“내려서 나랑 얘기 좀 해.”

최지혁이 차를 세운 곳은 인적이 아주 드문 공터였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최지혁을 따라 차에서 내렸다.

“넌 차에 있어.”

나를 뽀르르 따라 내리려던 리온을 보자 최지혁은 이를 악물고 차문을 달칵 잠가버렸다.

“뭔데요?”

그런 최지혁의 행동에 인상을 팍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차문은 왜 잠그는데?

도대체 나한테 무슨 할 이야기가 있다고?

아, 물론 리온을 차 안에 가둬버린 최지혁의 심정은 십분 이해했다.

쟤가 끼면 도통 진지한 대화가 안 되니 말이다.

“채유라.”

최지혁은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더니, 곧 내게 한 자, 한 자 짓씹듯 이야기했다.

“막상 내 세계로 떨어지니, 나로는 모자라?”

도대체 저게 무슨 말일까. 나는 최지혁이 저 말을 꺼낸 의도를 파악하려 가만히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화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좀 불안해 보였다.

“왜 그런 얼굴로 쳐다봐. 왜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쳐다보냐고, 왜.”

최지혁의 어조에서 미약한 억울함 같은 게 느껴졌다.

그에 나는 조금 멍해진 채로 최지혁이 하는 말을 듣기만 했다.

“어차피 그놈 성좌는 따로 있어. 너도 알잖아. 지금 그놈이 성좌 계약하기 전에 뭘 어떻게 해 보겠다는 생각이야? 그거야?”

최지혁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도대체 그 변호사는 뭔데? 왜 불렀다고 말을 안 해? 내가 못 미더워?”

최지혁은 제 머리칼을 쓱 쓸어 넘기며 내게 따지듯 물었다.

그의 눈이 미세하게 충혈되어 있는 것 같았다.

던전을 돌고 온 직후라 피로가 잔뜩 쌓인 모양이었다.

“음, 일단 내일은 쉬죠. 던전 돌지 말고.”

“……너 지금 내 말을 듣기는 하는 거야?”

“듣고 있는데요.”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침착하게 그에게 말했다.

“우선 변호사 일은 미안해요. 성주호 그 인간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상의도 없이 내 맘대로 알아봤어요.”

내 사과에 최지혁은 두 눈을 꾹 감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걸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최지혁 씨, 그러니까 일단 그만하고,”

“왜.”

최지혁이 어둡게 가라앉은 눈을 번쩍 뜨고 내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왜, 나야?”

이상했다. 최지혁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돌아버리겠다는 듯 내게 소리쳤다.

“왜 하필 나였냐고!”

그리고는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옷자락을 꽉 그러쥐었다.

곧 최지혁은 이를 악물고 내게 애원하듯 말을 이었다.

“……등급은 금방 올릴 수 있어. 내가 그 새끼한테 밀리는 거 없으니까, 나로도 충분해, 채유라.”

가로등 아래 비친 그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최지혁이 지금 내게 왜 이런 말을 하는지.

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도대체 최지혁은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그래. 최지혁도 얼마나 당황스럽겠어.

어느 날 회귀를 해버렸고, 그런 그의 앞에 성좌랍시고 떨어진 사람은 그냥 평범한 대학생이고.

게다가 세상은 곧 멸망할 예정이고.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팔뚝에 손을 올렸다.

“괜찮아요?”

“…….”

최지혁의 시선이 발끝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 땅만 쳐다보다가 겨우 입을 열어 희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길.”

“…….”

내 옷자락을 쥔 그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여태까지 한 거라고는 후진 투룸방 구한 것밖에 없어.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내가 할 수 있는 게, 제길.”

“최지혁 씨. 일단 나 보고 얘기해요.”

나는 그의 양팔을 잡고 토닥이며 달래듯 말했다.

“돈은 금방 생기잖아요. 무슨 그런 거 가지고 미안해해요. 나도 여태까지 한 거 아무것도 없어요.”

최지혁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최지혁은, 나를 매우 신경 쓰고 있었다.

그의 반지하 원룸에 머물 때도, 지금도.

최지혁이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아직 흥분이 채 가시지 못한 얼굴이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그에게 천천히 말했다.

“강준우랑 화신 계약 맺을 생각 없어요. 어떻게 맺는지도 모르고. 생판 남이랑 내가 그런 걸 왜 해요? 뭘 믿고.”

“…….”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 마요.”

3년 동안 내가 봐 온 최지혁은 겉으로는 개싸가지에 세상 혼자 살 것처럼 보여도, 사실 속은 여렸다.

사람한테 상처도 잘 받고, 밟히면 어떻게든 지지 않으려고 미친 듯이 꿈틀대고.

그래서 그런지 최지혁은 모든 걸 홀로 안고 가려는 습관 같은 게 있었다.

저도 모르게 철옹성같이 거대한 벽을 세우고 그 벽 안으로는 아무도 들이지 않는다.

나는 괜히 화면 속 처량하던 최지혁이 떠올라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때는 그냥 그랬다.

왜인지, 나라도 그를 신경 써주지 않는다면 금방이라도 휙, 낭떠러지 밖으로 떨어져 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내 일상생활과 인간관계도 다 뒷전으로 밀어두고 그 이상한 인터넷 방송에 몰두했던 것도 같다.

“그래도 혼자는 안 돼요. 강준우는 꼭 필요해요. 알잖아요. 힐러는 필수적인 거.”

내 말에 최지혁은 우물쭈물하며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혼자서도 상관없어. 너도 알잖아. 여태까지 나는 혼자서,”

“솔직하게 말해봐요. 그래서 오늘 준우가 도움이 안 됐어요?”

최지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정확히는 거짓말을 굳이 안 했다.

그냥 성격이 그런 것 같았다.

“……준우?”

“네.”

“……왜 걔는 준우고 나는 최지혁 씨인데?”

“……예?”

순간 당황해서 입을 쩍 벌리고 최지혁을 쳐다봤다.

지금 쟤가 뭐라는 거야, 또!

다행히 최지혁도 제 질문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긴 하는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저기요, 걔는 나랑 동갑…….”

“…….”

“……설마 오빠 소리 듣고 싶어요? 오빠라고 불러줘요?”

내가 입을 쩍 벌리고 뜨악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자 최지혁이 부르르 몸을 떨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내게 말했다.

“됐어.”

어두워서 잘 안 보였지만 최지혁의 귓바퀴가 시뻘게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러게 감당 안 될 질문은 왜 하는 거야?

나는 꽁해진 채 입술을 쭉 빼고 있는 최지혁의 모양새가 뭔가 웃겨서 큭큭거리며 웃었다.

“왜 웃는데.”

“웃기잖아요.”

최지혁은 여전히 부끄러워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조수석 차 문을 열어주러 손잡이를 잡았다.

“……?”

하지만, 그때였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최지혁의 등 뒤에 드리운 그림자를 쳐다보았다.

최지혁의 바로 뒤에, 누군가 서 있었다.

화려한 연보라색 머리를 하고 있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남자였다.

나는 저 얼굴을 알고 있었다.

“최지혁,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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