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혁의 검이 스와인의 심장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리고 푹.
그의 검이 스와인의 심장에 꽂히자 스와인의 체력 바가 한꺼번에 바닥을 보였다.
쿵! 소리와 함께 돼지 괴물이 쓰러졌고, 최지혁은 비틀거리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괜찮아. 죽었어.”
최지혁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흥! 이 몸의 공격을 맞고 멀쩡할 리가 없지. 하하하!”
리온이 양손에 붉은색 기운을 응축시키고 하하하! 사악하게 웃어댔다.
나는 덜덜덜 떨리는 다리로 겨우 최지혁에게로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요? 응? 안 다쳤어?”
내 물음에 최지혁은 아주, 아주 어색한 얼굴을 하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괜찮아.”
최지혁은 무리했는지 비틀거리며 스와인의 사체 쪽으로 다시 걸어갔다.
그리고 들고 있는 칼로 곧장 스와인의 심장을 푹 찔러 반으로 갈랐다.
나는 저게 무슨 행위인지 알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강준우가 최지혁에게 물었고, 최지혁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스와인의 심장 부근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그 안에서 붉게 빛나는 보석 하나를 쑥 꺼내 들었다.
‘[마정석(AA)]’
“채유라, 돈 생겼어.”
최지혁이 손에 핏빛의 아름다운 보석을 쥔 채 화사하게 웃었다.
땀에 젖은 최지혁의 머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울고 싶어졌다.
***
최지혁이 내게 준 마정석의 가격은 무려 만 원!
코인폭탄을 10번이나 쓸 수 있는 금액이었다.
최지혁이 헉헉거려서 안쓰러운 것과는 별개로 막상 돈이 들어오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으아아…….”
강준우는 극도로 긴장해서 다리 힘이 풀려버렸는지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강준우가 막연한 얼굴로 최지혁에게 물었고, 최지혁은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그에게 답했다.
“게이트의 수는 점점 늘어갈 거고, 게이트 안을 청소할 수 있는 각성자, 그러니까 헌터들의 수는 부족해지겠지.”
“…….”
“세상이 무너지는 건 이제 순식간이야.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 해.”
진중한 얼굴로 절망적인 말을 뱉어내는 최지혁은 한없이 우울해 보였다.
내가 화면 밖에서 구경하고 있을 때도 최지혁은 이렇게 끔찍한 세상에서 살아왔던 것일까.
나는 최지혁의 삶을 알고 있지만 알지 못한다.
내가 살던 세상은 평화로웠다.
솔직히 말해서, 최지혁의 세상처럼 절망적이었다고 해도 내게는 기댈 수 있는 가족이,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최지혁은…… .
나는 쓸데없는 감상에서 벗어나려 고개를 흔들었다.
“자자, 다들 일어나요. 빨리 보스 잡고 나가야 할 거 아니에요.”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강준우를 일으키며 애써 미소 지었다. 핸드폰을 쥔 오른쪽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앞서 커다란 스와인은 어떻게 잘 잡았다고 해도 놈들이 떼거리로 달려든다면…… 잘 모르겠다.
잡을 수 있을까?
“피가 들끓는다!!!!”
나는 뒤에서 크하하 웃어대며 붉은색 마기를 뿜어대는 리온을 깔끔하게 무시해주고 지도를 살폈다.
이곳은 지하 성채.
길게 뻗어있는 복도 사이사이로 수백 개의 방들이 존재했다.
흡사 감옥과도 같은 구조였다.
C급 던전일 때도 난이도는 노답이었지만 현재 백호 길드의 트롤 짓으로 인해 우리는 작전을 짤 필요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강준우가 A급 각성자라는 것?
“나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몬스터는 최대한 피해서 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왜 그래, 마스터! 모처럼 사냥 시간인데!”
나는 옆에서 걸리적거리는 리온의 귓바퀴를 잡아당겼다.
다행히 리온은 조용해졌다.
“여기가 보스 방이야.”
최지혁이 지도를 짚으며 말했다.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커다란 홀같이 생긴 커다란 방이 있었다.
누가 봐도 보스몹이 나올 것 같은 방이었다.
“……꼭, 보스를 잡아야 해요? 그냥, 그냥 여기서 나가는 방법은 없어요?”
강준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최지혁에게 물었고, 최지혁은 단호한 얼굴로 그에게 대답했다.
“던전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은 세 가지다. 클리어 조건을 만족시켜 게이트를 닫든가, 게이트 터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체로 나가든가, 아니면 몬스터들이랑 같이 나가든가.”
그에 강준우가 입을 꾹 다물었다.
던전이 터진다는 건 일종의 재앙과도 같았다.
이곳에 있는 모든 몬스터가 지구로 쏟아져 나온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걸 막기 위해 각성자, 즉, 헌터들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다른 방법은 없어.”
나는 빠르게 핸드폰을 눈으로 훑으며 열심히 손가락을 놀렸다.
그리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자, 다들 장비 챙겨요. 보스 잡으러 가게.”
하늘 위로 반짝반짝 빛나는 장신구들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원래,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이템은 현질해서 사는 아이템인 법이었다.
“뭐 해요? 장비 안 챙기고.”
***
“버프!”
“리온!”
우리는 무작정 달려드는 스와인들을 꽤 효율적으로 잡을 수 있었다.
스와인들은 대개 방어력이 높은 편이었고, 강준우가 디버프 스킬로 스와인의 방어력을 까면, 내가 리온의 스킬로 그들의 발목을 잡고 막타는 최지혁이 날린다.
덕분에 최지혁의 랭크는 어느새 F에서 E로 올라갔다.
“채유라, 물배 찰 것 같…….”
“씁. 잔말 말고 한 잔 더 마셔요.”
“나도…… 물배…….”
“너도 더 마셔요. 어디 가.”
나는 최지혁의 입에 물약을 열심히 흘려 넣어주며 도망가려고 하는 강준우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내 폭풍 구매 덕에 그들은 현재 온갖 버프가 걸린 채로 휙휙 날아다니는 중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승산이 있겠지?
사실 불안했다.
급이 맞지 않는 단계의 던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으니 더 불안했다.
지금 모아둔 돈은 대략 15,000원. 잡템들을 팔아 겨우겨우 이 정도로 모았다. 그래도 나름 많이 모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마정석이 만 원이나 하지 뭔가.
치유 포션은 5개 정도 사둔 상태고, 지난 최지혁의 레이드와는 다르게 오늘은 강준우라는 A급 힐러가 있었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용도를 잘 알 수 없는 악마도 있지 않은가?
“……들어갈까요?”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거대한 문의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문고리를 잡자마자 바로 최지혁의 손에 번쩍 들려 후방으로 밀려났다.
힘도 좋다.
“뒤에 있어. 뒤에.”
“아, 예.”
최지혁이 커다란 철문을 있는 힘껏 열어젖혔다.
기름칠 안 한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천천히 틈을 보였고, 그 사이로 외알 안경을 낀 30대 후반쯤으로 되어 보이는 남성이 커다란 의자 위에 나른하게 앉아있었다.
“오, 10년 만에 손님들께서 찾아오셨군요.”
남자는 우리가 내부로 들어온 걸 발견하자마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벌리며 환영한다는 듯 말을 걸었다.
나는 바로 핸드폰을 켜 리온의 스킬을 세팅했다.
“때마침 지루하던 참이었는데 잘되었습니다.”
상대는 AA급 던전의 보스몹이다. 긴장하지 않으면 바로 죽는다.
“찾아오시는 길은 어떻게, 어렵지 않으셨습니까?”
버프는 다 걸어둔 상태였다.
최지혁이 칼을 고쳐 쥐고 면밀하게 상대를 살폈다.
“아! 어쨌든 여기까지 오셨으니 제 애장품들은 이미 구경하셨겠네요? 어떻습니까. 아름답지 않나요?”
그때였다.
우리가 잔뜩 긴장해서 입 다물고 있는 사이 요주 인물을 깜빡한 것이다.
“암암. 꽤나 괜찮은 미물이었다, 인간 남자!”
리온은 날개를 쫙 펼치고는 시뻘건 눈을 흉흉하게 빛내며 보스에게 다가갔다.
나는 순간 아찔해지는 정신에 휘청거리며 최지혁의 팔뚝을 붙들었다.
저 미친 또라이가!
“오, 제 예술 작품을 알아봐 주시는 분이 계셨군요.”
“흐음, 아주 사악한 기운이 가득한 인간! 오, 영혼을 꽤나 많이 모았는걸?”
리온은 입맛까지 쩝쩝 다시면서 보스의 목에 코를 박고 열심히 킁킁댔다.
현기증이 나는 기분이었다. 보스는 그런 리온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며 최지혁을 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신사분은 누구신지? 성국에서 보낸 기사는 아닌 것 같고.”
“나?”
그때였다.
핸드폰의 스킬창 중 하나가 미친 듯이 깜빡거렸다.
‘[악마의 식사]’
꼭 눌러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감히 대륙에서 가장 위대한 대흑마법,”
원래 히어로는 악당이 자기소개 할 때는 건드리지 않았지만 나는 히어로가 아니니까.
나는 노빠꾸 최지혁 정신으로 친절하게 리온의 스킬 버튼을 눌러주었다.
“말이 너무 많아!!!”
버튼을 누르자 보스 근처에 있던 리온의 입이 악마처럼 가로로 찢어지더니 이내 그의 손이 푹, 보스의 심장을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리온이 펄떡거리는 보스몹의 심장을 입 안으로 쑥 넣어버리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장면에 침을 꿀떡 삼켰다.
“말하는데, 공격, 하는 게…… 어디…… 있…….”
“내 맘인데, 인간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