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145)

누가 봐도 조폭사무실처럼 보이는 흥신소의 사장은 최지혁을 보고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자, 학생들이 몰라서 그러나 본데, 신분 위조가 애들 장난이 아니에요.”

그리고는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붓더니 녹차 티백을 턱 넣고는 우리에게 내밀었다.

“그래서. 안 됩니까?”

최지혁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꽤 위압감 있게 흥신소 사장에게 물었고, 사장 아저씨는 특유의 거친 얼굴을 찌푸리며 감탄하듯 말했다.

“학생 생각보다 단도직입적이네.”

“된다, 안 된다만 말씀하시죠. 시간이 없어서.”

“왜, 저 옆에 있는 외국인 양반이 신분이 없나?”

사장 아저씨가 리온을 가리켰고, 리온을 때아닌 삿대질에 인상을 쓱 찌푸리며 무어라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길래 냉큼 입을 막았다.

“웁으으브읍!”

“사장님. 된다, 안 된다만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 진짜 급해서 그래요.”

내가 울상을 지으며 말하니 사장 아저씨가 볼을 긁적거리더니 쓰윽 종이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학생들. 이거 장난으로 하고 그러면 못써. 알지?”

“가자.”

최지혁은 사장의 꾸물거리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지 내 손목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한숨을 폭 내쉬며 품에 안고 있는 최지혁의 가방을 살짝 열었다.

“그래도 돈 많이 준비해왔는데 그냥 가요?”

순간 눈앞에 있는 흥신소 사장의 표정이 싹 변했다.

아무래도 가방 안에 있는 수많은 오만 원권들을 본 모양이었다.

“아, 아유! 학생들! 어딜 가려고 그래. 내가 다 걱정이 돼서 그런 거지. 일단 앉아서 얘기나 계속해보자. 응?”

사실 돈은 일부러 보여준 거였다.

저 사람의 이름은 박도경.

나도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그날 최지혁이 백호 길드에 당하고, 복수하겠답시고 놈들을 족치러 갔을 때 한번 봤었다.

저 사람은 훗날 백호 길드와 결탁해서 온갖 돈 되는 나쁜 짓은 다 하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주로 헌터들의 자금세탁이나, 아이템 밀거래 같은 거 말이다.

그러니 좀 짜증 나기는 해도 일단 실력은 확실히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신분 만드는 건 얼마나 하는데요?”

나는 최지혁의 옆에 찰싹 붙어 최대한 예의 바르게 그에게 물었다.

“누가 쓸 건데?”

“20대 초반 여자.”

최지혁의 대답에 사장의 시선이 쓱 내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혹시…… 불법 체류자? 이민자?”

“아니거든요!”

아니 저 아저씨가 진짜. 사장의 말에 발끈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최지혁도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자자, 신분이라는 게 생각보다 구하기는 쉽지만 뭐다? 완벽한 작업을 하려면 돈이 좀 필요하다. 왜, 요즘 전산시스템이고 뭐고 세상이 생각보다 각박해졌어요. 그래서, 학생들 얼마까지 생각하고 왔나?”

사장의 말에 나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옆집에서는 5백만 원 부르던데.”

“……호오. 그 사람 사기꾼이네. 학생. 전산시스템까지 싹 다 손보려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야.”

“접때 강남에서 실종자 많이 발생해서 꽤 쉬워졌다던데요?”

내 말에 사장이 인상을 팍 찌푸리고 험악하게 말했다.

“학생. 그러면 그 집 가서 하지, 날 왜 찾아왔을까나?”

그에 나는 호호호 웃으며 바로 대답했다.

“아저씨네 회사가 리뷰가 좋아서요.”

사장의 험악한 얼굴에 짜증 난다는 듯 미소가 걸렸다.

그러자 최지혁이 제 소매를 걷고 인상을 팍 찌푸렸다. 여차하면 무력을 쓸 생각인 것 같았다.

이런 인간들일수록 강한 자들에게 약하고 약한 자들에게 강한 법이었으니까.

지금 최지혁이 아무리 F급 각성자라고 해도, 일반인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게다가 내 옆에는 리온도 있지 않은가.

저 깡패보다 우리 쪽이 전력은 더 빵빵하다는 소리였다.

“싫으면 다른 사람 알아보고.”

최지혁이 낮은 목소리로 건방지게 말하자 사장이 열 받았는지 들고 있던 머그를 탁 내려놓으며 최지혁에게 말했다.

“근데, 거기 남학생. 왜 자꾸 어른한테 그딴 식으로 반말이지?”

나는 재빠르게 최지혁의 손목을 잡으며 변명하듯 말했다.

“하하하! 이 오빠가 어렸을 때 외국에서 살다 와서 존대를 잘 몰라요.”

아무리 최지혁이 흥신소 양아치 아저씨들보다 세다고 해도 굳이 싸움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나는 최지혁의 문제 해결방식을 매우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으니 말이다.

세상에 모든 게 다 무력으로 해결되는지 안단 말이지.

“…….”

최지혁은 잠시 얼이 빠진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고, 나는 가방에서 500만 원을 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저씨. 근데, 있잖아요. 혹시, 각성자……라고 아세요?”

“당연히 알지. 그런데 그게 왜…….”

내 물음에 사장이 인상을 대번 찌푸리고 조금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저희같이 누가 봐도 평범해 보이는 애들이 왜 아저씨를 찾아왔다고 생각하세요?”

어차피 멀리 내다보면 우리 뒤를 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백호 길드같이 대형 길드에서 모셔간 분이면 나름 능력은 출중하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저 아저씨 인성은 최지혁이 충분히 누를 수 있었다.

흥신소 사장은 내 각성자 드립에 놀란 듯 급히 진지한 얼굴로 가만히 탁자에 올려져 있는 돈 500을 쳐다보았고, 최지혁은 내 도발에 당황한 듯 작게 내게 속삭였다.

“이렇게 하자는 얘기 없었잖아.”

그리고 나는 똑같이 최지혁에게 속삭여 주었다.

“어차피 나중에 나 몰래 다시 와서 무력으로 진압하고 개처럼 부려먹을 생각 아니었어요?”

“…….”

내가 정곡을 찔렀는지 최지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럼그럼.

최지혁 성격대로라면 야밤에 흥신소 사무실 찾아와서 깽판 놓고 나를 따르라! 할 계획이었겠지.

누가 모를 줄 알고?

“선금으로 오백 드릴게요. 일주일 안으로 20세 이상 여자, 이름 채유라, 주민번호 이상 없게 만들어주세요. 가능하죠?”

“……잠깐만, 지금 학생들이 무슨 각성자, 이런 거란 말이야? 그래서 신분을 찾는 거고?”

흥신소 사장은 혼란스러운 듯 내게 물었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계약서를 가리켰다.

“자, 그건 뉴스에서 확인하시고. 그래서 해주실 거예요, 안 해주실 거예요.”

머리가 팽글팽글 돌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아무래도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서울, 뉴욕, 런던, 상하이, 홍콩 같은 주요 도심의 가장 번화가가 통째로 날아갔다.

그리고 등장한 게이트와 그 안의 던전, 그리고 초능력자, 즉 각성자들.

각 나라에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게이트에서는 정체 모를 괴물들이 튀어나와 사람들을 잡아 죽였고, 군대가 겨우 진압하긴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혜성같이 등장한 각성자들은 군인들을 도와 순식간에 괴물들을 진압했고, 현재 일반인들에게는 각성자는 일종의 선택받은 자들로 여겨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내 말에 혹했을 거다.

각성자들과 안면 터놔서 나쁠 건 없으니 말이다.

“……천오백 준비해와.”

“리온, 이제 말해도 돼.”

내 말에 리온이 꾹 다물고 있던 입을 파! 열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제 가죽 날개를 쫙 펼쳤다.

“하하하하! 미개한 인간들! 협상은 이 마계의 황태자 리카르디온의 전문이지!”

최지혁은 이를 드러내고 붉은 눈을 희번덕대며 흥신소 사장을 향해 입맛을 다시는 리온을 보고 아연실색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얼굴을 두 손에 묻고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체념하듯 말했다.

“……그래, 마음대로 해.”

최지혁이 그러거나 말거나 리온은 세상 신난 얼굴로 검은 손톱을 세우고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내게 물었다.

“마스터 뭘 하면 되지? 이 남자의 사지를 찢어 놓을까? 아, 그럼 협상이 안 되는군. 그럼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손을 볼까? 그건 내 전문이지!”

이걸로 기선제압은 좀 된 것 같았다.

“파, 팔백! 팔백만 원으로 이번 주까지 해줄게, 학생!”

“와, 감사해요!”

나는 뻔뻔하게 사장아저씨의 두꺼운 손을 덥석 붙들고 붕붕 흔들었다.

“흥, 너무 일이 쉽게 끝나는 거 아니야, 마스터? 오랜만에 인간 맛 좀 보나 싶었는데.”

리온이 특유의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고, 그 뒤로는 이상한 검은 기운 같은 게 넘실거렸다.

뭔가 최지혁보다 나쁜 사람이 된 느낌이라 좀 기분이 거시기했지만, 아무튼 비폭력적인 문제해결을 이뤄냈으니 상관없었다.

“아저씨. 근데, 방금 저 계약서 흘끗 봤거든요? 보니까 이상한 조항 많던데. 저거 다 빼도 되는 거죠?”

“……그, 그러도록 해. 학생.”

“정말요? 그럼 여기서 바로 수정하고 계약서 써요. 이거 쓰면 언제까지 신분 준비해주실 거예요? 확실한 거 맞죠?”

“확실하지! 그럼, 그럼. 내가 이 바닥에서 몇 년을 굴러먹었는데.”

사장은 불안한 눈으로 흘끔흘끔 공중에 떠 있는 리온을 쳐다보았다.

사실 눈치 봐야 할 건 쟤가 아니라 최지혁 쪽이긴 한데…….

아무튼 나는 꼼꼼하게 계약서를 읽었다.

흥, 누굴 호구로 아나.

역시 기대와 다르지 않게 독소조항이 매우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자, 이상한 내용 다 지우고 다시 써요.”

나는 최지혁에게 펜을 넘겼고, 최지혁은 여전히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최지혁은 착실하게 독소조항을 죽죽 긋고 새로운 조항들을 적어나갔다.

그동안 헌터로 구르면서 계약서 쓸 일이 여간 많았어야지. 아주 선수다, 선수.

나는 뿌듯한 얼굴로 최지혁을 쳐다보았고, 곧 계약서를 다 뜯어고친 최지혁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잘했다는 뜻으로 그에게 방긋 웃어주었다.

그러자 놈은 대놓고 정색을 하며 눈앞에 있는 사장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빨리 도장 찍고 이틀 안으로 가져오지.”

“학생, 그건…….”

“못하는 거 아니잖아. 안 그래?”

나는 최지혁의 포스에 박수를 쳤다.

역시. 협박은 이쪽이 전문이지. 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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