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145)

이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변화의 흐름을 빠르게 읽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하는 법이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크게 한탕 땡기는 놈들 말이다.

백호 길드로 말할 것 같으면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세워진 헌터길드이다.

길드장의 이름은 성주호. A급 헌터로, 어떻게 보면 20대 초반에 자기가 대표로 있는 길드를 세운 난놈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냥 나쁜 놈이었다.

그 새끼가 최지혁한테 어떤 개 같은 짓을 했는가.

사건은 2년 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니지. 2년 후로 가야 하나?

아무튼,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 개똥에 밥 비벼 먹을 새끼!”

그놈은 아주 고약한 새끼였다.

한 성깔 하는 최지혁이 밀릴 정도로 사악하고 고약한 새끼 말이다!

가끔 최지혁이 들어가는 던전 중에서는 오로지 재화만을 얻을 수 있는 이벤트 던전 같은 게 존재했다.

물론 무려 ‘나’를 성좌로 두고 있는 최지혁은 돈이 필요 없었지만, 어쨌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게이트 등급 외의 정보는 알 수 없는 법이니까.

당시 최지혁은 돈보다는 각성 등급을 올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 당시 열린 게이트 등급은 A였다.

당연히 최지혁은 그 A급 게이트를 놓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최지혁의 헌터 등급은 표면상 C등급이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야만 게이트에 입장할 수 있었다. 그 탓에 어쩔 수 없이 백호 길드의 성주호 외 떨거지들과 변방 쩌리 길드에서 온 파티원들과 같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정작 우리는 아이템 필요하지도 않은데 지들이 다 훔쳐 놓고 최지혁 씨한테 누명 씌운 그 개새끼들 맞죠!”

내 말에 최지혁이 진지한 얼굴로 있다가 급하게 쪽팔림이 몰려오는지 제 미간을 짚고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내가 누명을 쓴 건 맞는데, 네 생각만큼 당하기만 하지는,”

“그 망할 놈들! 살인죄까지 덮어씌워서 최지혁 씨 유치장도 갔잖아요!”

그때 최지혁은 생각보다 시시한 보스 난도에 흥미를 잃어 그냥 잡몹이나 죽이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고, 최지혁이 혼자 노는 동안 백호길드는 아이템 독식을 위해 다른 길드에서 온 사람들을 다 죽여놓고 냉큼, 그걸 최지혁에게 다 덮어 씌워버렸다.

원래 게이트 안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가끔 국가에서 각성경찰을 집어넣고는 했다.

하필이면 그때 각성경찰이 있었고, 그 망할 백호 새끼들은 지들 감옥 가기 싫어서 우리 아무것도 안 한 최지혁을!

심지어 그 경찰은 제대로 수사도 안 했다고!

나는 강준우에게로 달려가 그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그 인간이 그쪽 협박했어요? 그 새끼 어딨어요! 내가 조져놓을 테니까!”

내 행동에 최지혁이 기겁하며 나를 강준우에게서 떼어내며 말했다.

“미쳤어? 무기 들고 있잖아. 제정신이야?”

“내가 그때 최지혁 씨 감옥 갈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데!”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인간이 도대체 뭐라고 조그만 화면 속에서 자기편 하나 없이 유치장에서 쪼그려 앉아있는데 왜 이렇게 속이 상하던지.

내가 폐인 생활을 한 이유가 다 있었다.

과몰입을 안 할 수가 있어야지.

“…….”

최지혁은 내가 눈물을 글썽거리자 놀랐는지 벙찐 얼굴로 날 쳐다보며 아무것도 못 하고 어버버거렸다.

그리고 어느새 리온은 같이 당황해하는 강준우에게 다가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을 걸고 있었다.

“겁먹지 마라, 인간. 24시간 동안 지켜보니, 원래 둘이 저러는 것 같다.”

나는 그제야 내가 뭘 했는지 깨닫고 한껏 밀려오는 쪽팔림에 고개를 푹 숙였다.

미쳤다. 돌았다. 정신 나갔다!

“날, 걱정……했어?”

최지혁이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내게 물었고, 나는 필사적으로 최지혁을 무시하며 최대한 친절하게 강준우에게 물었다.

“크흠, 됐고, 강준우 씨. 우리는 당신 편이에요. 그러니까 말해줄래요? 그 인간들이 도대체 뭘로 협박을 하는지?”

“동생이, 인질로 잡혀있어요. 협조하지 않으면…… 학교까지 찾아가서 일반인인 제 동생 학교생활도 못 하게 해코지하겠다고,”

강준우가 두려운 듯 덜덜 떨었다.

이제야 이해가 조금 됐다. 왜 강준우 정도의 힐러가 하필이면 백호 길드 소속으로 들어가 있었는지.

‘치사하게 가족을 인질로 잡고 건드려?’

원래 힐러는 파티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고 그만큼 구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니 당연히 힐러의 몸값이 비쌀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힐러들은 길드에 속해 있기보다는 대부분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편이었다.

부르는 게 값이니까.

게다가 던전에 들어가서 구르는 것보다 일반인들 치료하는 게 더 돈을 많이 버는데 굳이?

“놈들은 어디 있지?”

최지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 새끼들 평범한 인간이 아니에요!”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강준우에게 말했다.

“그건 강준우 씨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저는, 전…… 놈들이 진아를 두고 협박했는데 아무것도…… 못 했는데, 내가…….”

“그럼 강준우 씨도 협박해요!”

“……네?”

나는 열심히 핸드폰의 아이템 목록을 보면서 말했다.

“아, 근데, 참고로 협박은 여기 최지혁 씨가 전문이에요.”

“그게 무슨…….”

내 말에 최지혁이 인상을 팍 찌푸리더니 차마 부정은 못 하겠는지 고개를 삐딱하게 끄덕였다.

“최지혁 씨, 지금 그 사람들 조빱이죠?”

“……조빱? 아…… 조빱…….”

최지혁이 머리가 아픈 듯 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아이템 상점에 딱 좋은 저렴한 물건이 들어와 있었다.

[ITEM 마녀의 목걸이(A)]

- 크롤린 섬의 마녀가 언데드 기사들을 막기 위해 만든 아이템입니다.

- 효과: 적의를 가진 상대의 공격을 무효화시키고 해당 공격의 70%를 반격합니다.

*일정 레벨 이상의 상대에게는 효과가 없으니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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