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145)

리카르디온, 그러니까 줄여서 리온은 눈에 확연하게 띄는 세기말 귀족 의상 같은 걸 입고 나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최지혁은 그런 리온이 못 미더운지 시종일관 똥 씹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에 나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힐러고 나발이고 만나기 전에 쇼핑부터 해야 할 것 같았다.

잘못하면 보자마자 도망갈 판국이었다.

“오, 마스터. 이 세계 인간들은 스스로 움직이는 고철을 타고 다니는 건가?”

리온은 매장 창문에 찰싹 달라붙은 채로 말했고, 나는 밀려오는 쪽팔림에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저기, 마스터라는 말 좀 안 해줬으면 좋겠는데.”

리온은 누가 봐도 눈에 띄는 화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목에 채워져 있는 요상한 초커는 솔직히, 사람들의 음험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심지어 놈은 나를 마스터라고 굳이, 굳이 지칭하였고, 아직 헌터나 각성자 같은 개념이 확실히 잡히지 않은 이 시기에는 여러모로 상당히…… 듣기 이상했다.

최지혁은 리온을 급하게 피팅룸에 쑤셔 넣고는 이를 악물고 온몸으로 피팅룸의 문을 막았다.

“인간 남자! 아까는 내 머리카락을 뜯으려 하더니 이제는 나를 가두는 거냐!”

“닥치고 옷이나 갈아입어!”

“마스터! 살려줘라!”

쪽팔려서 울고 싶었다.

“아하하, 죄송해요. 외국인이라 그래요, 외국인이라. 한국어가 서툴러서요. 하하하하하.”

나는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는 직원분에게 어색하게 웃으며 빠르게 사과했다.

“미스터 리온, 조용히 하고 빨리 옷이나 갈아입으세요. 제발. 하하하하!”

“이게 무슨 옷인지 알고 말하는 건가? 무려 지옥불에서 4천 번 담금질한 무소의 쇠가죽으로 만든 고귀한 옷인데 감히 인간의 천쪼가리를 내게 입히려 하다니!”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최지혁은 결국 피팅룸을 벌컥 열고 안으로 쓱 들어갔다.

그러자, 곧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

“…….”

최지혁은 세상 개운한 얼굴로 피팅룸을 나왔다.

조용해진 걸 보니 아무래도 최지혁한테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최지혁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마요. 그래도 S급 서번트면 좋은 전력이잖아요.”

“보통 서번트는 세계 밖에서 온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등급이 높은 서번트라고 해도 효율이 반감된다고. 특히나 공격형 서번트인 경우에는 더더욱. 차라리 버프형 서번트를 얻는 게 나아.”

최지혁이 매장 벽에 기댄 채로 꽤 진지하게 내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와 생각이 조금 달랐다.

“리온은 그쪽 전투를 돕는 게 아니라 나를 지킬 거예요.”

“……뭐?”

최지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리온이 들어간 피팅룸을 흘끗 보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내가 그쪽 따라서 던전으로 들어가는 건 필수적인 거 아니에요? 보니까 던전 들어가서도 계속 나 신경 쓰는 것 같던데, 자꾸 그러면 효율이 떨어지지 않겠어요?”

“…….”

“그러니까, 그쪽이 전투를 할 동안 나는 뒤로 빠져서 안전하게 실시간으로 그쪽을 서포트하는 거죠.”

내가 생각해도 꽤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최지혁도 내 말에 납득한 모양인지 미간을 좁히며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빈정대듯 내게 말했다.

“너도 네 안전을 생각하기는 하나 봐?”

당황스러웠다. 지금 누가 누구한테 안전 드립이지?

어이가 없어서 입을 쩍 벌리고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그러니 최지혁이 입술을 쭉 내밀고 궁시렁거렸다.

“내 말대로 그날 던전에 안 들어왔으면 쓰러질 일도 없었잖아.”

“얼씨구?”

“틀린 말 했어?”

나는 팔짱을 끼고 진지하게 최지혁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기요. 좀 솔직해지죠?”

“……내가 뭐.”

확실히 애가 싸가지는 없어도 기본적으로 선한 면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문제는 사람 걱정을 저딴 식으로 해서 그렇지.

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방긋 미소 지으며 최지혁의 넓은 등을 토닥여 주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걱정이 되면 걱정이 된다고 말해요, 돈 나가는 거 아니잖아요.”

내 말에 최지혁의 귀가 시뻘게졌다.

4년 동안 지켜보면서 저 잘난 얼굴로 연애도 안 하고 여자에 관심도 없길래 무성애자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왜 연애를 안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냥 성격이 글러 먹었다. 얼굴값 오지게 한다는 얘기다.

“내가 언제 걱정했다고!”

“요즘은 츤데레 트렌드 아닌데, 최지혁 씨.”

“뭔 소리야!”

최지혁이 발끈하며 내게 한 마디를 더 얹으려는 그 순간 탈의실에서 리온이 인상을 확 찌푸리며 튀어나왔다.

그리고 나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악마라 그런지 드럽게 잘생겼다. 뭔가 최지혁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잘생김이라면 쟤는 인공적으로 발생한 잘생김이라고 해야 할까?

순간 양손에 꽃을 쥔 느낌이라 두근거렸지만 곧 이어지는 놈의 대사에 나는 표정을 팍삭 구겼다.

“마스터, 아래가 답답해.”

“……어머.”

사이즈를 체크하러 오신 직원분이 나지막하게 감탄을 내뱉으며 호다닥 카운터 뒤로 도망을 갔다.

나도 직원분과 함께 이 자리에서 도망쳐 버리고 싶은 마음이 퐁퐁 샘솟았다.

망할, 얼굴이 잘생기면 뭐 해.

그냥 여러모로 글러 먹었는데!

“제발 그 입 닥쳐요!”

“이곳 인간들의 복색은 다 이 모양인가? 너무 꽉 끼는데?”

“미친, 거기 긁으면서 말하지 마!”

최지혁이 급하게 리온의 팔을 뒤로 포박했고 나는 놈의 입을 틀어막았다.

“웁웁읍!!”

“계산이요!! 계산!”

“……아……하하하……. 육만 오천 원입니다.”

***

최지혁은 생각보다 합리적인 인간이었다.

나는 저 악마와의 계약을 파기해 버리라는 최지혁의 의견에 순간적으로 동의해 버리고픈 충동을 필사적으로 참는 중이었다.

“오, 마스터. 저 인간 맛있게 생겼는데 먹어도 돼?”

“제발 그 입 좀 닥쳐!”

솔직히 말해서 목줄이라도 걸 수 있으면 걸고 싶었다.

최지혁이 입에 뭐라도 넣어주면 조용해질 거라고 사준 아이스크림은 이미 다 먹었는지 길바닥에 쓰레기를 휙,

“……서번트고 뭐고 그냥 내 경험치가 되는 게 어때?”

최지혁이 이를 빠득빠득 갈며 리온을 향해 살벌하게 제안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속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리온이 버린 쓰레기를 주웠다.

“아, 그렇게 보지 않으셔도 돼요. 하하, 이 사람이 병원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하하.”

“뭐야, 또라인가.”

“잘생겼는데?”

“야, 또라이는 상대하는 거 아니야. 빨리 가자.”

아, 예. 빨리빨리들 가시죠.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발에 있는 힘껏 힘을 실어 저 악마새끼의 궁둥이를 퍽 차버렸다.

그에 리온은 인상을 팍 찌푸리며 제 궁둥이를 붙잡고 내게 말했다.

“악! 마스터 왜 때려!”

그러다가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뜨며 흐흐흐 웃기 시작했다.

“혹시 이런 거에 관,”

“…….”

“웁! 우브브븝!”

결국 최지혁이 새로 산 양말을 리온의 입에 쑤셔 넣고 나서야 그는 겨우 조용해졌다.

최지혁은 한껏 열 받은 얼굴을 하고 리온의 뒷덜미를 잡아 질질 끌었다.

나는 미간을 어루만지며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금 우리는 이제 막 각성한 대한민국 최고의 힐러를 영입하러 가는 건데 이 악마가 훼방을 놓지 않을까.

버리고 가야 하나.

잠깐 놈을 버리고 가는 상상을 해봤으나 뭔가 경찰차와 구급차가 잔뜩 와있는 미래가 보여 깔끔하게 기각했다.

“근데 무작정 여기 온다고 해서 찾을 수 있는 거예요?”

“전화번호 알아. 이미 과외받을 예정이라고 연락해놨어.”

최지혁은 태연하게 폭탄을 던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근처 카페로 쑥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얼굴값인지 뭔지 싹퉁바가지가 저세상으로 가출했나.’

아니, 전화번호 알아서 미리 연락했으면 연락을 했다고 말해야 할 거 아니야!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최지혁은 내 표정이 구린 이유를 정녕 모르겠다는 듯이 카페를 쓱 훑으며 물었다.

“아니, 미리 약속 잡았으면 말을 했어야죠! 혼자 그 사람이 다니는 대학교까지 가서 뒤져야 하는 줄 알고 긴장했는데!”

“그게 뭐가 문제인데? 어차피 강준우만 찾으면 되는 거 아니야? 저깄네.”

우리가 만날 힐러의 이름은 강준우였다. 강준우가 왜 한국 최고의 힐러냐고 물으면 대답은 간단했다.

“혹시 과외받기로 한 최지혁 씨?”

“네.”

“앗, 강준우라고 합니다. 종로까지 꽤 멀었을 텐데. 반가워요.”

의대생 출신 A급 힐러.

앞에 붙은 수식어가 바로 강준우의 핵심 무기였다.

S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S급보다 더 고효율의 힐을 할 수 있는 인간……이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평범해 보였다.

그냥 과제에 찌들어서 눈 밑이 시커먼 선한 인상의 너드…… 정도?

나는 슬쩍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많이 발전했다.

나한테 말도 안 하고 강준우와 약속을 잡은 것은 조금 열 받지만 본인을 재수생이라고 속이고 과외 부탁을 한 것 같았다.

“그나저나 재수……, 하시는 건가요?”

최지혁은 거만하게 쓰윽, 강준우의 위아래를 대충 훑더니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힐러로 각성한 지 며칠 됐지?”

“……네?”

그리고 나는 내 입을 쩍 벌리고 최지혁을 쳐다봤다.

아니 저 미친 노빠꾸 직진 또라이가!

잠시나마 융통성이 생겼다고 감격한 내 자신이 초라해졌다.

나는 빠르게 최지혁을 밀치고 강준우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덥석 잡고 흔들었다.

“아하하하하! 얘가 좀 이상한 구석이 있어요. 그러니까 5수를 하지, 하하하하!”

“아……. 5수요?”

젠장, 망했다.

이미 강준우는 최지혁의 노빠꾸 직진에 겁먹은 눈치였다.

“선생님, 다름이 아니라, 힐러, 각성, 이런 거는 헛소리예요. 헛소리.”

“내 쪽이랑 손잡는 게 유리할 거야. 백호 길드, 거기 인간들 양아치니까.”

“…….”

나는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몰라 알아서 해. 난 진짜 몰라.

저 인간도 뭔가 생각이 있으니까 저렇게 나가는 게 아닐까?

나는 일단 최지혁을 믿기로 했다.

솔직히 이미 본론을 던져 버린 탓에 뭘 수습할 수도 없었다.

“당신 뭐야.”

순간 강준우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리고 그는 급하게 주머니에서 무언가 담겨있는 주사기를 꺼내 들고 당황하듯 뒤로 물러섰다.

적대적인 태도에 나는 깜짝 놀라 최지혁의 옷자락을 잡았고, 순간 옆에서 리온이 투! 하고 입에 물려 있던 양말을 뱉고는 싱글거리며 내게 물었다.

“오, 적이야? 내가 먹어도 돼?”

“……제발 입 좀,”

“오, 오지 마!”

반면에 최지혁은 세상 여유로운 얼굴로 한 발짝 한 발짝 강준우에게로 다가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주호지? 당신 협박한 새끼.”

“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나는 최지혁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인상을 찌푸렸다. 성주호?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어디였더라……? 분명히 들어봤는데.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봤다.

‘성주호, 이 개 같은 새끼가!’

‘성주호, 개자식.’

‘길드는 안 가.’

‘지금 길드가 무슨 상황인지 몰라?’

그리고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기억났다.

“미친, 그 때려죽일 아이템 스틸범 개X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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