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혁은 사방에서 튀어 오르는 마물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족쳤다.
아직은 헌터등급이 F급이라 살짝 힘겨워 보였지만, 아침마다 운동 가서 빡시게 동네 몇 바퀴씩 돌고 오더니 효과가 있긴 한 모양이었다.
좀 징그러웠지만 최지혁은 꽤 안정적으로 적들을 썰고 있었으니까.
“포션 못 쓰니까 다치면 절대 안 돼요.”
“아니, 이걸 상처 없이 어떻게 잡으라는 건데!”
“됐고 다치면 뒤져요.”
시간은 생각보다 촉박했다. 만약에라도 다른 각성자들 쪽이 퀘스트를 클리어해 버리면 낭패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안 다치고 얘들을, 제길!”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며 던전을 돌아다니는 것도 꽤 힘들었다.
최지혁은 투덜투덜, 궁시렁댔지만 결국 멀쩡한 몸으로 해냈다. 그리고는 내 옆으로 와서 핸드폰을 쳐다보며 물었다.
“얼마나 모였는데.”
“이제 딱 천 원 모였어요.”
내가 뿌듯한 마음으로 그에게 핸드폰을 내밀자 돌연 최지혁이 내 핸드폰을 뺏어가더니 지 맘대로 물품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아, 뭐 하는 거예요!”
그러자 순식간에 내 위로 옷가지들이 후두둑 떨어졌고 나는 버둥대면서 떨어지는 아이템들을 잡았다.
“입어.”
최지혁은 내 타박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 머리 위에 덮인 망토를 대충 내 몸에 둘러 입히고 추가로 떨어진 액세서리류도 내게 철컥철컥 잘도 채웠다.
어이가 없었다.
“아니, 포션을 사야지 왜 나한테,”
“몰라 물어? 너 쟤들한테 물리면 바로 죽어.”
“그렇다고 나한테 돈을 다 쓰면 어떡해요!”
나는 핸드폰 상단에 있는 내 잔고를 보고 거의 울 뻔했다. 우씨, 겨우 천 원 모아놨더니 다시 빵 원이다.
“방어력 떡칠 아이템이니까 A급 일격에도 살 수 있어.”
“아, 예. 감사해요. 이제 우리 빵 원 있네요. 와.”
“불만이야?”
“어우, 그럴 리가요.”
나는 찌릿 최지혁을 한번 째려봐주고 다행히 그가 지르기 전에 사둔 지도를 보았다.
“여기까지 들어가야 해요.”
나는 지도에 작게 별 표시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에 최지혁은 잠깐 미간을 찌푸리고는 지도를 조금 더 자세하게 살폈다.
“내가 후방은 못 보니까 네 쪽에서 봐줘야 해.”
“좋아요. 뒤에서 뭐 오면 바로 칼로 눈깔을 확!”
“……그냥 나한테 말해.”
내가 최지혁의 낡은 검을 들고 방정을 떨자 최지혁이 짜게 식은 눈으로 내게서 칼을 앗아갔다.
“아, 왜 뺏어요!”
“그냥 가만히, 안전하게 있어주면 안 될까?”
최지혁은 좀 날 과보호하는 느낌이 있었다.
아니, 명백하게 과보호하고 있었다. 뭐, 좋은 마음에서 그러는 걸 아니까 딱히 할 말은 없다만…… 조금 억울한 건 사실이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유난이야, 진짜.”
“내가 유난 안 떨게 생겼,”
그때였다.
“사, 살려 주세요.”
나와 최지혁은 눈을 크게 뜨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작은 남자아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
“…….”
뭐지?
“원래 이런 경우가 있어요?”
내 물음에 최지혁이 인상을 확 찌푸리며 대답했다.
“게이트 안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은 없긴 한데…… 보통은 따로 서브 퀘스트가 뜨지 않아?”
상당히 화려하게 생긴 남자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리 근처에서 쪼그려 앉아서 울고 있었고 나와 최지혁은 열심히 수군대며 열을 올렸다.
“그쪽도 모르는데 나야 더 모르죠!”
“히든 퀘스트인가……?”
최지혁이 남자아이를 보고 음흉하게 입맛을 다셨다.
그에 남자아이가 흠칫 놀라며 내 뒤로 호다닥 와서 숨었다.
“꼬 마 야. 왜 그 러 니.”
최지혁이 뚝딱거리며 국어책 읽듯 아이에게 손을 내밀자 아이가 이내 우아아앙 울음을 터트렸다.
솔직히 말해서 좀 이상하긴 했다. 대사가 그게 뭐냐?
그리고 히든 퀘스트 얘기에 변태처럼 입맛은 왜 다시는데?
나는 한결같은 최지혁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 뒤로 숨은 남자아이에게 말했다.
“괜찮아. 이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야.”
“그래, 나쁜, 잠깐만. 아저씨라니!”
“헐,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으면 아저씨 맞죠.”
“……회귀해서 스물네 살이거든!”
“지금 그게 중요해요?”
“중요해!”
내 말에 최지혁이 좀 심하게 발끈하긴 했지만 나는 깔끔하게 무시해 주기로 했다.
“천천히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지 않을래?”
나는 아이의 땀에 젖은 화려한 금발을 넘겨주며 물었다.
두 눈에 위치한 붉은색 눈동자가 매력적이었다.
역변하지만 않는다면 최지혁보다 훨씬 잘생겨질 것만 같은 마스크였다.
“어차피 시스템의 일부야. 의미 부여하지 마.”
내 친절한 물음에 최지혁이 굳이 태클을 넣었고, 거기에 겁을 먹었는지 아이가 내 옷자락을 잡고 덜덜 떨며 말했다.
“악마, 악마가 엄마를, 삼켰어요.”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꽤 그로테스크했다.
“어디서?”
내 물음에 아이의 손가락이 마을에 있는 가장 허름한 집을 가리켰다.
최지혁은 가만히 팔짱을 끼고 턱짓으로 그곳을 가리키며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저긴 것 같았다.
“친구야, 이름이 뭐야? 누나는 채유라야!”
“……온, 리온…….”
“대충 하고 가.”
최지혁은 내 친절이 달갑지 않은 듯 인상을 찌푸리며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누, 누나!”
“응?”
“같이, 같이 가요. 엄마가, 엄마가…….”
리온의 말에 최지혁이 귀찮다는 듯 손을 훠이훠이 저으며 대충 리온에게 말했다.
“진짜 걸리적거리게…….”
그리고 나는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이 꿈도 희망도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걸리적거린다니!
내가 최지혁의 언행에 그를 팩 째려보자 최지혁은 내 째림의 이유를 전혀 캐치하지 못했는지 얼빵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왜 째려보냐는 무언의 항의를 가했다.
“아니, 뭔 말을 그렇게 해?”
리온이 벌벌 떨며 내 다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시간 없어. 빨리 떨어지라고 해.”
“싫어!”
최지혁의 말에 리온이 빽 소리를 질렀고 최지혁은 난데없는 어그로에 깜짝 놀라 검을 꽉 쥐고 주변을 휘휘 살폈다.
다행히 달려드는 마물은 없는 모양이었다.
“미쳤어? 소리를 지르고 난리,”
“애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진짜!”
나는 대충 최지혁의 정강이를 발로 차며 리온을 안아 들었다.
최지혁은 맞은 곳이 꽤 아팠는지 열심히 제 정강이를 문지르며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나는 애써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너, 너무 세게 때렸나?
“야, 왜 째려봐.”
최지혁은 제 다리를 매만지다가 이내 리온과 눈이라도 마주쳤는지 나까지 무서울 정도로 정색을 하며 말을 뱉었다.
“흑, 저 아저씨 무서워.”
그에 리온이 내 목에 고개를 묻으며 최지혁의 시선을 피했다.
“야, 아저씨 아니라고!”
***
-[경고!]-
-[악마의 봉인이 일부 해방됩니다!]-
결국 최지혁이 꿍시렁꿍시렁하긴 했지만 애가 생각보다 고집이 세서 놓고 오는 건 실패했다.
게다가 이 정도로 완강하게 함께하길 원하는 걸 보니 퀘스트에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긴 했다.
“저 개새끼가!”
“최지혁!”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건 함정이었다.
그것도 명백한 함정.
허름한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눈앞에 영상 하나가 재생되었다.
쿵, 은발의 적색 눈을 한 미청년이 가죽 날개를 쫙 펼치며 운석 충돌과도 같이 마을로 추락했다.
마을은 곧 화염에 휩싸였고, 누가 봐도 악마로 보이는 남자가 우리가 들어온 집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집 안에는 아이를 안고 벌벌 떨고 있는 금발 여성과 푸른 눈의 리온이 있었고, 은발의 남자는 망설임 없이 리온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의 목숨을 앗아갔다.
‘네 죄를 탐하다 영원한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어 우레와 같은 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지고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는 남자아이의 몸에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영상은 끝이 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와 최지혁은 나란히 촉수같이 꿀렁거리며 미끌거리는 검은색 끈에 묶여있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리온이 아닌, 영상에서 보았던 은발의 미청년이 붉은색 입술을 핥으며 고고하게 서 있었다.
“하하, 이거 이거 제일 맛있는 먹이가 제 발로 알아서 찾아오다니.”
놈의 손가락이 내 턱을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잘생긴 얼굴이 내 코앞으로 다가왔다.
“젠장! 당장 그 여자한테서 떨어져!”
최지혁은 나를 향해 울부짖듯 소리쳤고 나는 일단 입을 닫고 놈을 노려보았다.
분명 클리어 조건은 악마를 전투 불능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지? 일단 퀘스트 목표인 악마를 찾았으니 좋아해야 하는 건가?
“흐응, 좋은 향기가 나.”
악마가 내 목덜미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그리고 황홀하다는 듯 입맛을 쩝쩝 다시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는 건가?”
그리고 순식간에 내 손에 들려있던 핸드폰을 앗아갔다.
나는 경악한 얼굴로 악마를 쳐다보았고, 그건 최지혁도 마찬가지였다.
“호오, 이건!”
악마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핸드폰을 번쩍 들어 올리고는 화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핸드폰이 미친 듯이 진동하며 딱딱한 기계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사용자 불일치! 긴급 보안 시스템을 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