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200원 정도 남은 잔고를 탈탈 털어 당장 현금화가 가능한 금반지 20개를 더 구매했다.
그래서 지금 남은 잔고는 100원밖에 없었지만 돈은 던전에서 아이템만 얻으면 언제든지 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기본적인 투자금액이다.
아까워할 것 없었다.
수중에 있는 돈은 3천만 원 정도였고, 괜찮은 방과 중고 국산 차 한 대를 구매하니 돈이 훅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나았다.
비록 서울은 아니었지만 꽤 넓은 투룸짜리 방으로 거처를 옮길 수 있었고, 가구라고는 달랑 매트리스 두 개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매트리스를 좋은 거로 샀다.
“스물.”
그리고 전보다 상황도 나아졌다. 정부는 무려 2주 만에 슬슬 게이트의 존재를 눈치채고 정책이라는 걸 펼치기 시작했다.
문제는 지금은 게이트의 위험성 때문에 일반인은 진입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는 거였지만.
그래서 던전에서 돈을 수급하려면 일주일은 더 버텨야 했다.
본격적으로 각성자의 존재가 드러나는 건 그때쯤이라고 했으니까.
“스물하나.”
그런데, 그 전에.
도대체 나는 왜 최지혁이랑 스쿼트를 하고 있는 건데!
“언제까지, 헉, 해야 하는 건데요!”
“나랑 굳이 던전에 같이 들어가야겠다며.”
“그거랑 이거랑 뭔 상관,”
“열 번 남았어.”
최지혁은 그동안 나를 끼고 미친 듯이 운동을 했다.
거의 1대1 PT를 공짜로 받는 셈이라 처음에는 좋아했는데 이제는 좀 죽을 것 같았다.
“던전에서 제일 필요한 게 뭔 줄 알아?”
“뭔데요.”
최지혁이 내게 생수를 내밀며 무슨 특급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듯 속삭였다.
“오래 걷고, 뛰고, 튀는 거.”
그리고는 대번 내 어깨에 지 손을 턱 올리더니 그대로 꾹 누르는 게 아닌가?
“아아아아, 근육통, 잠깐만, 아아아!”
“그럼 유산소 하러 갈까?”
“……내가 뭐 잘못했어요?”
“그럴 리가.”
나는 최지혁을 쓱 째려보며 그냥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죽을 것 같았다.
“채유라, 일어나.”
“10분만 쉬면 안 돼요?”
내 말에 최지혁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더니 곧 순순히 내 옆에 본인도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내일부터야. 게이트 출입 가능해지는 거.”
나는 최지혁의 말에 고개를 번쩍 들고 그에게 말했다.
“가서 최대한 아이템 수급해놓고 현금으로 땡겨놔야 해요. 나 신분 만들어야 하잖아요. 흥신소 의뢰라도 해야 하는데…….”
갑자기 울적해졌다. 사실 이거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나는 최초의 멸망이 시작된 날, 최지혁 앞에 뚝, 하고 떨어졌다.
그런 내가 이 세계에서 신분이 없는 건 당연한 소리였다.
누구보다도 모범시민이었던 내가 불법 체류자라니!
“걱정 마. 돈만 생기면 금방 의뢰할 수 있어. 그날 사람이 많이 죽어버려서 네 신분 하나 만드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닐 테니까.”
“나 범죄 저지르는 거 처음 해봐요.”
“…….”
내 말에 최지혁이 잠시 할 말을 잃은 듯싶더니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내게 말했다.
“갑자기 범죄가 왜 나와!”
“신분 조작한 거 들키면 잡혀가는 거 아니에요? 만약에 잡혀가면 나 빼줄 거죠? 최지혁 씨?”
“……안 잡혀가.”
“최지혁 씨만 믿을게요. 알았죠?”
“알았으니까 그만 되물어!”
***
“요즘 누리꾼들 사이에서 헌터라고 불리는 이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늘어감에 따라 현재 국회에서 게이트 관리법안을 발안한 상태인데요,”
나는 가로수 나무 뒤에 최지혁과 함께 나란히 숨어 실시간 방송 중인 것 같은 기자를 훔쳐보았다.
기자의 뒤편으로는 빨간색의 커다란 포털이 당장이라도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집어삼킬 것같이 울렁이고 있었다.
“한편, 현대 무기로 게이트 안 몬스터들을 상대하기 어렵다는 국방부의 발표에 따라 오늘부터 각성자들의 게이트 출입이 가능해졌습니다.”
나는 핸드폰을 쓱 훑었다. 이제 내게 남아있는 돈은 100원 이하.
게이트에 출입하기 전 신원을 확인하기 때문에 나는 게이트 안으로 몰래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괜찮겠어?”
“나올 때만 조심하면 돼요.”
나는 최지혁의 백팩에서 무거운 철제 투구 하나를 꺼냈다.
무려 30원이나 주고 산 거다. 계좌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탈탈탈 털었다.
‘그림자 기사의 투구’
“으악!”
나는 투구를 빠르게 뒤집어썼고, 생각보다 엄청 무거워서 나도 모르게 앞으로 자빠질 뻔했다. 하지만 다행히 최지혁이 넘어지는 날 잡았다.
“조심, 좀.”
“쉿쉿! 조용히 해요.”
아이템의 효과는 대충 이랬다.
이 투구를 쓰고 최지혁 신체 부위 중 아무 데나 잡으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최지혁의 그림자로 보인다.
문제는 최지혁 눈에는 내가 보여서 아이템 효과가 적용되었는지 확인하려면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거다.
“저기요.”
“……헐, 뭐야. 누구세요?”
“……제 뒤에 있는 사람이 보이십니까.”
“저 불교예요.”
“야, 사이비 또라이인가 봐. 가자.”
“근데 좀 잘생…….”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가자니까?”
우리 앞에서 구경하고 있던 고등학생들이 최지혁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멀리 사라졌다.
최지혁은 어색하게 제 콧잔등을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용히 게이트 앞으로 향했다.
“성함 말씀해 주시고 신분증 제출해 주세요.”
“최지혁.”
게이트 앞 무장하고 있는 군인이 최지혁의 신원을 확인하더니 이내 우리를 사이드로 세워 두고 다른 사람들을 받았다.
아무래도 아직 체계가 완전히 잡힌 상태는 아닌지라 일 처리가 상당히 엉성했다.
원래라면 각성 헌터들의 클래스별로 나눠 팀을 짜 들어가는 게 맞을 텐데…… 이건 솔직히 막무가내였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면 우선 저희들의 지시하에 움직이셔야 합니다.”
우리를 제외하고 총 3명의 사람들이 제각기 비장한 표정으로 군인의 말을 경청했다.
아마 저 사람들은 첫 번째 게이트에서 화를 당한 사람들일 거라고 최지혁이 말했다.
그게 아닌 이상 죽을지도 모르는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자진하는 멍청이는 없을 테니까.
게다가 나라에서 지원하는 금액은 천만 원이 다였다.
목숨값으로는 조금 싼 경향이 있었다.
“일단 들어가기 전에 동의서부터 작성해 주시죠.”
군인은 최지혁에게 종이 한 장과 인주를 내밀었다.
사망 시 군의 책임이 아니라는 내용이 담긴 동의서였다.
최지혁은 대놓고 귀찮다는 기색을 내보였다.
예상대로 절차가 좀 복잡했다.
“다 작성하셨으면 보호장비 착용하시고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긴장한 기색의 군인이 말했고, 덩달아 나도 조금 긴장해서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나저나 군인들은 안 들어가는 게 좋을 텐데.
원래 게이트 안에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은 들어가지 않는 게 상책이니 말이다.
“꼭, 게이트 안에서는 제 지시를 따르셔야 합니다.”
군인이 당부하듯 우리에게 말했고 최지혁은 역시 건성으로 대충 대답했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들어가자마자 습격당한 척하고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빠질 예정이다.
왜냐고?
아이템은 우리가 싹 다 독점해야 하니까!
“그럼,”
우리는 사람들을 따라 게이트 안으로 발을 들였다.
뭔가 몸을 빨아들이는 괴이한 감각이 스쳐지나가고 눈앞에 펼쳐진 건 붉은 하늘 아래에 불타고 있는 어느 마을이었다.
[탈출한 악마의 도피처(E)]
- 천상계에 붙잡혔던 악마가 인간계로 도주했습니다.
악마의 강력한 어둠의 힘의 영향으로 오랜 시간 인간계에 잠들어있던 마수들이 깨어납니다.
악마가 힘을 완전히 회복하기 전에 숨통을 끊어놓으세요.
- 제한시간 6:59:59
- 클리어 조건: 악마를 전투 불능상태로 만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