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45)

최지혁이 금은방에서 반지를 팔아 현금화하자마자 우리는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강남 사태 이후 며칠 지났다고 어지간한 가게들은 다 정상 영업을 시작했다.

나는 후식으로 나온 사과를 씹으며 최지혁에게 물었다.

“그래서 본격적인 활동은 언제부터 할 수 있는데요?”

“한 달은 기다려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거야.”

말 그대로 이 세계는 아비규환이었다.

똑같은 몬스터, 똑같은 시간, 똑같은 유형의 S급 던전이 세계 각국에서 열렸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앞으로 일어날 사태에 대한 일종의 경고 같은 거였다.

“그럼 각성 등급 측정이나 게이트 등급 측정은 언제쯤 할 수 있는데요?”

“못해도 4개월은 봐야 해.”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 동안 입 안에 있는 사과를 씹으며 생각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솔직히 말해서 이 세계는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세상이었다.

사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누가 멸망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을까?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죠?”

내 말에 최지혁이 사과를 입에 넣으려다가 움찔거리며 천천히 나를 쳐다보았다.

“……글쎄. 던전 돌다 보면 방법이 나올 수도…….”

확신이 없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최지혁의 대답이 이해는 갔다.

“뭐, 현재로서는 그 방법밖에는 없죠.”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거야?”

최지혁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내게 물었다.

“……너무 당연한 걸 물었나.”

그리고는 씁쓸한 얼굴로 들고 있던 포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돌아갈 수 있으면 돌아가는 거고. 못 돌아가면…….”

괜히 말하다가 울적해졌다.

당연히 돌아가야 했다. 가족들이 걱정할 게 뻔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수로 돌아갈 방법을 찾냐고.

“일단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지금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나는 꽤 단호한 표정으로 최지혁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 어디서 자요?”

그리고 내 질문에 최지혁의 얼굴이 완전하게 일그러졌다.

도대체 뭔 개소리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보니까 계속 앉아서 졸고 있던데. 어차피 서로 불편하니까 그냥 대충 모텔 같은 데 잡아서 혼자,”

“안 돼.”

“뭐가 안 되는데?”

세상 단호박 같은 최지혁의 태도에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그가 살짝 흥분한 듯한 기색으로 목소리를 낮게 깔며 속삭이듯 대답했다.

“이 상황에서 널 혼자 재우라고? 내가 미쳤어?”

“저기요, 최지혁 씨. 5성급 호텔도 아니고 모텔인데 뭐 어때서요. 시국이 시국인지라 1박에 3만 원도 안 해요. 그리고 아직 급 높은 게이트는 안 열린다면서요.”

“지금 게이트만 문제야? 뉴스 안 봤어? 혼자 나갔다가 이상한 놈들이라도 마주치면 어쩌려고!”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흥분한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최지혁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물론 당장 상황만 놓고 보자면 한국은 대충 삐걱거리기는 하지만 잘 굴러가고 있었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 경우에는 계엄령을 내리고 록다운을 실시했지만, 한국은 아니었다.

자급자족이 되는 나라도 아니었고, 어쨌든 나라가 굴러가야 했으니 게이트가 터진 후 이틀이 지나자 다들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겨우겨우 일상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회가 불안하다 보니, 그에 대한 공포심과 이기주의로 인해 범죄율이 많이 올라갔다고 아침 뉴스에서 봤다.

“그러면 지금 나더러 계속 최지혁 씨 옆에 붙어 있으라는 거예요?”

“당연한 거 아니야?”

정말 당연한 것처럼 말해서 순간 내가 틀린 말을 했나 진지하게 생각해 볼 뻔했다.

“어머,”

순간 최지혁의 말을 오해했는지 뒤에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옆에 앉은 아저씨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최지혁도 그걸 봤는지 귀를 빨갛게 물들이고 머뭇거리더니 곧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일주일만 버텨. 부동산 알아보고 넓은 곳으로 집 옮길 거니까.”

“저기요, 지금 내 말의 요지는 넓은 집이 아니거든요?”

“아무튼 혼자는 안 돼. 용납 못 해.”

머리가 새하얘졌다.

최지혁은 완강하게 동거하자는 소리를 저딴 식으로 하고 있었고 나는 복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저기요,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요. 아무리 내 상황이 그렇다고 해도, 대한민국에서 남남인 우리가 한 지붕 아래 사는 건 꽤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라온 저로서는,”

“성좌와 화신의 관계가 남남이라고 생각해?”

“……최지혁 씨? 그게 도대체 무슨 질문이죠?”

최지혁이 진짜 심각한 얼굴을 하고 내게 위협하듯 말을 이었다.

“내가 너한테 그 정도밖에 안 돼?”

뒤에 계신 아주머니는 최지혁의 개소리에 입까지 틀어막으시고 열심히 우리 쪽 테이블을 관람했고, 나는 부끄러워 돌아버릴 것 같았다.

진짜 돌았나 봐.

“저기요. 지금 생각하고 말하는 거 맞죠?”

내 질문에도 그는 개의치 않고 이를 빠득빠득 갈며 내게 물었다.

“말해봐. 여태까지 난 너한테 아무것도 아니었어?”

환장하겠다.

나는 뒷목을 잡으며 최지혁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고깃집에서 이러고 싶지 않네요. 우리 다른 데 가서 얘기할까요?”

“날…… 가지고 논 거야?”

최지혁이 충격받은 얼굴로 눈까지 시뻘게진 채로 내게 물었다.

“어머머머, 총각 운다.”

“아우, 주책이야. 그만 봐, 그만.”

우는 게 아니라 빡친 것 같다고 정정해주고 싶었지만 일단 참았다.

결국 나는 벌떡 일어나 최지혁의 손목을 잡고 식당 밖으로 이끌 수밖에 없었다.

“뭔데?”

“아, 진짜 제발, 그 입 닥쳐요.”

나는 최지혁의 입술을 틀어막고 그의 주머니를 뒤져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며 그를 카운터로 질질 끌고 갔다.

“읍! 읍읍!”

“계산이요! 계산!”

“…….”

카운터 직원은 나와 최지혁을 굉장히 이상한 사람 보듯 쳐다보았다.

“……15만 4천 원입니다.”

“잘 먹었습니다. 하하하하.”

“웁! 으읍!”

나는 최지혁을 끌고 발을 쿵쿵 구르며 으슥한 골목으로 데려와 냅다 던졌다.

“뭐 하는 거야! 미쳤어?”

“당신이야말로 돌았어?”

나는 밀려오는 쪽팔림에 최지혁의 등짝을 열나게 때렸다.

“왜 때려!”

“몰라서 물어요? 제정신이야? 아주 동네방네 동거한다고 광고하기로 작정했냐고!”

“악! 팔꿈치로 찍, 아파!”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최지혁을 째려보았다.

“……그렇게 쳐다봐도 혼자는 안 돼.”

“그럼 뭐 어쩌자고요. 집 알아보기 전까지 계속 앉아서 잘 거예요? 아니잖아요.”

“네가 날 왜 신경 쓰는데. 상관 마.”

최지혁의 얼탱이 없는 말에 결국 큰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저기요, 방금 본인 입으로 본인이 남이냐고 화내셨거든요? 그리고 저는 그쪽과 달리 공감 능력이 뛰어나서 그쪽 쪽잠 자는 게 굉장히, 아주, 매우 신경 쓰이거든요!”

내 말에 최지혁이 흠칫거리며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그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최대한 차분하게 그를 달래듯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쪽 의견 아예 존중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방 구하는 일주일만이라도 따로 지내자는 거예요.”

하지만 내 말에 최지혁은 내 손목을 턱, 붙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위험하다고 몇 번을 말해.”

화를 안 내려고 했는데, 승질이 났다.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저기요, 최지혁 씨. 현실적으로 일주일 만에 집 알아볼 수 있어요? 금반지 바꿔서 겨우 천만 원 받았는데 서울에 방을 어떻게 구해요? 천만 원 가지고 보증금도 못 내잖아요. 그런데 지금 방보다 넓은 곳으로 어떻게 가는데요?”

“근교로 가면 되잖아.”

최지혁의 말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좀 현실적인 답에 할 말이 없어졌다.

“굳이 서울에 살아야 할 이유는 없어. 게이트도 서울에서만 열리는 거 아니고.”

최지혁은 진지한 얼굴로 제 계획을 줄줄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당장 내일부터 부동산 알아볼 거야.”

“…….”

“어차피 게이트 터진 직후라 부산 쪽이나 많이 올라갔지 수도권 쪽 집값은 많이 빠졌어. 여긴 그래도 서울이라 아직 비싸긴 하지만 인천 정도만 가도 우리 예산으로 괜찮은 집 구할 수 있어.”

최지혁이 빠르게 핸드폰으로 집을 검색해서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봐. 내려갔지?”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최지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초조해 보였다.

“나중에 서울 올 일 있으면 그냥 중고차 하나 구해서 타고 오는 게 더 나아. 그리고 돈은 계속 벌 예정이고.”

그리고 곧바로 나는 그에게 돈 얘기를 꺼낸 걸 후회했다.

최지혁이 초창기에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최지혁을 처음 발견하고 그냥 심심풀이로 방송을 볼 때까지만 해도, 최지혁은 몇 달 동안이나 반지하 방을 벗어날 수 없었다.

버는 족족 부모님이 그에게 남기고 간 빚을 갚는 데 썼으니까.

심지어 제2금융권까지 손을 뻗었는지 종종 사람이 찾아와서 협박도 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빚을 다 갚던 날.

최지혁은 작고 초라한 방구석에 평소 잘 먹지 않았던 족발 하나와 소주 한 병을 시켜두고 그냥 그 앞에서 펑펑 울었었다.

“알았어요.”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최지혁에게 말했다.

“화내서 미안해요. 나도 좀 불안해서 그랬어요. 이해해줘요.”

“…….”

내 말에 최지혁이 조금 당황스러운지 입을 살짝 벌리고 그 자리에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내일 부동산 알아보러 몇 시에 갈까요?”

“그냥……. 너 일어나는 대로…….”

“그럼 우리 10시쯤 나가요. 아무래도 반지 좀 더 팔아야겠어요. 금은방도 들렀다가 밥도 먹고 가요. 그리고 생필품도 좀 사고.”

내 말에 최지혁은 슬쩍 시선을 바닥으로 깔았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에 나는 부러 장난스럽게 실실 웃으며 최지혁에게 말했다.

“우리 다음에는 펜트하우스로 노려볼까요? 어차피 몇 달만 고생하면 돈이야, 금방 버니까! 내 능력 봤잖아요. 안 그래요?”

그러자 시선을 바닥에 떨구고 있던 최지혁이 나를 쓱,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참을 그냥 가만히 그렇게 있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응.”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감이 안 왔다.

표정이 또 우울해져 있었다.

“그래서 최지혁 씨는 카페 가면 뭐 먹을 거예요? 검색해 보니까 여기 근처에 케이크 잘하는 데 있다던데.”

“그냥 너 먹고 싶은 거 먹어.”

“그럼 내가 골라준 거 먹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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