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뭐 어쩌라는 건가 싶었다.
지가 다시 계약해 달라고 해놓고서 이제 와서 저러면 나더러 뭐 어쩌라고!
무슨 반응을 원하는 거지?
최지혁은 온 세상에 버림받은 듯한 얼굴을 하고 식탁을 쳐다보았다. 세상 우울함은 자기 혼자 다 떠안은 사람 같았다.
“지금 나랑 싸우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왜 시비야?”
나는 갑자기 열이 받아서 젓가락을 탁, 내려놓고 최지혁을 쏘아봤다.
“나도 다 계략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표정 풀어요.”
“계략?”
내 말에 최지혁이 조금 놀란 얼굴로 바닥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오늘부터 그쪽한테 오지게 빈대 붙을 계획이거든요.”
“……뭐?”
“생각해봐요. 난 지금 신분도 없고 돈도 없고 집도 없는데 그쪽 아니면 누구한테 붙어?”
나는 헤헤 웃으며 최지혁의 탄탄한 팔뚝을 두어 번 두드려주며 말했다.
“걱정 마요. 나 부려먹는 거 완전 잘하니까.”
내 말에 최지혁이 어이가 없는지 입을 쩍 벌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겠다는 듯 헛숨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자, 그럼 우리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을 좀 세워 볼까요?”
최지혁이 어이없어하거나 말거나 내 알 바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가뿐하게 내 할 말만 했다.
우선 내 계획은 이랬다.
“던전 돌아요, 우리.”
“미쳤어? 안 돼.”
“아니 왜 다짜고짜 안 된대? 들어봐요,”
“안 된다고.”
물론 내 계획을 말하기도 전에 최지혁에게 막혀버렸지만.
“오늘 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나? 자칫했으면 우리 둘 다 죽었어. 그런데 던전에 또 기어 들어가겠다고?”
솔직히 좀 모순적이었다.
그렇게 내가 던전 혼자 들어가지 말라고 했을 때는 말 더럽게 안 듣더니 이제 와서는 또 들어가자니까 싫단다.
“그럼 뭐 어쩌자고. 여기 앉아서 손가락만 빨아요?”
“던전은 나 혼자 들어가.”
“왜, 치사하게 혼자 저승사자랑 1대1 미팅 잡으려구요? 와우, 거 참 기발한 생각이네요.”
최지혁도 내 의견에 동의는 하는 듯 입을 삐쭉 내밀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됐고, 그쪽이 나더러 성좌 다시 해달라면서요. 나 성좌 노릇 하려면 돈 필요해요. 최지혁 씨도 동의하죠?”
내 말에 최지혁이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문제는 내가 아까 그 코인폭탄으로 10만 포인트를 받았는데 9만 포인트나 써버렸다는 거예요. 나 이제 만 포인트밖에 안 남았어요. 거지예요.”
“뭐? 십만?”
최지혁이 눈을 크게 뜨고 내게 되물었다.
“……왜요?”
“던전 클리어 보상으로 십만 포인트를 받은 거야? 아님 원래 있던 거야.”
“접속 보상으로 주던데요?”
최지혁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허허 뱉어냈다.
“너 그게 얼마나 큰 돈인지는 알고 하는 소리야?”
“뭔 소리예요? 십만 포인트면 대충 천 원 아니에요?”
내 말에 최지혁의 눈썹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매우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제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천 원이 아니라 억이겠지.”
“……예?”
그리고 나는 내 뒷목을 잡았다.
미친, 내 돈!
***
“한 달 동안은 유예 기간이나 다름없어. 낮은 급 던전만 열리니까 그나마 안전하긴 한데…….”
최지혁은 불안한 감정을 가득 담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여자를 눈에 담았다.
여자의 말은 짜증 날 정도로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최지혁은 당장 돈이 필요했다.
언제고 저 여자를 데리고 그의 거지 같은 방에 처박혀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니까 지금 시기에 열리는 게이트는 들어갈 만하다는 거 아니에요.”
지금같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게이트를 돌아야 좋은 아이템을 선점할 수 있었다.
특히나, 제 눈앞에 있는 여자가 아무것도 모르고 제게 선물했던 아이템이 꼭 필요했다.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아이템.
‘메가 성장 부스터 팩’
이 아이템의 정확한 칭호는 따로 있었다.
‘멸망한 세계의 마지막 파편.’
여자가 사라지고 언젠가 우연히 들어간 S급 던전에서 그의 아이템을 탐내던 지능형 보스가 그 아이템의 진명을 알려주었던 기억이 있었다.
“맞긴 한데, 꼭 따라 들어와야겠어?”
“내가 안 따라가면 내가 그쪽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어떻게 알아요. 잔말 말고 그냥 좀 들어가죠?”
지혁은 한숨을 내쉬며 여자를 쳐다보았다.
‘채유라’라는 지극히 평범한 이름의 여자는 불룩한 크로스백을 메고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빨리 가라는 듯 그의 등짝을 퍽퍽 때리며 시뻘건 게이트 입구로 그를 밀어 넣었다.
솔직한 감상으로, 차원 너머 성좌 상태의 채유라일 때도 그녀가 특이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제 앞에서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채유라는 좀 골치 아팠다.
“손잡아요. 빨리.”
“……손은 왜!”
“안 그러면 나 혼자 여기 두고 던전으로 튈 거잖아요.”
그래도 4년이나 지켜봐왔다고 최지혁을 잘 알아도 너무 잘 알았다.
한 마디도 못 이기고 있지 않은가.
솔직히 분했다.
그가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니고 다 그녀를 걱정하는 마음에 하는 말 아닌가.
그런데 최지혁의 의견은 항상 깔끔하게 무시당했다.
왜냐면 채유라의 말이 최지혁의 말보다 훨씬 타당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시기에 성좌 없이 게이트에 들어가는 건 미친 짓이었다.
아직 게이트가 터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무런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던전의 등급을 게이트 주변 에너지 파장으로 측정하는 기술은 3주 뒤에나 나온다.
“내 뒤에서 절대 떨어지지 마. 알겠어?”
“그 말만 한 열 번 한 거 알아요?”
최지혁은 톡 쏘아져 오는 대답에 인상을 대번 찌푸리고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게이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 했다.
게이트의 난도는 점점 올라갈 것이고 수도 많아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 있는 헌터들만으로는 게이트가 터지기 전에 모두 클리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그가 겪은 미래에는,
희망이라곤 없었다.
멸망, 멸망, 그리고 멸망뿐.
약하면 죽는다. 일종의 공식과도 같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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