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145)

나는 그의 집에 웅크리고 앉아 가만히 핸드폰 화면을 노려보았다.

아주 이상했다.

최지혁은 분명 그가 회귀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뉴스에서는 정말 그의 말처럼 이 모든 일을 처음 벌어진 사건처럼 보도했고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정말 그의 말이 사실인가?

그럼 나는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최지혁의 방송을 접한 건 그의 세상이 멸망하기 시작하고 1년 후였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최소 1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지금, 유가족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으로 그들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멸망.’

분명히 최지혁이 그렇게 불렀다.

“최초…….”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과거로 온 거다. 최지혁을 발견하기 1년 전의 과거 말이다.

그래서 최지혁도 각성하지 않은 상태였고.

“윽,”

나는 뒤편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최지혁이 누워있는 침대를 쳐다보았다.

거의 하루를 꼬박 기절해 있었던 것 같다.

최지혁은 머리가 아픈지 한참이나 머리를 부여잡고 나지막한 신음을 내뱉었고, 나는 그런 최지혁이 걱정이 되어 물 한 컵을 떠서 살며시 그에게로 기어갔다.

“정신이 들어요?”

“여기는…… 우리 집이잖아.”

최지혁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최지혁이 발작하듯 이불을 한껏 목까지 끌어올리더니 침대 끝에 바짝 붙어 내게 왁! 소리쳤다.

“네, 네가 우리 집을 어떻게 알아!”

“네가 맨날 가던 집을 내가 왜 몰라요?”

내 대답에 최지혁이 눈을 껌뻑거리더니 이내 납득한 듯 스르르 이불을 내렸다.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몸은 좀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신경 꺼.”

나는 최지혁의 싸가지 없는 태도에 인상을 찌푸리며 그의 복부에 난 상처 부위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악!”

“안 괜찮은데?”

“…….”

나는 혀를 몇 번 차고는 침대 옆에 내려놓은 붕대를 집어 들었다.

“봐요, 붕대 갈아야 하니까.”

“됐어. 붕대 갈 줄은 알아?”

“배웠어요.”

내 말에 최지혁이 눈썹을 한껏 가운데로 모았다.

“……어디서.”

“너튜브?”

최지혁은 가만히 제 배를 쳐다보다니 이내 멍하게 눈을 깜빡거리고는 제 몸을 더듬었다.

“너, 너!”

“허벅지에도 상처가 깊게 났던데.”

“지금, 뭐,”

최지혁의 얼굴이 터질 듯한 토마토처럼 시뻘게졌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뭘 생각하는 거예요?”

“누, 누가, 함부로 남의 옷을!”

“그러면 피 철철철 흘리는 채로 그냥 놔둬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최지혁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나를 노려보았다. 원래 최지혁이 이런 캐릭터였나?

“뭘 새삼스레. 나 그쪽 샤워하는 것도 봤는데.”

“……!!!!!”

최지혁이 이제 귀까지 시뻘게진 채로 나를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았다.

“뻥인데.”

“야!”

최지혁은 다친 것도 잊었는지 나를 응징하려 벌떡 일어났다.

곧이어 통증이 찾아왔는지 다시 얌전하게 제자리에 앉았다.

“아무것도 못 봤으니까 안심해요. 그리고 별로 볼 것도 없,”

“내가 볼 게 왜 없어!”

최지혁이 소리를 빽, 질렀다.

물론 갑자기 큰소리를 쳐서 배가 당기는지 곧바로 제 배를 움켜잡고 신음을 흘리긴 했다.

“아, 생각보다 자기애가 강한 편인가 봐요?”

나는 안타까움에 최지혁의 팔을 두어 번 두드려주며 그를 위로했다.

“일부러 그러는 거야?”

“그럴 리가.”

물론 그게 위로가 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병원은 안 가도 되겠어요? 보니까 이 근방에 몇 군데 다시 오픈했던데.”

내 말에 최지혁은 표정을 구기며 대답했다.

“하루면 나아.”

나는 천천히 핸드폰에서 본 대로 최지혁의 붕대를 갈며 속으로 생각했다.

‘허세 부리기는.’

그래서 좀 빡빡하게 감았더니 최지혁이 크게 움찔거렸다.

“살살! 아파!”

“하루면 다 낫는다며?”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나는 부끄러워하는 최지혁을 가만히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요, 근데 있잖아요……. 나 물어보고 싶은 거 있는데.”

“……뭔데.”

대답과는 달리 최지혁이 슬쩍 내 눈을 피했다. 뭔가 찔리는 듯한 얼굴이었다.

“뉴스 봤어요. 강남역에서 10만 명 이상 죽었대요.”

최지혁의 배가 움찔거렸다. 그리고 나는 슬쩍 시선을 올려 최지혁의 눈을 쳐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내 물음에 최지혁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그의 복부에 위치해 있는 내 손을 확, 움켜쥐더니 무언가 망설이는 듯 한참, 내 얼굴을 살폈다.

최지혁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이내 천천히 그의 입술이 열렸다.

“……회귀했어. 네가 날 발견한 시점보다 1년 이르게.”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어차피 최지혁이 각성하기 전으로 돌아온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초능력이고 몬스터고 다 있는 세상인데 회귀라고 뭐 대수겠어?

“왜요?”

내 물음에 그는 답을 하지 못했다. 최지혁은 제 입술을 꾹 깨물고 바닥만 쳐다보았다.

“하긴. 그쪽도 모르겠죠, 뭐. 나도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모르겠는데. 그쪽이라고 뭘 알겠어요.”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최지혁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의 옆에서 가만히 인터넷만 뒤졌다.

내 세상과 로고만 조금 다른 포털사이트는 초토화가 된 강남 일대 사진과 관련 뉴스로 도배되어 있었다.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어쨌든 차에 치이지 않고 살아 있는 것까지는 다행인데, 뭔가, 심각하게…… 망한 것 같다.

***

처음 성좌 계약을 했을 때 화면에서 봤던 것과 같이 최지혁의 방은 아주 작고 초라했다.

반지하 특유의 습기 어린 냄새가 났고, 발 디딜 틈조차 없는 협소한 방.

있는 물품이라고는 라면만 주구장창 끓여 먹은 것 같은 색이 다 바랜 양은냄비 하나와 커피포트.

그리고 바닥에 덜렁 놓여있는 매트리스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최지혁의 초라한 자취방 구석에 쪼그려 앉아 계속 생각했다.

내가 아직 죽지 않은 건 확실하다. 분명히 느꼈다.

나는 차에 치이기 직전 무언가에 이끌려 이곳으로 들어왔다.

차에 치이는 고통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내가 보던 화면 속의 작은 세상이 실존하는 게임도, 영화도, 그 무엇도 아니라는 건 진즉에 깨달았다.

그러니 내가 이 세상에 끌려 왔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이상하고 납득 안 가는 일은 아니었다.

‘집에 돌아갈 수는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울고 싶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비록 이 세상에 곧 괴물들이 여기저기서 넘쳐흐르고 살아남기가 상당히 힘들어질 거라고 해도, 억울하게 차에 치여 생을 마감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왜 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 그거면 된…… 게 아니잖아!

“으아아악!”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온몸으로 오열했다.

그리고 기억을 되짚어 최지혁이 헤집고 다니던 던전들을 떠올렸다.

어떤 던전은 수만 마리의 벌레들이 튀어나오고, 또 어떤 던전은 팔이 6개나 달린 귀신들이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또,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던전이 터져버려서 일반 민가까지…….

“혼자서 무슨 생각 하는 건데?”

최지혁이 내 앞에 컵라면을 턱, 내려놓으며 물었다.

“……나 집에 갈 수 있을까요?”

내가 울상이 된 채 묻자 최지혁은 곤란한 듯이 내 앞으로 김치를 쓱 밀며 대답했다.

“……글쎄.”

나는 나보다 더 우울해하는 것 같은 최지혁을 보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되었건 최지혁은 목숨 걸고 나를 구해줬다.

그때, 천사상의 공격을 그대로 맞은 건 최지혁의 객기였다.

그 부분만큼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단순히 운이 좋아 천사상에게 일격을 맞자마자 각성한 건가?

‘뭐, 아무튼 무사하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하여간, 무모한 건 회귀를 하기 전이나 후나 똑같았다. 그런 주제에 멋있는 척하는 것도!

아직도 최지혁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눈앞에 선명했다.

진짜 죽을 수도 있었다.

각성이 1초만 더 늦어졌더라도 말이다.

“…….”

그나저나 최지혁은 나에게 다시 한번 성좌가 되어 달라고 말했다.

내가 아는 성좌는 웹소설에 나오는 그 성좌뿐인데.

설마 내가 그 성좌인가?

뭐,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후원 개념이랑 인터넷 방송까지 합쳐서 생각해보면 내가 했던 일은 성좌들이 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웹소설 속 성좌들과 달리 나는 과몰입 하다가 이 세상까지 끌려왔다는 거지만.

“저기요. 근데, 내가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거 믿어요?”

“네가 다른 세상에서 나오는 걸 내가 봤는데 못 믿을 리가.”

“내가 당신 성좌였던 건?”

“하는 짓이 똑같은데 모를 리가?”

최지혁은 뭘 그런 걸 묻냐는 듯 인상까지 찌푸리며 내 질문에 꼬박꼬박 답했다.

“그럼 다른 사람들 성좌도 다 나 같은 사람이에요? 평행세계, 뭐 그런 건가?”

내 말에 최지혁이 젓가락으로 상을 탁, 치고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

그리고 태연하게 라면을 흡입했다. 나는 그의 대답에 벙쪄서 아무렇지도 않게 후루룩 짭짭 잘도 잡수는 최지혁을 멍하게 쳐다봤다.

아니라니?

아니라니!

“이봐요, 지금 그게 뭔 소리예요?”

내 말에 최지혁이 입 안의 내용물을 꿀떡 삼키고 나를 삐딱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나도 내 성좌가 너인 거 보고 깜짝 놀랐으니까 안심해.”

“아니 뭘 안심하라는 거예요?”

“너 혼자 놀란 거 아니니까? 그리고 라면 불어.”

나는 입을 쭉 내밀고 최지혁이 내온 컵라면을 노려보았다.

내가 가만히 있자 최지혁이 답답한지 결국 말을 이었다.

“이곳에서 성좌들은 일종의 신과 같은 존재야. 어디에서 굴러들어온 새끼들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놈들은 대개 지구의 각성자들 중 가장 괜찮아 보이는 인간들을 골라서 키우다가 필요 없으면 버려.”

최지혁은 나보고 빨리 먹으라는 듯 턱짓을 하며 말을 이었다.

“물론 넌, 특이 케이스인 것 같지만.”

나는 라면을 호호 불며 물었다.

“근데 왜 나랑 또 계약했어요? 다른 성좌들은 신이라면서요. 나는 그냥 지나가는 대학생인데?”

“그야…….”

최지혁이 말하기 곤란한지 코끝을 찡긋거리더니 내 숟가락에 김치를 턱, 올려주며 말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너야말로 왜 날 선택한 거냐?”

최지혁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너 사기계약 당한 거야.”

그에 나는 인상을 팍 찌푸리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뭔 소리예요.”

“너도 알듯이 나는 F급 각성자였잖아. 왜 하필 나였어?”

최지혁의 얼굴이 진중하게 변했다.

정말 궁금하다는 듯 그는 나에게 물었고 나는 최지혁의 말에 별달리 해줄 대답이 없었다.

왜라니?

“다른 등급 높은 각성자를 골랐으면 지금 이 거지 같은 방에서 라면이나 먹고 있지 않았겠지.”

이유가 별달리 있었겠는가.

나는 단순히 스트리밍 사이트에 뜬 이상한 방송에 접속한 거고, 그냥 다른 스트리머들에게 하듯이 후원한 것뿐이었다.

“너도 4년 동안 날 봐 왔으면 알 거 아니야.”

“그래서, 지금 나더러 후회해라, 뭐 그 소리예요?”

내 말에 최지혁이 미약하게 움찔거렸다. 그리고는 망설이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넌 아까 날 또다시 선택해서는 안 됐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