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145)

최지혁은 어이없어하는 중이었다.

무슨 포인트에 꽂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엄청 억울해했다.

“너랑 나는 다르, 악!”

나는 있는 힘껏 최지혁의 팔을 꼬집었고 최지혁은 당황한 얼굴을 하고 제 팔을 쓸었다.

“봤죠? 다르긴 뭐가 달라.”

“그래서, 뭐. 같이 나가자고? 미친 거야?”

“혼자보다는 둘이 낫지 않겠어요?”

최지혁이 내 말에 기가 찬다는 듯 대놓고 낄낄댔다.

그의 얼굴에는 미묘하게 광기도 좀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불안해 보였다.

“네가 이 상황에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지금 그쪽보다는 훨씬? 주사기도 그쪽이 아니라 내가 찾았는데.”

“…….”

내 말에 최지혁이 할 말이 없어졌는지 가만히 주사기를 쳐다보았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이곳을 빠져나갈 만한 단서인 아이템을 찾은 건 최지혁이 아니라 나다.

최지혁도 내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모양인지 표정이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불안감을 가득 담은 얼굴을 하고 내게 따지듯이 말했다.

“그냥 가만히 있지?”

그 말에 나는 최지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참 있다가 입을 열었다.

“진짜 혼자 가고 싶어요?”

내 말에 그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좀 과했다.

마치 정곡이라도 찔린 것처럼 딱딱하게 얼어서 뭔가 고장 난 사람처럼 삐걱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혼자가 편해.”

“나 목발도 챙겨왔는데.”

내가 목발을 덥석 안아 들자 최지혁은 짜증 난다는 듯 내게서 팩, 등을 돌리고 제 머리를 헝클였다.

“설마 내가 걱정돼서 혼자 가겠다는, 뭐 그런 건 아니죠?”

내 말에 최지혁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맞는 것 같았다.

생긴 건 저래도 은근히 괜찮은 구석이 눈곱만큼 보이는 최지혁이었다.

그래서 나는 부러 해맑게 웃는 척하며 최지혁의 귓가에 속삭였다.

“솔직히 말해서 여기 혼자 갇혀있는 게 더 무서운데.”

최지혁이 인상을 팍 찌푸리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밖의 상황이 정리되기 전까지는 여기서 버텨야 해. 바깥에는 여기 있는 놈들보다 더 끔찍한 놈들이 돌아다닐 테니까.”

나는 최지혁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나는 쟤가 뭐라고 하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최지혁은 내 표정을 잠시 살피더니 다시 신경질적으로 입을 열었다.

“14시간. 최초의 멸망이 끝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야. 그러니까, 14시간은 여기서 버텨야 한다고.”

***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이 던전을 깬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던전 안의 몬스터들은 일반인들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강력했고, 일반인들에게는 시스템의 가호 또한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최지혁이 그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최지혁만큼 이 세상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스트리밍 방송은 최지혁의 삶을 요약도 없이 24시간 내내 방송하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그동안 이 인간 때문에 폐인 생활을 했다고 해도, 내 생활이 엄연히 있는데 24시간 내내 최지혁만 보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래서 레이드 뛸 때나 던전에 들어갈 때를 제외하고는 방송을 그렇게 자주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최지혁은 제게 달려드는 시체 한 마리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벽 너머를 살폈다.

“저긴 것 같아.”

최지혁의 말에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 벽 너머를 빼꼼 쳐다보았다.

적어도 20마리는 되어 보이는 괴물들이 이지를 잃고 강당 입구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보통 보스 몬스터는 크기나 움직이는 패턴이 크기 때문에 장소 중 가장 넓은 곳에 위치하고는 했으니까.

최지혁은 짧은 심호흡을 하고는 내 어깨를 잡고 말했다.

“내가 시선을 끌 테니, 네가 저 안으로 들어가.”

“알았어요.”

반쯤 열린 입구 사이로 커다란 조각상 같은 게 보였다.

최지혁은 벽에 몸을 기댄 채로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벽 너머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긴장으로 미친 듯이 쿵덕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강당 입구의 틈새를 살펴보았다.

무언가 이상했지만 강당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

최지혁이 쇠파이프로 바닥을 강하게 치며 소리를 내자, 괴물들이 최지혁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틈을 타 강당 입구를 향해 달렸다.

“끄, 끄으으읅!”

최지혁을 향해 달려오던 시체 중 하나가 내게로 검은 손을 뻗어왔다.

나는 곧장 들고 있는 목발로 손을 힘껏 쳐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에, 나는 이를 악물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앞을 향해 무작정 뛰었다.

최지혁이 아무리 자신만만하게 본인이 내가 강당 안으로 갈 때까지 괴물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겠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아직 각성도 안 한 최지혁이 20마리도 넘어 보이는 괴물들을 혼자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제길, 빨리 가!”

최지혁이 괴물의 머리채를 잡아 허리를 발로 꾹 누르며 소리 질렀다.

나는 거의 울 것 같은 심정으로 겨우겨우 강당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강당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귀신같이 내 뒤를 쫓아오던 시체들이 내게서 시선을 홱, 돌리고 최지혁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뭐지? 내가 안 보이는 건가?

나는 일단 최지혁에게 소리쳤다.

“당장 강당 안으로 들어와요! 빨리!”

“제길, 그쪽으로 시체들이 몰려가면 어쩌려고 소리를 질러!”

“안 와요! 그러니까 빨리 이쪽으로 튀어오기나 해요!”

최지혁은 욕과 함께 제게로 달려드는 시체의 목을 뾰족한 파이프 끝으로 푹, 찌르고는 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최지혁, 뒤통수 조심!”

나는 와중에 최지혁의 뒤를 노리며 달려드는 시체를 보고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고, 최지혁은 익숙한 듯 뒤를 돌아 발로 시체의 복부를 가격했다.

“여긴 신경 쓰지 말고 안전한 데로 가! 내가 알아서 갈 테니까!”

나는 그를 보고 잠시 얼어붙었다.

알아서 올 수 있을까?

아직도 수십 마리의 시체들이 죽지도 않고 기어코 바닥에서 꾸물거리며 일어나 몸을 마구 뒤틀며 최지혁을 향해 달려왔다.

이대로라면 최지혁이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최지혁은 분명 시체들의 주의를 끌려고 소음을 냈다. 시체들은 소음에 반응하는 게 틀림없을 것이다.

망설임은 없었다.

나는 곧바로 들고 있는 목발을 최지혁의 반대 방향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소리 질렀다.

“뛰어!”

챙그르르-!

스테인리스 목발이 계단 손잡이와 부딪히며 소음을 만들어 내자 순식간에 시체들의 시선이 그에게서 분산되었다.

최지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내 쪽으로 달려왔고 나는 있는 힘껏 손을 뻗어 최지혁의 팔을 잡아 안쪽으로 당겼다.

“끄으! 끄으으으으!!!”

흉악하게 생긴 시체들이 검은색 액체로 가득한 입을 쩍 벌리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는 최지혁을 거의 끌어안다시피 하고 바닥을 굴렀다. 이상하게도 강당 안쪽으로는 들어오지 못하는 게 맞는지 시체의 얼굴이 눈앞에 닥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너, 너 미쳤,”

“쉿!”

나는 최지혁을 끌어안은 채로 강당 안을 살폈다.

강당 한복판에는 아까 얼핏 본 천사상이 서 있었다.

높이는 2미터 정도. 손에는 커다란 검을 들고 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최지혁과 시선을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수상한 조각상이었다.

천사상을 자세히 살펴보니 심장 부분이 뚫려 있었다.

아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심장 부분만 검은색 피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심지어 그 검은색 피막은 심장 모양으로 펄떡거리기까지 했다.

그때였다.

[SYSTEM]

- 클리어 조건 갱신!

- 클리어 조건(NEW!): 악의 심장을 정화액으로 정화한 뒤, 살아남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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