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득-,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렸다.
최지혁은 달려드는 시체의 마구잡이로 엉켜있는 머리칼을 그물 잡듯 움켜쥐었다.
그리고 이를 악문 채로 잡은 시체를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또 다른 시체에게로 있는 힘껏 던져 버렸다.
“퀘에에에엙!”
시체는 기괴하게 바르작거리며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시체에 부딪혔고, 최지혁은 곧장 내 손을 붙잡고 보건실 쪽으로 달렸다.
“숨죽이고 가만히,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
“잠깐만, 악!”
최지혁은 문을 벌컥 열고 나를 냅다 안으로 던져버렸다.
내가 뭔가를 할 새도 없이 문이 쾅! 닫혀버렸고, 최지혁은 내가 못 나오게 문을 막고 서서 몰려오는 시체들을 닥치는 대로 때려잡기 시작했다.
퍽퍽, 둔탁한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최지혁은 이상했다.
분명히 자주 사용하는 칼이 여럿 있었는데, 왜 안 꺼내고 파이프를 쓰는 거지?
“멍청하게 뭐 하고 있어! 숨어!”
최지혁의 외침에 나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창문에 시체 둘이 달라붙어 머리를 부딪치고 있었다.
오금이 저렸다.
복도에는 벌써 시체가 다섯이나 몰려와 최지혁에게 달라붙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최지혁은, 이상하지만…….
아무 능력이 없어 보였다.
나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내게 있는 거라고는 외출할 때 들고 나온 핸드백과 간단한 소지품뿐이었다.
결과가 너무도 빤히 보이는 싸움이었다.
시체들은 좀비 떼처럼 최지혁에게 달려들었고, 최지혁은 놈들을 상대하느라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죽을지도 몰랐다.
“아씨, 진짜 최지혁. 뭔데, 진짜.”
두려움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하지만 무서운 건 둘째 치고 우선 살아야 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나중에 생각해도 괜찮았다. 그러니까…….
나는 빠르게 캐비닛을 열었다.
캐비닛 안에는 목발 한 쌍이 있었다.
나는 우선 목발 한 짝을 쥐고 캐비닛 안에 비치된 서랍을 뒤적였다.
정말 이곳이 화면 속 최지혁의 세상이 맞다면, 이런 의료 비품실에선 분명 쓸 만한 아이템이 나올지도 몰랐다.
‘정화의 주사기(A)’
이런 던전 클리어에 관련된 거 말이다.
‘있어!’
주사기 위에는 아이템이 분명하다는 뜻으로 작은 홀로그램으로 된 글씨가 반짝였다.
“다행이다!”
하지만 내가 안도하기가 무섭게, 쨍그랑-!
결국 시체 중 하나가 창문을 깨고 안으로 들어왔다.
유리조각과 함께 끈적하고 검은 피가 바닥으로 뚝, 뚝 떨어졌다.
누가 봐도 사람의 피가 아니었다.
나는 서랍 안에 있는 주사기 다섯 개를 모조리 챙겼다.
그리고 입을 벌리고 멍청하게 끼긱거리는 시체에게로 목발을 들고 달려들었다.
사람을 때려본 적은 없었지만, 지금 내가 죽게 생겼는데 그런 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빠각!
시체의 목구멍에 목발을 그대로 처박았다. 그리고, 몸무게를 실어 꾹 내리눌렀다.
시체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몸을 크게 뒤틀었고, 나는 그대로 옆에 있던 정체 모를 무거운 기구를 있는 힘껏 던졌다.
다행히 놈은 머리를 맞고 제대로 고꾸라졌다.
난 곧장 최지혁이 가로막고 있던 문을 드르륵 열었다.
“너 미쳤어?”
“어차피 창문 깨져서 여기 있다간 뒤져요!”
최지혁은 아연실색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다가 제게 달려드는 시체의 머리를 짓밟으며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더 달려드는 시체는 없어 보였다.
솔직히 말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평소 같았으면 한 방에 쓸어버리고도 남았을 텐데 지금은 왜 못 하냐고.
하지만 지금은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었으므로 일단 참았다.
“이거.”
나는 보건실에서 찾은 주사기를 최지혁에게 건네주었다.
당연히 최지혁은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주웠어.”
“…….”
“요.”
***
1층에 있는 괴물은 다 해치웠는지 이상하게 조용했다.
최지혁은 1층 구석의 작은 창고에 커다란 몸을 쑤셔 넣었다.
우리가 찾아낸 창고는 창문도 없고, 무엇보다 철문으로 되어 있었다.
어지간하면 아무도 못 들어올 것 같았다.
최지혁은 창고에 있는 선반으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막았고, 나는 컴컴한 어둠 속에서 대충 구석에 쭈그려 앉아 바닥을 쳐다보았다.
최지혁은 그런 나를 흘끔 보고는 그 또한 주르륵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들려오는 그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찌 되었건 화면 속 최지혁은 내 눈앞에 있었다.
게다가 내가 그저 잠들어 꿈을 꾸는 건 분명히 아니었다.
꿈이 이렇게 생동감 있을 리도 없었고, 사실 최지혁의 세계가 실존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아주아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원래도 내가 이 방송에 대해 알아보려고 할 때마다 인터넷에 오류가 나 질문이 올라가지 않는다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화면을 보여주면 그냥 평범한 카드게임으로 보였으니까.
그때부터 이미 무언가 이상하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핸드폰 라이트를 켜 최지혁을 비추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러자 최지혁이 승냥이처럼 내 손목을 콱 잡고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화면에서 보던 것처럼 상당히 까칠했다.
실제로 보니까 더 까칠하다.
“아까 보건실에서 응급키트 주웠어요. 다쳤잖아요.”
“…….”
내 말에 최지혁은 인상을 찌푸리고 살포시 내 손목을 놓아주었다.
힘은 또 더럽게 세서 손목이 좀 욱신거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줄래요?”
나는 손목을 매만지며 물었다.
그리고 최지혁의 시선을 피했다.
눈앞이 깜깜해서 도저히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 이 일대를 가둔 건 최초의 멸망이다.”
“…….”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아직 각성조차 하지 않은 일반인 상태로 저 바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나는 멍하니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최지혁은 각성자였다.
괴물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이능력자 말이다.
공중을 막 날아다니고 일격으로 집채만 한 몬스터를 작살내버리던 그였는데, 각성을 안 하다니?
믿기 힘들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이상하게 여겼던 것들이 이해가 갔다.
내가 최지혁에게 후원했던 아이템들을 그는 갖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괴물만 보면 레벨업하겠다고 미친 듯이 달려들던 최지혁이 이번만큼은 도망쳤다.
그러니까, 지금 최지혁의 상황은 뭔가 문제가 있었다.
“최초의 던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지.”
최지혁이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말했다.
“하나는, 만약 박스같이 생긴 안전구역 셸터를 발견했다면 설치해서 들어가는 거야. 한정되어 있어서 찾기 어렵지만. 둘째는.”
문 너머로 우리를 찾고 있는 시체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 안에 설치되어 있는 급이 낮은 던전으로 도망가는 거지. 분명 이렇게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고 들었어.”
최지혁의 얼굴에 씁쓸함이 비쳤다.
나는 저 설명을 들어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몰랐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저기요, 지금 무슨 말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요.”
“그러니까 내가 지금 회귀, 하……. 됐어. 나도 네가 이해할 거라 생각하고 말한 거 아니니까.”
최지혁이 허탈하다는 듯 실소를 자아내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반응이 아주 조금, 기분이 나빴지만 굳이 걸고넘어지지는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다.
어쨌든, 나보다는 최지혁이 이 상황에 더 익숙할 테니까.
그리고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좋아요. 솔직히 나 지금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받아들이려고 노력해 볼게요.”
나는 심호흡을 하며 가방에 넣은 주사기를 꺼내 최지혁에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내가요, 이런 걸 찾았거든요? 이거 쓸 수 있는 거 맞죠?”
내 말에 최지혁은 한껏 굳은 얼굴을 하고 무섭게 내 손 위에 올라가 있는 주사기를 낚아채 갔다.
그리고 내게 경고하듯 다가와 나를 벽과 그 사이에 가두고 위협적으로 말했다.
“허튼 생각 하지 마. 우린 여기서 얌전히 기다렸다가 나갈 거야.”
“……이거 함정 아니에요?”
나는 날 몸으로 가두고 있는 최지혁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클리어 조건은 제한시간 내에 살아남는 게 아니잖아요.”
“…….”
나는 다시 최지혁의 손에 있는 주사기를 빼앗았다.
내가 그의 세상을 화면으로 바라보았을 때 느낀 건데, 이 세상은 상당히 엿 같았다.
“분명 사악한 기운이 증발할 때까지 살아남으라고 했어요.”
최지혁의 시선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이 아이템 이름은 정화의 주사기고. 목적이 너무 뻔해 보이는데. 뭔가를 정화하라는 소리 아닌가? 그게 아니고서야 이 주사기가 왜 나와?”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솔직히 말해서 더럽게 무서웠다.
영상으로 볼 때도 무서웠는데 실제로 보면 어떻겠는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재수 없게 굴고 있긴 해도 내 눈앞에 있는 최지혁에게 마음이 쓰였다.
이 사람은 그동안 그 모든 끔찍한 순간을 홀로 끊임없이 겪고 있었다는 뜻이니까.
이제 부정하기도 힘들었다.
내가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던 세계는 실존한다.
그리고 이건 현실이지.
그래서 나는 억지로 안 무서운 척을 했다.
어쨌던 지금 상황에서 나는 그에게 짐이었다.
나는 아무 능력이 없으니까.
“어쩔 거예요?”
최지혁은 내게서 고개를 살짝 돌리고 낮게 욕을 읊조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뭔가 결심한 듯한 얼굴을 하고 내게 말했다.
“주사기.”
“네?”
“주사기 달라고.”
그가 이를 악물고 내게 말했고, 나는 최지혁의 잘생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난 저 표정을 알고 있었다.
저 인간이 진짜.
“혼자 나갈 생각이라면 깔끔하게 접는 게 좋을 거예요.”
“지금 네가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최지혁. 지옥의 솔플러.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그런데 이거 하나는 알고 있었다.
지 입으로 분명히 말했다.
“당신 아직 각성 안 했다며. 그럼 나랑 똑같은 일반인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