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나는 사태 파악을 좀 할 필요가 있었다.
왜 이 얼굴이 내 눈앞에 있는 거지?
분명 내 눈앞에 있는 남자는 화면 속 최지혁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비록 우락부락하던 몸은 좀 슬림해지긴 했지만.
‘나 죽은 건가?’
근데 하나도 안 아팠다.
오히려 죽은 것보다는…….
차에 치이기 직전에 뭔가에 끌려 온 것만 같았다.
분명 누가 날 끌어당겼었다.
분명히.
“……저기요, 제가요, 지금 여기가 어디고 당신 누구냐고 한 열 번은 물어본 것 같거든요?”
혼란스러웠다.
최지혁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화면과 달리 실물로 보니 굉장히 키가 크고, 성격도 훨씬 더러워 보였다.
그래서 절로 기가 죽었다. 더럽게 무섭게 생겼다.
내가 그의 외관에 쫄거나 말거나 최지혁 추정 인물은 똥 씹은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가 지켜보던 곳.”
“예?”
나는 멍하니 놈의 사나운 얼굴을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나는 이게 꿈인가 싶어 뺨을 꼬집어 보았지만 아팠다.
심지어 힘 조절도 잘못해서 더럽게 아팠다.
그나저나 존대에 반말로 응수하는 저세상 싸가지를 보니 내가 아는 그 최지혁이 맞을 것 같긴 했다.
아니, 근데 얘 내가 누군지 아는 건가……?
뭔데, 여기가 어디냐니까 내가 지켜보던 곳이라고 대답해?
“빌어먹을…….”
그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골치가 아픈 모양인지 꽤 아름답게 생긴 제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나는 흘끗 그의 등 뒤에 펼쳐져 있는 어두컴컴한 도시를 바라보았다.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가 조금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정말 설마 싶었다.
“일어나.”
“예?”
최지혁 추정 인물은 내가 얼이 빠져 있건 말건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그는 내 팔을 붙잡고 주저앉아 있는 나를 거의 들 듯이 번쩍 일으켰다.
그리고는 곧 내 손목을 잡고 어딘가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멍하게 최지혁 추정 인물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이 인간이 진짜 최지혁이라고?
심장이 불안감으로 쿵쾅거리긴 했지만 나는 질문을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혹시 이름이 최지혁이에요?”
“…….”
최지혁 추정인물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고 나를 홱, 째려보았다.
“상황 파악이 안 돼?”
“맞다, 아니다만 얘기해요. 최지혁 맞아요? 당신 나 알아?”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을 성가시다는 듯 흘끗 살피다가 이내 짧게 한숨을 내쉬고 나를 제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그의 짜증이 가득한 얼굴이 순식간에 코앞으로 다가왔다.
“너 몇 살이야.”
“……뭐요? 갑자기 나이는 왜 물어?”
놈의 눈이 거의 날 잡아먹을 기세로 이글거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조금 주춤거리며 놈의 말에 대답했다.
“스, 스물셋인데 왜요!”
“…….”
놈이 고개를 내 반대쪽으로 돌리며 작게 욕을 읊조렸다.
그리고는 나를 다시 붙잡고 질질질 어딘가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아니, 방금까지 차에 치여서 죽는 줄 알았는데 눈을 떠보니까 죽지는 않았다.
문제는…….
저승 대신 좀 이상한 곳으로 온 것 같다.
꼭, 최지혁이 활동하는 세계랑 비슷…….
“미, 미친! 저게 뭐야!”
“으워어어어-!”
나는 저 멀리서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서 자라나는 이상한 점액질의 괴물을 발견하고 뻣뻣하게 굳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네가 생각하는 거 다 맞으니까 한눈팔지 말고 따라와!”
놈이 날 제 쪽으로 끌어당겼지만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놈을 바라보았다.
그 또한 당황한 얼굴로 내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내 내 굳어버린 다리로 시선을 옮기더니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나를 번쩍 들어 등에 업고 달리기 시작했다.
“제기랄, 내가 미쳤지.”
사방에서 하울링 같은 괴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무것도 없는 아스팔트 맨바닥에서 녹은 타르 같은 검은 점액질들이 뭉쳐서 위로 솟아오르며 괴물들의 형상을 자아냈다.
복합적인 공포감에 온몸이 덜덜덜 떨렸다.
분명 이 남자가 내가 생각하는 게 다 맞다고 그랬다.
그러면 여기는 정말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인가?
“어, 어디로 가는 거예요.”
“몰라. 지금 저놈들 상대 못 해.”
그는 나를 업고 한참을 어딘가로 달렸다. 도착한 곳은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이었다.
그리고는 날 바닥에 내려놓더니 이내 학교 정문 앞에 쌓여있는 상자를 뒤지기 시작했다.
“하…….”
하지만 상자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남자는 답답한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가만히 학교의 정문을 쳐다보았다.
나는 덜덜 떨면서 놈의 등짝만 바라보았다.
얼굴은 분명 내가 4년 동안이나 화면 속에서 봐왔던 최지혁과 똑같았다.
목소리도 똑같다.
하지만 분명히 조금 전까지 최지혁은…….
“히든 보스 잡고 있는 중 아니었어요……?”
“……!”
내 말에 최지혁이 고개를 홱 돌려서 나를 쳐다봤다.
경악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의 표정이 기이하게 꿈틀거렸다. 당장 내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그에 나는 조금 움츠러들어서 한 발자국 뒤로 주춤 물러섰다.
“너, 뭐야.”
하지만 그러기가 무섭게 놈이 내게 한 발자국 다가와 기껏 벌린 간격을 순식간에 좁혀버렸다.
놈의 매서운 눈빛에 심장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된 수준이 아니라 제대로 망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 그러니까…….”
“……사라진 게 아니었어?”
저게 뭔 개소리지?
나는 눈을 깜빡이며 지금 내가 무슨 상황에 처했는지도 잊고 최지혁을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뭐야, 얘.
일단 당장 안 죽어서 기뻐해야 하나, 아니면 내 눈앞에 최지혁이 있다는 사실에 슬퍼해야 하나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진짜, 최지혁이라고?”
내 물음에 최지혁이 짜증 난다는 듯 입을 열었다.
“보면 몰라?”
그리고 나는 입을 쩍 벌렸다.
그러니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인간이 최지혁이고, 나도 저 인간이 최지혁인지 바로 못 알아먹었는데 저 인간은 내 존재를 알고 있고.
그리고 나는…….
“아하. 그렇구나……. 그래…….”
정리를 해 보자.
그러니까, 나는 고작 스트리밍 화면 속 이 인간을 신경 쓰다가 차에 치일 뻔했는데, 모종의 이유로 차에 치이기 직전, 이곳으로 끌려 들어온 것이다.
현실감 있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날 알아봐 주고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버리지 않고 살려줬다고 고마워해야 하나, 아니면 원인 제공은 당신이 했으니 책임지라고 해야 하나 혼란스러웠다.
“그러니까, 내가 그쪽 뒤 봐주려고 핸드폰 보다가 차에 치여서 죽을 뻔했는데 우연히 절묘한 타이밍에 그쪽이 있는 곳으로 소환, 뭐 그런 게 됐다?”
“……뭐?”
서로 의사소통은 잘 안 되는 편 같았다.
뭐, 그럴 수 있다. 평소에도 말 더럽게 안 통했으니 이해한다.
“차에, 치여?”
최지혁이 사나운 얼굴을 하고 날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물었고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말했잖아요. 그쪽이 내 말 안 듣고 엘리트 보스 잡는다고 해서 아이템 사다가 죽을 뻔했다고.”
그때였다.
순간 발밑의 아스팔트가 부글거리며 녹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최지혁은 내 손목이 아플 정도로 강하게 나를 낚아챘다.
그리고 말했다.
“이미 이 구역은 던전화 됐어. 내 능력 밖이야.”
최지혁의 미간이 짜증을 가득 담아 찌푸려졌다.
“학교 안으로 들어갈 거야. 어차피 들어가도 죽을 확률은 높지만, 여기보다는 낫겠지.”
“죽어요? 왜 죽어!”
“잔말 말고 따라와!”
최지혁이 한 손으로 학교 문을 벌컥 열었다.
그러자 주변을 둘러싼 음산한 공기가 아주, 아주 살짝 옅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안심할 뻔했다.
[SYSTEM]
-필드: [피로 물든 교실(F)]이 활성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