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8화
그날로부터 딱 일주일 뒤, 일리온과 나는 또다시 보육원을 찾았다. 물론 스피넬과 로이든도 함께.
바뀐 게 있다면 일리온을 향한 아이들의 관심이 지난주보다 더 커졌다는 거였다.
아이들은 반짝이는 눈동자로 일리온을 반겼다.
“공작님이다!”
“스피넬 누나랑 로이든 형도 왔어!”
슬픈 건, 나를 반가워하는 아이가 없다는 것 정도? 아이들은 세 사람을 향해 와르르 달려가면서도, 나에게는 조금 쭈뼛거리며 거리를 두었다.
수녀님이랑 보육원 재건축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동안 나 빼고 다들 친해진 모양이었다. 질투 나게.
“공작님, 우리랑 또 놀아 주러 오신 거예요?”
“저 또 검술 가르쳐 주세요!”
“안돼. 공작님은 나랑 그네 탈 거야.”
아이들은 일리온 앞에 서서 서로 자기랑 놀아 달라고 손을 흔들었고, 그 옆에서 멀뚱히 서 있는 나는 어쩐지 소외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인기 많으시네요.”
“뭐.”
부러움에 툴툴대자 일리온은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지난주만 해도 긴장해서 말도 제대로 못 했으면서 잘난 척하기는.
어쩔 수 없다. 비장의 무기를 꺼내야지.
“나랑 쿠키 만들 사람!”
일리온에게 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손을 번쩍 들어 아이들에게 외쳤다.
“쿠키?”
아이들은 수군거리다 내 앞으로 머뭇머뭇 다가왔다.
“부인, 정말 쿠키 만드실 거예요?”
“물론이지!”
“그럼, 어, 초콜릿도 넣어서 만드는 거예요?”
머리를 양쪽으로 귀엽게 묶은 아이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야 물론 잔뜩 넣어서 만들 거야.”
내 말에 아이들은 신나서 달려왔다.
“보셨어요? 제 인기가 이 정도죠.”
머리를 가볍게 넘기며 일리온을 바라보자, 일리온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실소를 터트렸다.
“그런데 라벤느.”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던 스피넬이 내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네?”
“너 쿠키 못 만들잖아.”
“…….”
음. 그런 문제가 있었지, 참.
* * *
“콜록, 콜록.”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밖으로 빠져나온 나는 먼지를 털어 내며 기침을 했다.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일리온은 그런 내 꼴을 보고 손가락을 까닥이며, 몸에 붙은 밀가루를 떼 주었다. 이럴 땐 마법이 참 편하다니까.
“그냥 조금 사소한 사고요.”
“쿠키는?”
“로이든이 열심히 하고 있죠.”
로이든이라는 말에 일리온이 살짝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걱정 마. 로이든이라면 나보다 더 먹을 만한 걸 만들어 낼 테니까.
“그보다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일리온의 시선이 한곳을 향했다. 그의 시선 끝에는 한 아이가 홀로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었다. 지난번에 말했던 아이가 저 아이인 모양이다.
“피노가 걱정되시나 보군요.”
“아, 수녀님.”
때마침 지나가는 수녀님이 우리를 보고 말을 걸어왔다.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도 걱정이 담겨 있었다.
“피노라는 아이는 늘 저렇게 혼자 있나요?”
“원래는 꽤나 활발한 아이였어요. 친구들도 많고.”
“그런데 왜?”
“……파양을 당했죠.”
피노는 귀족에게 입양을 갔으나,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파양당했다고 했다.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온 피노는 말수가 줄어들고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으려고 한다고. 아마도 자신을 입양했던 가족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다며, 수녀님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녀님의 얘기를 듣고, 일리온과 함께 피노가 있는 나무 그늘로 가 말을 걸어 보았다. 아무래도 혼자 두기엔 신경이 쓰여서.
“안녕. 이름이 뭐야?”
“…….”
아이는 내 말에 대답해 주지 않고 시선을 피했다.
“이름이 피노 맞지? 다 같이 쿠키 만들고 있는데, 피노도 같이 만들러 갈래?”
“관심 없어요.”
피노는 고개를 저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초콜릿을 잔뜩 넣어 만들 건데…….”
“필요 없어요. 어차피 부인도 우리 같은 애들 동정하면서 고상한 척, 훌륭한 척하려는 거뿐이잖아요.”
꼬여 있다는 일리온의 말이 맞으면서도, 피노의 입장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반응이었다.
“저, 피노…….”
“죄송하지만 들어가 볼게요.”
피노는 읽고 있던 책을 덮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나와 일리온은 그런 아이를 붙잡지 못했다. 아이를 붙잡고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떡하죠?”
“글쎄…….”
일리온을 돌아보며 묻자, 그 역시 뾰족한 방법을 모르겠다는 듯 말을 줄였다.
* * *
그날 오후. 하늘에 먹구름이 밀려들더니 이내 거센 비가 쏟아졌다.
우리는 마당에서 놀 수 없게 된 아이들을 위해 건물 한편에 있는 교실에서 동화책을 읽어 주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데렐라의 집에 마녀가 찾아온 거예요. 마녀는 들고 온 바구니에서 사과를 꺼내 신데렐라에게 물었어요. 이 빨간 사과가 네 것이냐? 아니요. 그럼 이 파란 사과가 네 것이냐? 아니요. 그럼 이 독 사과가 네 것이구나!”
두 손을 반짝 들며 와앙- 하고 아이들에게 겁을 주는데, 순간 하늘이 반짝이며 번개가 쳤다.
아이들은 깜짝 놀라며 서로를 껴안거나, 수녀님에게 달려가곤 했다. 폭풍이 오려는 모양인지, 낡은 유리창이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피노가 안 보이는데, 어딨는지 아는 사람 있어?”
열댓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번개에 놀라는 아이들을 안아 주며 물었다.
“피노라면 방에 있는 거 아니야?”
“아까 가 봤는데 아무도 없던데.”
옹기종기 모여 있던 아이들이 속삭이는 소리에 잠시 책을 덮고 아이들 근처로 다가가 앉으며 물었다.
“피노?”
“네. 실은 피노도 번개를 무서워하거든요. 부모님이 돌아가셨던 날도 번개가 치던 날이라…….”
곁에서 얘기를 듣던 일리온은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게요?”
“잠깐 나가서 찾아볼게.”
“그럼 나도 같이 가요.”
“당신은 여기 있어.”
일리온은 그렇게 말하며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아 진짜 같이 가자니까. 일리온이 사라진 자리를 노려보는데, 아이들은 그런 일리온을 보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공작님이 사라졌어.”
“공작님은 마법도 쓸 줄 알아요?”
아이들은 동그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번개가 친다며 떨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 그게……. 조금.”
내 대답에 아이들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인기 많은 일리온. 돌아오면 한동안 또 고생하겠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스피넬과 로이든은 어쩐지 흠칫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애들 앞에서는 절대 마법을 쓰지 않기로 약속을 주고받는 듯했다.
* * *
피노가 자꾸 눈에 밟히는 이유는 하나였다. 아이를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차피 다시 안 볼 사이인데 왜 좋아해야 하냐는 말은, 그렇게 마음을 주었다 상처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사랑받길 기대하는 것보다 사랑받지 못할 거라 체념하는 편이 낫다는 걸 깨닫게 되기까지, 아이는 몇 번이고 좌절을 경험했을 것이었다. 그것도 혼자서.
그래서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건물 안을 빠르게 돌아보았지만, 아이들이 모여 있는 교실을 제외하고는 조용했다. 그마저도 빗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장소를 옮겨 건물 밖을 둘러보던 일리온의 눈에 낡고 작은 창고 하나가 보였다. 일리온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창고로 향했다.
힘을 주어 창고 문을 열자, 피노가 한쪽 구석에서 귀를 틀어막고 웅크린 것이 보였다.
피노는 덜컹거리며 열리는 문에 놀란 듯 일리온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였다.
“왜, 왜 왔어요?”
비에 젖은 일리온의 모습은 사뭇 위협적이라 오히려 아이를 겁에 질리게 했다.
“널 찾으러 왔어. 번개를 무서워한다며.”
“어차피 또 누가 말해 줬겠죠.”
“맞아.”
피노는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돌렸다.
“비가 그치면 돌아갈 거니까 그냥 가세요.”
“그럴 순 없어.”
“왜요?”
“비가 그쳐도 넌 여기서 혼자 울고 있을 거잖아.”
피노는 움찔하며 일리온의 말을 부정했다.
“그걸 공작님이 어떻게 알아요.”
“알아.”
“모르잖아요.”
일리온은 자신의 옷에서 떨어지는 물기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럼 여기서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지 뭐.”
“네?”
“그럼 누구 말이 맞는지 알 수 있을 거 아니야.”
일리온은 안 그래도 비좁은 창고 안으로 몸을 욱여넣었다. 피노는 인상을 쓰며 그런 일리온을 노려보았다.
“귀족들은 왜 이렇게 다 제멋대로예요?”
“뭐가?”
“그렇잖아요. 싫다는데도 자꾸만 귀찮게 굴고.”
“그리고?”
일리온은 무심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가 그리고예요?”
“네가 불만인 건 그것뿐이야?”
“…….”
피노는 입을 다물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창고에 틀어박힐 줄은 몰랐는데.”
비웃음 섞인 말투에 피노가 소리쳤다.
“고작 그런 이유 아니에요! 늘 그런 식이잖아요!”
일리온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피노를 바라보았다.
“그런 식으로, 멋대로 기대하게 만들어 놓고…… 싫어졌다면서 버리잖아요. 그때도 날 데려간 건 자기들이면서.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자신의 생각이라도 읽은 듯 말하는 일리온에, 피노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알아. 나도 너랑 비슷했으니까.”
일리온은 아까보다 좀 더 누그러진 얼굴로 피노를 바라보았다.
“무시당하고 미움받는 게 일상이라 사람들이 날 싫어하는 게 당연한 줄 알았어. 그게 견디기 힘들어서 너처럼 혼자 많이 울었고.”
“왜요? 공작님은……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었잖아요.”
“글쎄, 그거랑 상관없던데. 다들 내가 저주받았다며 싫어했거든.”
피노는 믿기 힘들다는 듯 일리온을 바라보았다.
“왜 그런 얘기를 저한테 해 주는 거예요?”
“그냥 말해 주고 싶었어.”
그의 낮고 담담한 목소리 때문인지, 처음 그를 경계했던 것과 다르게 피노는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그렇게 한동안 입을 다물고 바닥을 내려다보던 피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모르겠어요. 내가 미움받을 만큼 그렇게 잘못한 건지. 난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단지 가족이 되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말을 할수록 서러움이 북받치는지, 피노는 어느새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단지 가족이 되고 싶었을 뿐이라는 말에 일리온 역시 어쩐지 목이 메어 오는 듯했다. 자신도 그러했으니까.
일리온은 피노의 어깨를 토닥이며 중얼거렸다. 잘못하지 않았다고. 그러니 자신을 원망하지 말라고.
어쩌면 자신이 어릴 때 듣고 싶었던 말을 그에게 해 주고 있는지도 몰랐다. 혼자서 눈물을 흘릴 때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해 주길 바랐으니까.
그래서 비록 고통스러운 과거일지라도,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가장 필요한 말을 아이에게 해 줄 수 있어서.
일리온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게 분한 듯, 코를 훌쩍이던 피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의 울음소리를 감춰 주려는 듯, 아까보다 조금 더 거센 빗줄기가 지붕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