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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파혼에 진심입니다 (152)화 (152/159)

외전 16화

차를 마신 나는 세 사람을 데리고 유령의 집이 있다는 폐가로 향했다. 물론 미카엘에게는 목적지를 말해 주지 않은 채로.

“데이트에는 맛있는 식사, 즐거운 대화, 그리고 약간의 이벤트가 필요한 법이죠.”

“연애를 많이 해 보신 모양이네요.”

흠, 흠. 꼭 그걸 해 봐야 아나? 내가 경험이 없어서 그렇지 머릿속에 든 지식은 많다 이 말이야.

“혹시 흔들 다리 효과라고 아세요?”

“흔들, 뭐요?”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이성을 보게 될 경우, 공포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이성을 보고 두근거린다고 착각하게 되는 심리 현상이요.”

내 말에 미카엘은 고개를 갸웃했다. 흔들 다리를 가자는 말이냐며.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도 이걸 좀 이용해 보자는 거죠.”

조금 전 장난감 가게에서 챙겨 온 팸플릿을 펼쳐 보여 주었다.

“얼마 전에 문을 연 유령의 집이래요.”

“유령의 집이요?”

“두근거리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죠.”

때마침 유령에 집 근처에 도착한 모두에게 손바닥을 펼쳐 폐가 건물을 가리켰다. 미카엘은 입을 살짝 벌리고서 음산한 건물을 바라보았다. 눈앞의 현실을 믿고 싶지 않다는 듯.

그런 미카엘을 보며 일리온이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라벤느, 당신 그냥 여기 와 보고 싶었던 거지?”

어머, 그걸 이제 눈치챘어?

* * *

미카엘은 생각했다. 제 인생만 더럽게 되는 일이 없는지, 남들도 그런 것인지. 즐거운 표정으로 앞장서서 걸어가는 라벤느를 바라보니 아무래도 전자가 맞는 것 같다.

제 인생만 이 모양 이 꼴인 게 분명했다.

일주일 내내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겨우 밖에 나온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라벤느가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더럽게 낮을 것이다.

“꺄아아악!”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비명에 미카엘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애원하듯 라벤느에게 부탁했다.

“여기가 어떤 곳인지는 충분히 알았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면 안 될까요?”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가다니요, 사전 답사는 해 봐야죠.”

“사전 답사요?”

“드미트리 님께서 여기가 어떤 곳인지 물어보면 뭐라고 하실 건데요?”

어차피 차일 사람이 여기까지 왜 오겠는가? 미카엘은 드미트리가 차를 마시다 차일 거라는 데에 자신의 월급을 걸어도 좋았다. 물론 그 말을 드미트리에게 했다가는 연봉만큼 시달려야겠지만.

미카엘은 거의 포기한 상태로 순서를 기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차례가 돌아왔다.

“바닥에 있는 화살표를 따라서 조심히 빠져나오시면 됩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세요!”

안내 도우미는 다시없을 밝은 목소리로 그들의 짧은 여행을 빌어 주었다.

그 밝은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영락없는 폐가 탐험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쓸데없는 짓을 미카엘은 그 누구보다도 싫어했다.

“그럼, 들어가 보죠.”

“…….”

이미 라벤느와 일리온은 저만치 걸어 나갔고, 그 뒤를 따라가려던 릴리가 뒤를 돌아보았다.

“안 들어가세요?”

“저, 릴리 양은 안 무서우신가요?”

“어차피 만들어진 유령인데, 무서울 게 뭐 있어요?”

그래서 더 무서운 거라고요. 원래 세상엔 유령 같은 건 없으니까!

발을 질질 끌며 천천히 들어간 안쪽은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했다.

“마법을 적절히 사용했군요.”

“…….”

“바닥에 놓인 화살표도 마법으로 표시한 거예요.”

앞서가던 라벤느가 뒤를 돌아보았다.

“미카엘 경, 마법 얘기하니까 긴장감이 죽잖아요.”

“그러라고 하는 말입니다!”

미카엘은 온몸을 움츠리고 미어캣처럼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천천히 굼벵이처럼 앞으로 나아가는데, 천장에서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 머리 같은 게 튀어나왔다. 핀 포인트로 들어간 조명 덕분에, 피 칠갑이 되어 있는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라벤느는 소리를 치며 정신없이 달려 나갔고, 일리온이 그 뒤를 서둘러 따라갔다.

그리고 미카엘은 뒤로 넘어지며 바닥을 기었다.

“시, 시체……!”

“아, 너무 놀라지 마세요. 이거 모형이에요. 모형.”

릴리가 흔들거리는 머리통을 잡으며 설명했다. 이 난리 속에서 어떻게 저렇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지.

“괜찮으세요? 걷기 힘드시면 제가 도와드릴까요?”

그녀는 그에게 손을 내미는 여유까지 보여 주었다.

미카엘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릴리의 손을 붙잡았다. 단단하게 자신을 일으켜 주는 손길에, 그는 순간 그녀라면 자신을 이 지옥 같은 곳에서 탈출시켜 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또 넘어지시면 안 되니, 제 손 꼭 붙잡고 계세요. 이대로 출구까지 나갈게요.”

“네.”

그리고 제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릴리는 무척이나 믿음직스럽게 앞으로 나아가며 유령들을 모두 해치워 주었다.

그러니까, 미카엘의 시점에서 보기엔 그러했다는 말이다. 릴리가 한 건 불쑥불쑥 나타나는 모형들을 적절하게 손으로 막은 게 전부였다.

간신히 유령의 집을 빠져나오자, 라벤느가 그 앞에서 숨을 헐떡이며 웃고 있었다.

“하, 별거 아니네?”

별거 아니라며 허세를 떨지만 그녀가 그 누구보다도 크게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

“밖에 나왔으니 이제 괜찮아요.”

릴리는 그렇게 말하며 미카엘의 손을 놓아주었다. 단단한 손길이 사라진 자리엔 이유 모를 아쉬움이 남았다.

“오늘도 저희 아가씨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어요.”

미카엘은 여전히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령을 보고 놀란 가슴이 아직 진정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공작님, 왜 한 번도 안 놀랐어요?”

한참을 허세를 떨던 라벤느가 일리온을 향해 물었다. 장난감 상자에도 놀라던 사람이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은 게 궁금했던 모양이다.

“뭐가 나올지 다 보이니까.”

일리온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게 사실이었고. 그러나 순간 가늘어지는 라벤느의 눈초리에 일리온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잠깐만요. 공작님 어두운 데서도 잘 보여요?”

“…….”

이어지는 라벤느의 질문에 일리온이 입을 다물었다.

“보이냐구요.”

“그게…….”

“잘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만 말씀하세요.”

그녀의 단호한 목소리는 핑계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보였다. 일리온은 빠르게 잘못을 인정했다.

“당신을 속이려고 했던 건 아니고…….”

“그럴 거면 불은 왜 껐어요?”

“그건, 그러니까…….”

일리온은 라벤느를 달래려 고군분투했지만 오히려 라벤느의 화만 돋우는 꼴이었다.

그리고 미카엘은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두 사람의 대화 한가운데서 생각했다.

‘XX, 그냥 집에 가고 싶다.’

* * *

며칠 후 미카엘이 저택을 찾았다. 그는 안타깝게도 드미트리와 로라가 잘 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로라가 드미트리와의 데이트를 승낙한 이유 역시 확실하게 거절하기 위함이었다고.

그는 최근 실연의 상처에 빠져 미카엘을 갈구는 데 열심이라고 한다.

“그 소식을 전하려고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뭐,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요.”

미카엘은 어쩐지 어물쩍 대답하며 목덜미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할 말이 있는지 한참을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저, 그런데. 오늘은 릴리 양이 안 보이는데 어디 갔나요?”

릴리는 왜?

“릴리라면 밖에 있을 거예요. 이 시간이면 빨래를 널고 있겠네요.”

“그, 그렇습니까. 저, 그럼 혹시, 릴리 양의 휴일은 어떻게 되나요?”

남의 휴일은 왜 물어보는 거지?

“주로 토요일, 일요일에 쉬고 있어요. 그건 왜요?”

이상하게 릴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미카엘이었다. 그는 내 대답을 듣더니 더 이상 궁금한 게 없는지 이만 돌아가 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 벌써요? 차도 안 나왔는데?”

“아뇨. 요즘 드미트리 님의 히스테리가 심해져서 돌아가 봐야 해요.”

아니 그럼 왜 찾아왔는데?

배웅해 줄 필요 없다며 쏜살같이 나간 미카엘이 다시 모습을 보인 곳은 빨래를 널고 있는 릴리의 근처였다. 아무래도 수상해서 따라와 봤는데, 릴리가 목적이었구나.

복도에서 뒤뜰로 난 창에 기대 두 사람을 내려다보자, 미카엘은 뻣뻣하게 굳어 릴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릴리가 뭐라 대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살짝 상기된 미카엘의 얼굴을 보아하니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모양이었다.

“음, 흔들 다리 효과가 엉뚱한 데로 튀어 버린 것 같은데…….”

“또 미카엘이야?”

두 사람의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자, 일리온이 뒤에서 허리를 끌어안으며 물었다.

“언제 왔어요?”

“당신이 창밖에 집중하고 있을 때.”

“기대지 마세요. 저 아직 화 안 풀렸으니까.”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려는 일리온을 손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순순히 밀려나는 일리온을 보니, 그는 사고 치고 눈치를 보는 강아지처럼 날 바라보고 있었다.

“말하지 않은 건 미안해. 그냥, 당신이 너무 귀여워서 그랬어.”

지금 내 눈에는 네가 더 귀여워 보인다만.

사실 화는 이미 다 풀렸지만…….

어떡할까 고민하던 나는 짐짓 화가 덜 풀린 것처럼 일리온을 쏘아보았다.

“그렇게 미안하세요?”

“응.”

“그럼, 오늘은 눈을 안 보이게 가려요.”

“응?”

“그럼 용서해 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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