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0화
용병으로 일하는 데 가장 필요한 능력은 힘이나 기술 같은 것보다도 눈치였다. 이 바닥에서 눈치가 느린 놈들은 살아남기 힘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세바스찬은 스스로 눈치가 좋다고 자부했다.
그런 그가 저택에서 지내며 느낀 위화감이 몇 가지 있었다.
“대체 어디로 간 거야?”
“틈을 타서 도망치려는 생각은 마세요. 당신의 신상이야 손바닥 안이니까.”
염병, 들켰네.
에바의 말대로 일리온을 찾는 척하고 있던 세바스찬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 여자의 눈을 속이고 도망치는 건 포기해야 할 듯했다.
저택은 조용했다. 정원도 여느 때와 다름없었고.
그가 느낀 위화감 중 하나가 이거였다. 아이가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평화로운 저택.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평화로움을 연기하려 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래서 정말로 아이가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잠시 밖에 놀러 나간 것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였다.
“저기 뒤쪽 숲에는 뭐가 있습니까?”
세바스찬의 눈이 저택의 뒤쪽 울창한 숲에 머물렀다.
“그냥 평범한 숲입니다. 작은 호수가 하나 있는.”
“출입이 잦은 곳입니까?”
“아니요.”
세바스찬은 일리온을 떠올렸다. 아이는 한참을 책을 읽다가도 한 번씩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시선을 쫓아가면 거기엔 항상 작은 다람쥐라던가, 새 같은 동물이 보였다.
“숲이니까 새나 다람쥐가 많겠죠?”
“네?”
에바는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며 되물었다.
* * *
숲의 입구에 다다르자 세바스찬의 예상대로 작은 발자국이 보였다. 어린아이의 발자국은 숲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죽 이어져 있었다.
“이건가 본데요?”
세바스찬의 말에 에바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발자국을 따라 숲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다는 숲은 길이 사나웠다. 온갖 험한 일로 다져진 세바스찬에게는 그리 힘든 길이 아니었으나 에바에게는 조금 버거웠던 모양이다.
“빨리 안 오면 두고 갈 겁니다.”
세바스찬은 일부러 걸음 속도를 높이며 말했다. 그녀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대꾸 없이 그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도 벌어지는 거리는 어쩔 수 없는 체력의 한계였다.
한참을 걸어가자, 탁 트인 호수와 함께 작은 오두막 한 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발자국은 그 오두막 앞에서 멈췄다.
입구 앞에 다다르자 안쪽에서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먼지와 거미줄로 지저분한 집 안에 웅크려 앉아 있는 아이가 보였다.
“도련님?”
문이 열릴 거라 생각 못 했는지, 일리온은 동그랗게 뜬 눈으로 세바스찬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냥 여기 있을 것 같아서요.”
우는 애에게 뭐라 설명하면 좋을지 몰라 적당히 얼버무렸고, 일리온도 그 점에 대해 굳이 더 물어보지는 않았다.
“미안해. 널 다치게 해서.”
“별로 다치지는 않았습니다만…….”
일리온은 세바스찬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미안해.”
세바스찬은 일리온의 울음이 잦아드는 걸 기다렸다 물었다.
“그보다 아침에 그건 뭐였습니까?”
“그걸 말해 주면 할아버지가 널 가만 안 둘 텐데.”
그건 뭐, 지금도 가만 안 둘 것 같긴 한데.
“그럼 이번에도 저희 둘만의 비밀로 하죠.”
세바스찬의 말에 고민하던 일리온은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의 말이 일리온을 설득했다기보다는 그저 일리온 스스로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것처럼 보였다. 지난번처럼.
“……어릴 때 마녀를 죽여 저주에 걸린 거래. 그래서 이렇게 아픈 거고. 감정이 격해지면 주변 사람을 다치게 할 거랬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일리온이 걸렸던 저주는 마녀의 저주가 아니라, 저택 사람들의 공포심이 낳은 저주였다.
가족을 사랑하고, 아들을 사랑했던 공작은 집을 나간 아들을 찾기 위해 몇 년을 수소문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아들은 이미 죽은 뒤였고, 남은 핏줄인 일리온은 공작에게 있어 두려움의 존재였다.
사랑하는 가족의 흔적이기에 차마 내칠 수 없으면서도 보듬어 주기엔 두려운, 그래서 생겨난 기형적인 관계.
물론 당시의 세바스찬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저주라고 하니 저주인가 보다 할 뿐.
“하아, 하아. 여기 계셨습니까?”
어느새 쫓아온 에바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행히 그녀는 두 사람의 대화를 못 들은 모양이었다.
“이제 돌아가시죠. 공작님께서 걱정하십니다.”
그녀는 일리온을 야단치지는 않았으나 일리온은 크게 잘못한 사람처럼 몸을 움찔했다. 일리온에게는 거부권이 없었다. 다시 그 저택으로 돌아가는 것 말고는.
그사이에 낀 세바스찬은 잠시 고민하다 한쪽 무릎을 꿇고 일리온에게 등을 내밀었다.
“업히세요.”
“뭐 하시는 겁니까?”
“도련님께서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는 것 같아서요. 업어 주려고요.”
“쓸데없는 짓 하지 마세요.”
에바에 단호한 말에 눈치를 보던 일리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세바스찬을 지나치며 작게 속삭였다.
“괜찮아. 혼자 갈 수 있어.”
그렇게 에바의 뒤를 따라 저택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어깨는 너무도 왜소해 보였다.
불안으로 떨리는 손과 눈물이 마르지 않은 얼굴. 그리고 모든 걸 체념한 눈동자.
그런 일리온의 뒤를 따라가던 세바스찬에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 작은 아이가 정말로 누군가를 해칠 수 있을까?
* * *
그날 있었던 일로 세바스찬은 공작에게 불려 가 된통 혼이 나야만 했다. 규칙을 어긴 것과 제멋대로 행동한 점에 대해서.
그나마 다행인 건 자신을 해고하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안 그러면 말 그대로 목이 날아갔을 테니까.
그날 이후, 세바스찬은 여전히 같은 하루를 반복하고 있었다. 좀이 쑤실 정도로 서 있어야만 하는 것도 여전했고,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해 입 안에는 단내가 날 정도였다.
다만, 어느 날 갑자기 죽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떻게 자신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딱히 근거는 댈 수 없었지만……, 그냥 그럴 것 같았다. 용병의 감이라고 해두지, 뭐.
“미안해. 나 때문에 할아버지한테 혼나서.”
나른한 오후. 하품이 나오려는 걸 참고 있는데, 일리온이 사과를 건넸다.
“그 정도는 혼난 것도 아니죠.”
그보다 더 심한 인격 모독도 당했는데, 이쯤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두운 아이의 얼굴을 보며 세바스찬은 어떡할까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일리온에게 말을 거는 건 여전히 금지였지만, 뭐 한두 번 더 어긴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저, 혹시 또 울고 싶어지면 나중에 제게 조용히 알려 주세요. 숲에 가는 거 눈감아 드릴게요.”
“……혼날 텐데.”
“도련님께서 비밀로 해 주시면 됩니다.”
일리온은 눈을 데구르르 굴리다 책 귀퉁이를 만지작거렸다. 뭐라 답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리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 * *
“그런 일이 있었구나.”
이야기를 들은 라벤느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듯.
“우리 공작님이 성격이 좀 나빠도 인성까지 나쁘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네요.”
“뭐?”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를 말에 일리온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참, 이왕 말 나온 거 우리 그 오두막 가 보면 안 돼요?”
“안 될 건 없죠.”
“한동안 안 가서 더러울 거야. 볼 것도 없고.”
“오두막은 주기적으로 청소하고 있습니다.”
일리온의 말에 세바스찬이 한마디 거들었다. 일리온은 ‘굳이 왜?’라는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세바스찬을 바라보았다.
“그거야, 주인님께서 언제든 찾아가실 수 있게요.”
그의 대답에 일리온은 민망하다는 듯 헛기침을 했다.
세바스찬은 좀 더 적극적으로 일리온을 챙겨 주고 살펴 주지 못한 것이 늘 후회되었다.
당시의 그는 요령이 좋지 못했고, 공작에게 반기를 들 만큼 배포가 크지도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옆에서 일리온을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그래서 조금 아쉽네요.”
오두막으로 향하는 길. 세바스찬은 미처 하지 못했던 뒷이야기를 라벤느에게 털어놓았다.
늙은이의 푸념처럼.
“아마 공작님은 그렇게 생각 안 하실걸요?”
“네?”
“원래 가족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그냥 옆에서 말없이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존재.”
“가족……이요?”
자신의 질문에 라벤느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바스찬은 앞서가는 일리온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물어볼래요?”
그렇게 말한 라벤느가 일리온을 향해 외쳤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공작님?”
저만치 앞서 걷던 일리온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조금 민망한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다 들었으면서 모른 척하기는.”
“네?”
세바스찬은 조금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라벤느를 바라보았다.
“귀가 엄청 좋거든요. 아마 우리 대화 다 들었을걸요?”
세바스찬은 다시 한번 일리온을 바라보았다.
일리온은 잠시 머뭇거리다, 눈동자를 데굴 굴리며 대답했다.
“당연한 거 묻지 마.”
왠지 모르게 그때와 비슷한 대답에 세바스찬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