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7화
“첫인상이 어떠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음, 별 하나 뜨지 않은 밤하늘을 보는 것 같았달까요?”
“어머, 표현이 참 로맨틱하시네요.”
“눈앞이 깜깜했다는 뜻인데요.”
기자는 내 대답에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첫인상이니 뭐니 하며 대답을 주고받는 이유는 얼마 전 들어온 인터뷰 요청 때문이었다.
일리온과 나에 대해 특집 기사를 내고 싶다며 한 신문사에서 서신이 도착했고, 일리온은 의외로 흔쾌히 승낙했다. 마침 심심했던 나 역시 반쯤 호기심에 수락했고.
그러나 어쩐 일인지 그녀는 아까부터 내 대답에 어색한 웃음만 흘렸다.
왜일까.
내 대답이 그렇게 별로였나?
“고, 공작님께서 너무 아름다우시다 보니 눈이 멀 것 같았다는 뜻이겠죠?”
대체 어떻게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거지? 설마 내가 아직 이쪽 세계 말이 서툰 건가?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그, 그럼 공작님께서는 어떠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일리온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생명의 위협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려는데, 그녀는 타이밍 좋게 말을 돌리며 일리온에게 물었다. 아까부터 자꾸만 내 말을 끊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상당히 인상적이었지.”
일리온은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정신을 못 차리겠더군.”
“……어머.”
일리온이 대답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미소 때문인지 짧은 감탄을 터트린 기자의 얼굴엔 살짝 홍조가 돌았다.
안타깝지만 일리온의 대답은 해석이 필요 없을 정도로 사실 그대로를 표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정신을 못 차렸겠지.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럼 두 분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신 건가요?”
그녀의 오해를 정정해 줄까 하던 나는 이어지는 질문에 잠시 할 말을 잊어버렸다.
기자 양반,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요. 지금까지 내 대답 제대로 들은 거 맞아요? 어떻게 하면 저런 결론이 나오는 거지?
“아뇨.”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서로 갈린 우리의 대답에 서재는 적막에 휩싸였다.
“……어, 그러니까. 첫눈에 빠진 거나 뭐 다름없다 그런 뜻이겠죠? 하하.”
어떻게든 분위기를 띄워 보려는 기자를 뒤로하고 일리온을 바라보았다. 아니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결혼까지 한 마당에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어?
“그게 어떻게 ‘첫눈에’예요?”
“당신이야말로 첫눈에 반한 거 아니었나?”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 같자 기자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며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그러고 보니 제가 오늘 인터뷰가 하나 더 잡힌 걸 깜박했네요.”
그러나 기자보다 당장의 시시비비가 더 중요했던 난 일리온에게 몸을 돌려 물었다.
“하, 제가 첫눈에 반했다는 그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시는 거죠?”
코웃음을 치며 되묻자 일리온은 특유의 뻔뻔한 얼굴로 대답했다.
“날 뚫어져라 봤잖아.”
“그, 그건…… 맞는데…….”
“내 얼굴을 보느라 내가 무슨 말 하는지도 몰랐지.”
“그, 그것도 맞는데…….”
아니, 왜 갑자기 맞는 소리만 하는 거지? 갑자기 할 말이 사라진 난 일리온을 노려보았다.
기자는 우리의 미묘한 신경전이 견디기 힘들었는지 후다닥 짐을 들고 나가 버렸고.
“그것도 맞는데?”
그녀가 나가자마자, 일리온은 기다렸다는 듯 내게 몸을 기대며 날 바라보았다. 눈웃음을 살살 치며.
언제부터 웃는 게 이렇게 자연스러운 사람이었다고?
기자가 이 모습을 마저 보고 가지 못한 게 안타까울 정도였다.
“아니, 잘생긴 사람이 앞에 나타나면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랄까……. 그게 첫눈에 반한 건 아니죠.”
치사하게 얼굴 공격을 하는 일리온을 조금 밀어내며 말을 마저 내뱉었다. 일리온은 뭐가 재밌는지 밀어내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날 끌어안으며 웃음을 흘렸다.
“그러는 공작님이야말로 첫눈에 반한 적 없잖아요.”
“그래서 비슷하다고 말했잖아.”
그러고 보니 궁금했다. 그렇게 날 싫어해 놓고 갑자기 날 좋아하게 된 계기가 뭐였는지. 결혼한 지도 3개월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그 일만큼은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공작님이 절 싫어했다는 거 알아요. 그러니 솔직히 털어놓아 보세요. 언제부터 절 다르게 보신 거예요?”
“기억 못 할 텐데.”
“그럴 리가요. 고작 작년에 일어난 일인데.”
내 말에 일리온은 또 웃음을 흘렸다. 너 원래 이렇게 웃음에 헤픈 성격이었니?
일리온의 새로운 모습을 하나씩 알아 가는 것도 나름 재밌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호기심 해결이 먼저였다.
“그래서 언젠데요?”
일리온은 조금 뜸을 들이다 말을 꺼냈다.
“란셀 후작가에 갔던 날.”
란셀 후작? 그럼 저택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닌가?
“그럴 리가 없는데?”
“뭐가 그럴 리가 없는데?”
“그날 제 행동은 완벽했는걸요?”
당시에 내 목표는 일리온이 날 싫어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냥 싫어하는 게 아니라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
그리고 후작가에서 내가 했던 행동은 더없이 완벽했다. 반지를 잃어버리고, 일리온에게 억지로 싫어하는 음식을 권하고,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놈팡이에게 물을 쏟기까지 했으니.
물론 끝에 가서 살짝 의심을 사긴 했지만 그게 날 좋아하는 계기가 되는 건 이상했다.
일리온 이 자식 설마…….
“취향이 조금 이상한 거 아니에요?”
난 진지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원래도 조금 이상할 때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취향이 이상한 거 아니야?
“혹시 고삐 풀린 망아지가 취향이에요?”
“뭐?”
“아니면, 백치미가 취향이라던가?”
“…….”
일리온은 말없이 날 바라보았다.
“세상에. 공작님…….”
지금껏 자기 취향이 뭔지도 몰랐던 거 아니야? 충격받은 것 같은데?
“어떡하죠? 전 고삐 풀린 망아지도 아니고 백치미도 없는데?”
내 말에 일리온은 헛웃음을 뱉으며 그날 저녁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아니,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하던가.”
괜한 민망함에 그를 밀어내고 툴툴거렸다. 일리온의 말대로 기억에 없기도 했고.
“뭐, 내 취향이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게 무슨 뜻이에요?”
일리온에게 묻자 그는 허리를 끌어안으며 날 소파 위로 쓰러뜨렸다.
“아니, 잠깐만. 나 아직 말 안 끝났어요.”
“그래, 듣고 있어.”
목덜미에 입을 맞추던 그는 짧게 대답했다.
“윽……. 이게 어딜 봐서 듣고 있는 거예요.”
간지러움에 몸을 살짝 떨자, 일리온은 짙은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기분 좋으면서도 어쩐지 유혹하는 듯한…….
“듣고 있잖아.”
귓가를 살짝 울리는 낮은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얼굴에 열이 오르고 말았다.
“진짜…….”
“응?”
“이럴 거면 방으로 가요. 여긴…… 집무실이잖아요. 누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달칵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리며 집무실 창문으로 커튼이 드리워졌다.
아니, 굳이 이런 식으로 마법을 쓸 바엔 그냥 방으로 가는 게 더 낫지 않나?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마법이 아닐 텐데요.”
또다시 그에게 휩쓸려 넘어가고 마는 본심을 들키기 싫어 일부러 한마디 더 툴툴거렸다.
“당신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으니 쓰임새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진짜…….”
그리고 난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 * *
아무튼, 그래서 시작된 취향에 대한 의문은 일리온이 뭘 좋아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범위를 넓혀 갔다.
예를 들면 이런 것.
“공작님.”
“왜?”
“공작님은 취미가 뭐예요?”
나와 시간을 보내거나 일을 하는 것을 제외하면 일리온은 딱히 취미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내가 이 집에 오기 전에는 일만 하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일리온의 생활은 규칙적이며 정적이었다.
종종 손님이 찾아오거나, 기사단과 훈련을 하거나, 황성에 보고를 하러 가는 일도 있었지만…….
뭐랄까. 그에게는 온전히 자기만을 위한 시간이 없었다.
일리온은 서류에서 눈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다.
“왜. 심심해서 그래?”
“그런 건 아니고……. 세바스찬, 혹시 제가 없었을 때 공작님은 주로 뭘 했어요?”
때마침 우편을 전해 주기 위해 집무실에 들른 세바스찬에게 물었다.
“나한테 물어보면 될 걸 왜 세바스찬한테 물어봐?”
그야 네 입에서 나올 대답은 재미없을 테니까. 업무-기사단-업무-기사단이겠지 뭐.
기분이 살짝 상한 듯한 일리온을 무시하며 세바스찬을 바라보았다.
“글쎄요……. 요즘은 조금 뜸하시긴 하지만, 어릴 땐 숲에 종종 놀러 가셨죠.”
역시나. 질문할 사람을 잘 골라 놨더니 대답부터 다르잖아.
“숲이요? 거기에 뭐가 있는데요?”
“그걸 알아서 뭐 하려고.”
일리온은 여전히 언짢은 듯한 표정으로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내가 세바스찬이랑 대화해서 기분이 나쁜 건 아닌 것 같고.
언짢은 이유가 따로 있나?
“그냥 궁금한 것뿐인데, 왜요? 말 못 할 거라도 있어요?”
내 질문에 세바스찬이 점잖은 웃음을 흘렸다.
“못할 것도 없죠. 그냥 옛일을 말하는 것뿐인데요.”
“세바스찬…….”
“마님께서 궁금하시다고 하시잖아요.”
일리온은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진짜 누구 편인 거야.”
“그야 물론…….”
“제 편이죠.”
세바스찬의 말을 가로채며 대답했다.
“그리고 저는 공작님 편이고요.”
눈을 찡긋하자 일리온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날 바라보았고, 세바스찬은 그런 일리온을 향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별수 있겠냐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