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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파혼에 진심입니다 (70)화 (70/159)

70화

“혹시 이 물건은 어디서 나셨나요?”

“그게…….”

굳이 베르텔에 대한 걸 말해 줄 필요가 있나 싶어, 난 말을 얼버무렸다.

“어쩌다 보니, 우연히…….”

내 말에 아르티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설명했다.

“이건 성물이에요. 마력을 봉인하는 힘을 가지고 있죠.”

“그럼 혹시 이게 망가져서 제 친구의 마나가 안 돌아오는 걸까요?”

“그럴 수 있겠네요.”

어떡한담. 그럼 결국 스피넬의 마나는 이대로 안 돌아오는 거야?

“괜찮으시면 이 물건을 제가 좀 가져가도 될까요? 고칠 방법이 있는지 알아볼게요. 그게 아니더라도 친구분의 마력을 복구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정말요?”

내 말에 아르티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가져오길 잘했어.

“그럼, 꼭 좀 부탁드릴게요.”

“네.”

나를 대하는 아르티아의 태도가 저번보다 훨씬 우호적이었다.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저, 있잖아요, 성녀님.”

“네?”

“혹시 제국에서 지내면서 힘드신 건 없으세요?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던가…….”

“그건 갑자기 왜…….”

내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르티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혹시 힘든 일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좋으니 제게 말해 주세요. 도와드릴게요.”

난 아르티아의 두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물론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도와줄 거지만, 상대는 클라우스였다.

그러니 그의 손에서 빠져나오려면 그녀의 의지 또한 중요했다.

“말씀 감사합니다, 영애. 하지만 전 요즘 잘 지내고 있답니다.”

내 손이 불편했는지 그녀는 내게 잡힌 두 손을 빼내며 대답했다.

“아, 그러니까 제 말은…….”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뭔가 내 의도가 잘 전달이 안 된 듯해 서둘러 아르티아를 붙잡아 보려 했지만, 그녀는 일정이 있어 미안하다며 서둘러 가 버렸다.

결국, 스피넬의 마력을 되찾는 방법은 여전히 미궁 속이었고, 아르티아에게 전하고자 했던 내 말은 그저 ‘다음에 만나자’와 같은 입에 발린 소리가 되고 말았다.

클라우스에게서 도망치는 걸 돕겠다고 좀 더 정확하게 말할 걸 그랬나?

하지만 주변에 듣는 귀가 너무 많은걸.

“자, 이제 그만 돌아가시지요. 아가씨.”

날 들여보내 주었던 사제는 땀을 삐질 흘리며 내게 재촉했다.

“다시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안 돼요?”

“저랑 약속하셨잖아요. 잠깐만 만나고 돌아가겠다고.”

“근데 아직 하고 싶은 말을 다 못 했는 걸요.”

“제발 부탁드려요. 외부인이 안에 있는 거 알면 교황님께 제가 혼난다고요.”

날 안에 들여보내 준 사제는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애원했다.

하긴, 아르티아가 언제 다시 나올지도 모르고 밖에선 스피넬과 루카스가 기다리고 있어 오래 머물 수도 없었다.

울상인 사제의 얼굴을 보아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신전 밖은 여전히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모두 아르티아를 보기 위해 몰린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시선을 피해 쪽문으로 나온 건 잘한 일이었다.

정문쪽 계단으로 걸어 내려왔다면 온 군중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을 테니까.

“출입 금지입니다. 질서를 지켜 주세요. 더 이상 안으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계단 아래에서 사제들이 사람들의 진입을 막으며 소리쳤다. 흡사 연예인을 보기 위해 몰려든 팬과 그들을 막는 경호원처럼 보였다.

실상은 조금 달랐지만.

“거, 성녀가 뭐라고 이렇게 막는 거야?”

“그러니까. 어차피 속국에서 잡아 온 포로라던데 얼굴 좀 보여 주면 어디가 덧나?”

“괜히 헛걸음했네.”

단순히 궁금해서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속국의 포로가 어떻게 제국의 신전에 발을 들이냐며 쓸데없는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러게 왜 통행료를 올렸냐며 꼴좋다는 원색적인 비난을 쏟는 사람도 있었다.

전쟁을 일으킨 건 아르티아가 아니었는데 어째서 이런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지 안타까운 일이었다.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살짝 떨어져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데 갑자기 비명이 들리며 사람들이 홍해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단검 한 자루를 들고 달리고 있었다.

달리는 방향이 어쩐지 내 쪽을 향하는 것 같은데.

“교주님의 원수! 죽어라!”

그래, 나한테 오는 거 맞네.

교주의 원수가 어쩌고 하는 걸 보니 베르텔교의 남은 잔당처럼 보였다.

진짜 지치지도 않고 바퀴벌레 같은 끔찍한 생명력을 자랑했다.

내 이럴 줄 알고, 오늘은 만반의 준비를 해 왔지.

나는 내 손목에 걸린 아티팩트를 자신만만하게 내보이며 주문을 외웠다.

“파이어……!”

“으윽…….”

“……보, 응?”

그러나 주문을 외치기도 전에 내게 달려들던 남자는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뒤로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날 보며 서 있었다.

“오랜만이군. 리슈펠트 영애.”

“……폐, 폐하.”

난 황급히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황제에게 부복하며 무릎을 꿇었다.

“괜찮으니 고개를 들게. 인사를 받자고 온 건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조금 서려 있었다.

“꽤나 위험할 뻔했군. 그대는 적이 많은 모양이야?”

“제가 운이 나쁘다는 얘기는 많이 듣죠.”

“……그래? 내가 보기엔, 꽤 운이 좋은 것 같은데?”

글쎄. 운이 좋았더라면 내가 널 만나지 않았겠지.

“마침 내가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으니 운이 좋은 거 아닌가?”

“그, 그렇죠. 목숨을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바란 적 없는 도움이었지만. 특히나 클라우스에겐 더더욱.

“원래는 아르티아가 궁금해 따라온 거지만…….”

클라우스는 푸른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날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그대가 걱정되니 공작저까지 데려다주겠네.”

“말씀은 감사하오나, 저쪽에 제 일행도 있고 타고 온 마차도 있어…….”

내 변명에 클라우스는 웃으며 말했다.

“이대로 그냥 돌려보냈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공작을 볼 낯이 없어서 그러네. 그러니 내 호의를 거절하지 말게.”

누가 보면 굉장히 인자한 황제인 줄 알겠어요.

그러나 그 인자한 모습과 반대로 피가 묻은 검을 천으로 닦아 내는 모습은 상당히 괴리감이 느껴졌다.

겨우 숨만 붙어 바닥에 쓰러진 남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쩌면 저 모습이 내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게 하시지요.”

***

루카스와 스피넬은 공작가의 마차를 타고 뒤따라오기로 했다.

그 말인즉슨 난 지금 황제와 단둘이 좁은 마차 안에 갇혀 있다는 얘기였다.

아까 아티팩트 사러 갈 때 순간이동 마법도 하나 사둘걸……. 후회가 막심했다.

“얼마 전에 큰일을 겪었다던데, 지금은 괜찮나?”

“네. 다행히 상처가 심하지 않아서 치료는 금방 끝났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걱정이라면 내가 아니라 공작이 했지. 중요한 회의도 미루고 안 나오더군. 내 공작이 그러는 건 처음 봤어.”

그래서 지금 기분이 나빴다는 걸 내게 어필하는 걸까? 뭐라고 장단을 맞춰 주면 되지? 한 마디 한 마디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위태로웠다.

“공작이 그댈 참 아끼는 모양이야.”

“하하하.”

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대가 그대로 죽어 버렸다면 참 안타까울 뻔했어. 공작이 무척 상심했을 테니까.”

“그, 그렇죠. 다행히 신이 도우셨나 봐요.”

“그래, 신이 도운 모양이야. 나 역시도 그대가 살아 돌아와 기쁘네.”

그렇게 말하며 클라우스는 눈가를 휘었다. 그가 웃을 때마다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렇게 평범한 대화를 이어 나가며, 마차는 차츰 공작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난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초연하게 공작저를 바라보았다.

눈앞에는 호랑이가 있고, 집 안에는 사자가 있으니. 어느 쪽이 낫다고 쉬이 말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일리온이랑 케이크만 먹고 집에 오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거짓말이 들통나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마차는 정원을 가로질러 저택 앞에 도착했고, 세바스찬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 보게.”

클라우스는 내가 마차에서 내리는 걸 도와주며 말했다.

“……공작님은 안 뵙고 가시나요?”

“괜히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

정말? 그래 주면 나야 고맙고.

두 사람 사이에 끼어서 혼이 빨리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그럼, 다음에 또 보지.”

클라우스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등에 짧게 키스를 남기고 돌아갔다.

“…….”

마차가 저만치 사라지는 걸 보며, 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 소름 돋아.

손등을 드레스 자락에 벅벅 문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폐하께서 바래다주실 줄 몰랐는데, 마을에 나갔다 만나셨습니까?”

“……네. 어쩌다 보니.”

“혹 별일은 없으셨나요?”

어차피 나중에 루카스를 통해서 알게 될 사실이니 감춰 봐야 소용없을 듯했다. 그럴 바엔 내 입으로 먼저 선수 치는 게 나았다.

“베르텔 교단 사람한테 습격을 받았어요.”

“네?”

“마침 폐하께서 구해 주셨어요.”

혹여 걱정할까 봐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세상에. 혹시 어디 다치지는 않으셨습니까?”

세바스찬이 날 살피며 물었다.

“괜찮아요. 그보다 저 먼저 들어가서 쉬어도 될까요?”

그 짧은 시간 클라우스와 같은 마차를 탄 그것만으로도 정신력이 바닥이 나고 말았다.

지친 발걸음을 옮겨 계단을 올라가는데 세바스찬이 난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왜요?”

“그게, 공작님께서 아가씨께서 도착하시면 집무실로 모시라고…….”

“…….”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구나.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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