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칼데아 산맥은 사람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었다. 산세가 그리 험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이 바위산인 데다 교통도 안 좋고 얻을 게 많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스피넬이 이곳에 터를 잡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없어서 평화로웠던 산맥에 어느 날부터 신경을 거스르는 소음이 늘어났다.
소리의 근원엔 예상대로 인간이 있었다.
“거기서 뭐 하느냐?”
처음엔 그저 겁만 주어 쫓아낼 생각이었다.
“뭐, 뭐야? 공작가 사람인가?”
“마석을 훔친 걸 들킨 것 같은데 어떡하지?”
“……일단 죽이자. 여자 한 명이잖아.”
그러나, 무어라 속닥거리던 인간들은 품에서 칼을 꺼내 스피넬에게 들이밀었다.
세라스는 언제나 인간들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했지만, 제게 검을 들이미는 놈들까지 봐줘야 할 이유는 없었다.
스피넬은 무심하게 손가락을 까닥여 마법을 사용했다. 제게 검을 겨누던 인간의 목이 그대로 날아갔다.
“으아아!”
그 모습을 지켜본 나머지 인간들은 소리를 지르더니 무기를 팽개치며 달아났다.
“마, 마녀다!”
“붉은 머리의 마녀야!”
역시나 말이 안 통하는 것도 모자라 머리까지 나쁜 놈들이었다.
“내가 그리 하찮은 거로 보이다니…….”
스피넬은 도망가는 사내들을 그냥 보내 주었다. 딱히 그들을 용서할 마음이 든 건 아니었다. 그냥 귀찮았을 뿐.
그러나 그들을 놓아준 게 실수였을까. 그날 이후 산을 찾는 사람이 자꾸만 늘고 있었다.
처음 봤던 인간들이랑 다르게 최근에 들이닥친 인간들은 곡괭이 대신 무기를 들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노리고 찾아온 것처럼.
그렇다고 해서 제게 상대가 될 리는 없었지만.
스피넬은 오늘도 제 둥지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인간들을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태워 버렸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도록.
짧은 청소를 끝내고 라벤느가 있던 자리로 돌아온 스피넬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라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냄새가 멀리서 나는 걸 보니, 재료를 찾다가 먼 곳까지 간 모양이었다.
“대체 케이크가 뭐라고 이 난리를 피우는지…….”
스피넬은 머리를 긁적였다.
케이크라는 음식이 궁금하지만, 그것 때문에 그녀를 살려 두고 있는 건 아니었다.
제 눈을 무자비하게 찌른 것도, 둥지를 발견한 것도 모두 그냥 살려 보내 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세라스에 대한 게 조금 걸리긴 했지만, 세라스야 워낙 옛날부터 인간들을 돕기 좋아했으니 라벤느 역시 그 도움을 받은 인간 중 하나겠지.
하지만 역시 당장 죽이는 건 아까웠다.
그 이유를 고민하던 스피넬은 결국 귀찮음을 무릅쓰고 라벤느를 찾아 나섰다.
마침내 발견한 라벤느는 고작 멧돼지 앞에서 발발 떨고 있었다.
스피넬은 가볍게 멧돼지를 제압하고 눈을 질끈 감은 라벤느를 바라보았다.
“대체 뭘 찾길래 이 먼 곳까지 온 거야?”
제 목소리에 라벤느가 녹색 눈을 깜박이며 위를 올려다봤다. 그러다 울먹거리는 얼굴로 제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흐아앙…… 죽는 줄 알았어요.”
“이거 놔.”
다리를 흔들며 떼어 내려 했지만, 라벤느는 달랑거리면서도 제 바짓가랑이를 꼭 잡고 있었다.
“좀 놓으라고!”
이 귀찮은 인간을 어째서 아직 살려 두고 있는지, 스피넬은 짜증을 내면서도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
베르텔교의 교주, 노만 베르텔은 다 죽어 가는 몰골로 제 앞에서 무릎을 꿇은 신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막 칼데아 산맥에서 돌아온 참이었다.
“붉은 머리에 붉은 눈. 그리고 한쪽 눈의 흉터까지 모두 일치합니다. 교주님께서 찾는 마녀가 맞는 것 같습니다.”
창백한 베르텔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형제님, 마녀를 찾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디 계십니까? 직접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겠습니다.”
“그들은 모두…… 마녀에게 당했습니다.”
“……!”
베르텔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내가 괜한 걸 부탁했군요. 나 때문에 당신들이…….”
“당치도 않습니다. 이 모든 건 교단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남자는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형제님…….”
“그러니 교주님께서는 반드시 마녀를 처단해 주세요. 먼저 간 형제와 자매들도 그걸 바랄 겁니다.”
남자의 말에 베르텔은 화상 자국이 가득한 손으로 지팡이를 꼭 쥐었다.
“그 말이 맞습니다. 형제들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지요. 이번에야말로 마녀를 처단해야 합니다. 반드시 그녀를 형제들의 무덤에 바칠 겁니다.”
베르텔의 얼굴은 점점 기대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의 숙원이 드디어 풀리려고 하고 있었다.
셀바스 지역을 불바다로 만들고, 영주인 자신이 결국 그 땅을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든 마녀…….
베르텔은 그녀를 죽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교단을 세우고 마력을 봉인하는 성물까지 손에 쥐었다.
아무리 마법을 잘 다룬다고 할지라도, 마나를 봉인해 버리면 그녀 역시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남은 건 그녀를 죽이는 일뿐이었다.
“형제들을 모아 주세요. 달이 가득 차오르는 날, 마녀를 처단하러 가겠습니다.”
베르텔은 비장한 표정으로 남자에게 명했다.
***
낮에 그 난리를 치고 나니 자연스레 케이크 얘기는 무산되고 말았다.
스피넬은 케이크에 대한 흥미가 사라진 모양인지 귀찮으니 집으로 돌아가자 했고 나 또한 지친 상태라 그녀의 의견을 따랐다.
그렇게 또 한 번 맞이한 동굴에서의 밤은 쉽게 잠들지 못할 만큼 추웠다.
“저기, 스피넬 님. 여긴 담요 같은 거 없어요?”
“담요?”
“너무 추워요.”
스피넬은 춥다고 칭얼거리는 날 한심하게 바라보더니, 손을 까딱했다.
“이제 좀 괜찮냐?”
몸 주변으로 따스한 온기가 올라왔다.
“와. 이런 마법도 할 줄 아세요?”
“어지간한 마법은 다 할 줄 안다. 특히 화염 계열이 특기지.”
이렇게나 마법을 잘 다루면 어디서든 오라고 난리였을 텐데. 왜 산에서 지내는 걸까?
“스피넬 님은 여기서 얼마나 사셨던 거예요?”
“……글쎄. 20, 아니 30년인가? 햇수를 세 본 적이 까마득해서, 잘 모르겠군.”
20~30년이라면, 거의 평생을 산에서 살았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그래서 사회적인 규범을 습득하지 못한 건가? 그렇다면 그녀의 독특한 행동과 말이 이해는 갔다.
“그럼 그동안 여기서 계속 사신 거예요?”
“그래.”
“왜 이런 곳에서 혼자 사시는데요?”
“원래 살던 데서 도망쳤어.”
“원래는 어디서 사셨는데요?”
“레기아스 할아범네.”
“……아, 할아버지랑 같이 사셨었구나.”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곳에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어릴 때는 가족과 함께 살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왜 도망쳤어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종족의 수치라며 매일같이 물어뜯겼거든.”
가문의 수치 아닐까 싶지만,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럼 마법은 어릴 때 배우신 거예요?”
“세라스가 알려 줬어.”
다시 한번 등장하는 이름이었다.
“아……. 그럼 그 세라스라는 분은 친구인 거예요?”
“아니. 내 가족이야.”
가족이었구나. 그럼 할아버지를 피해 가족끼리 피난을 온 건가. 그녀에게도 나 못지않게 복잡한 사정이 있는 듯했다.
“그럼 그분은 지금 어디 계세요?”
“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