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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파혼에 진심입니다 (49)화 (48/159)

49화

“테오가 황립 마법 아카데미를 다닐 거라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을 거다.”

마법을 쓸 줄 알았다니……. 재능마저 동생에게 몰렸다며, 아쉽게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아카데미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동생의 입학 허가를 내주지 않더구나.”

“그런 일이 있으셨나요?”

“그런 일이? 하긴, 네가 집안일에 무슨 관심이 있겠니.”

그녀는 혀를 쯧쯧 차며, 내게 말했다. 무서워서 무슨 말을 못 하겠네.

“안 그래도 공작님께서 아카데미에 후원을 많이 한다 들었는데, 네가 공작님께 잘 말씀드려 보거라.”

“……네?”

“몰라서 묻는 거니? 당연히 네 동생이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도록 부탁을 드려 보라는 얘기지?”

하여간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며 그녀는 다시 한번 짜증을 냈고, 그런 그녀를 테오가 달래기 시작했다.

“어머니, 진정하세요. 누님이 이런 적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테오, 내 아들. 내가 정말, 너 아니었으면 진작에 화병으로 죽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이 모자 뭐야?

그러니까 지금 입학시험에 미끄러진 동생을 권력을 이용해 합격시켜달라는 말인가?

아, 머리야.

“저, 어머니. 시험에 떨어졌다면 다음 해를 노려보는 게…….”

“무슨 그런 태평한 소리를 하는 게냐? 네 동생이 떨어진 건 성적이 안 돼서가 아니라, 우리 가문이 보잘것없어서 그런 걸 모르더냐? 게다가 네 동생이 벌써 3년 가까이 준비한 것을 네가 몰라서 1년 더 하라고 하는 것이냐?”

안 되면 1년이든 2년이든 될 때까지 해야지.

내가 그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는 태도로 대답을 미적거리자 백작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일어나거라.”

“네?”

그녀의 강압적인 명령에 나는 어정쩡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순식간에 강한 충격이 뺨을 내리쳤다.

충격을 못 이겨 몸이 휘청거리자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언제부터 네게 말대답을 해도 된다고 허락했느냐? 공작가에서 편하게 지내느라 전부 다 잊은 모양이니 다시 교육해야겠다. 똑바로 서거라.”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다시 한번 내 뺨을 내리쳤고, 이번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머리가 어질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아파죽겠네. 내가 어째서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지?

“일어서.”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목소리가 다시 한번 머리 위로 쏘아졌고, 옆에서 릴리가 어찌할 줄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 보였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거라.”

그녀의 말엔 마법이라도 담긴 모양인지, 내 몸은 홀린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의지라기보다는 몸이 기억하고 있는 버릇 같은 느낌이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자, 그녀는 다시 한번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내 뺨을 내리치려는 찰나.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일리온이 그녀의 손을 잡고 막아섰다.

“이거 놓으시지요, 공작님. 가정 교육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게, 가정 교육이라는 말씀입니까?”

“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부인, 이건…….”

“공작님, 잠시만요.”

난 손을 들어 일리온을 막아 세웠다.

“라벤느, 그대는 치료부터…….”

“괜찮아요. 정말로.”

그렇게 말하며 아직 얼얼한 뺨을 당겨 웃음을 지어 보였다. 뺨을 두 대 맞았더니 정신이 확 들었다.

라벤느의 몸을 내가 차지했다는 미안함에, 그녀의 가족들에겐 최대한 우호적으로 대해 줄 생각이었다.

일리온이 반역을 저지르면 그들 역시 무사하지 못할 테니 동병상련하는 처지이기도 했고.

그래서 가스라이팅인지, 잔소리인지 모를 말에도 가만히 있었는데…….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어머니.”

일리온을 막아 세우고 난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사과를 건넸다.

“어머니께서 화가 나실 만도 해요. 제가 미처 어머니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이제 좀 말이 통하는구나.”

그녀는 일리온의 손을 차갑게 뿌리치며 말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이렇게 수도에 오신 김에 아카데미에 직접 가서 얘기를 나누고 오시죠.”

“……뭐?”

“아카데미 교장께 테오를 소개하고, 눈도장도 찍고 오면 좋을 듯해서요. 어머님 말씀대로 아카데미는 학연, 지연, 혈연이 전부인 곳 아닙니까? 미리 눈도장 찍어서 나쁠 것은 없죠.”

갑작스러운 내 제안에 그녀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그럼 그리하자.”

“네. 마차를 준비해 놓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조금 만족스러운 모양인지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난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있는 일리온을 데리고 응접실을 나왔다.

일리온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모양이었지만 일단은 참는 듯했다.

“일단 아침부터 못 볼 꼴을 보여…….”

방을 나온 일리온은 내게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손을 잡고 끌었다.

“자, 잠깐, 어디 가시는 거예요?”

딱히 빠르게 걷는 것도 아닌데, 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뒤쫓아 가는 난 거의 뛰다시피 걸어야만 했다.

“공작님?”

그러나 몇 번을 불러도 그는 대꾸하지 않았고, 결국 그에게 끌려온 곳은 주방이었다. 일리온이 나타나자 주방 시종들은 바짝 긴장한 채로 그를 맞았다.

“얼음이랑 수건을 가져와. 그리고 신전에 연락해서 사제를 데려오게.”

그의 한마디에 시종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얼음을 수건에 싸서 가져왔다.

“앉아.”

어쩐지 단단히 화가 난 목소리였다. 아까는 백작 부인이 일어나라 시키더니, 이번엔 일리온이 앉으라 시키고.

할 수 없이 옆 의자에 앉으니, 일리온은 얼음을 싼 수건을 내 뺨에 가져다 댔다.

“아프진 않나?”

“아프진 않은데…….”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은 드네요.

시종들이 무슨 일인지 기웃거리며 이쪽을 바라보는 게 영 신경이 쓰였다.

내가 불편해하는 걸 눈치챘는지, 나이 든 하녀 한 명이 사람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못 볼 꼴을 보여 드려 죄송해요.”

“…….”

“실은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마음이 급한 난 용건부터 급하게 꺼냈다.

“왜 가만히 맞고 있어?”

“……네?”

“소리라도 지르지 그랬어.”

갑자기?

“아니, 그 정도로 맞지는 않았어요.”

아프긴 했지만.

“백작 부인과 동생은 돌려보내겠다. 이번 일에 대한 책임도 물을 생각이야.”

그렇게 말하는 일리온은 화를 누르는 듯 보였다.

“자, 잠깐만요.”

난 다급하게 일리온의 옷깃을 잡았다.

“그대는 앞으로 공작 부인이 될 거네. 아무리 가족이라도 함부로 손을 대서는…….”

“그게 아니에요.”

난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이번 건은 제가 해결할 테니, 제 부탁 한 가지만 들어주세요.”

일리온에게 맡기면 손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을 테지만, 그렇게 쉽게 두 사람을 보낼 수는 없었다.

딱히 두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낀 것도 아니고, 라벤느의 인생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뺨을 때린 대가는 치르게 해야지.

“만약 가족이라는 이유로 일을 조용히 덮고 넘어가려 한다면…….”

“제 부탁, 들어주실 거죠?”

일리온은 내가 혹시라도 이번 일을 그냥 넘길까 봐 한마디 더 하려 했지만, 내 뜻은 확고했다.

내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지, 일리온은 작게 한숨을 쉬며 물었다.

“부탁이 뭔데?”

“아카데미 교장 선생님께 편지 한 통을 써 주세요.”

“편지?”

“네. 내용은 제가 적어 드릴게요.”

그렇게 말하며 빙긋 웃었다.

***

당일 오후, 일리온의 얼음찜질로 볼이 조금 가라앉은 난 그 위로 화장을 덮고 멀쩡한 얼굴로 저택을 나섰다.

“나도 따라가겠네.”

“일 많으시잖아요. 단장님만 동행해도 되는데요?”

혹여 또 무슨 사고를 칠까 걱정하는 거라면-물론 안 치겠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굳이 따라올 필요는 없었다.

루카스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

오늘은 그렇게 큰 사고를 칠 생각도 없었고, 일리온이 있으면 방해만 될 것 같아 그의 제안을 거절했으나 그는 생각보다 완고했다.

“아니. 내가 따라가지.”

“그럼…… 오늘 제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그냥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신다고 약속해 주세요.”

“……좋아.”

“마찬가지로 제 어머니께서 제게 무슨 행동을 하든 가만 계셔야 해요.”

일리온은 그 말에는 대답을 못 하고 망설였다.

“……그건 장담 못 해.”

“그럼 따라오지 마세요.”

“그럴 순 없네.”

저, 고집불통.

할 수 없이 따라오려면 약속을 하라는 조건을 내밀었지만, 일리온은 결국 끝내 그러하겠노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뭐, 어쩔 수 없지.

일단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허락하겠다는 약속은 받았으니,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렇게 일리온과 나, 그리고 백작 부인과 테오 넷이서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 안은 조용했고 네 사람은 한참 말이 없었다.

적막에 숨이 막힐 때쯤, 백작 부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결혼식은 어떻게 준비하고 계십니까?”

“예정대로 준비 중입니다.”

“저희 쪽에서 준비할 것은…….”

“없습니다. 사전에 말씀드렸을 텐데요.”

백작 부인의 질문에 이어지는 일리온의 대답은 까칠하기 그지없었다.

당연히 그녀의 맘에 들 리 없었고, 예상대로 그 불똥은 내게 튀었다.

“너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니?”

“전 그저 공작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따를 뿐이죠.”

내 대답이 마뜩잖았는지, 그녀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넌 정말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구나. 이건 단순한 결혼식이 아니라 그리 말했거늘. 정말이지, 공작님 뵐 낯이 없군요.”

마치 나더러 들으라는 듯한 말투였다.

딱히 부정할 생각도 없었기에 난 그녀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렇게 말씀하실 거 없습니다. 라벤느는 부인의 생각보다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니까요. 부인께선 요즘 신문을 안 보시는 모양입니다?”

반면 일리온은 조금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날 제외한 타인에게 저렇게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일은 잘 없는데.

“물론 읽고 있죠. 자랑스러운 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잘해도 부모의 눈에는 부족한 게 보이기 마련인지라 걱정이 되다 보니.”

“어머님께선 혹여 누님이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것뿐입니다, 공작님.”

테오 역시 눈치 빠르게 그녀를 두둔하기 시작했다.

“실수는 오늘 부인이 하신 게 실수지요.”

분위기가 점점 싸해지자, 테오가 내 발을 살짝 밟으며 눈치를 줬다. 어떻게 해 보라는 뜻이었다.

내가 동네북이지,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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