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내 계획은 이러했다.
마차를 타고 마석이 나온 땅을 보러 가는 길에 습격을 받아 절벽 아래로 추락해 죽는 것.
물론 어디까지나 그렇게 보이는 것이 목적이었지 정말로 죽을 생각은 없었다.
목격자들에게 내가 확실히 죽었을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그리고 난 이 나라를 뜰 것이다.
계획을 들은 세르지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이런 계획을 세우는 겁니까?”
“이 나라를 뜨고 싶어서요.”
“공작 부인께서 아쉬울 게 뭐가 있으셔서요?”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힘든 비밀 같은 건 다들 있는 법이죠. 레이디의 비밀을 너무 캐묻지 마시죠.”
“……그럼 하나만 더 물을게요. 구태여 이 일을 제게 부탁하시는 이유는요?”
그래, 아주 좋은 질문이야. 그나마 네가 생각이라는 걸 하는 사람으로 보이니까.
“그건 이 비밀을 죽을 때까지 묻어 줄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당신이라면 위작을 판매한 죄로 황제폐하께 죽고 싶지 않은 이상 외국에서 쥐 죽은 듯 살 거 아닌가요? 그러니 제 비밀이 세상에 드러날 걱정은 줄겠죠. 이유가 되었나요?”
나는 세르지오를 바라보았다. 내 설명에 그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이득인지, 거절하는 게 이득인지 그 작은 머리로 열심히 고민하더니 내 손에서 금괴를 받아 들었다.
“좋습니다. 손잡도록 하죠.”
***
‘습격은 나흘 후, 최근 마석이 발견된 산을 방문할 거예요. 가는 길에 절벽이 하나 있는데, 그 길목에서 습격해 주면 됩니다. 제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걸 보는 즉시 도망가세요. 퇴각하실 때는 순간이동 아티팩트를 준비해 두시고요.’
‘아가씨는 어떻게 할 겁니까?’
나는 얘가 구해 줄 것이다.
마법 용품 상점에서 구입한 아티팩트였다.
하나는 날 수 있는 아티팩트로, 이걸 사용해 추락 속도를 늦춰 바닥에 착지할 생각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세르지오와 합류를 위한 순간이동용 아티팩트였다.
부디 오늘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길 빌며 난 물건을 가방에 담았다.
그리고 일리온이 준 백지 수표로 구입한 금괴와 약혼 선물로 받은 다이아몬드 목걸이, 귀걸이도 가방에 잘 넣어 두었다.
이 물건들의 가치가 정확히 얼마나 하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돈은 될 것이다.
나는 방을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방 안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오늘 여길 떠나면 세바스찬과 릴리를 영영 못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결정한 일들을 무를 생각은 없었다.
릴리라면 내가 죽고 나서 백작가로 돌아가던가 다른 일을 구할 것이다. 아무리 미친 황제라도 릴리만큼은 잡아들이지 않겠지.
다만 일리온과 세바스찬, 그리고 이 집에서 일하는 수많은 시종은 황제의 손에 죽고 말겠지.
그 운명을 알면서도 나 혼자만 살겠다고 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마지막까지 날 괴롭힌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자.’
잡념을 떨쳐 버리기 위해 두 손으로 뺨을 찰싹 때렸다.
지금은 그저 계획을 성공하는 것만 생각하자.
결심을 굳힌 나는 문을 열고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 앞, 일리온이 마차를 등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공작님께서 웬일이세요? 절 배웅해 주시려고 계시는 건가요?”
이제 마지막이 될 얼굴을 눈에 담으며 난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간 아웅 대며 많이도 부딪혔지만,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미운 정이라도 든 모양이었다.
“그대와 동행하려 하네.”
“……네?”
“투자를 하기로 했으니, 나도 그 땅을 한 번 보고 와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사업 계획서도 검토할 겸.”
“……네?”
그걸 굳이 오늘 하겠다고? 왜?
“표정이 왜 그러지? 내가 가면 안 될 곳인가?”
“그, 그럴 리가요. 물론 가셔도 되죠.”
그래, 내가 한 가지 잊고 있었구나. 이놈에 세상은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걸!
***
초조한 마음에 자꾸만 가방을 만지작거리자, 일리온이 날 바라봤다.
“오늘은 멀미를 안 하나?”
“아, 오, 오늘은 아침을 적게 먹어서 그런가 멀미를 안 하네요.”
굳이 말하자면 멀미를 할 정신도 없다는 말이 더 정확했지만.
일리온은 그런 내 얼굴을 흘끗 살피다 다시 서류에 시선을 고정했다.
원래라면 일리온이 동행할 예정이 아니었다.
사업 계획서를 보는 척하며 혼자서 한 번 더 다녀오겠다고 일리온에게 허락을 받을 때만 해도 그는 아무 말도 없었으니까.
어차피 눈속임용 연극이었고, 동행하는 사람은 기껏 해 봐야 릴리나 세바스찬 정도일 거라 생각했는데…….
세르지오가 고용할 자객들이 얼마나 실력 좋은 놈들일지 모르겠지만 어지간한 놈들로는 일리온의 상대가 안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계획을 미뤄야 하나?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무슨 수로?
세르지오에게 연락할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있다고 한들 일리온이 두 눈 시뻘겋게 뜨고 있는데 작전을 나불나불 불어 댈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뚜렷한 해답이 나오지 않는 이상, 남은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이대로 강행하는 것.
그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을 보자.
약속한 지점이 다가올수록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눌러 대며 땀이 새어 나오는 손바닥을 바지에 비볐다.
마침내 마차가 절벽 길로 들어섰다.
“멈춰라!”
드디어 사건의 신호를 알리듯 세르지오가 고용한 자객이 등장했다.
놀란 말이 한차례 날뛰면서 마차가 덜컹거렸다.
그 반동에 중심을 잃은 내가 앞으로 쏟아지자, 무너지려는 내 몸을 일리온이 한쪽 팔로 안아 들었다.
긴장으로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일리온은 그런 내가 겁이라도 먹었다고 생각했는지 날 의자에 앉히며 말했다.
“별일 아니니 걱정 말고 마차 안에 있도록 해.”
그렇게 말하며 일리온은 곧바로 마차 밖으로 나갔다.
마주 보는 붉은 눈동자가 오늘따라 유독 부드럽게 느껴진…… 이 아니고, 정신 차려! 지금 다른 생각할 틈이 어디 있어?
나는 짝 소리가 날 정도로 양 볼을 세차게 때리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와 주변 상황을 몰래 살피니, 세르지오가 고용한 십수 명의 자객이 우릴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일리온과 세바스찬이 검을 들고 대치 중이었다.
세바스찬을 볼 때마다 집사치고 몸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검을 쥔 자세를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 뒤를 따라오던 마차에서 릴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상황은 모두 준비되었다. 일리온과 오래 대치해 봐야 우리만 불리할 뿐이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작전을 수행해야 했다.
주변을 조심히 살피며 난 세르지오와 눈을 마주쳤다.
세르지오 역시 일리온의 모습에 당황한 듯했지만 그래도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신호를 시작으로…….
펑! 펑!
응? 뭐야 이거?
자객 하나가 내 쪽으로 달려들 타이밍에 자객 대신 다른 게 날아들더니 일제히 ‘펑’ 하고 터지기 시작했다.
“주인님, 조심하세요. 연막탄입니다!”
세바스찬이 황급히 일리온을 보며 소리쳤다. 연막탄은 자욱한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연기는 절벽 일대를 순식간에 뒤덮었고 시야는 말 그대로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으아악!”
“끄악!”
앞이 안 보여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순 없지만, 연막 사이로 검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들리기에 싸움이 벌어졌다는 것만 짐작할 뿐이었다.
좀 더 주변을 살피기 위해 마차에서 떨어져 걷는데 누군가 내 손을 붙잡았다. 복면을 쓴 남자였다.
세르지오 이 바보 같은 놈!
“내가 얘기한 거랑 작전이 다르잖아. 이러면 내가 떨어지는 걸 아무도 못 본…….”
소곤거리며 그를 탓하는데, 그가 내 손을 거칠게 끌어당기더니 소리쳤다.
“목표물을 확보했다! 철수한다!”
“무, 무슨 소리야. 이게…….”
그렇게 외치더니 그는 품에서 아티팩트를 꺼내 발동시켰다.
눈앞에서 터지는 빛에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순간이동 때문인지 몸이 공중에 붕 뜬 것처럼 살짝 속이 울렁거리더니, 다시 두 다리가 단단한 바닥에 닿았다.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낯선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긴 어디지? 일단 절벽은…… 아닌 것 같은데?
처음 세웠던 작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 일에 난 인상을 찌푸리며 세르지오에게 따졌다.
“세르지오, 이건 내가 얘기했던 거랑 다르잖아요?”
세르지오라 생각했던 사내가 복면을 벗으며 비릿하게 웃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너, 넌 누구야? 세르지오는 어디 있어?”
“세르지오가 누군지 내 모르겠수다만, 얌전히 계슈. 죽기 싫으면.”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거칠게 끌어당겨 뒤로 묶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방 안에는 대여섯 명의 자객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그중에 세르지오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너희들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냐?”
“그야, 알다마다. 고매하고 저명하신 리슈펠트 영애 아닙니까? 아님, 차기 공작 부인이라고 불러 드릴까?”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키득거렸다.
아는데 이런다고? 얘네들 대체 뭐야? 그리고 여긴 어디야?
***
“윽, 이게 뭐야. 어떤 머저리가 연막탄을 쓴 거야?”
세르지오는 인상을 찌푸리며 연기를 날려 보내기 위해 손을 휘저었다. 연막탄은 작전에 없던 내용이었기에 당황한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예정에도 없던 일리온이 마차에서 튀어나온 것도 머리 아픈데, 연막까지 뿌려 대는 통에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된 거, 한시라도 빨리 약속한 라벤느의 비명만 들리길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표물을 확보했다! 철수한다!”
‘뭐야? 무슨 일이야? 목표물이라니? 우린 이런 작전 세운 적 없잖아?’
세르지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라벤느를 찾았다.
“여, 영애? 영애, 어딨습니까?”
일이 이렇게 꼬여 버린 거, 차라리 라벤느만이라도 찾아서 철수하는 게 좋을 듯했다. 다음 작전은 그다음에 생각하자.
“영애란 건, 리슈펠트를 말하나?”
“아오, 이 등신아, 그걸 또 물어보냐? 너 내가 작전 설명할 때 뭐 들었냐?”
어떤 머저리 같은 놈이 이제 와서 또 물어보나 싶어 세르지오는 신경질을 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날카로운 칼날이 제 목을 겨누고 있었다.
“설명을 못 들어 미안하군. 다시 한번 그 작전이란 걸 설명해 주었으면 하는데.”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무시무시한 붉은 눈동자를 보며, 세르지오는 들고 있던 칼을 떨어뜨리고 양손을 들었다.
‘이럴 거란 얘기는 없었잖아?’
라벤느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일리온이 왜 여기 나타났는지도 모르겠지만 제 바보 같은 머리로도 한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일리온의 말을 거역한다면 이 자리에서 목이 썰릴 것이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