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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잘 키워보려고 했을 뿐인데 (123)화 (123/129)

정확히 무엇을 위해 에드윈을 위협하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공격자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한편으로 일관성이 있기도 했다. 에드윈이 죽지 않길, 크게 다치지 않길 바랐다.

그것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후보군을 크게 좁힐 수 있었고, 다른 정황까지 고려한다면 공격자를 체이스로 특정시키는 것 또한 무척 쉬운 일이었다.

에드윈을 다치게 할 수 있을 만큼 그와 가까이 지내며, 정체를 들키지 않고 은밀하게 상황을 조작할 수 있는 실력자. 그런 자는 체이스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에드윈 주변의 사용인 중에 체이스만큼 에드윈에게 애정을 품은 이는 없었다.

체이스는 에드윈의 시종이자 기사, 그리고 가끔은 가족의 자리에 머물렀다.

그만큼 에드윈은 체이스에게 큰 신뢰를 보냈고, 그 역시 충정으로 보답했다.

모두가 체이스를 앞으로 에드윈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가신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누군가가 체이스의 약점을 파고든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체이스가 에드윈에게서 등을 돌릴 일은 없었다.

체이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존재를 숨길 생각이 크게 없다는 걸 보여 주기도 했다.

차라리 의심이 다른 사람을 향하도록 증거를 유도할 수도 있었다.

혹은 정말 슈나이더가 바랐을 것처럼 에드윈에게 조금 더 큰 상처를 입혔어도 되었다.

“체이스는 처음부터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싶었을지도 모르겠군.”

생각에 잠겼던 레이넌이 그렇게 체이스의 속마음을 짐작했다.

로만은 그들이 모두 체이스의 존재를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이유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차라리 그게 낫겠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체이스의 성격이라면.”

체이스가 슈나이더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로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언제부터 그의 사람이 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가 슈나이더에게 포섭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니었다.

슈나이더는 레이넌이 르네를 보호하기 위해 체이스를 불러들인 이후에 그에게 접근했다.

두 사람은 가장 기본이 되는 그의 배경부터 차근차근 조사해 나갔다.

처음부터 슈나이더의 사람으로 로에리안가에 들어왔다면 모를까, 중간에 돌아선 것이 영 마음이 걸렸다.

두 사람 모두 체이스의 성격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돌아설 만큼 중요한 일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파악했다.

더 조사해 보니 그들은 자신들의 짐작이 맞았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차라리 말을 했으면 본인도 덜 힘들었을 텐데요.”

슈나이더가 노린 건 체이스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여동생이 슈나이더에게 납치됐다. 그러면서 슈나이더는 체이스를 쥐락펴락할 수 있었다.

체이스의 여동생은 그에게 있어 가장 소중하고도 유일한 약점이기도 했다.

“지독한 놈이야, 하여간. 그런 구석은 기가 막히게 알고 파고든단 말이지.”

“죄책감도 없고요.”

“그래.”

체이스를 그대로 둔 건 그가 르네나 에드윈에게 큰 위협을 주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제까지 슈나이더가 배신자를 심어 두거나 포섭한 형태를 봐선 체이스의 정체가 발각된다면 레이넌에겐 더 좋지 않은 상황이 될 터였다.

슈나이더라면 바로 체이스를 버리고 더 위험한 누군가에게 접근할 것이 뻔했다.

어쩌면 체이스를 대신할 누군가를 이미 구해 놓았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레이넌은 체이스의 정체를 모른 척함으로써 슈나이더의 방심을 끌어내려고 했다.

에드윈에게 말을 흘리게 해서 오히려 이용하려고 했는데 슈나이더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아마 체이스도 슈나이더의 생각을 알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에드윈이 그런 얘기를 했을 때 많이 당황했겠군.”

“그런 얘기요?”

“내가 마지막 준비를 마치지 못한 채 막무가내로 슈나이더가에 쳐들어가겠다고 했다는 이야기 말이야.”

레이넌이 에드윈에게 시킨 일은 슈나이더보다 체이스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을 터였다.

일단 슈나이더가 지금 움직였다는 건 말을 전달하긴 했다는 뜻일 텐데…….

어느 단계에서 일이 틀어진 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바깥에서 일어난 일은 아무래도 눈속임인 것 같군. 르네를 데려가기 위해 내 시선을 끌어 본 거겠지.”

“일단 체이스가 사라진 방향부터 시작해 철저히 찾고 있습니다.”

로만의 말에 레이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그는 뭔가 결론을 얻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철저히 찾고 있다면 곧 발견되겠군.”

“체이스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찾아 주길 바라고 있을 것 같단 말이지.”

“그래도 르네 님까지 데려갔는데 이번만큼은…….”

“아니. 르네를 데려갔으니까 더욱더 잡히고 싶어 할 거야. 일단 응접실로 가서 기다려야겠어.”

“알겠습니다.”

그렇게 응접실로 향하는 두 사람을 다급히 따라잡은 이가 있었다.

“대강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그녀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들은 그대로일 텐데.”

“르네 님이 납치됐다는 것도요?”

“생각보다 많이 들었군.”

“그러니까 체이스를 그대로 두는 건 위험하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금방 찾을 거야. 아마 체이스도 르네를 저택 밖으로 내보내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노력 중일 테니까.”

“하지만…….”

“아멜리아.”

잔뜩 흥분해서 말을 내뱉으려는 아멜리아를 진정시킨 건 착 깔린 레이넌의 목소리였다.

“이미 지나간 일이야. 게다가 말하지 않았나? 금방 찾을 거라고.”

레이넌은 언뜻 침착해 보였으나 그 속은 누구보다 분노와 후회로 가득 차 있었다.

아멜리아나 로만이 아무리 화가 난다 한들 레이넌의 속과는 비교할 바가 아닐 터였다.

그저 냉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알아차린 아멜리아는 그대로 하려던 말을 삼켰다.

“일단 가시죠.”

로만의 말에 레이넌도, 아멜리아도 말없이 걸음을 재촉했다.

그사이 응접실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었다. 오스틴이 와서 에드윈을 살펴봤는지 레이넌이 도착하자마자 상태를 알렸다.

“수면제입니다. 에드윈 님께는 용량이 과해서 오늘 내내 주무실 수도 있습니다.”

“수면제라.”

“나머지는 체이스가 직접 기절시킨 것 같습니다.”

“타나베른 후작은?”

에드윈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는 응접실을 둘러보던 레이넌이 의아하게 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불길한 침묵이 응접실을 가득 채웠다.

모두 르네와 체이스에게 정신이 팔려 그의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로만?”

“제가 왔을 땐…….”

모두가 쓰러져 있던 와중에 타나베른이 있었던가.

로만은 재빨리 기억을 더듬었다. 다행히 응접실을 둘러볼 때의 상황이 그림처럼 그려졌다.

“잠든 듯 앉아 계셨는데…….”

“네. 로만 님이 오셨을 때까지만 해도 나간 사람은 체이스뿐이었습니다.”

“그럼 그다음엔?”

레이넌의 말에 술렁이던 이들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타나베른이 사라진 걸 몰랐다는 건 무척이나 큰일이었다.

그가 이번 일과 관련이 있어도,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랬다.

이번 일과 관련이 있다면 그를 놓친 것 자체가 큰 문제였고, 반대로 관련이 없다면 그가 위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다들…….”

“체이스를 찾으러 가거나 오스틴을 부르러 가서 아무도 지키지 않았다?”

레이넌은 상황을 보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 차갑게 중얼거렸다. 작고 낮은 목소리에 다들 몸을 움찔거렸다.

그가 지금처럼 정말 단단히 화난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레이넌은 헛웃음을 흘렸다. 작게 흘러나오던 웃음은 곧 그 크기를 키웠다.

레이넌의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그 속에 담긴 감정이 즐거움처럼 들릴수록 사람들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여기에 계셨습니까?”

사람들을 놀라게 한 장본인은 정작 여유롭게 웃으며 나타났다.

“어디 계셨습니까?”

레이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상냥한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일단 상황을 알리든 바깥 상황이 어떤지 확인을 하든 해야 할 것 같아 나갔는데……. 제가 여기 구조를 잘 모른다는 걸 깜빡했지 뭡니까.”

“그러셨습니까.”

“네. 당황하다 보니 이런 실수도 하는군요.”

타나베른은 태연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모여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역시나 약속 없이 찾아온 것이 잘못이었나 봅니다. 정신이 없으실 테니 오늘은 돌아가겠습니다.”

“아닙니다. 손님이 오셨는데 이런 일을 겪게 해 드려 제가 죄송합니다.”

“아니, 그런 말씀 하시면 제가 더 죄송스럽지요. 일이 잘 해결되면 연락해 주십시오.”

“아닙니다. 응접실만큼은 아니지만 잘 꾸며진 대기실이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저는 정말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도리가 아니지요.”

어떻게든 떠나려는 타나베른과 붙들어 두려는 레이넌 사이에 같은 대화가 한참이나 오갔다.

“잠시면 됩니다. 모시고 가도록 해.”

끝나지 않는 대화를 마무리한 건 레이넌이었다. 타나베른은 정중하지만 단호한 레이넌의 말에 당황한 얼굴을 했다.

이제까지 여유롭게 웃는 낯을 잃지 않았던 모습과는 달랐다.

“그, 그럼 너무 서두르진 마시고 천천히 일 보고 오십시오.”

타나베른은 얼떨떨하게 레이넌의 기사와 함께 응접실을 떠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체이스를 데리고 응접실로 들어섰다.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온 그는 어떠한 반항도 하지 않았다. 다툼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고 레이넌은 아멜리아를 바라봤다.

“공작님의 말씀대로입니다.”

레이넌은 아까 아멜리아가 그의 조치에 불만을 품은 것을 시선만으로 지적했고, 그녀는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대답했다.

“에드윈은 방에 데리고 가고, 오스틴이 붙어 있도록 해.”

“알겠습니다.”

“로만과 아멜리아를 빼곤 다들 나가 있어.”

레이넌의 말에 다들 분주히 움직였다. 순식간에 응접실에는 레이넌과 로만, 아멜리아, 그리고 체이스만이 남았다.

“저건 눈속임이었지?”

“……네.”

레이넌의 질문에 체이스는 순순히 답했다.

“그래. 분명 슈나이더가 공격했는데 증거는 남기지 않았더군. 그저 최대한 눈길을 끄는 데 열심이었지.”

“…….”

“르네가 목표였지. 지금 어디에 있나?”

뭐든 말할 것 같던 체이스였지만, 정작 르네의 이야기가 나오니 입을 꾹 다물고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네가 왜 슈나이더의 사람이 됐는지 안다. 여동생이 잡혀 있다지?”

여동생의 이야기가 나오자 체이스는 눈에 띄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슈나이더가 아직 이야기 안 했나 보지. 하긴,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겠지.”

레이넌의 말에 체이스는 불안한 듯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공작님…….”

레이넌은 잠시 말없이 그를 빤히 바라봤다. 레이넌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체이스의 불안함은 커졌다.

“제발 아시는 게 있으시면…….”

“네 여동생은 죽었다. 슈나이더에게 잡힌 직후에.”

레이넌의 말을 들은 체이스는 다리에 힘이 빠진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죽었다고요? 잡힌 직후에?”

“그래.”

체이스는 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그의 손에 피가 났지만 그보다 그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에 시선이 갔다.

“알고 계셨습니까, 모든 걸? 언제부터?”

“네가 에드윈을 해치는 걸 자꾸 실패할 때부터.”

“여동생의 일은요?”

“네 정체를 안 직후에.”

“그런데!”

레이넌의 말을 들은 체이스는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왜…… 왜 말씀 안 해 주셨습니까! 다 알고 계셨으면서!”

체이스의 원망 어린 말을 들은 레이넌은 차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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