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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잘 키워보려고 했을 뿐인데 (115)화 (115/129)

그렇게 한참을 껴안고 있던 아멜리아는 아쉬운 듯 떨어지면서 말했다.

“내가? 공작님이 아까운 게 아니고?”

의아한 내 물음에 아멜리아는 눈썹을 잔뜩 올렸다.

“대부분 제 말에 동의할걸요. 그래도 공작님이 르네 님 속은 안 썩일 거 같아 그건 안심이에요.”

“속을 썩여?”

딸이 결혼을 앞둬 아쉬워하는 엄마가 할 법한 말에 나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

“일단 누우세요. 에드윈 님 오시기 전에 최대한 몸이라도 풀어야죠.”

“응. 아무래도 그게 좋겠어.”

아멜리아가 마사지를 시작하자 굳었던 몸이 조금씩 풀어졌다.

잠기운이 밀려들며 조금 전 아멜리아가 했던 말과 행동이 떠올랐다.

그녀는 아마 나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에드윈이랑 비교를 하고 레이넌에게 보내기 아깝다고 하다니.

“아멜리아도 알고 보면 호들갑을 잘 떠는 편인가 봐.”

“네?”

뜬금없이 흘러나온 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는 알 리가 없었다. 나는 그 말에 대해 설명을 하는 대신 그녀가 표현했던 마음에 대한 답을 내어주었다.

“나도 아멜리아를 많이 좋아한다고.”

멀어지는 작은 일상 소음 사이에 아멜리아의 웃음소리가 섞여 드는 것을 들으며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짧은 단잠을 자고 일어나니 몸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다고 몸이 온전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덕분에 에드윈 앞에서 시름시름 앓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일단 이 정도까지 나아진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에드윈은 나와의 만남을 얼마나 기대했는지 약속한 시간보다 빨리 나타났다.

“어머니가 빨리 보고 싶어서 조금 일찍 왔는데 괜찮나요?”

“그럼. 나도 에드윈이 더 빨리 보고 싶었는데 마음이 통했나 봐.”

내 말에 에드윈은 해맑게 웃으며 당당한 걸음으로 내 방에 들어섰다.

당당하다고 말했지만 그 모습은 제법 우스꽝스러워서 나도,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꾹 참아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에드윈의 두 손은 등 뒤에 고정된 탓에 발만 척척 움직이고 있었다.

에드윈이 등 뒤에 숨긴 것이 무엇인지는 뻔히 알 수 있었지만 모두 그의 귀여운 서프라이즈를 모른 척해 줬다.

“어머니.”

“응?”

“짠!”

에드윈은 제가 더 설레는 얼굴로 등 뒤에 숨겼던 것을 꺼냈다.

“와! 어머! 어쩜 이렇게 예쁘게 색칠했어?”

조금 전까지 흐뭇하게 에드윈을 바라보던 내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방금의 감탄사는 조금의 과장도 없이 속에서 우러나온 감정 그대로를 표현했다.

에드윈은 제가 접은 종이꽃을 정원에 갖다 두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한 이유를 직접 보여 줬다.

한 색깔이 아니었다. 옅은 파스텔 톤의 색들과 채도 높은 색들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색 조합을 생각했을까? 우리 에드윈, 화가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앞의 질문은 에드윈을, 뒤의 질문은 아멜리아를 향한 것이었다. 아멜리아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공작님의 유일한 아드님이신데요.”

“아……. 그렇구나.”

에드윈이 가업을 이어야 하는 상황인 걸 완전히 잊고 있었다. 괜히 입이 삐죽 나오자 오히려 에드윈이 나를 달랬다.

“굳이 화가가 되지 않아도 그림은 그릴 수 있는걸요!”

“……그렇겠지?”

“그럼요. 특히 어머니가 이렇게 좋아하시니까 더 잘 그리고 싶은걸요.”

나는 예쁜 종이꽃과 그것보다 더 예쁜 에드윈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둔 화병에 장미 모양의 종이꽃을 꽂았다.

“고마워. 소중히 간직할게.”

“다음엔 더 예쁘게 만들어서 또 선물할게요!”

화병을 침대 곁에 두는 걸 보고 에드윈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 에드윈이 언제 이렇게나 컸을까. 너무 쑥쑥 크는 것 같은데.”

흐뭇한 마음을 담아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 손이 머리에 닿자 에드윈이 움찔하며 나를 올려다봤다.

“응? 왜?”

나는 뭔가를 말하고 싶은지 입을 오물오물하고 있는 에드윈을 향해 물었다. 그는 수줍은 듯 몸을 배배 꼬더니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번만 더 해 주세요.”

“뭘 더 해 줄까?”

뭔들 못 해 줄까. 말만 하렴.

그런 마음을 담아 에드윈을 바라봤다. 에드윈은 씩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내 손이 향한 곳은 에드윈의 머리였다. 쓱쓱 그의 머리를 쓰다듬게 만드는 에드윈의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었다.

아무래도 머리를 쓰다듬어 준 게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얼마든지.”

내 대답을 들은 에드윈은 손을 놓고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조금 전에 그랬듯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자 에드윈은 더없이 행복한 얼굴을 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나는 견디지 못하고 결국…….

“어머니?”

“너무 귀여워서 그만.”

에드윈의 머리칼을 마구 헤집어 헝클어 버렸다.

곱슬곱슬한 머리칼이 헝클어진 데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으니 정말 인형 같았다.

하긴, 이 외모에 홀려 도망치려던 것도 잊고 덥석 저승길로 발을 내디뎠었다.

저승길이라는 건 내 착각이었지만.

아득한 과거의 일같이 느껴졌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참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새삼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아련한 기분에 젖어 있을 때였다.

분위기를 환기하는 아멜리아의 목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이제 그쯤 하시고 두 분 다 좀 앉으세요. 오늘은 두 분이 좋아하시는 것들만 준비했답니다.”

나는 에드윈의 손을 끌어 소파에 앉혔다.

“먹기 전에 잠시만 기다려 줄래?”

“네.”

갑작스러운 내 부탁에 에드윈은 이유도 묻지 않고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다시 나는 몸을 일으켜 침대 근처로 걸어가 미리 준비한 것을 꺼냈다.

한결 나아졌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몸이 삐걱거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에드윈 앞에서 티를 낼 수는 없었기에 이를 악물고 미소 지었다.

“선물을 받았으니까 나도 답례를 해야지.”

“답례요?”

에드윈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포장은 못 했어. 선물이야.”

“손수건이네요? 그리고 이건…….”

에드윈은 내가 건넨 손수건을 떨리는 손으로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한참 머문 곳은 귀퉁이에 놓인 자수였다.

“전에 공작님이랑만 외출 나갔잖아. 그때 에드윈이 생각나서 샀어.”

“이거는요? 어머니가 수를 놓으셨어요?”

“응. 그래도 내가 직접 뭐라도 해 주고 싶어서.”

“어머니가 직접이요?”

“응. 어때?”

“마음에 들어요! 태양이 하늘색인 건 한 번도 생각 못 해 봤어요! 이글거리는데 하늘색이라니 너무 예뻐요!”

“……저기 에드윈?”

“네!”

“이거 말이야…….”

내가 꺼내려는 말이 에드윈의 기대를 꺾어 버릴 것이 분명했기에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에드윈의 동심을 지켜 줄 것인가, 아니면…….

“사실은 나팔꽃이야.”

“……네?”

에드윈은 제 귀를 의심하는 듯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얼굴을 보니 죄책감이 마음 가득 퍼졌다.

어떤 걸 수놓아 주면 좋을까 아주 오래 고민했다. 조건이 여러모로 까다로웠기 때문이었다.

에드윈에게 의미가 있는 선물을 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쉬운 난이도여야 했다.

세실에게 자수를 가르쳐 달라고 한 것도 에드윈과 레이넌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나는 시작한 그날부터 이 손수건의 자수를 완성하는 날까지 끊임없이 좌절해야 했다.

“그냥 제가 놓으면 안 될까요?”

내가 아무리 서툴러도, 조금 전에 가르쳐 준 걸 틀려도 화내지 않고 차분히 일러 주던 세실에게서 결국 그런 말까지 나오고 말았다.

“그 정도야?”

“그렇다기보다는……. 이대로라면 과연 완성을 할 수 있을지가 의문스러워서요.”

그 정도라는 말 같은데.

세실의 목소리가 담담해서 오히려 더 절망적으로 들렸다. 그렇게나 재능이 없던가.

차라리 춤을 춰 준다고 할걸.

유일하게 칭찬받았던 댄스 수업을 떠올리며 같은 후회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시작한 것, 그대로 그만둘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선물은 정성이라고 믿으며 몇 번이고 연습을 거듭했다. 하다 보니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 선물하고 싶어졌다.

애초에 나팔꽃을 선택한 것도 에드윈과 처음으로 함께 심었던 꽃이어서였다.

장미와 나팔꽃을 두고 잠시 고민했지만 의미도 그렇고, 무엇보다 장미보단 나팔꽃이 더 쉬워서 딱 좋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뭐가 됐든 쉽지 않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됐지만.

“어차피 이 정도가 최선인 것 같은데 그냥 손수건에 바로 놓으시죠. 일 년 뒤에 선물하실 게 아니라면요.”

“그게 낫겠지?”

“일 년 뒤에도 크게 나아질 것 같지도 않고요.”

세실의 말은 틀리지 않았을 터였다. 정말 열심히 연습해도 이 모양, 혹은 이 정도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니까.

그래도 연습 때보다 예쁘게 수놓아서 세실과 아멜리아의 칭찬을 받았는데.

태양이라니. 그것도 이글거리는 태양.

나팔꽃이 태양으로 바뀐 순간 나는 급격히 침울해졌다.

레이넌이 종종 말했듯 나는 감정이든 생각이든 그대로 티가 나는 터라 에드윈이 그런 내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아니, 정말 기뻐요! 제가 못 알아본 거예요! 엄청! 엄청 예쁜 나팔꽃이에요!”

두 손을 빙빙 돌리며 말하는 에드윈의 모습은 꽤 다급해 보였다.

“게다가 제 눈동자 색깔에 맞춰서 하늘색으로 만드신 거잖아요. 그렇죠? 그렇지? 예쁘지?”

에드윈은 안 되겠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며 동의를 구했다. 아니, 동의를 강요했다.

에드윈의 절실한 시선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윈의 노력이 너무도 가상해서 절로 기분이 풀어졌다.

내가 피식 웃음을 흘리자 에드윈은 비로소 한시름 놓은 얼굴을 했다.

“괜찮아. 서투른 거 나도 알아. 못하는 건 못한다고 인정할 줄 알아야지.”

“아니에요. 정말 아닌데…….”

에드윈은 되레 속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앞으로 연습을 더 열심히 해야겠어. 훨씬 예쁘게 수를 놓을 수 있게……. 아, 다음엔 셔츠의 소매에 놓아 줘야겠다. 어떤 게 좋아?”

내 말에 에드윈은 굳은 얼굴로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연습해 봤자인 걸 에드윈도 알아챈 걸까?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살피자 에드윈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물었다.

“다음에…… 또 해 주실 거예요?”

“응. 에드윈이 원하면.”

“네! 네! 꼭 해 주세요!”

에드윈은 혹여 내 마음이 바뀌기라도 할까 걱정스러운 듯 내 손을 붙들고 발을 동동 굴렀다.

“다행이다. 혹시 너무 서툴러서 싫어할까 봐 걱정했는데.”

“싫다니요! 그냥……. 저는 그냥…….”

에드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물을 또르르 흘렸다.

그의 눈만큼 맑은 눈물에 당황한 나는 얼른 몸을 낮춰 에드윈과 눈을 맞췄다.

“에드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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