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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잘 키워보려고 했을 뿐인데 (109)화 (109/129)

“르네 님?”

혼잣말을 내뱉은 내 얼굴이 조금 전보다 더 안 좋아진 걸 확인한 아멜리아는 걱정스럽게 나를 살폈다.

“어디 안 좋으세요? 잠시 누우실래요?”

“응? 아, 아니…….”

슈나이더가 원하는 건 아멜리아가 말한 그대로 둘 다일지도 몰랐다. 로에리안을 없애고, 또한 로에리안을 얻는 것.

로에리안의 권력과 재력이 흩어지지 않은 채 슈나이더가에 흡수되면 황제와도 맞먹을 정도가 될 터였다.

“그래서 그렇게 집요하게…….”

“네?”

“응? 아니. 왜 그렇게 오래도록 집요하고 지독했는지 알 것 같아서.”

“왜요?”

“아. 확실하진 않으니까……. 나중에 공작님께 먼저 여쭤볼게.”

“네. 일단 얼굴이 너무 안 좋으니 조금 누워서 쉬세요.”

슈나이더가 바라는 건 로에리안만이 아니었다. 로에리안을 통해서 황제의 자리를 탐내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무모하지 않은가.

레이넌도 슈나이더도 이번 대에서 모든 걸 끝내려고 하는 듯했다. 과연 누구의 뜻대로 일이 흘러갈까.

이렇게 오래 이어진 악연이 과연 끊어질 수는 있을까. 적어도 슈나이더의 야욕은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그 지독하고도 끈질긴 그의 집착이 향한 곳은 결국 권력이었다. 물론 권력이 있는 곳에 부가 함께 따라오겠지만.

그는 로에리안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로에리안가를 친 직후를 노리는 것이 분명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어차피 둘 중 한 가문이 없어진다 한들 다른 가문이 모두 흡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직후라면 달랐다. 흩어지기 전에 제가 그토록 바랐던 걸 이루려고 할 터였다.

레이넌은 알고 있을까.

사실이든 아니든 가능성은 꽤 커 보였다. 그렇다면 이건 로에리안만을 노리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알고 있겠지.

내가 알아챈 걸 레이넌이 짐작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는 황제랑도 제법 가까워 보였으니…….

따로 보자는 이야기가 꼭 친분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고 짙은 욕망이 이리저리 얽혀 있었다.

슈나이더는 어떻게든 끝을 보려고 들키든 말든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덤벼들고 있는데…….

레이넌은 왜 가만히 있는 걸까.

아마 그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조용히 있다가 한 번에 상황을 뒤집는 것이 레이넌의 스타일이었으니까.

에드윈에게까지 이렇게 하는데도 가만히 있는 건 아직 뭔가 다 모이지 않은 걸까. 혹은 시기를 보고 있는 걸까.

생각이 늘어날수록 알 수 없던 일들의 내막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만큼 의문도 함께 늘었다.

당연히 머리도 자연스럽게 아파져 왔다.

“요즘 에드윈의 일정은 전부 멈춘 상태지?”

“네.”

“그럼 내일 아침에 에드윈을 만나러 가야겠어.”

“하지만 르네 님, 아까 말씀하신 대로라면 가지 않으시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요.”

“아니지. 가야지.”

“네?”

“에드윈 곁에 사람이 많을수록 안전할 것 같지 않아?”

“그러다가 르네 님도 다치시면 정말…….”

“공작님께는 내가 잘 말씀드릴게.”

“공작님보다 르네 님이 다치시면 제가 저를 용서 못 할 것 같아요.”

아멜리아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지하고도 비장한 아멜리아의 마음에 놀란 탓이었다.

“그러지 마, 아멜리아.”

“르네 님을 지키는 것이 제 일이기도 하지만…… 저는 정말 르네 님이 다치지 않길 바라요. 그리고 지금처럼 이렇게 웃으며 지내시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요.”

“알아. 아멜리아가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 주는 거. 그리고 그만큼 나도 아멜리아를 생각하는 것도 알아줘.”

“알죠. 왜 모르겠어요.”

“그러면 그런 생각은 하지 마.”

“그런 생각이요?”

“내가 다치면 아멜리아가 자신을 용서 못 할 것 같다는 생각? 슈나이더가 아니더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야.”

“그럼에도 르네 님을 지켜야 하는 것이…….”

“세상엔 예상치 못한 일도 많고, 가끔은 어쩔 수 없는 일도 있어. 그런 걸로 자신을 탓하면 내가 너무 슬프잖아.”

“르네 님…….”

“그러니까 약속해.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내가 다치거나 나한테 무슨 일이 생겨도 자신을 탓하지 않기로.”

내 말에 아멜리아는 어두운 얼굴을 했다. 그리고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아멜리아?”

“약속 못 드려요.”

“그럼 최대한 그렇게 해 보겠다고 말해 줄래?”

생긋 웃으며 아멜리아를 바라보자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최대한 그렇게 해 볼게요.”

“좋아. 그럼 내일 아침에 에드윈에게로 가자.”

“아, 그건 공작님께 여쭤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딱히 반대하실 것 같진 않아. 이따가 저녁 먹을 때 여쭤볼게.”

“네.”

레이넌의 허락이 있는 편이 확실히 아멜리아에게는 마음이 편한 일인 듯했다.

“에드윈이 한가할 때가 잘 없을 테니 이럴 때 시간을 잘 보내야지.”

한없이 어둡고 무거운 감정에 잠겨 들었지만 에드윈을 떠올리자 금세 빠져나올 수 있었다.

***

“어머니!”

레이넌에겐 미리 말을 해 놨지만 에드윈에겐 언질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에드윈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방문일 터였지만 그는 반갑게 나를 반겨 주었다.

“답답하지?”

“그렇긴 한데요. 이렇게 어머니가 찾아와 주시니까 엄청 엄청 좋아요.”

“아침은 먹었어?”

“네. 이만큼이나 먹었어요.”

에드윈은 팔을 벌려 제가 먹은 아침의 양을 자랑했다. 그런 에드윈의 모습에 함께 있는 모두가 비슷한 미소를 지었다.

“잘했어. 그럼 요즘 심심해서 어째?”

“그림 그리고, 책도 읽고……. 예전에 어머니가 자기 전에 책 읽어 줄 때 되게 좋았는데.”

에드윈의 말에 나 역시 그때를 떠올렸다. 에드윈의 보모였을 때, 매일 밤 그에게 책을 읽어 주었었다.

가끔 더듬더듬 한 구절씩 읽어 내려가던 에드윈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꼭 껴안아 주고 싶은 걸 참느라 힘들었다.

“그럼 오늘 밤부터 당분간 자기 전에 책 읽어 주러 올까?”

내 말에 아멜리아와 체이스가 동시에 반대의 말을 꺼냈다.

“르네 님, 아무리 그래도…….”

“네. 밤이잖아요. 더 위험하실 수도…….”

“아멜리아도 있고, 체이스도 있는데 위험할 리가 없잖아.”

생긋 웃으면서 말하자 아멜리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러났다. 하지만 체이스는 여전히 걱정을 지우지 못하고 다시 한번 말렸다.

“두 분이 밤에 함께 계시면 더 위험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멜리아가 나를 지키고, 체이스는 에드윈을 지킬 건데. 게다가 에드윈의 침실 앞을 지키는 사람도 많잖아.”

“좋아요!”

다시금 체이스가 말릴 틈이 없이 에드윈이 치고 들어왔다. 신이 난 에드윈의 얼굴을 본 체이스도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그러고는 에드윈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책 이야기를 꺼내서였을까. 유독 예전을 떠올리게 하는 시간이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림도 그리고 종이도 접었다.

그때와 다른 건 에드윈은 자신 있게 제 생각을 말했으며, 칭찬을 받고 싶다 솔직히 바라기도 했다.

게다가 이제는 굉장한 종이접기 솜씨까지 갖췄다.

에드윈이 건넨 종이꽃을 받은 나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와! 정말 많이 늘었다. 색칠해서 정원에 두면 찾기도 어려울 것 같아.”

내 말에 에드윈은 두 손을 내밀며 말했다.

“색칠도 할래요. 다시 주세요.”

“줬다가 뺏는 거야?”

“더 예쁘게 만들어서 드리고 싶어요.”

그의 목소리 끝에 묻어난 애교에 나는 웃으며 고이 모인 두 손에 종이꽃을 올려놨다.

“기대할게.”

“네. 내일 드릴게요. 정원에 둬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멋있게 색칠할 거예요.”

야무진 의지가 담긴 말에 나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때, 이 시간을 함께할 사람이 늘어났다.

“나 없이 둘만 너무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군.”

레이넌이 나타나자 에드윈은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곧장 내게 찰싹 붙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레이넌의 눈썹이 슬쩍 위로 올라갔다.

“이제부터는 나와 르네의 시간인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와의 티타임을 가질 때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레이넌의 말에 에드윈은 오히려 내 품을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에드윈의 등을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티타임은 나와의 시간일 텐데?”

“그럼요.”

하지만 에드윈이 이렇게 매달려 오는데 억지로 떼어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레이넌은 이제 그만 떨어지라는 눈빛을 꾸준히 보냈지만 에드윈은 그의 뜻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생긋 웃으며 나를 더 세게 껴안았다.

품에 쏙 안기는 에드윈이 인형 같기도 하고, 너무 귀엽기도 해서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렸다.

그조차 좋은지 에드윈은 소리를 내어 웃었다.

우리 둘을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레이넌이 낮게 한숨을 쉬자 아멜리아와 체이스가 다가와 에드윈을 달랬다.

“이따가 또 만나실 거니 지금은 보내 드리지요.”

“그럼요. 저녁 식사도 함께하실 거고, 자기 전에도 보실 거잖아요.”

“그러네. 오늘 두 번이나 더 만나겠네?”

내 말에 에드윈은 고개를 빼꼼 들었다.

“정말 책 읽어 주실 거예요?”

“그럼. 약속했잖아.”

다시 한번 확답을 듣고 나서야 에드윈은 내게서 떨어졌다.

“그럼 저녁 식사 때 뵐게요.”

언제 안겨서 어리광을 부렸냐는 듯이 에드윈은 정중하게 인사했다. 우아한 몸짓인데 에드윈이 하니 그저 귀여웠다.

흐뭇하게 웃고 있자 레이넌은 그 정도면 됐다는 듯 내 손을 잡아끌었다.

“두 번이나 더 만난다고?”

에드윈의 침실에서 조금 벗어나서 레이넌이 꺼낸 첫마디였다.

“네?”

“에드윈에게 책을 읽어 주기로 했어?”

“아, 네.”

“자기 전에?”

“네. 예전 생각도 나고……. 아무래도 에드윈 옆에 사람이 많은 편이 안전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요.”

내 말에 레이넌은 조금 복잡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사람이 많은 편이 안전하니까 그대가 같이 있겠다는 건가?”

“에드윈의 주변에도 사람이 많고, 제 주변에도 사람이 많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가면 또 북적북적해지는 거잖아요.”

“에드윈이 다치고 있는 이 시기에 그대라고 안전하리라는 보장이 없어. 언제 그대를 위협해도 이상하지 않단 말이야.”

“그러니까요. 에드윈이랑 저랑 같이 있으면 둘 다 안전하지 않을까요?”

내 말에 레이넌은 입을 다물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차마 내뱉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안전하지 않은가요?”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레이넌은 잠시 움찔하더니 곧 허탈하게 웃었다.

“그대는 정말…….”

“정말?”

“뭐라고 할 수가 없게 만드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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