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윈이 또 다친 것도 심란한데 하필이면 에드윈의 주변에 슈나이더의 사람이 있다니.
에드윈의 주변에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적은 수도 아니었다.
마빈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던 걸까.
레이넌과 대화를 나눈 뒤 내내 어둡고 울적한 분위기를 풍기는 내가 걱정스러운지 아멜리아도, 세실도 내 곁에서 떠나질 않았다.
내 분위기가 꽤 심각하다는 건 그녀들의 반응으로 알 수 있었다. 차마 말도 건네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하아…….”
절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옆에 있던 아멜리아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녀는 알까. 아니, 레이넌도 집무실에 가던 도중에 깨달은 듯했다. 그 후에 아멜리아는 레이넌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으니 아직은 모를 터였다.
하지만 곧 알게 되겠지. 레이넌과 로만이 그랬듯 아멜리아도 꽤 씁쓸한 얼굴을 할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되었건 놀라울 터였고, 꽤 두터운 신뢰를 얻은 사람일 테니까.
“오늘은 내가 모실 테니까 세실은 먼저 들어가 봐.”
“……그래도 될까요?”
“아, 응. 그래. 어차피 저녁 식사 시간 말고는 계속 방에만 있을 거니까.”
“네. 그럼 저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
세실은 자신이 없는 편이 내가 속마음을 이야기하기 편할 거라고 여겼는지 얼른 방을 나섰다.
하지만 나가는 그 순간까지 걱정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세실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멜리아는 내 옆에 앉아 나직하게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슈나이더는 왜 이렇게까지 할까?”
내 말에 아멜리아는 잠시 말을 잃었다. 워낙 오래 이어져 온 일이라 이유에 대해서는 다들 관심이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꽤 오래 이어져 온 일이죠. 너무 많이들 고생했는데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네요.”
“그래. 꽤 오래됐잖아.”
“하긴, 깊은 원한 때문에 이런 짓을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흐르면 원한이 흐려질 법도 하죠.”
알려진 바로 로에리안가와 슈나이더가의 갈등은 사소한 오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결국 두 가문 사이에 큰 전투를 불러일으켰고, 큰 희생을 치르고서야 끝났다.
그래서 두 가문의 조상 중에 같은 날 죽은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래. 거의 전설처럼 느껴질 정도로 오래된 이야기잖아. 그렇다고 권력을 독차지하려고 한다기엔 너무 집요하고 지독하지 않아?”
“그렇죠.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권력을 얻으려는 사람은 많으니까요.”
“슈나이더가 바라는 대로 로에리안가가 사라진다고 쳐. 그렇다고 슈나이더가 이 모든 걸 독차지할 수 있을까?”
내 말에 아멜리아는 움찔했다. 그녀도 생각해 보지 못한 문제인 듯 보였다.
“어차피 누군가가 또 로에리안가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까? 권력이나 부는 결국 나눠지는 거니까.”
“……그렇죠. 그래도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만이라도 흡수하면 아를소티아 제국에서 제일가는 가문이 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지금은 양쪽으로 나뉘어 있으니까 말이지?”
“네.”
“솔직히 로에리안과 슈나이더의 권력과 부가 합쳐지면 황제 폐하와도 맞설 수준이 되지 않아?”
“그렇죠. 그러니까 슈나이더가 더 기를 쓰고 계속해서 노리는 걸지도요.”
“어린 에드윈을 노릴 정도로 지긋지긋하게 말이지?”
“정말 지긋지긋하죠. 사실 슈나이더만 아니었다면 에드윈 님도, 공작님도 훨씬 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셨을 텐데요.”
“역시 공작님은 일부러 에드윈을…….”
“네. 최대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길 바라셨거든요. 특히 후계자의 가능성이 아예 보이지 않게끔 오래 노력하셨죠.”
“그런데 내가 끼어들었구나.”
“끼어들었다고 봐야 할까요? 사실 저는 오히려 르네 님이 계셔서 잘됐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
“과연 슈나이더가 순순히 에드윈 님에게서 눈을 돌렸을까요? 어쨌거나 주시하고 있었을 거예요.”
“하긴, 마빈도 있었고…….”
“그러니까요. 아주 오래전부터 심어 둔 거잖아요?”
“그리고…….”
조금 전 레이넌의 집무실에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정말 레이넌은 그토록 숨기고 숨기려 했지만 에드윈은 결국 슈나이더의 시선 안에 있어야 할 운명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요?”
“응? 아……. 곧 듣겠지만 아마 에드윈의 곁에 또 다른 슈나이더의 사람이 있는 모양이야.”
내 말에 아멜리아의 얼굴이 한순간에 굳었다. 그러고는 곧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표정이 안 좋으셨군요.”
“응. 누가 됐건 충격일 거 같아서.”
“……그건 그렇죠.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도 이렇게나 충격적이니까요.”
“응.”
아멜리아도 꽤 심란한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아멜리아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어. 슈나이더는 에드윈을 오히려 더 은밀하게 지켜본 것 같으니까.”
“그러네요.”
“그럼 차라리 잘된 일이네. 에드윈을 처음 봤을 때처럼 계속 컸다면 그게 더 슬픈 일일지도 모르겠어.”
그랬다면 에드윈은 잔혹한 학살자가 되었을 것이고, 레이넌도, 나도 결국엔 그의 손에 죽었을 것이다.
그랬었지. 그게 시작이었지.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전전긍긍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아마 내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그 일이 일어났을지도 몰랐다.
물론 상황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결과가 바뀌었다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
아니, 뭔가 바뀌고는 있는 걸까. 결국엔 원작의 흐름 그대로 흘러가는 게 아닐까. 그런 걱정들이 갑자기 밀려왔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 짐작해 봤자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예전이었다면 바로 당황했을 텐데 이렇게 의연하게 걱정을 접는 건 레이넌 덕분이었다.
매번 생각이 멀리 튀어 나간다며 나를 안심시키던 그의 목소리가 순간 귓가에서 맴도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난 일을 이제 와서 이러니저러니 해 봐도 소용없지.”
“그렇죠. 제가 르네 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금의 공작님과 에드윈 님의 모습이 전보다 훨씬 더 보기 좋다는 거예요.”
“다행이네. 어차피 슈나이더가 괴롭힐 거면 이쪽은 잘 지내는 게 나을 테니까.”
“그렇죠. 공작님도 어릴 때는 에드윈 님 못지않았으니까요.”
“그러고 보니까 전에도 그런 비슷한 이야기 하지 않았어?”
미처 듣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레이넌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 모습 그대로였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젠가 아멜리아는 에드윈을 보며 레이넌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 적이 있었다.
“공작님은 아무래도 후계자는 아니었으니 자유롭게 자라시긴 했어요. 일부러 저택 구석의 별관에서만 지내시긴 했지만요.”
아멜리아가 말하는 별관이 어딘지 알 것 같았다. 처음으로 말을 타던 날, 레이넌과 함께 지나쳤던 그 건물이 문득 떠올랐으니까.
“그래도 사랑은 많이 받고 자라셨어요. 꽤 개구쟁이셨고요. 그땐 로만이랑 의기투합해서 사고도 많이 쳤는데…….”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는 와중에 말 끊어서 미안한데…….”
“네, 르네 님.”
“로만이랑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알던 사이야?”
“네. 워낙 공작님을 꼭꼭 숨겨 놓은 바람에 로만도 갑자기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을 뿐이죠. 따지고 보면 친구이자 형제와 같은 사이일까요?”
로만이 간혹 레이넌에게 어떻게 저런 말까지 할까 싶을 때가 있었다.
그 눈치 빠르고 분위기 파악 잘하는 로만이 가끔 살벌한 레이넌을 건드릴 때는 내가 눈치를 보게 되기도 했다.
역시나. 그럴 만했으니까 그렇게 행동한 모양이었다.
“아, 형님이 돌아가시고 거기엔 안 갔다고 그러시던데…….”
“네. 갑작스럽게 공작님이 되셔야 했죠. 가족을 잃은 슬픔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그럼 청년기까지는 성격이……?”
“아니요. 아주 어릴 때만 그러셨어요. 조금 더 커선 그때의 귀여운 모습은 전혀 보여 주지 않으셨죠.”
아멜리아는 조금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마 집안을 둘러싼 여러 상황을 다 파악해서 그렇게…… 아니요. 원래 성격이 그런 거겠죠.”
잠시 레이넌의 편을 들어 주려던 아멜리아는 금방 포기했다.
“개구쟁이인 건 아주 잠시였어요. 뭐, 그때도 아닌 건 아니라고 가차 없이 말씀하시곤 했지만요.”
아멜리아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에드윈이 그런 성격이었으면 꽤 귀여웠을 것 같았다.
아멜리아가 왜 가끔 레이넌의 어린 시절에 관해서 말할 때면 귀여운 무언가를 떠올리는 것 같은 얼굴을 했는지 이해가 갔다.
하지만 웃음은 잠시였다. 에드윈의 생각이 곧 그의 위험한 상황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에드윈은 아직 어린데……. 너무하지 않아? 아니, 물론 들어 보니까 공작님도 어렸을 때는 안전하다고는 못 했을 거 같긴 한데…….”
말을 하다 보니 더욱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권력과 부가 뭐라고 이토록 오래 사람들을 괴롭힌단 말인가.
게다가 이미 슈나이더는 충분한 권력과 부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이 넓은 제국에서 손꼽을 정도로 거대한 권력과 부를.
“사람의 욕심이 이렇게 끝이 없는 거지. 결국 제 욕심에 잡아먹히는 줄도 모르고.”
“지긋지긋한 인연이죠.”
“이번 대에서는 끝낼 수 있을까?”
“공작님은 그러려고 하시는 모양인데요.”
“그래. 어떻게든 본인의 대에서 끊어 버리려고……. 그렇게 큰 짐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짊어지고 말이야.”
“공작님다운 모습이죠.”
“응. 그래서 그런가? 정말 쉽게 해낼 것 같지 않아?”
“그렇죠? 좀 그런 느낌이 있죠?”
“응. 어려운 일도 되게 쉽게 하고서는 담담한 얼굴로 이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이렇게 말할 것 같아.”
내 말에 아멜리아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
“너무 디테일한 거 아녜요?”
“그런데 정말 그런 느낌인걸.”
나도 아멜리아와 함께 웃었다. 그렇게 무거운 분위기는 아주 잠시 가벼워졌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이래저래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을 이야기만 내내 해 왔기 때문이었다.
“어린 에드윈의 곁에 사람을 그렇게 심어 둘 정도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잔인하고 지독한 사람인가 봐, 슈나이더는.”
“이번 슈나이더 공작이 유독 더 집요한 구석이 있어요. 전대까지는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이 정도?”
“물론 여러 위협이 있었지만 들켜도 상관없다는 듯 많은 사람을 로에리안저에 심어 둔다거나.”
“그래. 그것도 이상해. 마빈이랑 에린은 너무 허술하잖아.”
“그조차 계획일지도요. 압박하는 거죠. 어차피 걸리면 슈나이더 입장에서는 잘라 내면 그만이니.”
“사람으로 보지 않는구나. 그저 도구일 뿐이네.”
“선대한테 어떤 교육을 받은 건지, 혹은 이번 공작이 유독 성격이 더 잔혹한 건지 모르겠어요.”
“그렇게까지 해서 없애고 싶은 걸까, 혹은 얻고 싶은 걸까.”
“둘 다가 아닐까요.”
아멜리아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의아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르네 님?”
아멜리아의 부름이 들렸지만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한 말에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까 흘리듯 했던 말이 함께 떠올랐다.
“로에리안을 그대로 흡수한다면 슈나이더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