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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잘 키워보려고 했을 뿐인데 (107)화 (107/129)

“……잃어버렸다고요?”

“그래. 그리고 그게 우리 쪽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거지.”

“그래서 일부러 서류가 숨겨진 장소를 알려 주고 우리의 반응을 지켜봤다는 겁니까?”

“그래. 지금처럼 우리가 움직이면 적어도 그걸 가지고 있는 게 우리가 아니라는 말이겠지.”

“우리가 가지고 있어도 걸려든 척하고 일부러 슈나이더의 의도대로 움직였다는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 할 텐데요.”

“그렇지. 그래도 슈나이더도 곧 움직여야 하는데 어떻게든 이쪽 동향을 확인해 보고 싶었을 테지.”

“잃어버린 척을 하는 건 아닐까요?”

“아니, 불필요해. 굳이 이 시기에 그럴 만한 이유가 없지.”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가만히 있으면 곧 마빈을 통해 벨라에게 연락이 올 거야. 이쪽 반응을 떠보려고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로만의 대답을 들은 레이넌은 서류 봉투를 다시금 앞뒤로 뒤집어 봤다.

“하긴, 그걸 잃어버렸다면 슈나이더도 마지막 순간까지 안심할 수 없을 테니까. 나쁘지 않은 상황이야.”

“그런데 공작님.”

“그래.”

“에드윈 님이 또 다치셨습니다.”

“다쳤다고?”

“네.”

로만의 말에 레이넌의 얼굴이 한순간에 어두워졌다.

“많이 다쳤나?”

“아닙니다. 이번에도 크게 다치지는 않으셨습니다.”

“이번에는 어쩌다가?”

“에드윈 님이 걸어가시다가 길 구석에 뿌려진 기름을 밟으셨습니다. 잘 다니시지 않는 길이었는데 하필 그곳으로 향하시는 바람에…….”

“미끄러졌나?”

“네. 그런데 체이스가 붙들어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고 발목만 살짝 접질리셨습니다.”

“이번에도 큰 부상은 아니군.”

“네. 하지만…….”

“그래. 언제 치명상을 노리고 달려들지 모르겠군.”

“이렇게까지 깊숙이 파고들었으니 마음만 먹으면…….”

“에드윈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더 시간을 끌 수 없어. 슈나이더의 서류를 찾는 데만 매달리지 말고 방법을 찾아.”

“알겠습니다.”

“필요하다면 만들어서라도 최대한 시기를 앞당긴다.”

“네, 공작님.”

두 사람 모두 잠시 침묵에 잠겼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레이넌도, 로만도 많은 생각에 머리를 바삐 굴렸다.

“에드윈을 르네와 붙여 놓으면 어떨까?”

침묵을 깨고 레이넌이 먼저 물었다. 차라리 두 사람을 동시에 보호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의미의 물음이었다.

“……글쎄요. 괜히 르네 님도 휘말릴 수 있으니 섣불리 결정하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 그럴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지.”

그러고는 다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왜 에드윈 님일까요?”

이번에는 로만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레이넌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래. 나도 내내 그게 신경이 쓰였단 말이지. 당연히 르네를 노릴 줄 알았는데.”

“정작 르네 님 쪽은 조용하고 자꾸 에드윈 님만 다치고 있습니다.”

“그보다 르네는 에드윈이 다친 걸 아나?”

“아마 지금쯤이면 아셨을 겁니다.”

로만의 대답에 레이넌은 혀를 찼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레이넌의 모습에 로만이 물었다.

“다음부터는 알리지 말까요?”

“아니, 르네도 알아야지.”

그렇게 말하고서 레이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무실에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금세 떠나려는 듯한 모습에 로만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

“에드윈이 괜찮은지 확인해 봐야겠군.”

“괜찮으십니다. 발목을 살짝 접질린 정도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내 눈으로 확인하지.”

“어차피 저녁 식사 때 보실 예정이십니다.”

조금의 물러섬도 없는 로만의 대답에 레이넌은 말을 멈추고 그를 응시했다.

살벌한 그의 눈빛에도 로만은 전혀 기죽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그냥 르네 님을 보고 싶다고 말씀하시지요.”

“그래. 지금 가면 르네도 있겠지.”

원하는 답을 내어준 레이넌이 걸음을 옮기려는데 로만이 다시 그의 앞을 막아섰다.

“조금 전에 보셨습니다.”

레이넌은 더 그를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그대로 로만을 지나쳤다.

로만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을 하고 레이넌의 뒤를 쫓았다.

에드윈의 방에 도착하니 이미 전에 봤던 장면이 되풀이되는 중이었다.

에드윈이 활짝 웃으며 씩씩하게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르네를 달래고 있었다.

“아니, 넘어지지도 않았다니까요? 체이스가 이렇게 쑥 잡아 줬어요.”

체이스가 아무래도 에드윈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은 모양이었다. 에드윈의 제스처에 르네의 얼굴에는 잠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곧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에드윈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자꾸 다치니까 속상해서 그래. 아무리 크게 다친 게 아니래도 다친 건 다친 거잖아.”

가라앉은 르네의 목소리를 들은 레이넌과 에드윈은 자신들이 더 속상한 얼굴을 했다.

지켜보는 로만은 기가 찰 따름이었다.

레이넌 부자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그녀를 필사적으로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다.

레이넌은 문득 좋은 생각이 들었다는 듯 눈을 빛내며 르네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은 특별히 에드윈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준비하라고 하지. 잘 먹으면 금방 낫지 않겠나.”

레이넌의 말에 아래로 축 처졌던 르네의 눈이 슬쩍 그에게로 향했다.

그녀에게서 반응이 있자 레이넌과 에드윈은 열심히 르네에게 말을 건넸다.

“어떠냐, 에드윈?”

“좋아요! 저 오늘 맛있는 거 먹고 싶어요.”

“……그래?”

조금 기운을 차린 르네의 모습에 레이넌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에드윈은 무리하지 않는 게 좋을 테니까 좋아하는 음식으로 준비해서 방으로 올려보내는 게 어떻겠나.”

“그것도 좋네요. 에드윈, 어떤 걸로 준비할까?”

르네는 금세 기운을 되찾고 에드윈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본 레이넌과 에드윈은 서로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곧 에드윈은 바삐 눈을 굴리더니 손을 들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요!”

무엇에 관한 대답인가. 레이넌도, 르네도 이해하지 못해 에드윈을 바라보자 그는 다급하게 제 건강 상태를 피력했다.

“그 정도로 아프지 않아요! 어머니랑 같이 식사하고 싶어요.”

말을 꺼낸 건 레이넌이었지만 에드윈은 르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도 아주 애처롭고도 간절한 눈으로.

“정말 괜찮겠어?”

“괜찮아요. 이 정도 다친 걸로 방에만 있는 게 더 답답한걸요. 게다가 아버지, 어머니랑 식사하는 자리잖아요. 위험할 리도 없고요.”

“그래. 에드윈이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그럼 차라리 에드윈의 방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건 어때요?”

르네는 환하게 웃으며 레이넌을 돌아봤다. 그녀의 해맑은 물음에 레이넌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레이넌이 괜한 말을 꺼내서 분위기가 흐려지기 전에 얼른 로만이 상황을 정리했다.

“그래. 저녁 식사까지 에드윈은 조금 쉬는 게 좋겠군.”

레이넌은 그렇게 말하고는 에드윈의 침실을 빠져나왔다. 레이넌의 손을 잡고 침실로 향하던 르네는 내내 말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 탓일까. 르네의 걸음은 평소보다 더 느렸다.

레이넌은 르네의 생각을 굳이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녀와 보폭을 맞췄다.

얼마나 그렇게 걸었을까. 르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발끝을 들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레이넌은 상체를 낮춰 주었다. 그러자 르네는 목소리를 죽여 조용히 속삭였다.

“왜 제가 아니라 에드윈일까요?”

조금 전까지 레이넌과 로만이 가졌던 의문이었다. 르네도 이상하다고 여길 정도면 분명 제대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일단 집무실로 가서 이야기하지.”

레이넌은 르네와 로만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르네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한지 르네의 걸음은 빨라졌지만 느긋한 레이넌 때문에 생각만큼 속도가 나지 않았다.

집무실 앞에 도착하자 레이넌은 문을 열어 르네를 먼저 들였다. 그러고는 르네의 손을 끌어 소파에 자리 잡았다.

로만은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 누가 봐도 이상하지. 다들 르네가 공격당하리라고 생각했는데.”

“네. 벨라가 전에 와서 했던 말도 그런 느낌이었잖아요.”

르네의 말에 레이넌은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는 듯 눈썹을 올렸다.

“그래. 벨라가 그랬지…….”

“전에 왔을 때 그런 말을 했습니까?”

“응. 내 안전을 슈나이더가 걱정한다고 했었던가?”

로만의 물음에 르네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레이넌과 로만이 동시에 비웃음을 흘렸다.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슈나이더와 벨라의 관계는 일방적인 모양이야.”

레이넌의 말에 르네와 로만은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벨라는 이용만 당한 것 같아. 이 정도면 그녀도 이제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겠군.”

“뭘요? 이용당한다는 걸요? 슈나이더 공작에게?”

“그래.”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벨라가 로만에게 접근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도 슈나이더의 함정이었던 모양이야.”

레이넌의 짧은 설명으로 르네가 모든 걸 이해할 리 없었다.

벨라가 이용당한다는 것에 대한 설명 대신에 레이넌은 다른 부분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일부러 시선을 그대에게 돌린 것 같군. 다들 당연히 내 여자를 위협하리라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와중에 벨라를 통해서 확신을 심어 준 거지.”

“……내 여자.”

수줍은 르네의 혼잣말은 레이넌에게 닿았다. 그런 르네를 바라보는 레이넌의 얼굴에는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공작님.”

두 사람만의 세상에 빠져들려는 찰나, 로만이 레이넌을 불렀다.

사랑에 빠진 팔불출은 다행히도 로만의 부름에 금방 냉정한 공작의 얼굴을 되찾았다.

“에드윈의 위치가 달라졌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지.”

“그거야…… 르네 님이 나타나면서 이미 술렁이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래. 르네가 에드윈을 예뻐한다는 사실과 에드윈이 갑자기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술렁임에 한몫했을 거야.”

“그렇죠.”

“르네가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아니 오히려 르네 때문에 에드윈이 후계자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커 보였겠지.”

“르네 님이 워낙 에드윈 님을 아끼시니 두 분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고 한들 후계 구도에 영향을 거의 주지 않으리라 다들 믿으니까요.”

“그럼 저 때문에 에드윈이……?”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르네가 놀라 되물었다.

“그대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목표가 에드윈으로 바뀌었다는 말이야.”

“어쨌거나 앞으로 계속 이런 일이 일어날 거란 말씀이잖아요. 아니, 그보다 어떻게 자꾸 에드윈을 다치게 하죠? 공작저의 보안이 그렇게 허술하지 않잖아요.”

“그래. 그게 문제지.”

레이넌은 씁쓸하게 웃으며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이상하지 않나?”

“네?”

“에드윈을 다치게 하는데 치명상은 피하고 싶어 하지. 그게 더 까다로운데 말이야.”

“그거야 그렇죠.”

“아…….”

르네가 레이넌의 말에 동조함과 동시에 로만은 뭔가 깨달은 듯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뭔가를 알아차린 듯한 로만의 표정은 후련하기보다는 조금 전에 보였던 레이넌의 표정과 비슷했다.

두 사람의 얼굴에 떠오른 씁쓸한 감정을 읽은 르네도 곧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설마…….”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웃는 것도 모자라서 르네는 고개까지 절레절레 저었다.

“그대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매우 가깝게 접근한 슈나이더의 사람이 있다더군. 다른 이들도 정체를 모르는.”

레이넌의 말에 르네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래. 의심하자면 모두가 의심스럽고, 반대로 생각하면 모두가 그럴 리가 없는 사람들이지.”

“아니, 그렇지만…….”

“그대의 말대로 공작저의 보안은 허술하지 않지. 게다가 에드윈의 주변이라면 더욱더.”

레이넌의 말에 르네는 허탈하게 웃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레이넌의 말대로 생각하는 편이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르네가 받아들였다는 걸 깨달은 레이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아무래도 슈나이더의 사람이 에드윈의 매우 가까운 곳에 있는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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