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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잘 키워보려고 했을 뿐인데 (56)화 (56/129)

“에, 에드윈 님, 아기라니요?”

에드윈은 당황한 내 물음에 해맑은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응? 다들 그러던데.”

“다들이라니. 누가……?”

나도 몰랐던 내 임신 이야기에 충격받은 나머지 에드윈을 감싸고 있던 손이 아래로 떨어졌다.

“르네?”

“네?”

“왜 그래?”

“아, 아니. 놀라서요.”

“비밀이었어?”

“아니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아니에요. 제 배 속에 아기는 없어요.”

“그래? 아니야?”

내 말에 에드윈은 아쉬운 듯 품에서 빠져나왔다.

“동생이 생기는 줄 알고 좋아했는데.”

그는 진심으로 아쉬운 듯 서운함을 토로했다.

아니, 이런 이야기는 또 언제부터, 어디까지 돌아다니고 있는 거지.

에드윈이 들었을 정도면 꽤 자세하게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린 것이 분명했다.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지.

그때 내 시선이 찾은 사람은 역시나 체이스였다.

나도 전혀 알지 못했던 나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을 가장 많이 알려 준 이가 바로 그였으니까.

하지만 체이스는 여전히 시선을 피한 채였다.

그때 체이스 대신 이 소문을 설명해 줄 누군가가 방에 들어섰다.

***

르네를 데려다주고 로만은 바로 아멜리아를 찾아 레이넌에게로 돌아갔다.

“왔나.”

“왜 허락하셨습니까.”

로만은 르네가 있어 묻지 못했던 질문부터 던졌다.

“에린을 시녀로 허락한 걸 말하는 건가.”

“네.”

뜬금없는 대화의 시작에 아멜리아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물었다.

“에린이 누군데요?”

“르네의 친구라던데.”

“뉘앙스가 묘한데요? 정말 친구가 맞긴 한 건가요?”

레이넌의 목소리에 묻어난 불신을 아멜리아는 바로 읽어 냈다.

“글쎄. 확실한 건 에린은 르네를 그렇게 여기지 않는 것 같은데……. 르네는 모르겠단 말이지.”

“르네는 꽤 친하게 여기는 줄 알았는데요.”

그들에 대해 조사를 했던 로만이 레이넌의 말에 의아한 듯 말했다.

“그런가. 르네가 정을 잘 주고 사람들과 잘 지내긴 하지만 의외로 무심한 구석이 있어서.”

“그렇긴 하죠.”

레이넌의 말에 로만과 아멜리아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르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도 에린에 대해서는 한 번도 말을 꺼내지 않았단 말이지.”

“일부러 그런 건 아닐까요?”

“아니. 그 정도로 치밀한 성격이 아닌 걸 다들 잘 알지 않나.”

“그렇죠. 그래서 에린이라는 시녀 이야기는 왜 나온 거죠?”

아멜리아의 질문에 레이넌은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에 체이스가 말한 걸 기억하나. 마빈이 뭔가 핑계를 대며 그를 붙들어 두는 사이에 르네가 누군가를 만난 것 같다고.”

“그게 에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래. 르네가 고민하는 것을 봤나? 게다가 로만, 네가 한 말에 그녀가 꽤 흔들리지 않았나. 같은 부분을 고민했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르네가 에린을 지목했다고 보시는 겁니까?”

“그래. 그때 에린을 만났고, 뭔가 부탁을 한 게 분명한 거 같군. 아마 자신을 시녀로 불러 달라고 이야기했겠지.”

“잠시만요.”

레이넌과 로만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듣던 아멜리아가 손을 들어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럼 마빈과 연결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거잖아요. 수상한 걸 알면서도 르네의 곁에 두신다고요? 그것도 시녀로요?”

“아멜리아의 말이 맞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가까이 두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어차피 마빈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니 누군가는 움직일 테지. 에린이 잠잠하면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될 좋은 기회가 아닌가.”

“그러다 에린이 직접 움직이면 어떻게 합니까?”

로만의 질문에 레이넌의 시선은 아멜리아에게로 향했다. 옅은 미소와 함께 와 닿는 시선을 받은 아멜리아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러니까 아멜리아를 붙이려는 게 아닌가.”

“저요?”

아멜리아가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웃었다.

“왜 갑자기 여기 불려 와서 앞뒤도 모르는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나 했더니.”

“너만 한 적임자가 없어. 르네와 사이가 좋으니 그리 나쁜 일도 아닐 텐데.”

“물론 르네가 위험하지 않기를 바라긴 하죠.”

“핑곗거리를 찾아. 르네의 시녀로 붙이겠지만 그녀와 단둘이 남는 일도, 가까이 지낼 일도 없게 만들어.”

레이넌의 단호한 말에 아멜리아는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꽤 어려운 일을 간단한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다른 시녀를 하나 더 붙이지. 로만이 잘 찾아봐. 그러면 에린을 곁에 두더라도 쉽게 르네를 해칠 기회를 잡진 못하겠지.”

“알겠습니다.”

“아멜리아는 르네의 옆방으로 옮기지. 시녀들의 방은 거리를 좀 두도록 하지.”

“네.”

로만은 레이넌의 말에 조금은 안심한 듯 성실히 대답했다.

“아멜리아.”

“네, 공작님.”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알겠습니다.”

어쩌면 무모한 선택이라는 걸 레이넌이 모를 리가 없었다.

평연한 얼굴을 했지만 이 방에 있는 그 누구보다 긴장한 이는 레이넌일지도 몰랐다.

그런 레이넌의 마음을 담은 진중한 명에 아멜리아 역시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하게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그럼 바로 시작해야겠네요. 르네는 어디 있어요?”

“에드윈 님의 침실에 있어.”

“그럼 다녀올게요.”

발랄하게 인사를 남기고 집무실을 벗어나는 아멜리아의 뒷모습에서 레이넌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

“아멜리아!”

“공작님께 갔더니 르네가 여기 있다고 해서요.”

아멜리아라면 어쩌다 에드윈에게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이만 돌아갈까요, 르네? 할 말이 있기도 하고.”

“네. 잠시만요.”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대로 에드윈의 침실을 떠날 수는 없었다.

“에드윈 님,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이제 곧 약혼 이야기가 나올 거예요. 혹시 신경 쓰이는 일이 있거나 마음이 불편하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응! 알았어! 그런데 그럼 이제 르네를 어떻게 불러야 하지?”

“저를요?”

“응. 어머니?”

어머니라니……. 결혼 전인데 그렇게 부르는 게 맞는 걸까.

호칭 문제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터라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아멜리아부터 찾았다.

내 시선에 담긴 도움 요청을 알아챈 듯 아멜리아는 에드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공작님께서 곧 말씀해 주실 거예요.”

“그렇구나. 알았어. 착하게 기다리고 있을게.”

에드윈은 기대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멜리아의 말대로 이 이야기도 다시 레이넌과 상의를 해 봐야 할 듯싶었다. 하지만 지금 급한 건 다른 문제였다.

에드윈의 침실을 벗어나자마자 나는 아멜리아의 팔을 붙들었다.

“르네?”

“빨리 가요. 아멜리아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네, 그래요.”

다급한 내 말에 아멜리아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뛰는 것과 다름없이 걸은 덕에 내 방에 도착하는 데는 다른 때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 걸렸다.

“물어볼 게 뭐예요?”

방문을 닫자 아멜리아는 급한 내 마음을 이해한 듯 바로 본론을 꺼냈다.

“아멜리아, 혹시 지금 저랑 관련해서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어요?”

“이상한 소문? 지금 르네에 관해 다들 관심이 많아서……. 정확히 어떤 것과 관련된 소문이요?”

“음……. 저 지금 임신 중이래요?”

“아아.”

내 질문에 아멜리아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는 대답을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들은 것과 다름없었다.

“아니…… 임신이라니. 왜요? 저 배가 나왔어요?”

설마 했지만 정말 그렇다고 하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혹시나 해서 내 배를 내려다봤지만, 딱히 그 정도로 보이진 않았다.

“배가 나오기는요.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요?”

“에드윈 님이 배 속에 아기가 있냐고 물어보셨어요. 얼마나 놀랐는데요.”

“에드윈 님이 그러셨어요?”

아멜리아는 잠시 놀란 눈을 하더니 곧 소리를 내어 웃었다.

“아멜리아, 지금 웃을 때가 아니라고요. 임신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너무하잖아요.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뭐 어때요. 사실이 아닌데.”

“그건 그렇지만……. 어쨌든, 도대체 왜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간 건지 알려 줘요.”

“그동안 공작님이 르네를 아끼는 모습을 굉장히 많이 보여 줬죠?”

“그랬죠.”

“그런 데다가 르네의 방도 공작님 침실 옆으로 옮겼잖아요.”

“네.”

“공작님이 따로 휴가를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갑자기 르네를 데리고 떠나셨고요.”

“음……. 아멜리아, 그게 임신이랑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는데요?”

“르네가 마차를 타고 속이 안 좋았잖아요. 공작님은 그런 르네의 건강을 각별하게 챙기셨고요.”

“설마…….”

“공작님이 마차를 타는 건 아주 드문 일이기도 하거든요.”

“도착했을 때 공작님께서 저를 부축하고 칼슨도 부르고…….”

“네. 오스틴도 아니고 칼슨이었잖아요. 휴가 가기 전에 임신인 걸 알았고, 요양차 휴가를 다녀온 거라고 다들 믿어 의심치 않아요.”

멀미가 입덧이 되어 버렸다. 머리가 멍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분명 그렇게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아……. 아무리 그래도 임신이라니.”

“어때요. 자기들끼리 마음대로 착각한 건데요.”

“아니, 결국 아닌 걸 알게 될 텐데. 그럼 그때는 또 뭐라고 할지…….”

“근데 르네는 사람들 시선이나 말에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요.”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어쩌다 보니 모르는 일이 많긴 했지만……. 어쨌든, 아무리 그래도 임신은 좀 너무하지 않아요?”

아멜리아를 붙들고 하소연을 늘어놨다.

임신했다는 소문이 난 것도 물론 억울했지만, 그간 소소하게 쌓여 있던 게 이걸 계기로 터져 나온 것 같기도 했다.

아멜리아는 차분하게 나를 위로하고 다독였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은 훨씬 나아졌다.

“다들 남의 일이라고 마냥 재밌나 보네요. 진짜든 아니든 상관도 없겠죠?”

“잘 아네요. 그러니까 르네도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네. 고마워요, 이야기 들어 줘서. 그래도 속이 좀 풀렸어요.”

“저라도 괜찮으면 언제든지 털어놔요. 아, 그리고 곧 새로운 시녀들이 올 거예요. 그때까지는 불편해도 조금만 참아요.”

“시녀들이요?”

“네.”

에린 하나가 아니었나. 시녀들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몇 명이나요?”

“두 명이요.”

“그렇구나. 알겠어요.”

두 명이나 둘 필요 없다는 걸 말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아니, 오히려 두 명이라 다행일지도 몰랐다.

그보다 에드윈과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레이넌에게 물어보긴 해야 했다.

아니, 그건 일단 내일로 미루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마음이 가라앉고 나니까 임신이라는 단어를 바라보는 시점이 조금 바뀐 탓이었다.

이제까지는 내가 임신을 했다는 소문에 놀랐다.

그러다가 갑자기 레이넌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라고 다들 믿고 있을 거란 사실로 생각이 옮겨 갔다.

레이넌과의 아이라니. 괜히 민망한 기분이 들어 지금은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일단 내일로 미루자.

그때 아멜리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어쩐지 나를 안쓰러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금세 미소를 지으며 평소와 다름없이 나를 대했지만, 잠시 스쳐 간 그녀의 표정이 내내 마음에 남았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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