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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잘 키워보려고 했을 뿐인데 (39)화 (39/129)

“르네가 힘들 줄은 몰랐어.”

곧 에드윈은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는데…….”

“에드윈 님? 조금 피곤하긴 한데 힘든 건 아니에요.”

“그럼 다행이야…….”

말과는 달리 얼굴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덕분에 남은 하루는 한가하게 그의 침실에 머물러야 했다.

바깥으로 나가면 괜히 시달릴 것이 분명하니 사람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제 방에서 쉬라고 에드윈이 단호하게 말한 덕분이었다.

에드윈이 걱정할 정도로 피로가 쌓여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남은 시간을 쉬었음에도 에드윈이 자기 전 책을 읽어 주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에드윈보다 내가 먼저 잠들어 버렸을지도.

***

눈을 뜨니 이미 아침이 다가와 있었다. 평소 일어나는 시간과 비슷하게 일어난 듯했다.

주변을 둘러보다 지난 밤 그대로 잠들어 버린 걸 알아차린 나는 조심스럽게 침대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에드윈의 잠든 얼굴을 조금만 지켜보고.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에드윈은 나보다 먼저 깨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에드윈의 얼굴이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저렇게 눈을 꾹 감고 있으면 오히려 깨어 있다는 걸 알려 준다는 걸 알 리가 없지.

꼭 닫힌 눈꺼풀 아래로 바쁘게 움직이는 그의 눈을 보고 있자니 조용히 빠져나가려던 생각은 금세 잊혔다.

내가 움직이지 않자 상황이 궁금했던 걸까. 에드윈은 조심스럽게 실눈을 떠서 주변을 둘러봤고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재빨리 다시 눈을 감는 그의 모습에 결국은 내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응. 르네도 잘 잤어?”

에드윈은 어색하게 웃으며 눈을 떴다.

내 아침 인사를 들은 에드윈은 울컥한 얼굴을 하더니 내 품을 파고들었다.

“눈을 떴는데 르네가 옆에서 같이 자고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

마침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그의 구불거리는 주황색 머리카락에 닿았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으니 나를 안은 에드윈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오늘따라 바깥이 좀 시끄럽지 않나요?”

“르네가 깨기 전에도 그랬어.”

내 말에 에드윈은 고개만 빼꼼 들어 나를 보며 대답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조용한 시간대인데도 바깥에서는 여러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목소리를 낮췄지만 뭔가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에드윈은 바깥의 상황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가 이렇게 있는 걸 좋아하니 나 역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는 건 조금 뒤로 미루고 조금 더 그를 토닥였다.

그때 조용히 체이스가 침실로 들어섰다.

내가 에드윈의 침대에 있는 모습을 보고서도 그는 놀란 기색도 없이 에드윈에게 인사를 했다.

“일어나셨습니까.”

“응, 좋은 아침이야.”

에드윈은 체이스가 들어오자 내 품에서 빠져나왔다.

“오늘 일찍 왔네.”

“응.”

“혹시 무슨 일 있어? 바깥이 좀…….”

바깥을 살피며 묻자 체이스는 선뜻 대답을 내어주었다.

평소처럼 무뚝뚝한 목소리로 전한 내용은 꽤 놀랄 만한 것이었다.

“지난밤에 누군가가 저택에 침입한 모양이야.”

“침입이라고?”

깜짝 놀란 나와는 달리 체이스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렇다고는 하는데 아직 확실한 건 없어. 잘못 본 걸 수도 있고, 누군가가 장난질한 걸 수도 있으니까.”

“그래? 그렇다면 다행인데, 아직도 이렇게 시끄러운 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거 아냐?”

“일단 확인은 해야 하니까.”

“음……. 누가 뭘 본 거래? 아니면 무슨 일이라도 쳤어?”

“새벽에 낯선 사람이 에드윈 님 침실 근처에서 얼쩡댔다길래 지금까지 찾는 중이야.”

“새벽에? 게다가 에드윈 님 침실 근처에서?”

놀라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다 내 옆에 에드윈이 있다는 걸 깨닫고는 손으로 입을 급하게 막았다.

이미 늦은 대처였다. 에드윈은 모두 들은 모양이지만 생글거리며 다시금 내 품을 파고들었다.

“걱정하지 마. 침실엔 들어오지 않은 것 같으니까.”

“그렇다면 다행인데 그래도…….”

뒤늦게 에드윈을 신경 쓰느라 혹시 그가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은 속으로 삼켰다.

하지만 체이스는 내뱉지 못한 질문을 짐작했는지 대답을 내어주었다.

“그럴 일은 없어. 게다가 이렇게나 찾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건 역시나 이상하긴 하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체이스는 애초에 누군가가 침입했다는 사실 자체를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괜찮은 거야?”

“그럴 거야. 아무리 그래도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들어왔다가 나가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그렇다면 별일이 아닐지도 몰랐지만 이런 소동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푹 잤다니 어쩐지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새벽부터 시끄러웠을 텐데 전혀 모르고 잤네.”

내가 멋쩍어하며 말하자 체이스는 말없이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게. 정작 네가 방에 없어서 놀란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는데 너무 잘 자고 있더라.”

“응? 그랬어? 근데 한둘이 아니었다니?”

나까지 무사한지 확인해 준 건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한둘이 아니라니.

체이스의 말에 의문을 표하자 그는 잠시 멈칫했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모습이 대답을 피하고 싶은 듯 보였다.

“누가 놀랐는데?”

도대체 누가 나를 또 걱정했는지 궁금해서 물었지만 체이스는 헛기침만 내뱉었다.

다시금 대답을 재촉해 볼까 고민하던 그때, 여전히 내 품에 안겨 있던 에드윈이 꼼지락거렸다.

“에드윈 님?”

에드윈은 대답 없이 내 품속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에드윈을 쓰다듬었다.

“네가 같이 자서 에드윈 님이 무척 좋으셨나 보군.”

내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체이스가 있는 자리에서는 에드윈의 표정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체이스는 어느 때보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엄청 좋았어.”

에드윈이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실수였는데 이렇게 좋아해 주니 기쁘기도 하면서 조금은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더 어렸을 때도 테레스가 에드윈과 함께 잠든 일은 없었을 터였다.

여기에서는 일찍부터 아이를 홀로 재웠다. 게다가 보모는 침대에서 함께 잠들기보다는 곁을 지키는 존재였다.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은 에드윈이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잠든 기억이 없을 것이 뻔했다.

지금도 어린 나이인데.

그런데도 이렇게 잘 자라 준 것이 고마워서 조금 더 마음을 담아 에드윈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에드윈이 원하는 만큼 오랜 시간 침대 속에 더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으니까.

“에드윈 님, 저는 잠시 방에 좀 다녀올게요.”

“응.”

선뜻 대답을 내어주고서도 에드윈은 나를 끌어안은 팔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더 힘주어 끌어안았다.

“가끔 실수로 또 에드윈 님 곁에서 잠들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너무 아쉬워 마세요.”

“정말?”

내 말에 에드윈은 고개를 빼꼼 들어 기대에 찬 얼굴로 되물었다.

“네. 이렇게 좋아하시니 너무 피곤한 날은 모른 척 잠들어야겠어요.”

일부러 에드윈에게만 들리게 귓속말로 이야기했다.

내 말이 마음에 들었던지 에드윈은 환하게 웃으며 침대에서 뛰어 내려갔다.

“그럼 나도 준비할게.”

흥겨운 에드윈의 뒷모습을 보며 나와 체이스는 비슷한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야. 에드윈 님의 보모로 네가 와서.”

“응?”

“일단 오늘은 에드윈 님도, 너도 수업은 없대. 웬만하면 돌아다니지 마.”

“알았어.”

침실을 나서자 생각보다 바깥은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심각한 얼굴로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니 나 역시 절로 얼굴을 굳히게 됐다.

체이스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 것에 비해 꽤 큰일인 듯 느껴졌다.

그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오늘 에드윈의 수업이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소란스러운데 괜히 돌아다니다가 불안감이 에드윈에게도 옮겨 갈지 몰랐다.

“응?”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서려는데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뭐지?”

작은 방이라 둘러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채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이게 뭐지?”

창가에는 작은 화병이 놓여 있었고, 거기엔 한 송이 꽃이 꽂혀 있었다.

“왜 못 알아봤지? 내 방인데.”

에드윈의 침실에 꽃이 많아서 눈에 익숙해진 탓일까.

바깥으로 나가려던 걸음을 다시 돌려 창가로 다가갔다.

활짝 핀 꽃은 지금이 가장 예쁠 때인 것 같았다. 꽃잎에 매달린 물기에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꽃을 보고 있다가 생각보다 시간을 더 보낸 것을 깨닫고 얼른 방을 빠져나왔다.

에드윈이 일어난 덕에 그의 침실에도 이제는 사람들이 분주히 오갔다.

다행히 에드윈은 이 소동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 보였다. 평소처럼 천진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 오히려 내 마음이 안정되는 것만 같았다.

“오늘 수업도 취소됐으니 뭘 할까요?”

“음……. 같이 정원 갈래? 르네는 바빠서 내가 키운 꽃이 얼마나 예쁘게 자랐는지 못 봤잖아.”

“그렇긴 하지만…….”

“오늘은 웬만하면 바깥을 돌아다니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에드윈 님.”

난감한 나를 도와준 건 체이스였다. 조금은 실망한 얼굴을 했지만 에드윈은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은 체이스랑 그림을 그릴까요? 에드윈 님도 한동안 바쁘셔서 그림을 많이 못 그리셨잖아요.”

“그럴까?”

“오늘은 시간이 많으니 오랜만에 종이접기도 할까요?”

“좋아. 체이스, 종이접기는 잘해?”

체이스는 에드윈의 질문에 거친 제 손을 내려다보고서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에드윈 님께서 가르쳐 주시면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체이스가 커다란 어깨를 늘어트리며 미술 도구와 종이접기 준비물을 챙기러 걸음을 옮겼다.

“그보다 아침을 먼저…….”

“둘 다 별일 없어서 다행이군.”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빈틈 하나 없던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오늘의 레이넌은 조금은 편안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에드윈 님, 오늘 아침 식사는 저랑 하실까요?”

레이넌과 함께 들어온 로만은 에드윈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버지와 르네는?”

에드윈은 로만의 손을 잡으려다 나와 레이넌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공작님은 이미 식사를 마치셨답니다. 하지만 르네의 아침을 잘 챙겨 주실 거예요. 그렇죠?”

“그래. 걱정하지 말고 아침 식사부터 하고 오도록 해.”

레이넌의 대답을 들은 에드윈은 그제야 안심한 듯 손을 흔들며 침실을 떠났다.

“네. 다녀오겠습니다.”

활기찬 에드윈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레이넌은 침실의 문이 닫히자 나를 보며 질문했다.

“혹시 에드윈의 주변이나 그대의 주변에서 뭔가 이상한 일은 없었나?”

“이상한 일은 딱히 없었던 것 같은데요. 굳이 찾자면 어제 제가 여기서 잠든 정도인데, 그건 제가 너무 피곤해서 실수한 거라서요.”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 잘 생각해 봐. 뭔가 달라진 거라든지.”

“아.”

문득 떠오른 장면에 짧은 감탄사가 흘러나오자 레이넌과 체이스는 한 발짝 다가왔다.

“뭔가 있나?”

“그게…… 이상하기도 하고 사소한 거기도 한데, 너무 사소한 거라서…….”

“괜찮으니까 말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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