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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잘 키워보려고 했을 뿐인데 (2)화 (2/129)

인생사 계획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했던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조금 더 악착같이 일하지 못한 지난날? 돈이 있건 없건 바로 도망가지 않은 빙의 직후? 아니면 이 소설을 읽은 더 먼 과거?

제일 잘못된 것은 내 의지를 벗어난 몸과 입일지도 몰랐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에드윈을 바라보는 내 얼굴에는 무척이나 환한 미소가 떠 있었다. 보지 않아도 잔뜩 팽팽한 얼굴 근육만으로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를 마주 보고 생글생글 웃고 있자니 문득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에드윈의 손을 이렇게 붙잡아도 되는 것인가.

캐서린이 무시무시한 얼굴로 노려보고 있을 것 같아 잔뜩 겁먹은 채로 등을 돌렸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녀는 흐뭇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대화는 끝이 나고야 말았다. 어떻게 돌이킬 수 있는 길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망했다, 망했어. 내 인생은 예쁜 인형 같은 이 아이가 크면 그대로 끝나는 걸까.

아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문득 떠오른 사실에 머릿속이 바쁘게 움직였다.

에드윈이 그렇게 자라난 데에는 환경적인 영향이 컸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웠으나 감정적으로는 늘 빈곤했던 에드윈은 레이넌의 사랑을 갈구했다.

하지만 레이넌은 한결같았다. 그의 무심함을 원망하면서도 여전히 그를 놓지 못했던 에드윈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서 애정을 구했다.

그게 바로 보모인 르네였다. 정작 르네는 레이넌밖에 보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는 레이넌의 눈에 들고자 혈안이 되어 있던 인물이었으니까.

평생 시녀로 살기보다 호화롭게 살기를 바랐던 르네에게 레이넌은 놓치고 싶지 않은 남자였다.

빼어난 외모 하나로도 그를 손쉽게 유혹할 수 있다고 자신했고, 모든 건 그녀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만 같았다.

적어도 에드윈의 보모가 된 그때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그 후로는 그녀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보모가 된 직후 르네는 에드윈에게 애정을 듬뿍 주는 것처럼 굴었으나 그건 얼마 가지 않았다.

그가 레이넌의 시선을 끄는 데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르네는 레이넌의 여자가 되기 위해 아주 치열하게 노력했지만, 그만큼 뼈저린 실패를 수차례 겪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에드윈은 속절없이 그녀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

아니, 그렇다면 내가 에드윈에게 잘해 주면 그가 달리 클 수도 있다는 거잖아? 적어도 나를 죽이려 들진 않겠지.

짙게 내려앉은 절망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드리워졌다.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도망치는 삶보다 훨씬 마음이 편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로에리안 공작저만큼 근무 조건이 좋은 곳은 없었다.

이제 더는 추가 수당 벌겠다고 사서 고생하거나, 혹시나 캐서린의 눈에 띄어 에드윈의 보모가 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일상은 끝이라는 말이지 않은가.

그간의 마음고생이 한순간에 스쳐 지나가자 절로 울컥했다.

감정이 벅차오르다 못해 서서히 눈물이 고여 들기 시작하자 캐서린이 나직한 목소리로 에드윈에게 말했다.

“에드윈 님을 모시게 된 것이 저렇게도 기쁜가 봅니다.”

***

에드윈의 침실을 막 나섰을 때였다. 복도 끝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르네!”

“그러다 넘어지세요!”

나를 보자마자 쪼르르 달려오는 에드윈은 한 마리의 앙증맞은 새끼 오리 같았다.

놀란 내 목소리를 듣고 에드윈은 속도를 줄였다. 하지만 뛰고 싶은 마음과 얼른 걸어야 한다는 마음이 상충한 탓일까.

씰룩이는 에드윈의 엉덩이를 본 나는 결국은 참지 못하고 뛰듯이 그에게 다가갔다.

“이거 르네 거야. 내가 열심히 만들었어.”

에드윈은 어깨를 잔뜩 펴고 내게 종이 뭉치를 건넸다.

“우와! 솜씨도 좋으시지. 이렇게 멋진 종이…….”

“이러케 이러케 접으면 장미가 돼.”

“꽃을 접어 주시다니!”

장미였구나. 공놀이하자는 줄 알았는데. 역시 조금 기다려 보길 잘했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안에도 에드윈의 작은 손은 어떻게 장미를 접었는지 보여 주느라 바삐 움직였다.

꼬물꼬물 움직이는 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대로 그의 손을 꼭 잡아 주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대신 두 눈을 크게 뜨고 에드윈에게 집중했다. 에드윈은 매우 진지한 얼굴로 끝내 다시 한번 장미로 추정되는 종이 공작물을 만들어 냈고, 나는 열심히 손뼉을 쳤다.

매우 뿌듯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던 에드윈은 곧 허리에 손을 올리고는 비장하게 말했다.

“간식 먹기 전에 손도 씻었어!”

에드윈은 짐작했던 것보다 더욱더 묘한 위치에 있었다. 다들 그를 공손하게 대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돌보거나 깊이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이상하다는 걸 느낀 건 에드윈의 보모로 배정된 다음 날이었다.

보모가 결정되기만을 기다렸던 건지 일은 속전속결로 진행되어 나는 다음 날부터 바로 에드윈을 전담하게 되었다.

에드윈의 보모로 일하게 된 첫날, 나는 의아함을 느끼며 물었다.

“왜 어제랑 같은 옷을 입고 계세요?”

에드윈은 전날과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최고급 옷감을 사용해서인지 고급스러워 보였으나 자세히 보니 여기저기 지저분한 곳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옷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응?”

에드윈은 뭐가 문제인지 전혀 모른다는 듯 말똥말똥한 눈을 하고 나를 바라봤다.

“아니에요.”

아이에게 물을 일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젓고 몸을 낮춰 에드윈과 눈높이를 맞췄다.

“일단 좀 씻으실까요?”

내 말에 에드윈은 눈에 띄게 인상을 찌푸렸다.

“시종을 불러올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몸을 일으켰지만 움직이지는 못했다. 그가 재빨리 스커트를 붙든 탓이었다.

“왜 그러세요?”

“나중에…….”

“아, 그러고 보니 에드윈 님이 좋아하시는 케이크를 준비했는데…….”

“케이크?”

“네. 깨끗하게 씻고 오시면 제가 여기에서 케이크를 딱 준비해 놓고 기다릴게요.”

잠시 눈을 굴리던 에드윈은 곧 큰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크 덕분이었을까. 에드윈은 처음부터 나를 꽤 마음에 들어 했고, 또한 잘 따랐다.

그 후로도 에드윈에 대한 의아함은 이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공작의 뒤를 이을 아이인데 아주 기본적인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꽤 총명한 아이인데도 발음이 제 나이보다 더 아이 같다고 여겼던 것도 아마 착각은 아니리라.

눈높이를 맞추고 이야기를 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에드윈의 발음이 훨씬 또렷해졌으니까.

아마 레이넌이 에드윈에게 무심한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사용인들까지 아이를 이렇게 내버려 두면 어쩌란 말이야. 돈을 받았으면 일을 해야지.

에드윈의 보모가 되며 월급이 올라간 나는 캐서린을 찾아갔다. 기본적인 위생 개념이나 너무 자유로운 에드윈의 생활에 대해 레이넌과 상의를 해 보려고 했으나 돌아온 답은…….

“글쎄. 공작님께 어쭈는 건 좋지 않은 생각이야. 그 정도는 네가 알아서 할 수 있을 텐데?”

였다. 난감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하고서.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는 캐서린의 모습은 처음 봤다. 그녀마저 이런 태도를 보일 정도이니 다른 사용인들은 오죽할까.

“이런 나쁜…….”

“르네?”

잠시 생각에 잠긴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에드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괜히 짠한 마음이 일었다. 총명한 아이라 저를 둘러싼 분위기가 어떤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관심과 애정은 받고 싶지만, 동시에 눈치를 보는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어째서 다들 그렇게 무심하게 대할 수 있는지. 욕설이 올라오다가도 에드윈의 얼굴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누구에게 주실 건가요?”

“음…….”

나는 에드윈의 손에 들린 장미로 추정되는 종이 뭉치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는 고민하는 것처럼 말을 끌었지만 이미 대상은 분명해 보였다.

“저한테만 말씀해 주세요.”

대단한 비밀을 알려 달라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추며 귀를 가까이했다. 이런 내 모습에 용기를 얻었는지 에드윈은 조용히 속삭였다.

“아버지한테 드릴 거야.”

“우와!”

“쉿!”

활짝 웃으며 큰 소리로 감탄하자 에드윈은 놀라며 내 입에 작은 손가락을 댔다. 곧 조금 전보다 더 화들짝 놀라며 손가락을 거둬들이긴 했지만.

“미…… 미안.”

“에드윈 님.”

“응?”

“저는 에드윈 님이 참 좋아요. 에드윈 님을 모실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있던 에드윈은 내 말에 온 세상을 얻은 듯 환하게 웃었다. 나는 뛰어오느라 흐트러진 에드윈의 옷자락을 바로잡아준 뒤 손을 내밀었다.

“그럼 가 보실까요?”

“어디에?”

“에드윈 님이 직접 만든 예쁜 꽃을 공작님께 전해 드려야죠.”

내 말에 에드윈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기쁘면서도 걱정스러운 심경이 오롯이 보였다.

“지금 저도 공작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는 길인데 함께 가시는 건 어떠세요?”

“아버지를…… 만나러 가?”

“네. 오늘이 첫인사를 드리는 날이거든요.”

레이넌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는 건 분명 에드윈의 보모가 되기로 결정된 날 들은 말이었다.

이미 시일이 꽤 지난 오늘까지 미뤄진 건 그가 너무 바빠서인지, 혹은 의지가 없어서인지는 나로선 알 수 없었다.

얼굴만 슬쩍 비치는 정도일 테니 크게 신경 쓸 것 없다던 캐서린의 말이 떠올랐다. 물론 그 뒤로 제법 긴 주의 사항들이 이어졌지만 아주 잠시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괜한 말은 말아라, 질문하지 말아라, 그를 빤히 쳐다보지 말아라……. 주로 ‘말아라’로 끝나는 말들이었다.

그녀가 말해 준 주의 사항들을 애써 머릿속 한구석에 밀어 놓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생글생글 웃고 있으니 에드윈의 얼굴에는 작은 안도가 피어났다.

“이러다 늦겠어요. 얼른 가실까요?”

나는 가고 싶은 얼굴을 하고서도 선뜻 그러자고 대답하지 못하는 에드윈의 손을 붙잡고 걷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는 다시금 걱정이 내려앉았지만 내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고민할 틈을 주지 않고 이렇게 한 번씩 등을 밀어 주다 보면 언젠가 에드윈의 마음에도 조금 더 밝은 감정이 채워지지 않을까.

내 미래도 물론 중요했지만, 그보다 이 작은 아이가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랐다. 아주 짧은 시간 함께했지만 진심으로 그랬다.

“에드윈 님?”

캐서린은 이미 레이넌의 집무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나타날 줄 알았던 내가 에드윈의 손을 잡고 오자 그녀는 꽤 놀란 얼굴로 그를 불렀다.

에드윈은 캐서린의 부름에 뭐라 말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던지 입을 열었다가 곧 꾹 닫았다. 그래서 내가 그의 말을 대신 전했다.

“에드윈 님이 공작님께 드릴 것이 있다고 해서 함께 왔습니다.”

캐서린의 얼굴에는 아주 옅은 당황이 비쳤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환하게 웃고만 있는 내 얼굴을 보던 그녀는 곧 고개를 슬쩍 돌렸다.

캐서린은 에드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꽤 오래도록 에드윈의 손에 머물렀다.

그녀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싶더니 손을 들어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캐서린입니다. 에드윈 님의 보모를 데려왔습니다.”

캐서린의 허락이 떨어졌다고 느낀 것일까. 에드윈은 작게 웃고는 금세 한층 더 긴장한 얼굴로 손에 힘을 주었다.

나는 그를 보며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곤 에드윈이 그랬던 것처럼 손에 힘을 주었다. 꼭 붙든 손을 보고 에드윈이 슬쩍 미소를 지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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