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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05 (82/82)

외전 05

아영은 수십 번을 대면했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존재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겼다. 하지만 이내 결심한 듯 천천히 얼굴을 내렸다.

뜨거움이 닿자 그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더니 사나운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잇새로 새어 나왔다.

아영은 저로 인해 시시각각 변하는 그를 보며 자극을 멈추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의 단전에 응축된 근육들이 긴장과 수축을 반복하더니 종내에는 격렬하게 파동했다.

하아. 하아.

아영은 열기로 혼탁해진 숨을 내쉬는 그를 보며 자신의 체중을 실었다.

그녀가 무얼 하려는지 알아챈 그가 거칠게 숨을 삼켰다. 아영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천천히 몸을 기울였다.

맞닿은 곳에서 강한 스파크가 일자 그녀의 허리가 움찔 떨렸다.

태하는 용기를 북돋아 주려는 것처럼 그녀의 다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아영은 숨을 쪼개 뱉으며 조금씩 안착해 갔다.

곧이어 끝에 다다르자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뒤로 꺾였다.

제 몸이 익숙해지길 기다린 아영은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잡아.”

태하는 아영이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하는 모습을 보고 손을 뻗었다. 그의 양손을 잡은 아영은 안정감 있게 움직였다.

하지만 가속이 붙기 시작하자 그의 턱 끝에 점점 힘이 들어가더니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오는 쾌감에 전신을 떨었다.

동시에 일순간 정지한 듯 멈춰 있던 그녀의 몸이 이내 그의 가슴 위로 풀썩 쓰러졌다. 그러고는 밭은 숨을 토해 냈다.

태하는 손을 뻗어 땀에 젖은 그녀의 가녀린 등을 어루만졌다.

한참 동안 그의 가슴 위에서 거칠게 숨을 고르던 아영은 이내 호흡이 안정을 되찾자 고개를 들어 그와 시선을 맞췄다.

“이제 알았어? 내 마음?”

“조금은.”

그가 한쪽 팔을 접어 제 머리에 받친 채 말했다.

당연히 그렇다는 답변이 나올 줄 알았던 아영이 놀라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뭐? 조금이라고?”

“한 번 가지고 어떻게 알아? 적어도 세 번은 해야 진심인지 아닌지 알지.”

“미쳤어. 난 더는 못 해.”

“어딜 도망가.”

그녀가 고개를 흔들며 그에게서 빠져나오려 하자 그대로 그녀의 허리를 낚아채 침대에 눕혔다. 순식간에 위아래가 바뀌었다.

“이제 2라운드 시작해야지.”

빈틈없이 자리를 잡은 그가 짓궂게 내뱉더니 힘껏 밀어 넣었다. 빠듯한 압박감이 다시 꿰뚫듯 파고들자 그녀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양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떠받친 태하는 미친 듯이 자신을 쏟아부었다.

아영이 눈을 감자 까만 하늘에 새하얀 폭죽이 펑펑 터졌다.

***

한 달 뒤.

“읏.”

집에 있을 때는 답답해 브래지어를 하지 않던 아영은 옷이 스칠 때마다 가슴이 아릿해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아, 아니야.”

막 욕실에서 나오던 태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영은 그가 신경 쓰일까 봐 애써 웃어 보였다.

“나 맥주 마실까 하는데 같이 마실래?”

“난 괜찮아.”

괜찮다는 그녀의 말에 몸을 돌린 태하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으며 침실 밖으로 나갔다.

아영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었다. 그러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녀의 새하얀 살결이 드러났다. 다른 날과 다르게 뻣뻣하게 곤두서 있었다.

전신 거울 앞에 선 아영은 조심스럽게 제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옷보다는 나았지만 닿는 느낌이 평소와 달랐다. 혹시.

아영은 퍼뜩 뜬 생각에 두 눈이 놀라 커졌다.

“지금 뭐 해?”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그녀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언제 왔는지 그가 드레스룸 벽에 기댄 채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온 줄도 모르고 제 가슴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던 아영은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어, 언제 왔어?”

“방금.”

그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아영은 마치 자위하다 들킨 것 같은 이 상황이 난처하기만 했다. 어떻게든 그의 오해를 풀고 싶었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마.”

“내가 무슨 생각하는데?”

그가 짓궂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알잖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가 팔짱을 끼며 모른 척 시치미를 떼자 아영이 노려보았다.

“자위한 거 아니야.”

“그래?”

그가 웃기까지 하자 더는 숨길 수 없다고 생각한 아영은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아파서 그랬어.”

“뭐? 아파?”

미소를 싹 지운 그가 놀라 한걸음에 다가왔다. 그러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가슴 끝이.”

“뭐?”

설마 진짜 가슴이 아플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지 순간 그의 얼굴이 멍해졌다. 이내 정신이 돌아온 그가 다시 물었다.

“증상이 어떤데?”

“며칠 전부터 스치기만 해도 아프더라고.”

“지금 당장 병원 가자. 응급 진료는 받을 수 있을 거야.”

스치기만 해도 아프다는 소리에 그의 얼굴이 심각해지더니 이내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러자 아영이 발끝에 힘을 주었다.

“병원, 내일 가도 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의사도 아니면서.”

“알아. 경험해 봤으니까.”

“경험해 봤다니. 예전에도 이런 적 있어?”

“응.”

그의 얼굴이 더욱 심각해졌다.

“언제?”

“서준이 임신했을 때.”

“서준이 임신했을 때라면…….”

순간 그의 동공이 확장됐다.

“테스트해 봐야 알겠지만, 임신인 것 같아.”

“그, 그게 정말이야?”

그는 놀랐는지 말까지 버벅거렸다.

“증상이 그때와 비슷해.”

“증상이 어떤데?”

“으슬으슬 춥고, 아랫배도 콕콕 쑤시고, 가슴 끝이 아픈 게 똑같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생리할 때가 2주나 지났더라고.”

다른 건 몰라도 생리 기간이 지났다는 말에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집에 임신 테스트기 있어?”

“아니. 없어.”

“내가 지금 당장 가서 사 올게.”

“아침에 해야 정확해. 그러니까 굳이 지금 사 올 필요 없어.”

“아침에 약국 문 일찍 안 열잖아. 그러니까 지금 사 놔야지.”

“하지만 지금 9시 40분이야. 곧 약국 문 닫을 시간이라 안 돼. 그냥 내일 사.”

그들이 사는 집이 시내와 떨어진 곳이다 보니 약국까지 차 타고 15분은 가야 했다.

“반드시 사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태하는 그 말을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아영은 순식간에 사라진 그를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왕복 30분이면 될 거리를 그는 50분이 되어서도 오지 않았다.

왜 이렇게 늦지? 못 사면 그냥 올 것이지, 설마 약국 찾아 헤매고 있는 건 아니겠지?

걱정된 그녀가 전화를 걸자 그의 핸드폰은 침대 위에서 울리고 있었다.

아영은 초조하게 창가를 서성이며 그가 오길 기다렸다. 자꾸만 머릿속을 파고드는 위험한 상상을 떨쳐내기 위해 몇 번이나 머리를 흔들어야 했다.

10분이 지났을 무렵, 정원 옆 주차장으로 그의 차가 들어서는 게 보였다.

아영은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현관문에 다다랐을 때 그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러더니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기사처럼 테스트기를 높이 쳐들며 말했다.

“사 왔어.”

온몸을 땀에 흠뻑 젖은 채 환하게 웃고 있는 그를 보자 아영은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시내에 있는 약국 다 찾아다니느라 늦었어.”

“핸드폰 놓고 가서 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미안. 약국 문 닫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나가느라 깜빡했어.”

“풋.”

마치 대형견처럼 커다란 체구를 들이밀며 그녀의 팔에 기대는 모습이 귀여워 아영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도 안도하며 따라 웃었다.

***

다음 날 아영은 평상시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하지만 더 자고 싶어 눈을 감은 채 옆으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그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영이 감은 눈을 번쩍 뜨자 그가 누워 있어야 할 자리가 휑하게 비어있었다.

어딜 간 거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아영은 재빨리 방 안을 둘러보았다. 시선 끝에 그가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게 보였다.

“거기서 뭐 해?”

그녀의 인기척에 그가 고개를 들었다.

“잠이 안 와서 책 보고 있었어.”

“설마 밤샌 거야?”

그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내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성큼 걸어와 침대 끝에 걸터앉더니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다정하게 물었다.

“왜 이렇게 빨리 일어났어?”

“그냥 일찍 눈이 떠졌어. 그러는 넌 안 피곤해?”

“하나도 안 피곤해.”

“설마, 잠 못 잔 이유가 임신 테스트 때문이야?”

그는 까만 눈으로 그녀를 쳐다볼 뿐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았다.

“네가 이렇게 아이를 기다리는 줄 몰랐어.”

“너한테 부담 주고 싶지 않았거든.”

사실 그와 결혼하기 전날, 아영은 그에게 둘째는 천천히 낳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는 그에게 아영은 서준이 아빠와 떨어져 있었던 동안 받지 못했던 사랑을 충분히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의 말에 공감하며 따라 주었다.

하지만 그가 이태리에서 돌아온 날, 한동안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은 피임을 생각할 겨를 없이 불타올랐다.

지금도 그날만 생각하면 배 속이 뜨거워질 정도였다.

“기다려. 지금 하고 올게.”

“뭐, 지금?”

“그래야 너 잘 거잖아.”

아영이 그의 손을 부드럽게 뿌리친 뒤 욕실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욕실 수납장에 넣어둔 임신 테스트기를 꺼냈다.

아영은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자리에 앉았다.

“꺄!”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잠시 후 욕실에서 아영의 비명이 들리자 깜짝 놀란 태하가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갔다.

테스트기를 든 채 방방 뛰고 있는 그녀가 그를 덥석 안으며 소리쳤다.

“권태하, 나 임신했어!”

“정말이야?”

그가 그녀를 제 품에서 떼어 내고 물었다. 그러자 아영이 제 손에 들려 있던 두 줄이 선명한 임신 테스트기를 내밀었다.

태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보고 또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권태하, 울어?”

“이거 꿈 아니지?”

아영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쳐다보자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이 꿈은 영원히 계속될 거니까.”

아영은 그를 있는 힘껏 껴안으며 속삭였다.

“엄마, 아빠 무슨 일이야?”

그때 서준이 잠이 덜 깬 얼굴로 뛰어 들어왔다.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 두 사람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서준아, 너 동생 생겼다!”

그 순간 서준의 얼굴 위에도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외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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