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01
따사로운 햇살이 열린 커튼 사이로 내리쳤다. 태하는 잠에 취한 채 옆으로 손을 뻗었다.
기대하던 따뜻한 체온이 닿자 본능적으로 끌어당겼다. 그녀의 작은 체구가 품 안으로 쏙 들어와 그는 으스러지도록 껴안았다.
“으─. 답답해.”
낮게 칭얼거리는 소리에 감은 눈을 번쩍 뜬 태하는 깜짝 놀랐다. 아영이 아닌 아들 서준이 안겨 있었다.
“미안.”
당황한 그가 황급히 팔을 풀자 서준이 입술을 불퉁하게 내밀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빠는 잠버릇이 너무 고약해.”
“서준아!”
달콤한 잠을 방해받아서 짜증 난 모양이다. 쿵쿵거리며 건너편에 있는 제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니.
그 소리에 잠에서 깬 아영이 눈을 비비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서준이가 넌 줄 알고 안았더니…….”
그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영이 침대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또 그랬어? 조심하라니까.”
“내 탓 아니야. 끼어든 건 서준이라고.”
태하가 억울해 항변했다.
“그래서 손 조심하라고 했잖아.”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걸 어떻게 해. 그리고 엄연히 약속을 어긴 건 서준이야.”
얼마 전 서준은 유치원 친구들이 혼자 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앞으로는 혼자 자겠다며 큰소리쳤다.
침대 중앙을 차지한 서준을 언제 분리할지 시기를 지켜보고 있던 태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아영을 온전히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태하는 들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혼자 자겠다고 씩씩하게 건너간 서준은 두 사람이 달아오를 때쯤이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내일부터는 꼭 혼자 잘게’라고 말한 뒤 그녀와 저 사이에 파고들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 그녀의 따듯한 체온을 느끼며 일어나고 싶었던 태하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너도 알잖아. 그동안 내가 얼마나 참아 왔는지.”
“아직 혼자 자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봐. 그러니까 자기가 이해해 줘.”
아영이 그의 팔을 잡으며 달래듯 말했다. 그러자 그가 시선을 내려뜨린 채 그녀를 쳐다보았다.
“방금 했던 말 다시 해 봐.”
“어떤 말?”
그녀가 두 눈을 깜빡이며 올려다보았다.
“나한테 자기라고 했잖아.”
“그게 왜?”
“처음이라서. 네가 자기라고 부른 게.”
그가 짙어진 시선으로 아영을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말조심하려고.”
“갑자기?”
“아무리 우리가 친구였다지만 서준이 보는 앞에서 너무 편하게 부르는 것 같아서.”
그 역시 느끼고 있던 터라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나는 뭐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음. 나처럼 자기라고 불러도 되고, 여보, 당ㅅ…… 으. 아직 여기까진 입이 안 떨어진다.”
시간이 더 필요한 모양이다.
“나도 자기라고 부를까?”
“한번 불러 봐.”
아영은 그가 그렇게 부르면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다.
“자기야.”
태하가 낮으면서 굵은 목소리로 부르자 심장이 간지러웠다.
“왜, 이상해?”
“아니. 그건 아닌데…….”
아영이 어깨를 움찔하며 떨자 그가 물었다.
“그래서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싫은 건 아니야.”
“그럼, 앞으로 자주 불러 줄게. 자기야.”
처음에 입에 붙지 않아 고생한 그녀와 달리 그는 거리낌 없이 잘도 불렀다.
“넌 왜 그렇게 능숙해? 혹시 다른 여자한테도 그렇게 부른 적 있어?”
그녀의 추궁이 어이가 없는지 태하가 피식 웃었다.
“맹세코, 없어.”
“진심이야?”
“서준이 이름 걸고 맹세해.”
그가 가슴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던 아영은 그가 서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자 그제야 부드러워졌다.
“그건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
“뭐가?”
“서준이 말이야. 언제까지 한 침대에서 잘 수는 없잖아. 그렇다고 방문을 잠글 수도 없고.”
“무서워서 온 아이한테 방문을 잠그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일단 적응할 때까지 같이 자면 안 돼?”
자신이 부탁하면 못 이긴 척 넘어가 주던 태하가 또 얘길 꺼내는 걸 보면 오늘은 그냥 넘어갈 마음이 없나 보다.
“벌써 한 달째야.”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그랬으니 정확히 한 달 하고 이틀째였다.
눈만 마주쳐도 달아오를 신혼이건만 태하는 마치 자린고비처럼 그녀를 보면서 군침만 삼키고 있었다.
“6년을 나와 함께 잔 아이야.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아.”
“나도 더는 양보 못 해.”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아영은 할 수만 있다면 몸을 둘로 나누고 싶었다.
“방문을 잠글 수가 없다면 욕실은 어때? 서준이가 욕실까지 들어오지는 않을 테니까.”
“뭐?”
“달리 방법이 없잖아. 낮에는 일 때문에 안 되고, 밤에는 서준이 때문에 안 되니까.”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어. 그렇게라도 해야겠어.”
그가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이번에는 절대 물러날 수 없다는 듯이.
“알았어.”
성욕 강한 그가 한 달을 참았으니 솔직히 많이 참은 거였다. 그걸 알고 있기에 그녀 역시 더는 말릴 수가 없었다.
“방금 네 입으로 알았다고 한 거다. 약속 지켜.”
“알았다니까.”
언제 침울해 있었냐는 듯 밝아진 그가 침대에서 훌쩍 내려왔다. 그러더니 침대에 누워 있던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
몸이 갑자기 붕 떠오르자 놀란 그녀의 두 팔이 공중에서 허우적거렸다.
“앗! 뭐 하는 거야?”
“말 나온 김에 쇠뿔도 단김에 빼려고.”
그녀를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쳐다보던 그가 이내 성큼성큼 욕실로 걸어갔다.
“설마 지금 하겠다는 거야?”
“왜, 문제 있어?”
“서준이 이제 막 들어갔잖아. 언제 깰지도 모르는데…….”
“잠그면 돼.”
태연하게 대답한 그가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그녀를 욕조 안에 사뿐히 내려놓은 뒤 욕실 문을 잠갔다. 달칵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그가 잠옷 단추를 끄르며 다가왔다. 그녀 앞에 섰을 땐 그의 몸에 걸친 거라곤 바지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그녀가 마른침을 삼킨 순간 벗어 버렸다.
순식간에 전라 된 그가 잔뜩 흥분한 채로 욕조 안으로 들어왔다.
“옷 입은 채로 할 거야?”
“어?”
그를 만류할 생각이던 아영은 넋 놓고 쳐다보다 뒤늦게 반문했다.
“옷 젖을 것 같은데. 뭐 상관없나? 어차피 빨 거니까?”
그가 몸을 가까이 붙여왔다. 그러자 얇은 실크 잠옷 위로 단단한 그의 몸이 여실히 느껴졌다.
아영은 마른침을 삼켰다.
“권태하.”
“호칭 바꾸겠다더니.”
“음, 자기.”
그의 지적에 이를 지그시 깨문 아영은 다시 고쳐 불렀다.
“말해. 자기.”
“자기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는데.”
“내가 뭘 간과했다는 거지?”
그가 눈을 내리뜨며 여유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욕실 바로 옆이 서준이 방이라 우리가 내는 소리가 다 들릴 거야. 아무래도 욕실은 아닌 것 같아.”
“흠.”
그가 생각에 잠긴 걸 본 아영이 덧붙였다.
“그러니까 다른 장소 생각해 보자. 알았지?”
그녀가 옆으로 빠져나오려 순간 그가 팔을 붙잡았다.
“자기만 소리 안 내면 돼. 난 잘 참을 수 있거든.”
“아니, 그걸 어떻게 참아?”
그게 참아질 거면 뭐가 문제겠는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나오니 문제였다.
“내가 도와줄까?”
“뭐?”
“입 벌려 봐.”
“입은 왜?”
그녀가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글쎄. 일단 벌려 보라니까.”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던 아영은 이내 천천히 입을 벌렸다. 그러자 그가 자신의 손가락을 그녀의 입 속에 밀어 넣었다.
예상치 못한 손가락이 들어오자 아영의 두 눈이 놀라 커졌다.
“참기 힘들면 내 손가락 깨물어.”
말도 안 된다는 듯 그의 손을 잡아 빼려는데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숙이 파고들어 그녀의 입 안을 헤집었다.
그녀의 혀 밑을 훑은 뒤 둥근 천장을 따라 그리듯 움직이더니 이내 말캉한 혀를 휘감았다.
“흣.”
그의 손가락만으로 야릇해져 버린 그녀의 입에서 옅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쉬.”
그가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더운 숨이 귓속을 파고들자 아영은 저도 모르게 그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단단한 손가락이 닿자 놀라 재빨리 이를 떼어 냈다.
태하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잘했어. 지금처럼 하면 돼.”
아영이 반박하려는 순간 그가 그녀의 목덜미를 물었다. 이가 박힌 곳에 짜릿함이 번지자 그녀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손톱이 그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태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점차 입술을 내렸다. 그러다 잠옷에 가로막히자 한 손으로 능숙하게 그녀의 단추를 끄른 뒤 브래지어를 밀러 올렸다.
그러고는 새하얀 살결을 한 손 가득 움켜쥐었다. 터질 듯한 살결이 그의 손길 따라 형태를 달리했다.
태하가 엄지손가락을 세워 끝을 자극하자 아영이 흐느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의 입속을 채우고 있는 그의 손가락에 막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때부터 태하의 손길은 거침없이 그녀를 탐하기 시작했다.
양 끝이 아릴 정도로 한참을 자극하던 그는 이내 튀어나온 갈비뼈를 지나 작은 샘을 닮은 배꼽에 잠시 머무르더니 부지불식간에 잠옷 아래로 파고들었다.
그의 손길에 취해 있던 아영은 깊은 곳에 닿자 놀라 다리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 가로막혀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태하는 있는 힘껏 밀어 넣었다. 강한 자극이 들어오자 그녀의 허리가 잘게 떨렸다.
“하, 안 되겠다.”
잠옷 때문에 움직임에 제약을 받자 갑자기 태하가 그녀의 몸을 돌렸다.
“벽 짚어.”
그가 그녀의 허리를 잡아 뒤로 빼면서 말했다. 아영은 홀린 듯 그의 말에 따랐다.
그녀가 양팔을 벽에 짚자 태하는 곧바로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남은 제 손을 그녀의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좀 전과 다른 깊이에 그녀의 허리가 경련하듯 파들파들 떨렸다.
태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속도를 높였다. 빠르게 오가는 그의 팔이 터질 듯 불끈거렸다.
“으으윽.”
억눌린 신음과 함께 절정을 이기지 못한 아영의 무릎이 힘없이 푹 꺾였고, 태하는 재빨리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그런 뒤 조심스럽게 욕조 위에 걸터앉게 했다.
“하아. 하아.”
아영은 모든 기력이 다 소모된 듯 축 처진 채 밭은 숨을 내쉬었다.
“잘 참았다. 우리 아영이.”
태하는 땀에 젖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사랑스럽게 넘겨주며 말했다.
아영은 마치 어린아이 대하듯 구는 그를 말 없이 노려보았다. 그러다 무심코 그의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아영이 그의 손을 잡아 들어 올렸다. 그의 손가락 곳곳에 잇자국이 나 있었고, 어느 곳은 피까지 나고 있었다.
“뭐야, 내가 이런 거야?”
“괜찮아.”
“이게 어떻게 괜찮아. 피까지 났는데.”
“하나도 안 아파. 아팠으면 진작 뺐지.”
그녀가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쳐다보자 태하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그런데도 그녀의 표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정 그렇게 신경 쓰이면 약이라도 발라 주던가.”
“알았어.”
그녀가 욕조에서 일어나려 하자 그가 다시 앉혔다.
“그 약 말고. 이 약으로.”
그가 어리둥절해 쳐다보던 그녀 입안에 다시 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뜨거운 타액이 그의 손가락을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