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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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아영이 왔어. 전화 바꿔 줄게.”

수인은 태하에게 말한 뒤 핸드폰을 아영에게 내밀었다.

“전화 받아 봐.”

“누군데?”

아영은 제 전화를 들고 있는 수인을 향해 물었다.

“……권태하.”

잠시 머뭇거리던 수인은 아영이 화가 난 눈초리로 쏘아보자 재빨리 덧붙였다.

“빨리 받아 봐. 서준이가 다쳤대.”

“뭐?”

수인이 손에 들린 핸드폰을 빼앗다시피 한 아영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서준이가 다쳤다니 무슨 얘기야?”

[놀라지 말고 들어.]

태하는 침착하게 수인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다른 데도 아니고 머리를 다쳤다는 얘기에 사색이 된 그녀의 손이 덜덜 떨렸다.

“나 먼저 가 봐야 할 것 같아.”

서둘러 전화를 끊은 아영은 혼이 나간 얼굴로 의자에 올려 둔 가방과 재킷을 챙겼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병원이라니. 누가 아픈 거야?”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는 지수와 석현이 따라 일어서며 물었다.

“그러지 말고 나랑 같이 가.”

수인은 두 사람 얘기가 들리지 않는지 아영에게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내일 회사는 어떻게 하려고. 걱정하지 마. 공항까지 택시 타고 가면 돼.”

아영은 놀란 와중에도 떨리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따라나서려는 수인을 말렸다.

“지금 회사가 문제야? 너 가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그럴 수 없어. 그래서도 안 되고.”

아영은 자신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그럼 택시 타는 것까지라도…….”

“야! 대체 무슨 일이냐니까!”

두 사람만 이야기를 주고받자 지수가 답답해 소리쳤다. 그제야 지수와 석현이 눈에 들어온 듯 아영의 얼굴에 당황함이 스쳤다.

“그냥 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난처해진 아영이 입만 달싹이자 수인이 등을 떠밀며 말했다.

아영은 수인에게 고맙다는 눈인사를 한 뒤 지수와 석현을 돌아보았다.

“미안해. 먼저 갈게.”

지수와 석현에게 빠르게 사과한 뒤 아영은 그곳을 나갔다.

셋만 남게 되자 지수가 팔짱을 끼며 수인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한수인, 너 똑바로 말해. 서준이가 누구야?”

수인은 마른침을 삼켰다.

***

아영은 무슨 정신으로 서울에서 제주도로, 그리고 병원으로 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다행히 바로 떠날 수 있는 비행기가 있어 타고 올 수 있었다는 것밖에는.

택시에서 내린 아영은 헐레벌떡 응급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응급실 안에는 비어 있는 침상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빠르게 서준을 찾는데 보이지 않자 아영은 입 안이 바짝 타들어 갔다.

서둘러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태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수신음이 한 번 울리자 곧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 수 없는 안도감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어디야. 나 응급실인데.”

[501호로 와.]

아영은 왜 서준이 응급실이 아닌 병실에 있는지 의아했지만 걸음은 어느새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501호 문 앞에 선 아영은 심호흡한 뒤 문을 열었다. 창밖을 보다 문 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그의 모습이 이상했다.

VIP 병실에는 두 사람뿐이었는데, 왼쪽 침상에는 서준이 잠들어 있었고, 오른쪽 침상에는 태하가 있었다.

분명 다친 사람은 서준이라고 들었는데 왜 붕대는 그가 감고 있는 건지 아영은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단 병실 안으로 들어온 아영은 서준부터 살폈다.

오른쪽 이마에 밴드가 붙여진 것 말고는 다행히 특별한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쳤다길래 붕대를 친친 감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던 아영은 안도감에 서준의 손을 꼭 잡았다.

잠결에도 엄마인 것을 알아차린 것인지 서준이 제 손을 꼭 잡는 걸 보며 아영은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눈을 빠르게 깜빡여 눈물을 떨쳐 냈다.

“어떻게 된 거야?”

서준과 달리 왼팔에 붕대를 감고 있는 그를 돌아보았다.

몸을 일으키려던 그는 다친 팔 때문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은지 리모컨을 이용해 침상을 세웠다.

“서준이 넘어지면서 같이 넘어졌어.”

“그게 무슨 말이야? 같이 넘어졌다니? 설마 둘이 같이 있었던 거야?”

아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같이 있었다기보다는.”

그가 잠시 말을 고른 뒤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곳을 지나다 우연히 서준이를 발견하고 차를 세웠는데, 서준이가 날 알아보고 달려오다 넘어졌어.”

다행히 둘이 같이 있었던 건 아니라는 얘기에 안도가 됨과 동시에 또 그가 서준의 정체를 알아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영은 더욱 불안해졌다.

“우리 동네엔 왜 또 온 거야?”

“…….”

“대체 뭘 알고 싶어 온 건데?”

“가려고 간 게 아니라…….”

“아니면?”

“그냥 드라이브 삼아 나갔는데 도착해 보니 네가 사는 동네였어.”

그녀의 입에서 비소가 샜다.

“지금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거야?”

“말이 안 된다는 거 알지만 사실이야.”

“너만 오지 않았다면 우리 서준이 다치는 일도 없었어.”

자책감 때문인지 미안함 때문인지 그의 얼굴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다시는 찾아오지 마. 또다시 찾아오는 날엔…….”

드르륵.

병실 문 열리는 소리에 말이 끊겼다. 놀라 고개를 돌리니 진도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병실에 있는 아영을 발견하고 서둘러 다가왔다.

“아니, 언제 왔어?”

“방금 왔어요.”

“연락받고 많이 놀랐지.”

진도 아주머니가 놀랐을 아영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영은 대답 대신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미안해. 내가 한눈만 팔지 않았어도…….”

“아니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서준이 봐주시는 것만으로 얼마나 감사한데요. 이번 일은 서준이 부주의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이 일이 있기 전에도 서준의 질주 본능 때문에 몇 번이나 주의를 시켰던 그녀였다.

하지만 진도 아주머니의 죄책감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것 같았다.

“피곤하실 테니 얼른 들어가 쉬세요.”

“서준이 깬 거 보고 가려고 했더니만.”

“허리 불편하시잖아요. 서준이 일어나면 제가 잘 말해 둘게요.”

“그려.”

그녀와 함께 병실을 나가려던 진도 아주머니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태하 씨, 몸조리 잘해요.”

“감사합니다.”

진도 아주머니의 말에 태하는 불편한 몸으로 깍듯하게 인사했다.

“퇴원하면 우리 집에 한번 들러요. 내가 맛있는 고기국수 말아 줄 테니까.”

“네. 그러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그녀의 마음은 불편했다.

태하가 서준의 아빠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집으로 초대하는 아주머니가 이해되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살얼음판 같은데.

아영은 아주머니가 야속했다.

택시 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진도 아주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해. 내가 서준이 잘 봤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런 말씀 마세요. 저랑 있을 때도 잘 다치는걸요.”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서준만 한 나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축구공처럼 예측할 수 없다는 것도.

“서준이 아빠, 너무 미워하지 말어.”

“네?”

“서준이 그만한 거 다 서준이 아빠 덕이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영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서준이 다친 게 권태하 잘못이 아니란 말인가.

“말해도 되나 모르겠네. 서준이 엄마 걱정한다고 서준이 아빠가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말씀해 주세요.”

간절한 그녀의 표정에 진도 아주머니는 못 이긴 척 입을 열었다.

“사실은 서준이 아빠, 차에 치였었어.”

“네? 그게 정말이에요?”

놀란 아영이 되묻자 진도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요구르트 아줌마랑 잠깐 얘기하는 사이 서준이가 아빠를 본 모양이야. 반가웠는지 내가 잡을 사이도 없이 막 뛰어가더라고. 그런데 갑자기 까만 차가 속력을 내면서 달려오는 거야.”

“골목길에서요?”

“내 말이. 그러더니 서준이를 보고도 속도를 안 줄이는 거야. 내가 놀라서 서준이를 불렀지. 그 소릴 듣고 뛰어간 서준이 아빠가 대신 차에 치인 거여.”

아영은 놀란 숨을 삼켰다.

“그 사람 팔 다친 게 서준이 때문이었던 거예요?”

“그래. 안고 넘어지면서 뼈에 금이 간 모양이야.”

아영은 당혹스러웠다. 그런 것도 모르고 그에게 왜 찾아왔냐고 다그치듯 화를 냈다.

그런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핏줄은 핏줄인가 봐. 본인 팔 다친 것보다 넘어지면서 다친 서준이 이마에 난 상처 보고 응급실에 들어서자마자 의사한테 서준이부터 봐 달라고 하더라니까.”

“그 사람이요?”

“그래. 그러니까 들어가면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

아주머니의 당부에 아영은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럼 그 차는 어떻게 됐어요?”

“하마터면 사람이 죽을 뻔했는데도 내려서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냥 내빼더라고.”

기가 막혔다. 사람이 다친 걸 보고 그냥 가 버렸다고? 이건 명백히 뺑소니였다.

“차 번호는 보셨어요?”

“나는 경황이 없어서 못 봤는데 서준이 아빠는 봤나 보더라고. 그런데 조회해 보니 없는 번호라는겨. 서준이 아빠 말로는 대포차인 것 같다던데.”

불법으로 사용된 차가 분명했다. 그러니 내리지도 않고 도망갔겠지.

“경찰에 신고는 하신 거죠?”

“응. 아까 병원으로 변호사랑 경찰이랑 왔다 갔어.”

다행이다. 곧 잡히겠지.

하마터면 제 목숨보다 소중한 서준이 크게 다칠 뻔했다. 아영은 꼭 뺑소니범이 잡혀 죄의 대가를 치르길 바랐다.

아주머니를 택시에 태워 보내드린 뒤 병실로 향하던 아영은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다칠 수도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를 위해 제 몸을 던졌다는 게 아영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서준이 자신의 아이라는 걸 눈치라도 챈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저를 보는 시선에서 별다른 기색을 발견하지 못했다.

정말 아주머니 말처럼 핏줄에 이끌리기라도 한 걸까?

그렇다 해도 아이를 싫어하는 그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게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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