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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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새끼가 나랑 헤어지래?”

“아니라고 했잖아!”

“그럼 뭣 때문에 곧 죽을 것 같은 얼굴인데!”

아영은 아니라는데 자꾸 저를 몰아붙이는 그에게 화가 나 소리쳤다. 그 역시 언성을 높이면서 차 안 분위기는 말 그대로 험악해졌다.

그녀는 그녀대로 씩씩거렸고, 그는 그대로 화를 삭이며 거친 숨을 골랐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먼저 물러난 건 그였다.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미안하다. 소리 질러서.”

그가 마른세수하며 사과했다.

뜻밖의 사과에 아영이 돌아보자 그가 가만히 그녀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은 그녀가 툭 던졌다.

“한잔할래?”

***

“오늘 청첩장 받았어.”

아영이 제 잔에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태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가에 힘이 들어갔다.

쪼르륵 소리와 함께 물처럼 투명한 술이 잔에 넘치듯 찼다. 아슬아슬 넘치기 직전 아영이 소주병을 탁 세웠다.

혼자서 소주 한 병을 비운 터라 그녀는 꽤 취해 있었지만 그만둘 생각은 없어 보였다.

반면에 그는 처음 받아 놓은 잔 그대로였다.

“그래서 갈 거야?”

그의 질문에 아영은 대답 대신 소주잔을 들어 올렸다.

잔에 가득 담겨 있던 소주가 넘쳐 그녀의 손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입에 털어 넣었다. 술이 쓴지 그녀의 예쁜 미간이 찌푸려졌다.

“혼자 갈 자신 없으면 같이 가 주고.”

“됐어.”

아영이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는 듯 딱 잘라 거절했다.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혼자보다는 둘이 나을 텐데.”

“그랬다가 너랑 나 같이 있는 거 사진이라도 찍히면?”

“이참에 밝히지 뭐.”

마치 제 일이 아니라는 듯 말하는 그를 아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연예인들은 인기 떨어질까 봐 다들 숨어서 연애한다는데 넌 상관없어?”

“너무 스캔들 없어도 게이라는 소문 도는 건 마찬가지야. 적당한 스캔들이 오히려 약이 될 때도 있어.”

적당한 스캔들. 아영은 쓰게 웃었다.

“고맙지만 사양할게. 내 사생활이 까발려지는 거 싫거든.”

“단지 그 때문이야?”

아영은 그것 말고 달리 뭐가 있겠냐는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마음 바뀌면 언제든 말해.”

“그럴 일 없어.”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지.”

태하가 한쪽으로 얼굴을 기울이며 빤히 쳐다보았다. 그 모습이 어딘가 나른하고 위험해 보여 아영은 입 안이 말라 왔다.

그가 시선을 피할 생각이 없어 보이자 아영은 그의 시선을 피할 목적으로 술병을 들었다.

한 잔 가득 따라서 그대로 들이켰다. 작은 입에 다 담기지 못한 술이 입가로 흘러내렸다.

“칠칠치 못하긴.”

아영이 닦기도 전에 태하가 손을 뻗어 흘러내린 술을 훔쳤다. 그러고는 제 손가락에 묻은 술을 제 입 속으로 집어넣더니 느릿하게 빨았다.

쓰디쓴 술이 달콤한 시럽이라도 되는 것처럼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홀린 듯 쳐다보던 아영의 입 속에 침이 고였다.

꿀꺽. 침을 삼킨 그녀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그 모습을 좇던 그의 다갈색 눈동자가 검게 물들었다.

도망가.

위험을 감지한 그녀의 본능이 경고했다.

“미안하지만 그만 가 줘. 쉬고 싶…… 앗!”

아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무릎을 세우자 그가 그녀의 팔목을 확 잡아당겼다.

균형을 잃은 그녀의 몸이 기우뚱하며 그의 몸 위로 풀썩 쓰러졌다. 그는 그대로 몸을 굴려 그녀를 바닥에 눕혔다.

“뭐, 뭐야?”

당황한 아영이 그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에게 양손이 붙잡힌 아영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왜 일주일 동안 아무 연락도 하지 않은 줄 알아?”

“일부러 안 했다는 거야?”

“네 목소리 들으면 당장 달려오고 싶을까 봐 참았어. 오면 또 밤새 널 괴롭히게 될 테니까.”

나를 위해서였다고?

아영은 그런 이유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바빠 저를 잊은 거라 생각했다.

“그런 내 속도 모르고 다른 새끼 때문에 괴로워하는 네 모습을 보는 내 속이 얼마나 뒤집히는지 알아?”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아영이 시선을 돌리자 그걸 용납하지 않은 태하는 그녀의 턱을 잡아 다시 저를 보게 했다.

“이러면 내가 애써 참은 보람이 없잖아. 안 그래?”

“참으라고 한 적 없어.”

“그래서 앞으로는 안 참으려고. 네 머릿속에 그 새끼 생각이 끼어들 틈도 없이 주야장천 할 거니까 각오해.”

“뭐…… 훕!”

그의 입술이 사납게 짓눌렀다. 아영이 그를 막아 보려 이를 다물려 했지만 이미 그의 혀가 파고든 뒤였다.

거침없이 밀고 들어온 그의 혀는 그녀의 입 안을 거칠게 헤집었다.

두 사람의 혀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얽히고설켰다.

“읏.”

서로의 타액이 뒤섞여 입 안 가득 고이자 그걸 게걸스럽게 삼킨 그가 얼굴을 내려 그녀의 목덜미를 물었다. 그러자 그녀의 몸이 튕기듯 튀어 오르며 신음을 토해 냈다.

그녀의 여린 살갗을 깊게 빨아 당기자 붉은 자국이 생겼다.

그걸 만족스러운 눈으로 확인한 태하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아래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동안에도 자신의 흔적을 곳곳에 새겼다.

그러는 동안에 그의 다른 손은 그녀의 블라우스를 빠르게 벗겼다.

순식간에 양쪽으로 벌어진 블라우스 사이로 브래지어에 둘러싸인 그녀의 가슴이 드러났다.

그의 입술이 홀린 듯 베어 물었다.

거친 손과 달리 촉촉한 부드러움이 닿자 좀 전과 다른 자극에 아영이 흐느꼈다.

그녀의 손에서 힘이 빠진 걸 느낀 태하는 붙들고 있던 그녀의 손을 풀어 주었다.

그를 밀쳐 낼 줄 알았던 그녀의 손은 오히려 그의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들어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태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맛보는 데 집중했다.

실컷 물고 빨고 핥던 그의 입술이 다시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떠났다. 그녀의 손이 아쉽다는 듯 딸려 왔다.

“하앗!”

그녀의 손가락에 하나하나 입 맞추며 달래던 태하는 이내 가장 깊은 곳으로 찾아들었다.

갑작스러운 손길에 당황했는지 그녀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태하는 부드러운 키스로 그녀의 신경을 돌렸다.

키스가 짙어질수록 그녀의 몸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자 태하는 재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이미 키스로 녹아내린 그녀는 순식간에 그에게 함락당했다.

눈을 떴을 때 그는 가고 없었다.

혼자 덩그러니 남은 기분이 얼마나 엿 같은지 아영은 그때 처음 알았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마치 씹다 버린 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씻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온몸의 근육이 아우성을 쳤다. 잘 쓰지 않는 근육을 밤새 썼으니 멀쩡할 리 없었다.

아영은 신음을 뱉으며 욕실로 들어갔다.

“하아.”

거울을 보자마자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마치 그녀의 몸이 개 껌이라도 된 듯 그가 씹어 댄 흔적이 여기저기 적나라하게 보였다.

다른 곳은 옷으로 가릴 수 있어 그나마 상관없는데 가릴 만한 옷이 없는 목이 문제였다. 겨울이 아니라 목폴라를 입을 수도 없었다.

난감함에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아영은 샤워기 레버를 올렸다.

결국, 아영은 목을 가릴 만한 마땅한 옷을 찾지 못해 지각하고 말았다. 헐레벌떡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10분이 지난 뒤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주임님, 오셨어요? 막 전화하려던 참이었는데.”

아영이 묵례를 하고 들어서자 막내 연수가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등 뒤로 진혁의 따가운 시선이 따라붙었다.

“어머, 주임님 목에…….”

아영이 책상 위에 가방을 내려놓은 뒤 컴퓨터를 켜는데 연수가 놀란 듯 그녀를 불렀다.

아영이 고개를 돌리자 연수가 커다래진 눈으로 제 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연수가 가리킨 곳에 손을 가져다 댄 아영은 목에 두른 스카프가 흘러 내려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로 인해 감추고 있던 키스 마크가 드러났다는 것도.

아영은 낭패감에 휩싸였다.

황급히 흘러내린 스카프를 다시 목에 감은 아영과 연수의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연수 씨! 이리 와 봐!”

“네.”

그때 그녀의 동기인 현주가 다급히 연수를 불렀다. 연수가 자리를 뜨자 아영은 속으로 안도했다.

“자기도 권태하 팬이라고 했지.”

“네. 왜요?”

갑자기 태하 이름이 튀어나오자 아영은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이 기사 봤어?”

“무슨 기사요?”

“권태하 연애하나 봐.”

숨죽이고 있던 그녀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말요?”

연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이거 봐 봐. 사진까지 실렸다니까.”

“헐! 말도 안 돼!”

연수가 현주의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이내 충격을 받았는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영은 떨리는 손으로 연예 기사를 클릭했다. 그러자 첫 화면에 그에 관한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떴다.

「세계적인 톱모델, 대니얼 권의 숨겨진 연인은 누구?」

자극적인 글과 함께 그녀의 집 앞에서 찍힌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그의 차에서 얘기하는 장면과 내려서 그녀의 집으로 나란히 들어가는 장면까지 총 네 장이 실렸다.

다행히 그녀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되어 나오긴 했지만 댓글에는 벌써 그녀가 누구일지, 사진이 찍힌 곳이 어디일지 유추하느라 다들 혈안이 돼 있었다.

그 말인즉슨 그녀가 누구인지, 그 집이 어디인지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뜻이었다.

그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기사가 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영은 너무 안일했던 제 행동에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RRRRR. RRRRR. RRRRR.

그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에 태하의 이름이 찍힌 걸 본 아영은 조용히 핸드폰을 들고 사무실 밖으로 나와 비상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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