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그때 태하가 자리에서 번쩍 일어났다. 그러더니 창가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테이블에 있던 티슈 케이스를 가져왔다.
“이걸로 닦아.”
“괜찮은데. 암튼 고마워.”
아영이 티슈 케이스를 받으며 말했다.
“내가 신경 쓰여서 그래.”
다시 그녀 맞은편 자리로 돌아온 그가 툭 내뱉었다.
이 정도로 신경 쓰인다고 하는 걸 보면 깔끔한 성격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한 아영은 흘러내린 탄산수를 티슈로 꼼꼼히 닦았다. 턱밑에서부터 쇄골까지.
하지만 그 아래는 내려갈 수가 없었다. 그 앞에서 블라우스 안까지 닦을 수는 없었으니까.
찝찝함을 참으며 고개를 든 아영은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그의 시선과 마주치자 내심 당황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걸까?
“씻을래?”
갑자기 씻겠냐는 그의 말에 아영의 두 눈이 놀라 커졌다.
설마 벌써 시작하자는 걸까?
아직 아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제대로 못 닦은 거 같아서.”
“아니, 괜찮아.”
그가 그녀의 블라우스 앞섶을 힐끗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 열기가 고이자 예민한 살갗이 곤두서는 게 느껴졌다. 아영은 옷에 가려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른손으로 왼쪽 팔을 감쌌다.
그의 입꼬리가 설핏 올라갔다. 마치 그녀가 왜 팔을 가리는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어차피 벗을 거잖아.”
그녀의 블라우스에서 시선을 뗀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밤을 집어삼킨 것처럼 짙은 욕망이 드리워진 시선이 그녀를 움켜쥐었다.
그의 노골적인 눈빛에, 아영은 시작됐다는 걸 깨달았다.
“꼭 벗어야 해?”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도발이 재밌다는 듯 그가 피식 웃었다.
“벗기 싫으면 안 벗어도 돼.”
거리낌 없는 그의 말에 아영은 귓불이 달아올랐다.
“그런데 몰랐네. 그런 취향인 줄은.”
“없어. 그런 거.”
경험조차 없는 그녀에게 취향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뭐 차차 알아보면 되겠지.”
그렇게 내뱉은 그는 대화의 종료를 알리듯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를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도 이끌리듯 따라 올라갔다.
성큼성큼 제게 다가오는 그를 보며 아영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거리를 좁혀 올수록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의 호텔까지 온 마당에 빼는 것도 우스워 그럴 수도 없었다.
아영은 제 다리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곧 그의 무게에 짓눌린 소파가 묵직하게 가라앉더니 이내 단단한 허벅지가 닿았다. 고의성이 다분했다.
그의 다리와 맞닿은 곳이 뜨겁고 간질거렸다.
처음 느끼는 감촉이 낯설었다. 좋은 것 같으면서도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자세를 바로잡는 척하며 그와 간격을 벌리려던 아영은 때마침 제 목덜미를 감싼 그의 커다란 손길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겁낼 거 없어.”
놀란 아영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자 그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러더니 목덜미를 움켜쥔 손으로 팔딱거리는 혈관을 찾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는 이내 지그시 누르듯 문질렀다. 마치 놀란 혈관을 달래려는 듯이.
그러자 신기하게도 빠르게 뛰던 혈관이 차츰 안정되어 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착각이었다. 그의 손길이 닿은 곳에 서서히 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이내 열꽃이라도 피어난 것처럼 온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신기해.”
“뭐가?”
열기에 잠식된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너하고 이러고 있다는 게.”
그녀도 몰랐다. 감히 진혁과 하지 못했던 행동을 태하와 하게 될 줄은.
하지만 후회하진 않았다. 어차피 누군가와 하게 될 처음이었다.
그 처음을 제 첫사랑이었던 태하와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흣!”
그 순간 그의 잘 다듬어진 손톱이 그녀의 얇은 살갗을 쓱 긁었다.
그가 긁었던 곳에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전율이 일자 그녀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아파?”
그의 걱정 어린 어조에 아영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프지 않았다. 다만 처음 느끼는 아찔한 자극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뿐.
그녀가 아파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아챈 그가 다른 손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시선이 제게 향하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를 옭아맸다. 벗어나지 못하게.
아영은 보이지 않는 줄에 묶인 것처럼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시선이 오롯이 제게 향하자 기분이 좋은지 그의 입술 끝이 말려 올라갔다. 차갑게만 보이던 그의 표정이 일순 부드러워졌다.
처음 보는 그의 모습에 아영은 얼떨떨했다.
그녀 기억 속의 그의 표정은 차갑거나 무표정할 때가 많았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갈증이 일었다.
몸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된 갈증이 그녀의 입술을 마르게 했다. 수분이 필요했던 아영은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였다.
그건 아주 짧은 찰나였다. 하지만 그를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욕망이 배었다.
“키스해도 돼?”
그가 내리뜬 눈으로 그녀의 입술을 핥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겉으로는 묻고 있었지만 눈빛은 이미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키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뜨거웠다.
룸으로 들어선 순간, 이런 상황이 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닥치니 제 몸을 잠식하고 있는 열기와 다르게 두려움이 일었다.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할 거야?”
“어. 그러니까 잘 생각하고 말해. 우리가 키스하는 순간, 더는 친구가 될 수 없으니까.”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하룻밤 잔 남자를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는 뻔뻔한 성격은 못됐으니까.
“상관없어. 난 지금 친구보다 남자가 필요해.”
그녀의 말을 들은 그의 눈빛이 일순 무겁게 가라앉더니 이내 차갑게 빛났다.
“좋아. 기꺼이 응해 주지.”
“흡!”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의 목덜미를 움켜쥔 그가 입술을 집어삼켰다.
그녀의 입술 사이를 가르고 들어온 그의 혀가 마치 그녀의 입 안이 제 것인 양 헤집었다.
고른 치열을 핥고, 둥근 천장을 따라 그리듯 훑어 내린 그는 말캉한 혀가 닿자 깊게 휘감고는 사정없이 빨아 당겼다.
“흐읏.”
그의 강한 흡인력에 뿌리가 뽑힐 듯한 아찔한 통각이 일자 그녀의 입에서 얕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녀의 숨결까지 삼킬 듯 몰아치던 그의 입술이 떨어져 나갔다.
입술을 짓누르던 뜨거운 열감이 사라지자 감겨 있던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며 올라갔다.
차양처럼 길게 내려온 그녀의 속눈썹 사이로 욕망으로 혼탁해진 그의 검은 눈빛과 마주쳤다.
“멈추지 마.”
아영의 말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그의 눈빛이 번뜩이더니 그녀가 입고 있던 블라우스를 잡아 올렸다.
투명하리만치 새하얀 피부를 감싸고 있는 살굿빛 브래지어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본 태하의 눈빛이 검다 못해 붉게 변하더니 이내 얼굴을 내렸다.
아찔한 계곡 사이의 향긋한 꽃 내음을 만끽하듯 숨을 깊게 들이켰다.
가슴 위로 부드러운 파도가 밀려왔다가 세차게 씻겨 내려가길 반복했다. 처음 느껴 본 생소한 자극이 휘몰아치자 그녀의 등이 활처럼 휘었다.
파도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점점 더 그녀를 삼켜 갔다.
툭툭 불거진 갈비뼈를 지나 평평한 평야 같은 복부를 지나자 작은 배꼽에 다다랐다.
배꼽 주위에 키스를 흩뿌리던 그는 이내 그녀가 입고 있던 바지 훅을 끌렀다. 지퍼를 내린 뒤 바지와 함께 속옷을 잡아 내렸다.
“앗!”
제 몸을 가려 주던 옷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아영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다리 사이를 가렸다.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던 태하가 천천히 상체를 숙였다.
그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자 아영은 떨리는 숨을 삼켰다.
하지만 배에 닿을 거라 생각했던 그의 입술은 수줍게 가리고 있는 그녀의 손등 위에 닿았다.
그의 입술이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 닿자 아영은 놀라 움찔 떨었다.
그녀의 떨림을 고스란히 느낀 태하는 괜찮다는 듯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촉. 촉. 사뿐히 닿았다가 떨어지길 반복하더니 이내 혀를 내밀어 둥글게 핥아 올렸다.
감각적인 자극에 아영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더니 힘이 들어갔다.
오므려 있던 손끝이 길게 뻗치자 태하는 그 손가락 하나하나에 키스했다.
아영은 뜨거운 초콜릿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손가락 끝이 녹아 버릴 것 같았다.
태하는 스르르 힘이 빠진 그녀의 손을 자연스럽게 떼어 내더니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어느새 부끄러움이 사라진 듯 아영은 더는 가리지 않았다.
태하는 그녀의 두 손을 잡아 머리 위로 고정한 뒤 달뜬 숨을 내쉬고 있는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키스의 농도가 짙어지자 태하는 마치 꽃을 찾아 떠나는 벌처럼 빠르게 목적지로 향했다.
곧이어 원하는 곳에 도착하자 흐드러지게 핀 꽃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흣.”
“천천히 숨 쉬어.”
그녀의 입술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이던 그는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자신을 새겨 넣었다.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넓혀 갈 때마다 그녀의 호흡은 점점 가빠졌다.
태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꽃내음이 진동하는 꿀을 한껏 들이켰다.
“아, 안 돼!”
아찔한 감각이 파고들자 화들짝 놀란 그녀가 그를 밀어냈다.
하지만 그곳에 이미 뿌리를 내린 듯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영은 몸속에 휘몰아치는 뜨거움에 어쩔 줄 몰라 몸부림쳤다.
부드러우면서도, 간지럽고, 집요하면서도 뜨겁고, 온몸의 감각을 긁는 듯한 날것 같은 애무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사이 빠르게 자신의 옷을 벗어 던진 그가 그녀 사이에 자리를 잡은 뒤 허리를 곧추세웠다.
완벽한 준비가 이뤄지자 태하가 눈을 맞췄다.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듯.
잘게 떨리던 그녀의 눈동자가 고요하게 흐르자 태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영은 자신을 향해 밀려오는 파도를 보며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처음에 조금씩 밀려오던 파도는 점점 깊고 빠르게 그녀를 덮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