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아침부터 어딜 갔다 와?”
“아, 자, 장례비 결제하고 왔어.”
수인이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서는 아영을 보고 다가왔다. 아영은 경직되었던 얼굴을 억지로 풀며 답했다.
“부지런도 하다. 그런데 돈은 안 부족했어?”
“어? 어.”
“다행이다. 조의금보다 많이 나왔을까 봐 걱정했는데.”
“그러게.”
수인이 가슴에 손을 올리며 안도하는 모습에 아영은 씁쓸함을 감추며 대답했다.
“그런데 너희 아버지랑 같이 갔어?”
“어? 아니. 왜?”
아영은 혹시나 수인이 제 아버지가 조의금을 훔쳐 도망간 걸 눈치챘나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침 식사 드시라고 찾았는데 안 보이시길래 혹시 너랑 같이 가셨나 했지.”
“아, 그게…… 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기셔서 먼저 가셨어.”
“그래?”
수인은 궁금한 게 많은 눈치였지만 난처함이 깃든 그녀의 얼굴을 보고 더는 묻지 않기로 했는지 서둘러 말을 바꾸었다.
“암튼 밥부터 먹어. 곧 화장장으로 출발해야 하니까.”
아영은 입 안이 껄끄러워 도저히 밥이 넘어갈 것 같지 않았지만 수인이 애써 차려 준 상을 물릴 수 없어 자리에 앉았다.
“내 밥도 있을까?”
컥. 콜록! 콜록!
당연히 돌아갔을 줄 알았던 태하의 목소리에 막 국물을 삼키던 아영은 그만 사레에 들리고 말았다. 매운 국물이 목에 걸리자 아영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영아, 괜찮아?”
얼굴이 벌게지도록 기침을 하는 아영의 모습에 놀란 수인이 물이 담긴 잔을 내밀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영은 서둘러 물을 들이켰다. 거센 기침이 점차 줄어들자 아영은 젖은 눈가를 닦았다.
“나 때문에 사레들렸다면 미안.”
자연스럽게 그녀 맞은편에 자리 잡은 태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마치 오늘 그녀를 처음 본 것처럼.
아영은 당혹스러웠다.
그도 그럴 게 그녀가 장례비를 결제하고 돌아왔을 때 태하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가 장례식장에 먼저 갔을 거라 생각하고 왔지만 이곳에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카드를 돌려줄 게 걱정이긴 했지만 오늘은 더는 그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했었다.
“안 보여서 돌아간 줄 알았어.”
“실망하게 해서 미안하지만 전화 통화하고 오는 길이야.”
수인이 그녀 대신 밥과 국을 챙기러 간 사이 아영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태하는 마치 그녀의 생각을 꿰뚫어 본 것처럼 말했다.
제 생각을 들켜 민망해진 아영은 재빨리 시선을 내리깔았다. 태하의 입술이 피식 기울어졌다.
때마침 석현과 식후 담배를 피우고 온 지수가 태하를 발견하고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처럼 쪼르르 달려왔다.
“이게 누구야? 권태하, 오늘 촬영 있다고 하지 않았어?”
“장소 섭외에 문제가 생겨서 내일로 미뤄졌어.”
“뭐야, 그럼 너도 봉안당까지 가는 거야?”
“그러려고.”
태하의 말에 먹지도 않을 시뻘건 육개장 국물만 숟가락으로 휘젓던 아영의 움직임이 일순 멈췄다.
아영은 제 귀를 의심했다. 제 엄마의 장례식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찾아온 것도 놀라운데 봉안당까지 따라가겠다는 그의 말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영이 뜨악한 시선으로 쳐다보자 태하는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이따 버스 탈 때 네 옆자리 내가 앉아도 돼?”
그때 태하 옆에 앉은 지수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미안. 어제 잠을 못 자서.”
“그, 그래. 알았어.”
태하가 조용히 혼자 가고 싶다는 기색을 내비치자 해맑던 지수의 얼굴이 금세 풀이 죽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석현은 주인에게 버림받은 강아지 꼴인 지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수인이 쟁반에 밥과 육개장을 들고 왔다.
“외국 생활 오래 해서 입에 맞을지 모르겠다.”
수인이 그녀 맞은편에 앉은 태하 앞에 밥과 육개장을 놔주며 말했다. 그러자 태하가 숟가락을 들며 말했다.
“미국에서 한국 식당 자주 갔어.”
“그래? 왠지 넌 레스토랑만 갈 것 같았는데. 의외다.”
“보기보다 나, 의외인 구석 많아.”
마치 그 말은 수인이 아닌 저에게 하는 말 같아 아영은 가슴이 뜨끔했다.
석현과 지수가 서로 맞장구치며 말하는 동안에도 태하의 시선은 줄곧 그녀에게 향해 있었다.
그 따가운 시선에 아영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15분 뒤, 화장장에 갈 버스가 도착했다는 소리에 아영은 입에도 대지 않은 숟가락을 미련 없이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장으로 출발하기 직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보슬보슬 오던 비는 발인할 때쯤 장대비로 바뀌었다.
관을 운구차에 실은 뒤 버스에 올라탄 사람들은 흠뻑 젖은 옷과 머리를 털며 ‘뭔 놈의 비가 이리도 온다냐’라며 투덜거렸다.
그때 누군가 ‘순옥이가 비를 참 좋아했는데, 가는 날에 이렇게 비가 오니 참 좋아하겠네’라며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불평을 늘어놓던 사람들의 말소리가 쏙 들어갔다.
그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아영의 입가가 잘게 떨렸다.
몰랐다. 엄마가 비 오는 걸 좋아할 줄은.
왜냐하면, 그녀는 비 오는 날이 세상에서 제일 싫었으니까.
비가 오면 천장에서 떨어지는 비를 받기 위해 집에 있는 양동이를 죄다 늘어놓아야 했다.
지대가 낮아 자주 하수구 물이 역류해 집으로 들어오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밤새 더러운 구정물을 퍼야 했다.
그러고 나면 잠잠했던 곰팡이 꽃들이 일제히 피어나 벽지를 가득 메웠고, 쾌쾌하고 눅눅한 냄새가 밴 옷은 빨아도 빨아도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그랬기에 엄마 또한 비 오는 날을 싫어할 줄 알았다.
어떻게 25년을 함께 살았는데 남보다 엄마에 대해서 더 모를 수 있을까?
그동안 제가 얼마나 엄마에게 무관심하고, 이기적이었는지 깨달은 아영은 자책감에 눈물이 울컥울컥 차올랐다.
아영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차올랐던 눈물이 흐르지 못하고 눈언저리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렸다.
젖은 숨을 삼켰다. 하지만 목에 걸린 숨이 내려가지 않고 턱 막혀 아영은 다급히 또 한 번 숨을 삼켰다.
어렵사리 넘어간 숨과 함께 억지로 참았던 눈물이 결국 볼을 타고 흐르고 말았다.
입술을 앙다문 아영은 창밖을 보는 척하며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그사이 더 굵어진 빗방울은 쉴 사이 없이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마치 나 여기 있으니 나 좀 보라는 듯이 애처롭고 서글프게.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그러자 둑이 터진 듯 순식간에 범람한 눈물이 그녀의 얼굴을 온통 적셨다.
“아영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작게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어깨가 들썩이자 옆자리에 앉은 수인이 놀라 물었다.
그러나 아영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롭고 슬퍼 보여 수인조차도 울컥했다.
수인이 아는 아영은 강했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의연하게 대처하던 아영이었다. 그래서 슬픔도 잘 참는 거라 여겼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숨죽여 우는 아영의 모습은 마치 그동안 견고히 쌓아 왔던 그녀 안의 무언가가 무너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때 건너편 좌석에 앉은 태하가 수인의 팔을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수인이 고개를 돌리자 태하가 조용히 손수건을 건넸다.
수인은 고맙다는 눈인사를 한 뒤 아영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양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소리 죽여 울고 있던 아영은 수인이 내민 손수건에 눈물을 쏟아 냈다.
테두리에 금빛 자수가 놓인 손수건이 금세 그녀의 눈물로 젖어 들었다.
빗소리에 묻힌 그녀의 숨죽인 통곡은 버스가 멈춰서야 가까스로 끝이 났다.
화장장에서 화장을 마치고 봉안당에 도착했다.
유골함을 안치단에 올리자 몇몇 사람은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아영은 붉어진 눈으로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말없이 쳐다만 보았다.
아영이 버스 안에서 숨죽여 운 줄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끝까지 눈물 한 방울도 안 흘리냐’며 독하다고 뒤에서 수군거렸다.
그러면서 남편 복도 없더니 자식 복까지 없다며, 죽은 그녀의 엄마가 불쌍하다며 혀를 찼다.
“아니, 저 사람들이 진짜…….”
“내버려 둬. 틀린 말도 아니니까.”
옆에서 보다 못한 수인이 나서서 한마디 하려 하자 아영이 말렸다.
“야. 뭐가 틀린 말이 아니야. 네 엄마가 끌어다 쓴 사채 갚으려고 몇 년 동안 네가 얼마나 개고생했는지 알면 저런 소리 못 하지.”
“그래서 벌 받았나 봐.”
“뭐?”
“가끔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고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아영이 슬픔에 잠식된 얼굴로 나직하게 뇌까렸다.
“이아영, 그런 생각 하지 마. 네가 잘못해서 벌 받은 게 아니라 그냥 우연히 벌어진 일일 뿐이야.”
하지만 수인의 말에도 그녀는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봉안당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떠날 줄 알았던 태하는 끝까지 남아서 뒷정리하는 걸 도와주었다.
아영은 그런 태하가 부담스럽고 껄끄러웠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고마웠다.
그도 그럴 게, 불청객이라고 생각했던 태하는 장례식장에서 발인하여 관을 운구 차량으로 옮길 때도, 화장장에 도착해서도 석현과 맨 앞에 섰다.
그 모습을 보는데 마음 한구석이 든든했다. 그에게 남아 있던 미움이 고마움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다들 와 줘서 고마워.”
뒷정리가 모두 끝나자 아영은 친구들을 향해 말했다. 저 혼자였다면 아마 구석에 처박혀 울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고맙긴. 친군데 당연히 와야지.”
수인이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지수가 불쑥 끼어들었다.
“맞아. 고마워할 거 없어. 어차피 너도 우리 부모님 돌아가시면 올 거잖아. 서로 상부상조하는 거지.”
“어이구. 넌 꼭 말을 그렇게 해야겠니?”
“내가 뭐?”
수인의 눈을 흘기며 타박하자 지수는 억울하다는 듯 눈썹을 내려트렸다.
“둘 다 진정하고. 오랜만에 태하도 왔는데 다 같이 한잔 어때?”
“당근 좋지!”
불퉁하게 입이 나와 있던 지수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을 반짝이며 찬성했다.
“태하 넌 시간 돼?”
석현의 질문에 태하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수인과 아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너희는?”
“난 괜찮은데…….”
수인이 운을 떼며 아영을 쳐다보았다. 덩달아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그녀만 응하면 오늘 술자리가 성사되는 거였다.
“미안하지만 난 빠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