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82)

10

“내가 네…… 아빠다.”

“네? 그게 무슨…….”

아영은 순간 누군가 제 머리를 내려친 것처럼 띵했다.

“놀랐지? 그래, 놀랐을 거다. 나도 네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데 넌 오죽하겠니. 그동안 연락 못 해서 정말 미안하구나.”

남자가 회한 섞인 눈빛으로 말했다.

“거짓말하지 말아요. 25년 만에, 그것도 엄마 장례식장에 나타나서 제 아빠라고요? 그 말을 누가 믿을 것 같아요?”

아영은 눈앞의 남자가 제 아빠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스물다섯 살이 되도록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녀가 아무리 아빠가 보고 싶다고 떼를 써도 순옥은 절대 보여 주지 않았다. 사진조차도.

그러자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양복 안주머니에서 사진 몇 장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게 그 증거다.”

남자가 내민 사진에는 그녀의 어릴 적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걸 어떻게 가지고 있는 걸까? 정말 눈앞의 남자가 제 아버지가 맞는 걸까?

아영이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자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엄마가 살아 있는 동안 몇 번이나 널 만나려고 했지만 번번이 네 엄마가 거절하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단다.”

“그런 소린 엄마한테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어요.”

“그랬겠지. 네 엄마는 지독히도 날 싫어했으니까.”

남자가 씁쓸한 표정으로 내뱉었다.

“그게 엄마 탓이라는 건가요? 임신했다는 말에 도망간 남자를 어느 누가 좋아할 수 있겠어요? 안 그래요?”

“그때는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나이가 어리기도 했고.”

“임신한 엄마도 똑같이 어렸어요.”

아영은 남자가 내세운 핑계에 어이가 없었다.

“내가 죽을죄를 지었다. 내 어리석음 때문에 네 엄마 혼자 얼마나 고생했을지 생각하면…….”

남자의 침통한 표정에도 아영의 마음은 서늘하기만 했다.

“이제 와서 이런다고 달라질 건 없어요. 그러니 돌아가세요.”

“염치없이 네가 용서해 주길 바라서 이러는 게 아니야. 마지막으로 네 엄마에게 참회라도 하고 싶구나. 흐흑흑.”

고개를 떨군 남자가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한번 터진 눈물이 제어되지 않는지 남자의 어깨가 들썩였다.

“순옥아, 미안하다. 흐윽. 나 같은 놈 안 만났으면…… 좋은 집에 시집가서 행복하게 살았을 건데…… 왜 하필 나 같은 놈을 사랑해서…… 혼자 외롭게 가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크흐흐흑.”

주정 같은 남자의 통곡에 어느새 아영의 눈에도 눈물이 차오르더니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동안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었다.

엄마 곁을 무책임하게 떠나서 원망했고, 아버지라고 부를 기회를 빼앗아서 원망했고, 친구들에게 아버지 없는 애라고 놀림받게 해서 원망했고, 돈이 없어서 혼자 쩔쩔매는 엄마를 볼 때마다 원망했다.

하지만 아이처럼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 아영은 그동안 쌓아 왔던 아버지를 향한 원망이 조금씩 휘발되는 걸 느꼈다.

한참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던 그녀의 아버지는 다른 손님이 오고서야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영은 빈 테이블에 아버지를 앉힌 다음 직접 상을 차렸다.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는 아버지 모습이 또 짠해 울컥했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원망하고 미워했던 아버지였지만 단 하루 만에 아버지로 받아들이는 자신을 보며 이게 핏줄의 힘인가 싶었다.

뒤늦게 일을 마치고 장례식장으로 돌아온 친구들에게 아영은 아버지를 소개했다.

뜻밖의 소식에 친구들은 깜짝 놀랐지만 이내 아영에게 다시 가족이 생겼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지막 날 새벽 4시.

아영은 목이 말라 잠에서 깼다.

빈소 옆에 있는 작은 방문을 열고 나오자 신발장 앞에 엉거주춤 서 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불이 다 꺼진 상태였지만 출구 앞에 있는 비상등 때문에 누구인지 식별할 수 있었다.

“거기서 뭐 하세요?”

“어? 아, 잠이 안 와서 담배 좀 피우고 왔다.”

담배를 피우셨구나. 담배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아서 몰랐다.

“그런데 너는 왜 나온 게냐?”

“아, 목이 좀 말라서요.”

아영이 정수기 쪽으로 걸어가 컵에 물을 받았다. 그녀가 물을 다 마실 때까지도 아버지, 진섭은 움직이지 않았다.

“안 주무시게요? 이따 화장장에 갔다가 봉안당까지 다녀오시려면 피곤하실 텐데.”

컵을 싱크대에 내려놓은 아영이 여전히 입구 쪽에 서 있는 진섭에게 물었다.

“이제 문단속하고 들어가야지.”

“제가 할게요.”

“아니다. 이런 건 아비가 할 테니 넌 어여 들어가서 눈 좀 더 붙이거라. 먹는 것도 영 신통찮던데 잠까지 못 자면 쓰러진다.”

아영이 다가가자 진섭이 손사래까지 치며 막았다.

대화할 때마다 매사 욕뿐이던 엄마와 달리 저를 걱정하는 진섭의 말이 아직은 어색하면서도 그리 싫지는 않았다.

“네. 그럼 들어가 볼게요.”

아영이 다시 잠자리에 들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가자 혼자 남은 진섭은 숨을 몰아쉬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알람 소리에 눈을 떴을 때는 7시였다. 친구들은 깊이 잠이 들었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아영은 밤새 흐트러졌던 머리를 단정하게 다시 묶은 뒤 이불을 정리했다.

9시에 화장장으로 출발해야 했기에 그 전에 간단하게 식사를 한 뒤 뒷정리를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밖에서 자고 있을 줄 알았던 진섭이 보이지 않았다.

이불과 베개는 한쪽에 잘 개켜져 있는 걸 보니 담배라도 피우러 간 모양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아영이 수건과 칫솔을 챙겨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입구 반대편에 있는 책상이 어수선해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누가 실수로 떨어트렸나?’

바닥에 방명록과 빈 봉투와 펜이 아무렇게나 나동그라져 있었다. 아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것들을 집어 올렸다.

그때 그녀의 눈에 단단히 잠겨 있어야 할 조의금을 넣어 둔 서랍 문이 열려 있는 게 보였다.

‘분명 열쇠가 채워져 있었는데…….’

이상한 생각이 든 아영은 서둘러 서랍을 열었다. 그런데 있어야 할 조의금이 담긴 봉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영은 피가 빠르게 식는 기분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설마 누가 훔쳐 간 걸까?’

하지만 서랍이나 열쇠가 망가져 있지는 않았다. 마치 누군가 열쇠로 직접 열어서 가져간 것처럼.

설마!

순간 머리 위로 번개가 치듯 떠오른 생각에 서둘러 신발을 꿰어 신은 아영은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막 들어서는 누군가와 부딪히는 바람에 몸이 휘청했다.

균형을 잃은 그녀의 몸이 뒤로 넘어지려는 찰나 크고 단단한 손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다행히 넘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감은 눈을 뜨자 놀랍게도 눈앞에 태하가 서 있었다.

아영은 꿈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직 잠이 덜 깨서 헛것이 보이는 거라고.

“네가 어떻게…….”

“괜찮아?”

고막을 파고드는 낮지만 선명한 목소리에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걸 깨달은 아영은 순간 당황해서 제 팔을 붙잡고 있던 그의 손을 황급히 뿌리쳤다.

그의 손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열이 오르면서 욱신거렸다. 덩달아 놀란 심장도 빨리 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뭐?”

“무슨 일이길래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뛰어가냐고.”

낮게 다그치는 그의 목소리에 잠시 잊고 있던 상황이 떠오른 아영의 얼굴이 다시 창백해졌다.

“누, 누굴 찾으러 가는 중이었어.”

“누구?”

아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갑자기 25년 만에 아버지가 나타났는데 조의금과 함께 사라져서 찾으러 가는 중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건 네가 알 거 없어.”

단호하게 밀어내는 그녀의 말에 그의 얼굴이 일순 굳어졌다.

“누굴 찾는지 모르지만 도와줄게. 혼자보다는 나을 거 아니야.”

아영은 순간 갈등했다.

혼자보다는 둘이 찾는 게 당연히 나을 테지만 태하는 아버지의 인상착의도 모를뿐더러 만약 찾게 되었을 때 그 앞에서 조의금 행방에 대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나 혼자서도 충분해. 그리고 내가 오기 전에 돌아가 줬으면 좋겠어.”

그 말을 끝으로 아영은 그의 대답도 듣지 않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한 손에 펄럭이는 상복 치마를 부여잡고.

하아. 하아.

아영은 턱까지 차오른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병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있을 만한 곳을 다 찾아봤지만 그 어디에도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안 보일 수는 없었다.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뒤엉킬 무렵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아영은 서둘러 액정 화면을 켰다.

모르는 번호가 뜨자 잠시 의아했던 아영은 그 아래 뜬 문자 내용을 읽자마자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영아, 급한 일이 있어서 말도 없이 간다. 돈은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꼭 갚으마. 미안하다.

아버지가」

조의금이 사라진 걸 보자마자 머릿속에 아버지의 얼굴이 스쳤다.

하지만 제 예상이 틀리길 바랐다. 그래서 미친 듯이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를 찾아야지만 제 예상이 틀렸다는 걸 확인 할 수 있으니까.

아영은 믿지도 않는 신께 처음으로 기도했다. 제발 아버지가 벌인 짓이 아니기를…….

하지만 신은 그녀를 비웃듯 돈과 아버지를 동시에 잃게 했다.

나쁘지 않은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곰팡이와 바퀴벌레가 득시글한 집에 살아도, 입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참고 살아야 해도, 형편도 안 되는 대학에 가서 학비를 벌기 위해 하루에 세 시간 자면서 알바를 뛰어도 괜찮았다.

엄마가 죽기 전까지는.

가족이 사라진다는 게, 이 세상에 저 혼자뿐이라는 게 이토록 지독한 상실감을 가져오는지 몰랐다.

그래서 느닷없이 찾아온 아버지란 존재에 덥석 마음을 열어 버리고 말았다. 또 다른 불행의 씨앗인지도 모르고.

배신의 상처는 컸다. 마치 누군가 날카로운 칼로 제 심장을 가르고 그 위를 구둣발로 짓이긴 것 같은 지독한 통증이 엄습하자 아영은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이에 짓이겨진 입술에서 피가 났다.

비릿한 피 맛이 났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어느새 가득 차오른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아서.

처음부터 돈 때문에 계획적으로 접근했던 게 틀림없다.

그것도 모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아빠란 존재에 흥분해서 의심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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