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82)

07

아영의 엄마 순옥은 미혼모였다. 고등학교 때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져 그 결과로 아영이 생겼다고 했다.

아빠라는 사람은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엄마의 말을 듣자마자 자취를 감췄다고 했다.

고아였던 엄마는 자신의 유일한 핏줄이었던 아이를 지울 수 없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미혼모 시설에 들어가 아영을 낳았다고.

시설에서 아영을 세 살까지 키운 순옥은 보육원에서 준 최소 생계비로 고시원을 얻었다.

고시원은 두 사람이 살기에 마땅한 곳이 아니었다. 좁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보니 아영이 한번 울기라도 하면 시끄럽다며 온갖 욕설이 난무했다.

그곳에서 악착같이 2년을 버틴 순옥은 서울에서 집값이 제일 싼 달동네로 갔다. 얼마나 비탈진 곳인지 겨울에 한번 미끄러지면 족히 50m는 미끄러져 내려갈 만큼 경사가 심했다.

비가 오면 집에 있는 양동이를 다 동원해야 할 정도로 지붕에는 새는 곳이 많았고, 바퀴벌레가 개미만큼이나 많은 곳이었지만 순옥은 태어나서 처음 갖는 집이라며 좋아했다.

아영은 거기서 열세 살 때까지 살았다. 산사태로 그 집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순옥은 지금까지 거기서 살았을지도 몰랐다.

다행히 정부 지원금으로 지금 사는 집을 얻었지만 산동네 집하고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벽에는 벽지 그림처럼 새카만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샛노란 장판 밑에는 바퀴벌레들이 득시글했으니까.

그나마 지긋지긋한 아영의 일상에서 숨통이 트일 만한 일은 태하를 떠올리는 것밖에 없었다.

그게 유일한 취미였고, 즐거움이었다.

그런 권태하가 제게 키스를 했다. 그건 마치 지구에 혜성이 떨어진 것만큼이나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었다.

처음엔 얼떨떨했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그를 향한 마음이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제 안에서 폭발한 것처럼 그의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그가 생각났고, 점심을 먹다 말고 그가 떠올랐으며, 그렇게 떠오른 태하는 꿈속에서까지 그녀를 따라다녔다.

마치 상사병에 걸린 것처럼 온종일 권태하 생각뿐이었다.

아영은 이런 자신이 당혹스러우면서도 그와 뭔가 시작될 것 같은 예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얼마 뒤 그가 미국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영은 온몸의 피가 차게 식는 걸 느꼈다.

어쩌면 그도 저를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꿈에 부풀었다. 종일 그의 연락을 기다리느라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런 아영을 보고 순옥이 핸드폰 중독이냐고 소릴 질러도 핸드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사이에 그에게 온 전화를 받지 못할까 봐.

하지만 이제 깨달았다. 그가 저를 좋아해서 키스한 게 아니라 단지 분위기에 휩쓸려 실수했던 것임을.

며칠 동안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던 기분은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입 안이 까슬거려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책을 펼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는 살이 4킬로나 빠져 있었다.

***

5년 뒤.

아영이 태하를 다시 만난 건 뜻밖에도 엄마의 장례식장에서였다.

매일 죽을 듯이 술을 마시던 엄마는 결국 급사로 돌아가셨다.

아영은 엄마를 미워했다. 그렇다고 죽길 바란 적은 없었다. 그것도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홀로 죽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엄마처럼 살기 싫어서 악착같이 공부해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남들처럼 학비 대 줄 능력 좋은 부모도 없었기에 밤잠을 줄여 가며 아르바이트를 해 학비에 보탰다. 수십 번 쏟은 코피 덕에 무사히 대학을 졸업해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대기업에 취직했다.

빨리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집보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아영은 바로 집을 구해 나왔다.

순옥은 집을 나가라고 할 때는 언제고 그녀가 막상 나가겠다고 하니 늙은 어미 팽개치고 나간다며 불효막심한 년이라며 욕을 했다.

하지만 아영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평수도 작고 전철역에서 한참 떨어진 원룸이었지만 아영은 나름 만족했다.

차츰 적응해 가는 그녀와 달리 순옥은 귀찮을 정도로 매일 전화했다.

딱히 용건은 없었다. 밥은 먹었냐는 둥, 잠은 잘 자냐는 둥, 아픈 데 없냐는 둥……. 쓸데없는 얘기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아영은 순옥의 전화를 피하게 되었다. 가끔 받아도 일 핑계를 대며 서둘러 끊기 바빴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외로워서였다는 것을.

순옥의 변화를 눈치챈 건 그녀가 이사하고 6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늦게까지 야근하고 집에 돌아와 막 잠들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은 순옥밖에 없었기에 귀찮아서 받지 않았다. 하지만 끊어진 전화가 다시 울리자 잠이 싹 달아나 버렸다.

울컥 짜증이 치밀었다.

“왜?”

아영은 전화를 받자마자 신경질을 냈다.

[…….]

다른 때 같았으면 ‘엄마한테 무슨 말버릇이야!’라고 대번에 따졌을 순옥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잠시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또 술 취해서 제대로 못 들었겠거니 했다.

“왜 전화했냐니까?”

[잤냐?]

재차 묻는 그녀의 말에 순옥은 한참 뒤에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때문에 깼어.”

[……미안.]

여전히 신경질적인 그녀의 말투에 순옥이 사과했다.

순간 아영은 제가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엄마에게 단 한 번도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뭐가.]

아영이 당황해 되물었다. 하지만 순옥은 되레 태연했다.

“왜 안 하던 말을 해? 엄마답지 않게.”

[그냥……. 문득 생각해 보니 너한테 해 준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 등록금도 그렇고, 이사 나갈 때 보태 준 것도 없고…….]

아영은 이제 와 새삼스럽게 구는 순옥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가 대학 간다고 했을 때 태평한 소리 하지 말고 나가서 돈이나 벌라고 했던 사람이 순옥이었다.

“그런 생각 할 필요 없어. 대학도 내가 가고 싶어서 갔고, 이사도 내가 가고 싶어서 간 거니까.”

[넌 몰라. 하나뿐인 자식한테 아무 도움도 못 주는 엄마 마음이 어떤지…… 흐흑.]

순옥의 말끝에 울음이 섞이자 아영은 또 시작이라는 생각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나 피곤해. 급한 얘기 아니면 나중에 통화해.”

[아영아.]

낮부터 있던 편두통이 다시 오는 것 같아 아영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아까 참지 말고 약 먹을걸.

[아영아?]

“말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전화를 끊었다고 생각했는지 순옥이 재차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아영이 두통을 참으며 대꾸했다.

[집에 언제 올래?]

“이번 달은 바빠.”

아무래도 약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아영은 협탁을 뒤져 두통약을 찾았다.

‘어딨지? 분명 여기에 뒀는데…….’

또다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일자 아영은 이를 악물었다.

[그럼 다음 달은…….]

“엄마, 급한 얘기 아니면 나중에 통화해.”

[그, 그래.]

전화기를 던지듯 내려놓은 아영은 협탁을 뒤집었다. 자질구레한 물건들 속에서 먹다 남은 두통약 하나가 보였다. 서둘러 물과 함께 두통약을 삼켰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엄마와 마지막 통화일 줄은.

이틀 뒤, 일하는 도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경찰서라는 말에 처음에는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다.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임순옥 씨 따님 되십니까?’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아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

하지만 경찰의 입으로 ‘임순옥 씨가 집에서 사망하신 채로 발견되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영은 그만 들고 있던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반쯤 넋이 나간 채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지하에 있는 영안실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몇 번이나 고꾸라질 뻔했다.

가까스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녀의 신분을 확인한 경찰이 덮여 있던 흰 천을 거둬 냈다.

“흐읍!”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로 잠든 것처럼 평온하게 누워 있는 순옥을 보자 배 속이 뒤틀리더니 무언가 뜨거운 게 솟구쳐 올라왔다.

뒤로 주춤 물러나던 아영은 서둘러 제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럴 수는 없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건 반칙이었다.

엄마는 제가 돈 많이 벌어서 넓은 집으로 이사 가는 모습도 봐야 했고, 착하고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는 모습도 봐야 했고, 제가 낳은 아이들의 재롱도 봐야 했다.

아직 보여 줄 게 이렇게 많이 남았는데 멋대로 이럴 수는…….

“괜찮으십니까?”

경찰이 곧 쓰러질 것처럼 하얗게 질린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영은 단호하게 손을 들어 제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았다.

경찰은 다가가지도 못한 채 불안한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때 그냥 보고 싶다고 하지 그랬어. 내가 바빠서 못 간다고 해도 오라고 하지 그랬어. 대체 왜 바보처럼 참았던 건데. 왜. 대체…… 왜…… 흑…….’

아영은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가슴으로 꾸역꾸역 삼켰다.

어렸을 때부터 매일 술에 취해 신세 한탄하는 순옥의 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 귀를 틀어막았었다.

제 울음소리도 누군가에게 듣기 싫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소리 내어 울 수가 없었다. 그게 어느새 습관이 되어 버렸다.

***

“아영아…….”

혼자 텅 빈 빈소를 지키고 있는데 제일 먼저 친구 수인이 달려와 주었다.

아영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헐레벌떡 신발을 벗고 들어온 수인이 눈물을 터트렸다.

“흐허어엉엉.”

아영은 딸인 저보다 더 서글피 우는 수인이 고마웠다. 그리고 맘껏 울 수 있는 수인이 부럽기도 했다.

제 품에서 한참을 울던 수인이 뒤늦게 생각이 난 듯 깜박하고 절을 안 했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인이 향을 피우고 엄마의 영정 사진 앞에 국화꽃 놓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영정 사진 속 순옥은 봄날 진달래꽃을 잡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영은 그 모습이 낯설었다. 한 번도 제게 보여 주지 않았던 미소라서. 그녀의 기억 속의 순옥은 항상 짜증과 신경질적인 모습뿐이었다.

아영과 맞절을 끝낸 수인이 벌게진 눈으로 다시 마주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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