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꼬시려던 건 아니었습니다-120화 (완결) (120/120)

나름 달콤한 말 같은데 클로드는 미간을 사정없이 찌푸렸다.

“당신이 그런 대사를 할 줄은 몰랐습니다.”

“뭐야, 그게, 침실에도 침입해 놓고 안 받아 주는 거야?”

클로드는 좀 어색한 표정을 짓다가 헛기침을 한 뒤 빠르게 말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죄를 지어도 상관없습니다.”

“나야말로 네가 그런 대사를 할 줄은 몰랐는데.”

미나즈는 미소를 지으며 클로드를 다시 끌어당겼다.

그녀의 위로 올라오면서도 그는 이래도 괜찮은지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정도로 뜨겁다면 좀 더 유혹해 봐. 내가 마음이 더 흔들리게.”

이미 마음은 다 정해졌지만, 조금 더 이 상황을 즐기고 싶었다.

이 녀석이 이렇게 조급한 모습을 보이는 건 드문 기회였으니까.

“어제 칼라브리아 백작에게,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법을 물어봤습니다만….”

“어? 페이드라 공작이 아니고?”

“그분은 놓쳤잖아요.”

뭔가 묘하게 설득력이 있긴 했다.

하지만 리안에게 비법 같은 게 필요한가?

별로 효과는 없을 거 같은데 대답은 궁금했다.

미나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니까 뭐래?”

“그냥 끈질기게 매달렸다고 하더군요.”

리안이니까 통했지 다른 남자 같으면 전혀 가능성 없다.

그렇게 말하려고 하는데 클로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결혼해요. 나 진짜 말 잘 듣고 잘해 줄게요.”

그 딱딱한 녀석이 이런 말을?

심장이 쿵쿵 뛰다 못해 순간 잠시 멎어 버리는 기분이었다.

빨개진 얼굴과 호흡을 가다듬으려 애쓰고 있으려니 클로드가 다시 건조한 말투로 돌아와 말했다.

“엘레노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하더군요.”

리안이 그랬다면 넘어가는 수밖에 없지.

“얼굴이 다인 줄 알았는데 여자 홀리는 건 타고났네.”

“네?”

“아냐. 그보다..….

미나즈는 얼굴로 늘어지는 클로드의 크라바트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우리는 할 거하고 느긋하게 나가자.”

클로드는 이미 마음이 동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멈칫거렸다.

“오늘의 주인공은 따로 있으니까 오늘은 안 되지만.….”

능숙한 손놀림으로 크라바트를 풀며 미나즈가 속삭였다.

“모레쯤 우리도 발표하자고.”

그걸로 클로드는 함락되었다.

클로드의 입술이 미나즈를 뜨겁게 덮쳐들었다.

제법 익숙해진 입술에 몸을 맡기며 미나즈는 만족스럽게 눈을 감았다.

*

“엘레노어 남……… 아, 어, 그러니까.”

엘레노어는 더듬거리는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플로이드 공작 여, 영애.”

문가에 선 그레이엄이 기껏 찾아낸 단어마저 더듬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엘레노어라고 불러도 괜찮다고 했잖아.”

“그것도 어색하다고요.”

조수로서 아주 오랜 시간 함께해서인지 갑자기 변한 호칭이 어색한 모양이었다.

“나도 이 모든 게 너무 이상하고 어색해.”

둘이서 영지를 떠날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물론 수도를 사로잡겠다는 야심이 있긴 했지만, 설마 여기까지 성공해 버릴 줄이야.

엘레노어는 감회에 찬 시선으로 라플로이드를 내려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은 이제 그녀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다.

“여기까지 온 건 네 덕이야, 그레이엄. 정말 고마워.”

“저야말로, 저야말로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그레이엄은 엘레노어의 손을 꼭 쥔 채 코를 훌쩍거렸다.

“그 남자가 내게 나쁜 짓을 한 후로 저는 정말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앞으로 더 살아봐야 좋은 날 따위는 오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그런데…….”

마리체 남작의 피해자였던 그레이 엄은 분명 절망에 빠져 있었다.

푹 죽은 눈을 한 채 늘 슬퍼하고만 있었지만, 엘레노어는 그녀를 억지로라도 방 밖으로 끌어내고 해야 할 일을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확실하고 빠른 일솜씨를 놓치지 않았다.

“제가 이렇게 살게 된 건 다 부인 덕이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플로이드 공작 부인에게도 능력을 인정받아 그레이엄은 플로이드 공작가문 내에서 일하게 되었다.

엘레노어 못지않은 성공을 거머쥔것이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두 사람이 한창 악수를 나누며 감회에 젖어 있을 때였다.

똑똑똑.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에필로그 2-2

“누가 왔군요.”

오래된 친구와 순간을 좀 더 즐기고 싶었지만, 그레이엄이 먼저 물러 섰다.

“오늘은 아주 바쁜 날이니까요. 제가 시간을 독차지할 수는 없죠.”

그녀는 눈가를 훔치며 나가기 전 한 번 더 돌아보았다.

“정말 축하해요. 앞으로도 행복하셔야 해요.”

그레이엄이 하는 말에 아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전우의 애틋함이 있었다.

계속 이야기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엘레노어는 눈을 살짝 내리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럴게.”

그레이엄은 나가기 위해 문을 열더니 멈칫했다.

그리고 문밖에 선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얼굴을 붉히며 방을 떠났다.

그 반응을 보니 묻지 않아도 방문객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미혼 남자가 여기 오는 건 실례인 거 알죠?”

엘레노어의 질문에 언제나처럼 여유로운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나는 매너를 신경 쓸 여력이 없네.”

스카이 페이드라가 미소를 지으며 문가에 서 있었다.

평소 자국의 복식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제국의 격식을 차렸지만, 오늘은 아주 온몸으로 페이드라 출신임을 외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반투명한 검은 예복을 느슨하게 두른 아래로 단련된 그의 어깨와 팔, 그리고 가슴이 드러나 있었다.

아마 스카이가 아니라면 제국에서는 용납받기 어려운 분방한 차림새였다.

하지만 그것은 윤기가 흐르는 흑발위에 쓴 독특한 형태의 황금 관과 선명하게 빛나는 바다색 눈동자로 완성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소식 들었어요. 축하해요.”

다가오는 스카이를 향해 엘레노어가 먼저 축하의 말을 건넸다.

“아버지는 그냥 귀찮으셨을 뿐이야.”

로베르 페이드라 대공이 스카이가 지니고 있던 공작 위를 승계하며 대공에서 물러났다.

즉 아들과 아버지의 작위가 바뀐것이다.

페이드라 공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수장이 되었지만, 스카이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을 뿐이었다.

“나는 차마 축하한다고는 말 못 하겠군.”

스카이의 말에 엘레노어는 머쓱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 말은 하지 않을 수가 없네.”

스카이가 긴 손가락을 뻗어 엘레노어의 턱 끝을 들어 올렸다.

“정말 아름답군. 각오한 것보다 더.”

농담으로 받아치기 어려울 정도로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의 손은 엘레노어의 얼굴을 스쳐 우아하게 땋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 뒤 그 뒤에 늘어뜨린 새하얀 베일에서 멈췄다.

곧 그의 입술에서 씁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금은 더 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있어도 달라지는 건 없어요.”

엘레노어는 담담하게 말하면서 살며시 그의 손을 밀어냈다.

“두 사람은 천천히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는 뭐지?”

스카이의 말대로 오늘은 그녀와 리안의 결혼식이었다.

그녀의 예상보다도 상당히 빠르기는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수업에 좀 더 집중할 거라 예상했지. 어차피 수도를 가르는 뜨거운 연애 중이니까 말이야.”

엘레노어는 플로이드 공작 부인의 타운 하우스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는 중이었다.

그리고 리안은 매일 저녁 그 넓은 칼라브리아 백작 저를 놔두고 꼬박 꼬박 그곳으로 귀가했다.

공작 부인이 엄격하게 굴 줄 알았지만, 아들이 매일 찾아온다는 사실을 기뻐했고, 둘이 달콤한 분위기를 풍기는 건 더 좋아했다.

“뭐 딱히 서둘러도 이상할 건 없잖아요. 어차피…….”

대강 얼버무리던 엘레노어는 갑자기 얼굴 앞에 내밀어진 것에 흠칫했다.

그것은 크리스털 잔에 담긴 붉은 와인이었다.

“축배 정도는 나눠도 괜찮겠지?”

잔을 내미는 스카이의 얼굴은 놀라 울 정도로 수려했으나 엘레노어는 미간을 팍 찌푸렸다.

“눈치챘으면 굳이 놀리지 말라고요.”

스카이의 입꼬리가 올라가나 싶더니 이내 한숨이 흘러나왔다.

“진짜 호색한이었나 보군.”

엘레노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백작님이 호색한이란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어요?”

“사방에 모르는 이가 없던데.”

스카이는 대답한 뒤 말을 돌리지 말라는 듯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벌써 아이를 가지다니. 원래 그럴 계획이었나?”

“딱히 그런 건 아니었어요.”

엘레노어는 고개를 젓고는 낮게 중얼거렸다.

“술에 그렇게 취하는 게 아니었는 데….”

“술?”

“……그런 게 있어요.”

엘레노어는 얼굴을 붉히며 슬며시 얼버무렸다.

뭐 감춰도 결국 전부 알려지게 될 거 같은 예감이 들긴 하지만, 굳이 오늘 같은 날에 그런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겠지.

“나중에 얘기할게요.”

이야기를 자른 뒤 엘레노어는 잔에 물을 채워 스카이와 건배했다.

“정말 내게 흔들린 적 없나?”

“없어요.”

딱 부러지게 대답했지만, 아주 조금 멈칫한 것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엘레노어는 빠른 속도로 덧붙였다.

“이제는 이런 이야기 주고받는 것도 안 돼요.”

“칼라브리아 공작이 그 정도로 꽉막히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결정한 거예요.”

이쪽을 바라보는 바다색 눈동자는 잔잔했지만, 묘하게 아린 빛을 띠고 있었다.

마음을 콕콕 찔렀으나 엘레노어는 그것에 잠기지 않았다.

“내 모든 걸 알고 받아 주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러니 나도 그 사람을 아주 소중히 하고 싶어요.”

스카이는 한동안 멈춰 있다가 곧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엘레노어와 부딪쳤던 잔을 들어 올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라.”

그 말을 남긴 채 그는 잔을 쭉 비웠다.

이걸로 정리가 된 건가.

감회에 젖어 바라보고 있자 스카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 더 기다리지.”

“네?”

“나는 당신을 두고 결혼하지는 않을 거야.”

스카이는 곧장 뭐라 말하려는 엘레노어를 저지하며 계속 말했다.

“당신을 부담스럽게 하진 않아. 딱히 수절하지도 않을 거고, 당신을 찾아와 억지로 추근거리지도 않을 거야. 그래야 당신도 나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불편할 일은 없을 테니까.”

추근거리지도 않고 수절도 안 할 거라면 별로 기다리는 것도 아니잖아?

엘레노어가 혼란에 빠져 뭐라고 받아칠지 고민하는 사이 스카이가 말을 이었다.

“그냥 내가 살아 있고 당신이 살아있는 한 모든 게 끝나지 않았다고 믿겠어. 마지막에 당신과 함께 있으면 되는 거니까.”

그런 거 없이 전부 끝났다고 말하려다 그만두기로 했다.

스카이가 이미 마음을 굳힌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듣지 않을 건데 계속 말하는 건 공연한 입씨름일 뿐이다.

“그에게 질리면 내게 찾아와. 약속대로 정비는 맞지 않고 기다릴 테니까.”

“….…그게 결혼식 날 신부를 찾아와서 할 말인가요?”

“전에도 말했지만, 어차피 이미 한번 다녀왔으니까 한 번 더 다녀와도 별문제는….”

스카이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갑자기 방문이 휙 열렸기 때문이었다.

“신부의 방을 그렇게 노크도 없이 열어도 되나?”

“신부의 방에 괴한이 들어와 있다.

면 그렇습니다.”

이미 스카이가 여기 와 있다는 걸 전해 듣고 온 기색이었다.

리안은 불쾌한 표정을 지은 채 방안으로 들어섰다.

현재 심경과 상관없이 그의 모습은 탄성을 자아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조금 긴 듯한 플래티넘 블론드 아래로 이어지는 단정한 얼굴.

결혼식의 예복을 차린 리안의 모습은 그야말로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움이었다.

스카이조차 그의 모습을 보고 감탄하는 기색이 있었다.

“이제 완전히 내 여자니까, 접근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여자를 그렇게 구속하면 질려서 달아난다고.”

“엘레노어가 아니라 당신을 구속하는 겁니다. 당신 외에는 경계할 필요도 없으니까.”

“호오. 경계씩이나 해 주는 건가?”

묘한 긴장감이 흘렀지만, 스카이는 어째 리안의 경계를 받는 게 즐거운 기색이었다.

“좋아. 오늘은 순순히 퇴장해 주지.”

장난스럽게 항복 자세를 취한 뒤 스카이는 엘레노어의 손을 쥐었다.

“아름다운 아가씨. 부디 앞날에 행운만이 있기를.”

페이드라 억양이 섞인 말투로 우아하게 말한 뒤 스카이는 엘레노어의 손등에 길게 입을 맞추었다.

리안은 무척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렇다고 마지막 인사를 방해 하지는 않았다.

입맞춤을 마친 스카이는 방을 떠났다.

둘만 남게 되자 리안의 얼음 같던 표정은 눈이 녹는 것처럼 변했다.

“결혼하는 날에도 이렇게 나를 경계하게 만들면 곤란합니다.”

장난스러운 질책에 엘레노어는 미소를 지었다.

“그냥 축하하는 잔을 나누러 온 것 뿐이에요.”

리안의 아름다운 보라색 눈이 스카이가 두고 간 잔에 쏠렸다.

그가 살짝 눈썹을 드는 걸 보고 엘레노어가 먼저 말했다.

“나는 마시지 않았어요. 임신했다.

는 사실도 이미 들켰고요.”

임신 이야기가 나오자 부드러웠던 리안의 얼굴이 한층 더 밝아졌다.

그는 엘레노어의 뒤로 다가와 넓은 품으로 그녀를 감싸 안았다.

“이 안에 내 아이가 있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쪽이야말로 그랬다.

처음 임신한 걸 알았을 땐 정말 어찌나 놀랐던지.

하지만 그 경악은 곧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으로 변했다.

“이제 앞으로 칼라브리아가 될지 플로이드가 될지만 정하면 되겠군요.”

“이름에 어울리는 가문을 택하면 되지 않을까요?”

엘레노어의 제안에 리안이 쿡쿡 웃었다.

“그럼 아이 이름은 뭐가 좋습니까?”

“음. 글쎄요.”

당연히 아주 많이 생각해 두었지만, 리안의 생각도 듣고 싶었다.

이런 걸 묻는 걸 보니 뭔가 생각해 둔 게 있는 걸까?

리안에게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딸이면 내가 정하고 아들이면 당신이 정하는 게 어떻습니까?”

“좋아요. 이름을 말하고 이유도 말하기.”

리안은 흔쾌히 수락한 뒤 미리 준비한 것처럼 술술 말했다.

“딸이면 엘레나.”

“이유는요?”

“당신을 닮았으면 좋겠으니까.”

지극한 아내 사랑이 폴폴 묻어나는 이름이다.

엘레노어는 눈을 가늘게 뜨며 새침하게 물었다.

“그럼 엘레노어로 하는 게 아니고요?”

“완전히 똑같으면 사위를 질투할지도 모르니까요. 속 좁은 아버지가 아니라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하지만, 딸이라면 딸바보가 되어 버릴 모습이 벌써 눈에 선했다.

“이번엔 당신 차례입니다.”

사실 엘레노어도 리안을 딴 이름을 생각했으므로 말문이 잠시 막혔다.

하지만 그녀의 순발력은 곧 하나의 이름을 떠올려 냈다.

“음. 저는 헨리.”

“헨리?”

전혀 언급한 적도 없고, 주변에 존재하지도 않는 이름이라 리안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음. 그냥. 예습도 잘하고 성실할 거 같은 이름이라서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왠지 그럴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안은 입속으로 헨리, 헨리 하고 몇 번 되뇌어 보더니 곧 미소를 지었다.

“아주 좋습니다. 헨리.”

그리고 그는 엘레노어의 배 부근으로 손을 가져갔다.

처음에는 아이를 만지는 줄 알았는데 배를 어루만지는 손길이 묘하게 야릇했다.

그가 얼마나 쉽게 흥분하는지 알고 있는 엘레노어가 빠르게 못을 박았다.

“지금 이러면 곤란하다고요.”

“네. 그냥 잠시만요.”

아쉬운 듯 손을 떼어 내지 못하는 리안을 보고 엘레노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 보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사방에 호색한이라고 소문이 나신 거예요?”

“아무것도 한 적 없습니다.”

딱 잘라 대답한 뒤 리안은 찔리는 듯 덧붙였다.

“당신에게는 아주 많이 할 거지만.”

뭐 그런 거라면 나쁠 거 없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리안의 속삭임이 귓가에 울렸다.

“화내지 말아요. 나 정말 잘할 테니까.”

그런 거 이미 싫을 만큼 잘 알고 있다고요.

속으로 대답하며 엘레노어는 미소를 지었다.

그때 밖에서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갈까요.”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렇게 엘레노어는 리안과 함께 문 너머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환한 빛 속으로.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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