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꼬시려던 건 아니었습니다-119화 (119/120)

리안의 아름다운 눈이 열기로 가득했다.

사실 마찬가지였다.

방금 그의 손길에 달뜨기도 했지만, 그 전부터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닿아 있어도 부족하고, 부족하다.

온몸의 힘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안겼는데도 여전히 그를 원했다.

그에 대한 감정만큼 그의 움직임으로 인해 몸에 새겨지기 시작한 쾌감에 대한 갈망도 컸다.

하지만 기력이 없다는 건 정말이었다.

“정말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거예요?”

새침하게 묻자 리안이 눈을 곱게 또다시 흥분한 그의 몸이 닿았다.

가운으로 가로막혀 있던 열기가 고스란히 피부로 전해졌다.

곧 그녀의 몸을 감고 있던 시트도사르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오늘이 며칠이었지.”

목덜미에 닿은 그의 입술을 느끼며 엘레노어는 슬며시 주기를 생각했다.

곧 낮은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정말… 아이가 생겨 버릴지도 몰라요.”

그걸 들었는지 리안이 살짝 멈칫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

더 뜨거워진 입술이 그녀의 피부를 간지럽혔다.

“그야 그렇겠지요.”

리안의 목소리가 가슴을 울렸다.

“나는 당신을 안고 또 안아서 내 아이를 가지게 할 거니까.”

그의 말을 받고 싶었지만, 대신 달뜬 숨소리만이 흘러나왔다.

야릇한 감각에 발끝까지 경직되고 허리가 떨렸다.

리안이 쾌감에 움찔대는 엘레노어의 복부를 야릇하게 쓸어내렸다.

“이 안에 내 걸 품게 할 거니까.”

귓가에 들리는 속삭임은 끔찍할 정도로 야했다.

“나를 안아요, 엘레노어.”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말.

거기에는 처음처럼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엘레노어는 리안의 목덜미에 목을 감았다.

그리고 그의 모든 사랑을 받아들였다.

다시는 놓지도 의심하지도 않을 거야.

그런 생각을 반영하듯 그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곧 밀착한 몸이 빈틈없이 맞물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안은 채 다시 한번 더 깊은 파도에 몸을 맡겼다.

에필로그 1-2

대낮인데도 복도는 등불을 들고 걸어야만 할 정도로 어두침침했다.

건물 자체의 채광이 나쁜 탓은 아니다.

그저 복도의 모든 창문에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 탓이었다.

아마도 이곳의 주인이 빛을 거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비앙카스타는 복도를 가로질렀다.

컴컴한 가운데 울리는 발소리는 자신의 것임에도 음산하게 들렸다.

으스스한 분위기인 데도 비앙카스타는 두렵지 않았다.

그건 분명히 곁을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존재 덕분일 것이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복도 끝의 방에 도착하자 에이드리 언이 걱정스레 물었다.

비앙카스타는 안심하라는 듯 그의 팔을 한 번 쓸어내린 뒤 곁에 선 병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육중한 자물쇠가 풀리고 방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침을 한 번 삼킨 뒤 비앙카스타는 안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뭐야?”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웅얼거리는 듯한 소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쪽을 확인하는 듯한 기척이 느껴지나 싶더니 웅얼거림은 쇠를 손톱으로 긁는 것처럼 날카로운 소리로 바뀌었다.

“이 미친 것이! 감히 여기에 왜 나타난 거야!”

거친 욕설과 함께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그녀가 만나러 온 상대가 보였다.

한때 그녀의 삶을 무엇보다 비참하게 만든 존재.

제국의 전 황녀 아일린 하스카토르였다.

“당신은 여전하군요.”

비앙카스타의 목소리는 담담한 말내용과 달리 무척 떨렸다.

각오하고 왔음에도 그녀를 만나자 곧장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다.

팔에 수갑을 차고 발목에는 족쇄를 달았어도 아일린은 그녀를 주눅 들게 하는 힘이 있었다.

“네가 여길 어떻게 와! 당장 꺼져!

사라지지 않으면 죽여 버릴 거야!”

늘 정돈되어 있던 머리카락은 부석부석했고 고상한 척하는 말투도,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분명 퇴위당했지만, 황제에게는 공작 작위가 남아 있었다.

연금 조치 중이긴 해도 적당히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정도의 재력과 지위는 된다.

그러므로 이런 모습은 황녀 스스로 가 자신을 놓아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반드시 재기해서 네 녀석을 잡아 죽일 거야. 다 가만 안 둘 거라고!”

이를 갈며 으르렁대자 손에 채워진 구속구가 절그렁 소리를 냈다.

자해나 탈출을 시도해서 채워진 것이었다.

비앙카스타는 겁을 먹고 물러서는 대신 황녀에게로 더욱 다가섰다.

그리고 몸을 굽혀 그녀와 시선의 높이를 맞췄다.

“아직 기회가 있잖아요. 당신에게는.”

제대로 눈을 마주 본 적 없었던 비앙카스타의 행동에 황녀는 다소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녀가 기세를 잃어버린 사이 비앙카스타는 하고 싶은 말을 쏟아 냈다.

“잘못을 반성하고, 아직 곁에 남은 이를 사랑하고, 당신을 믿다가 모든 걸 잃어버린 아버지에게 조금이라도 잘못을 만회할 수도 있었어요.”

“뭐가 어째?”

황녀는 그대로 비앙카스타에게 저주의 말을 쏟아 냈다.

입에 담기조차 어려울 욕설을 비앙카스타는 묵묵히 들어 넘겼다.

한참 후.

비앙카스타는 제풀에 지쳐 버린 황녀를 보며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혹시 당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동정하게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웠어요.”

어쨌든 어렸을 때는 황녀와 좋은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다.

전락한 아일린의 모습을 보고 혹시 그녀를 너무 쉽게 용서해 버리는 게 아닐까.

약해질 자신이 만나기 전부터 벌써 두렵고 싫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네요.”

황녀를 보니 겁이 나면서도 복수하고 싶은 기분이 강했다.

그건 자신 때문이 아니라 에이드리 언이 당한 것들이 너무나도 원통해서였다.

화를 내고 욕하고 비난하고 싶었다.

하지만 비앙카스타는 그런 기분을 그냥 삼키고 일어섰다.

“다시 찾아올 일은 없을 거예요.”

비앙카스타는 단지 위에서 아래로 황녀를 내려다보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아주 행복해요. 지금.”

순간 굳어 버린 황녀의 모습이 여태껏 봐 온 그 무엇보다도 통쾌했다.

비앙카스타는 미소 짓고 황녀의 얼굴은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주, 죽여 버릴 거야!”

황녀가 다시 고함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다시 나를 그리워할 거야! 다들 지금 정신이 나간 거야!

모든 걸 되찾고 나면 너 같은 하찮은 년 따위는 바로 죽여 버릴 거야!

그때 가서 빌어도 소용없어!”

그 외침을 들으며 비앙카스타는 유유히 방을 나섰다.

복도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에이 드리언이 말을 건넸다.

“다시 일어서지 못하겠군요.”

“그럴 거 같아요.”

에이드리언은 잠시 문을 응시하며 서 있었다.

“당신은 그냥 가도 괜찮겠어요?”

모든 걸 정리하기 위해서는 황녀를 꼭 한번 만나야만 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찾아왔다. 그래서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으나 에이드리언은 고개를 저었다.

“잃어버린 것에 얽매이면 앞으로가 힘들어지겠지요. 지금은 좋은 것만 간직하고 싶습니다.”

에이드리언의 말에 비앙카스타가 뺨을 붉혔다.

“슬슬 돌아갈까요.”

“네. 몸단장도 해야 하니까.”

오늘은 두 사람이 수도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아침부터 짙게 끼어 있던 구름이 많이 화창해져 있었다.

“정말 날씨가 좋네요.”

“그 두 사람이라면 하늘도 맑아질 수밖에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어쩐지 정말 그럴 것처럼 느껴졌다.

마차를 향해 걸으며 에이드리언이 물었다.

“정말 수도를 떠나도 괜찮겠습니까?”

“당신과 있는 거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어요.”

평생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할 날이 오지 않을 줄 알았다.

분홍빛 따뜻한 분위기가 두 사람에게서 피어올랐다.

“가요. 축하하러.”

오늘이 지나면 그다음은 우리 차례다.

그렇게 생각하며 비앙카스타는 한쪽만 있는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둘은 함께 공작 저를 떠났다.

*

미나즈는 편안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온몸이 기분 좋은 노곤함에 폭 싸여 나른했다.

콧소리를 내며 이불에 몸을 묻자 곧 등 뒤에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곧장 돌아누워 품속으로 파고들자 상대가 일어나는 기척이 있었다.

“언제 왔어?”

“밤에…….… 기억 안 납니까?”

클로드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미안, 잠들어 버렸네. 너무 피곤해서….”

“괜찮습니다.”

클로드는 그렇게 말했지만, 미나즈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 이렇게 피곤할 줄 알았으면 그냥 황제 같은 거 안 한다고 도망칠걸 그랬지.”

“그러기엔 너무 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차분하게 대답한 후 클로드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곧 해가 뜨겠군요.”

“가려고?”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에 나가야겠지요.”

미나즈가 클로드를 올려 보며 쿡쿡웃었다.

“정말 다 컸구나. 여자 방에 몰래 숨어들었다가 해 뜨면 도망도 나가고.”

“그러는 당신은 연하남 몸만 이용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내가?”

“구애는 거절하고, 밤에만 만나 주잖아요.”

“그야 나는 바쁘니까 어쩔 수 없잖아.”

“계속 이렇게 숨어서만 만날 겁니까?”

엄격해 보이는 눈동자가 불만스러운 기색을 띠었다.

“이제 어린애가 아니라는 건 잘 보여 준 거 같은데.”

그야 이제 충분히 알지.

저렇게 안달 내는 표정을 지으니까 더 괴롭히고 싶어지잖아.

미나즈는 심술궂은 생각을 하며 미소 지었다.

“오늘은 이용 못 했는데.”

목에 팔을 감자 방금까지 찌푸리고 있던 미간이 당황으로 바뀌었다.

“지금요?”

“그래.”

“나가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들키면 뭐 어때?”

“황제의 침실에 침입하는 건 중죄입니다.”

클로드가 황제의 침실에 숨어들 정도로 일급 은신술을 익혔을 리 없으니 어차피 주변 사람들은 대강 다 눈치챘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미나즈는 쿡쿡 웃으며 받아쳤다.

“그러면 황제의 마음에 침입하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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