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꼬시려던 건 아니었습니다-45화 (45/120)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엘레노어에게 블레인이 소리쳤다.

“쇼핑은 할 거지만, 외출은 안 할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씩 웃으며 대답한 뒤 엘레노어는 복도 너머로 총총 사라져 버렸다.

*

다음 날.

샨카른 호텔은 본격적으로 칼라브리아 백작 저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엘레노어는 블레인에게 말했던 대로 팜블리코 에비뉴로 나가지 않았다.

대신 팜블리코 에비뉴를 고스란히 저택 안으로 옮겨 왔다.

“레이스 상인들은 응접실로 들어가시고, 원단 견본은 2층 오른쪽 두번째 방으로 모아요. 꽃들은 내가 직접 나가서 고를 테니 그대로 정원에서 대기하세요!”

팜블리코 에비뉴의 내로라하는 상인들이 모두 샨카른 호텔에 결집해 있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엘레노어가 가게에 있는 모든 물건을 사고, 사용하지 않는 것들은 헐값에 다시 상인에게 되팔겠다는 파격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매상을 엄청나게 올리며 재고도 보존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제국 최고의 연회가 될 거라는 사교계 여왕의 장담에 상인들은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꼭 우리 상점 물건을 써 주십시오.”

“절대 전시하지 않는 특별품입니다. 납기 일자에 반드시 맞출 테니 구경하십시오.”

상인들은 제국의 시선이 집중된 연회에 어떻게든 물건을 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엘레노어는 넓은 저택을 누비며 마음껏 물건을 보고 사용할 것들을 추려냈다.

또한, 저택을 재단장하는 지시도 잊지 않았다.

“모레 샹들리에가 도착할 테니 그때까지 천장과 바닥 보수 공사가 끝나야 합니다! 전부 일정에 맞춰서 끝내면 성공 보수가 더욱 두둑해질 겁니다!”

돈의 힘은 위대했다.

잡초가 자란 정원이 순식간에 가다듬어지고, 어딘가의 화원을 통째로 정원사들을 추려 냈으며 금방 와 줄수 있다고 말한 업자에게는 품삯을 두 배 주었고 다른데 볼일이 있어 못 오겠다고 한 업자에게는 네 배를 주었다.

그 결과는 말할 필요도 없이 놀라웠다.

“이건 저택이라기보다 궁전이잖아요. 얼마나 돈을 쓰고 있는 겁니까?”

“이 거짓말 같은 현실을 가능하게 할 정도로요.”

세계 최대 재벌가의 재력은 그야말로 무한대였다.

물론 지출 내역에 대해서는 매일 밤 보고하고 있었다.

“아주 화려하게 일을 벌이고 있군.”

밤에 청구서를 들고 나타난 엘레노어에게 공작 부인이 말했다.

“그게 공작 부인의 주문 아니셨나요?”

“그렇긴 하네만.”

공작 부인은 우아하게 마시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달했을 때 초대장을 보내는 거죠.”

엘레노어가 씩 웃으며 덧붙였다.

“받은 사람들은 선택받은 기분이들 거고, 결국 모든 사람이 참석하게 될 거예요. 모두 이곳 얘기만 할 거고 결국 파티는 흥행하는 거예요.”

“…아주 타고났군.”

공작 부인은 탄복한 듯 말한 뒤 엘레노어가 내민 청구서와 내역서를 받아 들었다.

청구서에는 엄청난 개수의 동그라 미가 있었으나 그녀는 다른 것에 더욱 흥미를 보였다.

“이건 독특한 회계법이로군.”

엘레노어는 제테크를 위해 복식 부기와 재무 재표를 공부한 적이 있었다.

공작 부인은 엘레노어의 방식의 뛰어남을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영리했고, 신분을 가리지 않고 가르침을 얻을 정도로 현명했다.

엘레노어는 그것을 핑계 삼아 그간 함께 일해서 회계에 익숙한 그레이 엄을 불러들였다.

“남작 부인!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렇게 고생하고도 그레이엄은 변함없이 엘레노어를 반겼다.

그녀가 도착하자 한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엘레노어는 그 틈을 타서 줄곧 신경 쓰이던 계획에도 착수했다.

“비앙카스타. 잠깐 나를 따라와요.”

늘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지만, 마음이 편해진 탓인지 부쩍 살도 오르고 얼굴빛도 좋아진 비앙카스타를 의상실로 불러들였다.

그곳에는 수많은 원단과, 엘레노어의 단골이자 사교계의 패션 리더 볼로냐 후작 가의 일을 전담으로 하는 슈미헨 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애에게 연회의 모든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가장 특별한 드레스를 만들어 주세요.”

비앙카스타는 그런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새빨개진 채 사양했지만, 엘레노어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내며 적극적으로 드레스를 디자인했다.

그 후에는 몸단장에 익숙한 이국메이드를 가득 붙여 비앙카스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윤을 내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그렇게 집에서 파티 음식, 사람까지 꼼꼼히 신경을 쓰며 엘레노어는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냈다.

연회를 일주일 앞둔 밤.

엘레노어는 창가에 서서 홍차를 마시며 자신이 해 둔 것을 뿌듯이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음 날을 위해 돌아서다가 문득 초대장이 가득 쌓인 어지러운 책상에 시선이 닿았다.

“아. 잊을 뻔했네.”

마침 생각난 것처럼 중얼거린 뒤 엘레노어는 책상으로 다가가 서랍을 열었다.

거기에는 1온스에 3골드가 넘는 고급 종이로 만든 봉투가 밀봉된 채 놓여 있었다.

봉투를 뒤집자 미리 써 둔 수신인의 이름이 드러났다.

[아일린 하스카토르 황녀 전하]

한동안 이름을 지그시 내려 보던 엘레노어는 봉투를 ‘발신용’이라고 쓰인 쟁반 위에 휙 집어던졌다.

그리고 어깨를 한 번 으쓱한 뒤 침실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