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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꼬시려던 건 아니었습니다-44화 (44/120)

엘레노어가 입을 비죽이자 블레인 이 계속 타박을 이어 나갔다.

“지금 바깥에 암살자들이 당신을 보면 칼춤을 추려고 대기하고 있는데! 이 상태에서 바깥을 나다니는 건 상어들의 해역에 알맞게 물오른 통통한 참치가 유유히 헤엄쳐 들어가는 짓입니다.”

“모처럼 공작 부인과 친해질 기회잖아요. 칼라브리아 백작님은 확실한 상황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전 그냥 뒤에 숨어서 구경만 하나요?”

“그 말은 리안의 마음을 받아 줄거란 뜻입니까?”

블레인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몰라요.”

엘레노어는 새침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건 내 마음 가는 데로 정할래요. 다른 사람의 강요에 의한 게 아니라요.”

블레인은 말문을 잃은 듯했다.

그는 그녀 옆에 난간에 팔을 늘어뜨린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말이나 못 하면. 정말 당신을 어디 묶어 두기라도 하고 싶습니다.”

“숙녀를 묶고 싶다니 변태인 건가요?”

“어허. 묶는 게 변태라면 변태는 당연히 그쪽이겠죠.”

엘레노어는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미 다 들었습니다. 당신이 제국 최고의 미남들을 어떻게 사로잡았는지.”

블레인이 리안과 스카이를 결박한 사건을 언급하자 엘레노어는 당황해서 팔짝 뛰었다.

“아니, 누가 대체 그런 소리를 했어요?”

“왜요? 사실이 아닙니까?”

“사실…!”

받아치고 싶었으나 차마 거짓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이긴 한데….”

인정하자 블레인이 이마를 턱 짚었다.

“아니, 진짜라니. 하아. 기술이 대체 얼마나 좋길래 그럽니까?”

“.… 호기심 보이지 마세요. 자작님은 절대 안 묶을 거니까.”

“미남만 묶어 주는 겁니까? 거, 차별이 너무 심하네!”

“어디 가서 그런 이상한 소리 퍼뜨리고 다니지 마세요!”

블레인에게 으르렁거린 뒤 엘레노어는 다시 난간에 매달려 홀을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난 지금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바쁘다고요!”

“연회는 겨우 2주 후인데 일을 바로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 대책은 있어요?”

“그래요. 이제 거의 구상도 끝났어요.”

엘레노어는 자신만만했으나 블레인은 불안한 기색이었다.

“구상에 대해 들을 수 있습니까?”

“연회는 저택의 재단장과 함께 준비될 거예요. 여긴 팰리시티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지나가는 길이에요.

그러니까 호불호가 갈리는 건 별로 좋지 않겠지요.”

“그럼 연회를 관통하는 테마는 무엇입니까?”

엘레노어가 예쁜 눈을 빛내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이거 봐라. 내가 돈이 이렇게 많다’ 입니다.”

블레인의 표정은 엘레노어가 기대한 반응과 다르게 푹 일그러졌다.

“…그런 거에 공작 부인이 동의했단 말입니까?”

“아주 좋아하셨어요. 인색하게 보이지 않는 건 사업가의 주요 덕목중 하나니까요.”

“그게 대체 무슨 테마입니까? 보석을 덕지덕지 바른 졸부 느낌? 아니면 설마 그냥 오는 사람마다 돈을 뿌려 환심을 사자는 건 아니겠죠?”

“그런 촌스러운 게 아니에요.”

엘레노어가 손가락을 내저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돈도 쓸 줄 아는 사람이 잘 쓰는 법이지요. 내가 어떻게 쓰는지 한번 보세요.”

그녀의 장담에 블레인은 더욱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으나 더 토를 달지는 않았다.

그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좋으니 팜블리코 에비뉴에 가서 호화롭게 쇼핑하겠다는 소리는 하지 마십시오.”

“물건은 뭐니 뭐니 해도 팜블리코에비뉴가 최고지요.”

블레인이 경악하며 다시 잔소리를 늘어놓으려 하자 엘레노어가 재빨리 몸을 뒤로 휙 뺐다.

“자, 그럼 난 이제 가서 바로 작업에 착수하겠어요.”

“이봐요! 나한테 위험한 일은 하지 않는다고 약속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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