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사랑이 흘러넘쳐서 (6)
“제가 에티오피나산 다이아몬드에 대해 알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해 보려고 일부러 장신구 중에서도 눈에 띄는 브로치를 골라 하고 오신 게 아닙니까.”
아테니아가 황녀에게 말했다.
아르셀리나 후작가가 아무리 세가 줄었다고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황실에서 운영하는 황립 아카데미 사서를 매수하여 책을 몰래 들여올 정도의 능력은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황제가 황비의 가문을 내내 견제해 왔음에도, 황제 몰래 상단을 키워 낸 것만 봐도 후작가의 건재함을 아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 후작가에서 에티오피나산 다이아몬드의 다른 거래처 중 하나가 크리스나 상단이라는 것을 모를 것 같지 않았다.
“만약, 황녀 전하께서 정말로 그렇게 무방비하게 정보를 드러내시는 분이라면 저희야말로 전하와 함께하기 곤란합니다.”
“…알겠어요, 모른 척은 그만두도록 하죠.”
아테니아가 말을 덧붙이자, 결국 황녀가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사실을 시인했다.
“너무 기분 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황위에 욕심이 있다는 사실을 대공 부부께 드러내는 것 자체가 위험천만한 일이었으니까요.”
에티오피나산 다이아몬드는 그것이 반짝일 때 내는 색상이 보통의 다이아몬드보다 다채로운 편이었다.
희귀한 것에 각광하는 귀족들로서는 당연히 이 다이아몬드를 갈구할 수밖에 없었다.
황녀는 아테니아의 눈에 브로치를 띄게 함으로써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테니아가 시류에 걸맞은 정보를 놓치지 않는 사람인지, 어떤 상황에서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인지, 또 대공가가 황제조차 알아내지 못한 디시어스 상단의 진짜 주인을 알아낼 능력이 있는지를 말이다.
“이해합니다. 아직 황녀 전하께서는 뜻을 밝히지 않으셨으니, 정치계에 나서실 수는 없죠.”
아테니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면 사교계를 통해 리안보다 저와 더 자주 만나야 할 텐데, 제가 어떤 사람인지는 아셔야 했겠죠. 대공가의 능력이 궁금하셨을 건 당연하고요.”
오히려 황녀가 그 정도도 확인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실망했을지도 몰랐다.
아테니아가 크게 불쾌하지 않은 기색이자, 황녀가 안도하며 물었다.
“그럼, 대공비 전하께서 디시어스 상단에 원하시는 건 뭔가요?”
“상인 연합을 만들려고 합니다.”
황녀의 질문에 아테니아가 뜸을 들이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클레르폰 제국에서 상업이 인정받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 탓인지 현재 각 상단은 각자도생하고 있는 터였다.
아테니아는 이런 이들을 규합하고자 했다.
“빈켄티우스 상단이 클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북부에 현존하는 상단들과 빈켄티우스 상단 사이의 협업이 잘 된 덕이죠. 전 제국의 상단이 같은 방식으로 서로를 도울 수 있다면, 앞으로 상업 발전에도 큰 기여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황녀가 앞으로 황제가 될 생각이라면 아테니아가 하는 제안이 거슬릴 수도 있었다.
상단들이 연합한다는 건, 지금보다 더 상업의 힘이 세진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래서 아테니아는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상단 연합에서 크리스나 상단과 빈켄티우스 상단 그리고 디시어스 상단을 포함하여 다섯 개 상단이 이 연합의 주축이 되었으면 합니다.”
빈켄티우스와 크리스나 그리고 디시어스 상단은 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상단들이었다.
그런 상단들이 연합을 원한다는데 굳이 거절할 상단은 없었다.
“다섯이라면?”
“남은 두 자리 중 한 자리는 황녀 전하께서 추천해 주시는 상단으로 채우고, 마지막 한 자리는 나머지 네 상단이 함께 고르면 어떨까요.”
황녀의 입장에서 크리스나와 빈켄티우스는 같은 편이었다.
아테니아는 지금 렉산드라에게 그녀의 의견도 상인 연합에 관철시킬 수 있도록, 쪽수를 맞춰 주겠다고 한 것이다.
“의결권을 각 상단당 하나씩만 가지도록 하면, 어느 한 상단의 뜻대로 과하게 의견이 쏠릴 일도 없겠죠.”
디시어스와 크리스나를 합쳐도 빈켄티우스 상단이 더 컸다.
황녀로서는 쪽수가 맞더라도 빈켄티우스가 힘으로 몰아붙이지는 않을지 걱정이 될 터였다.
그러나 의결권이 주축이 되는 상단당 하나씩뿐이라면, 그런 걱정을 할 이유도 사라지는 것이었다.
“……솔직히, 너무 좋은 제안이라서 당황스럽군요.”
황녀가 잠시 동안의 침묵을 깨고 말했다.
솔직히, 렉산드라의 입장에서 과하게 좋은 조건이기는 했다.
이런 식으로 상인 연합이 생길 경우, 황녀는 상인 연합의 힘까지 얻을 수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 렉산드라가 굳이 아테니아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일이 너무 제게 유리하게 돌아가니, 황녀는 오히려 의심이 가고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황녀 전하께서 쉽게 못 믿으실 만도 하지요. 솔직히 말해서, 빈켄티우스와 크리스나만 연합한다고 하더라도 따를 상단은 많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그렇게 될 경우, 황실에서는 더더욱 저희를 견제하겠죠.”
발레리안이 그렇듯이, 아테니아 또한 그다지 권력에는 욕심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황실의 견제가 번거롭고 귀찮았다.
“저희는 굳이 황실과 맞서고 싶지 않아요. 다만, 황태자 전하께서 자꾸만 빈켄티우스를 건드리시니 그에 대응할 뿐이죠.”
황제가 될 황녀에게서 이득을 얻으려는 게 아니라, 황태자가 거슬릴 뿐이다.
아테니아는 렉산드라에게 그 뜻을 분명히 밝혔다.
“황녀 전하께서는 하나만 약속해 주시면 됩니다. 앞으로 빈켄티우스가 황실의 견제에 휘말릴 일이 없게 해 주세요.”
어떻게 보면 간단한 조건이고, 어떻게 보면 대단히 어려운 조건이었다.
일단, 빈켄티우스는 존재만으로도 황실과 맞먹으니, 황실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알겠어요, 약속하죠.”
그러나 황녀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련의 사건들을 보아 온 바, 렉산드라가 냉정하게 황실이 빈켄티우스를 정면으로 상대할 수 없음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상인 연합이 형성된 뒤에 가장 먼저 할 일은 오라버니가 벌인 일에 대한 거겠죠?”
황녀의 질문에 아테니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황실이 함부로 세율을 올린 것에 대하여 상인 연합에서 공식적으로 항의를 하고, 다 같이 세금 징수를 거부할 겁니다.”
이제 무력으로 일을 해결하는 시대는 지났다.
제국은 물론이요, 대륙의 많은 사람이 상업에 뛰어들고 있었다.
그런 판국에 무력으로 세금을 징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녀 전하께서는 갈등이 무르익었을 때, 전하께서 일을 해결하시겠다고 나서 주세요.”
황태자는 앞으로 있을 일을 절대 해결할 수 없었다.
상인 연합의 주축이 되는 다섯 상단 중, 최소 네 곳의 상단이 황태자에게 반발할 테니까.
그리고 그때 나서는 만큼, 렉산드라의 능력을 단번에 도드라지게 하기 좋은 방법도 없었다.
“좋아요, 지금 당장 아르셀리나 후작가에 연락하죠.”
황녀가 자신이 데려온 측근 시녀를 불러들여 말을 전했다.
시녀가 디저트 가게를 벗어나고 난 뒤, 조금 있다가 렉산드라가 자리를 떴다.
그리고 황녀와 동시에 나가 누군가에게 들킬 위험을 줄이기 위해 아테니아는 좀 더 자리에 있다가 타운하우스로 돌아갔다.
그리고 대공가의 타운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대공비의 집무실로 세바스찬을 불러들였다.
“집사, 비베이른 상단과 엘세이타 상단 그리고 이르바 상단의 상단주로 내세울 이들을 준비시켜.”
비베이른과 엘세이타 그리고 이르바 상단 모두 빈켄티우스가 남들 몰래 키우고 있는 상단이었다.
각 상단의 구성원들은 겉보기에는 빈켄티우스와 연관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아테니아는 이 상단들 중 하나를 상인 연합의 주축 상단 중 하나로 만들 생각이었다.
지금 당장이야 황녀가 황위에 오르고 싶으니 빈켄티우스에게 얌전히 협조한다지만, 정작 황위에 오르고 나면 그 마음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그때가 되어야 알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상인 연합의 주축이 되려면 상단 중에서도 영향력이 큰 곳이어야만 했다.
그렇게 추리면 빈켄티우스와 크리스나, 디시어스를 제외하고 남는 상단은 다섯쯤밖에 되지 않았다.
그중에 비베이른과 엘세이타 그리고 이르바 상단이 있었다.
그러니 그중에 하나가 상인 연합의 의결권을 가지게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예, 대공비 전하.”
세바스찬은 발레리안의 명령을 받아, 아테니아가 수도에서 하는 일을 계속해서 도와 왔다.
그렇기에 아테니아가 황녀와 나눈 대화의 내용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대공비의 현명한 판단에 아주 만족스럽게 미소하며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며칠 뒤, 클레르폰 제국의 전역이 황실의 부당한 결정에 대하여 상인 연합이 들고 일어난 일로 떠들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