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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특별한 결혼을 위하여-98화 (98/111)

98. 사랑이 흘러넘쳐서 (4)

이제 발레리안이 시키면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원로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황태자가 북부에 저지른 모든 짓에 관한 정보를 모아 와라.”

사실, 빈켄티우스의 그림자 기사들만 있더라도 황태자를 몰아붙일 증거를 모으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발레리안이 노리는 것은 그 일에 모든 원로가 동참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그대들이 저지른 짓이 있으니 앞으로 감시를 붙일 거다.”

더불어, 발레리안은 원로들을 대놓고 통제할 수단을 두고자 했다.

뒤에서 몰래 그들을 지켜보는 것과 앞에서 감시하는 것은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것은 감시인 동시에, 그가 원로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위협이기도 했다.

“물론, 죄가 없는 자들은 이 모든 일에서 예외겠지.”

발레리안은 일찍이 자신의 편에 선 원로들을 봐 주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공고히 하는 수단이기도 했고, 동시에 그 외의 자들에게 온전한 발레리안의 편이 되면 받을 수 있는 특혜를 과시하는 일이기도 했다.

감시받게 된 자들은 고고히 물러나 있는 원로들을 질투와 시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개중에는 재빠르게 계산하여 원로들 사이 권력의 척도를 다시 나누는 이들도 존재했다.

이제, 원로들 사이 권력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는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발레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지막으로 말을 덧붙였다.

“내 아내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발레리안의 발이 지그시 바닥에 떨어진, 비리가 적힌 서류들을 눌러 밟았다.

“이 모든 일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지금껏 가만히 있던 발레리안이 원로들을 모조리 잡은 이유.

그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아테니아가 자신의 역린임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순간, 원로들의 시선이 카마시얼 백작을 위시하여 대공비를 끌어내리겠다며 대공성에 쳐들어간 자들을 향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이 그들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듯 그 눈빛이 한없이 사나웠다.

빈켄티우스의 주인을 원망하는 것보다, 그들을 원망하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이다.

아마도 카마시얼 백작을 위시한 자들은 한동안 원로들 사이에서도 배척받을 터였다.

“그럼, 이만 내 말은 충분히 전달됐으리라 생각하지.”

발레리안이 홀가분한 걸음으로 회의장을 나섰다.

물론, 그에게는 원로들 말고도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지만.

***

아테니아는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크리스나 백작 저택으로 향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크리스나 백작과 마주 앉아 있었다.

“…오늘 올 거였다면 아비와 함께 오지 않고.”

무리해서 달리지 않는 한 빈켄티우스의 대공성에서 수도까지는 며칠이 걸렸다.

그래서 크리스나 백작은 이 일의 범인이 아이레스임이 밝혀졌던 날 곧바로 수도로 귀환했다.

그리고 아테니아는 다음 날 수도로 향했으니, 사실 같이 와도 되긴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한 말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제 같이 마차를 탈 사이가 아니니까요.”

아테니아는 제 아버지를 더는 가족으로서 보지 않을 거라 이미 선언했다.

그리고 그 선언을 돌이킬 마음도 없었다.

그러니 다른 마차를 타는 것은 오히려 그녀에게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하아, 테나. 언제까지 그렇게 아이처럼 굴 거니.”

크리스나 백작이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는 연을 끊겠다는 아테니아의 말이 그저 화가 나 내뱉은 말인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제야 그녀는 백작이 연을 끊겠다는 제 말 이후 비교적 가만히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크리스나 백작은 제 딸이 어느 정도 화가 풀리면 알아서 없던 일로 할 것이라 여긴 모양이었다.

아테니아는 딱히 해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묵묵히 서류를 내밀었다.

어차피 이것만 확인하면, 크리스나 백작 쪽에서 알아서 연을 끊겠다고 할지도 모를 노릇이었으니까.

“아이레스를 업무상 비밀 누설죄로 고발할 거예요. 손해 배상도 청구할 거고요.”

“아테니아!”

테나에서 아테니아.

호칭 한번 바뀌기 참 쉬웠다.

그러나 아테니아는 더는 그런 것에 상처받지 않았다.

“현재 아이레스는 외출 금지를 당했다죠. 그렇지만 그것뿐이더군요.”

“아이레스를 그렇게 혼낸 것은 처음이었다! 그럼 내가 내 아들을 그 이상 어떻게 한단 말이야!”

크리스나 백작은 실로 억울해했다.

백작은 여전히 자신의 아들만을 귀애했다.

분명 그날, 크리스나 백작도 대공성에 있었으니 아이레스의 행동 때문에 원로들이 아테니아에게 대공비 자리를 내놓으라는 식으로 굴었던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엄연히 성인인 아이레스에게 백작이 내린 처벌은 겨우 청소년 시기에나 통할 법한 외출 금지뿐이었다.

이토록 아버지가 누구를 더 사랑하는지 선명할 수가 없었다.

“네, 그건 크리스나 백작님의 선택이니 알아서 하시고요.”

아테니아의 시선이 가라앉았다.

크리스나 백작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어도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도 자식이었으니까.

자식은 평생 제 부모를 짝사랑한다더니.

연을 끊는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감정은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몰랐다.

누구나 어린아이 시절 제 부모가 온 세상인 줄 알고 산다.

한때나마 세상이었던 존재를 말끔히 지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아테니아는 담담히 그 감정을 받아들였다.

“아이레스가 감옥에 가지 않게 하고 싶으시다면, 조건이 있어요.”

크리스나 백작이 생소한 사람을 바라보듯 아테니아를 쳐다봤다.

제가 이렇게 화를 내는데도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딸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백작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자신이 어떤 반응을 한다고 한들 소용없었다.

아테니아는 자신이 말하는 그 조건을 맞춰 주지 않는 한, 제 뜻을 꺾지 않을 터였다.

“……조건이 뭐냐.”

한참을 침묵하던 크리스나 백작이 입을 열었다.

아무리 미운 짓만 골라 하는 아들놈이라지만, 백작은 제 아들을 감옥에 보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제 아버지의 태도에 아테니아는 이제 헛웃음도 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제 아들은 지키셔야겠다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조건은 둘 중 하나를 고르시면 돼요. 아이레스에게서 후계자 자격을 박탈하시든가, 대운하 사업을 완전히 빈켄티우스에 양도하세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아이레스 같은 애가 후계자로 있는 상단을 어떻게 믿고 앞으로 같이 사업을 하겠어요? 그러니 둘 중 하나는 하셔야죠.”

아이레스가 후계자 자격을 박탈당하면, 상단에 접근할 권한을 잃는다.

그러면 앞으로 그가 기밀을 누설하는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터였다.

대운하 사업을 빈켄티우스에 넘기라는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이었다.

아테니아는 더는 아이레스에게 무언가를 방해받을 생각 따위 없었다.

“테나, 넌 크리스나의 사람이야! 그런데 지금 빈켄티우스의 편에 붙어 뭐 하는 짓이냐!”

순간, 아테니아가 멈칫했다.

그녀가 돌연 픽 웃어 버렸다.

“결혼하면 여자는 출가외인이라, 그 집안 사람이라고 하셨던 아버지가 아니셨나요?”

여자는 결혼하면 출가외인이니 가문과 상단을 물려줄 수는 없다고 했던 크리스나 백작이었다.

그런데 인제 와 자신을 다시 크리스나의 사람 취급한다는 것이 아테니아는 우스웠다.

심지어 클라이브가 바람을 피웠을 때도, 오히려 아테니아가 생판 남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편을 들었던 아버지가 아닌가.

하여간, 필요할 때는 잘도 등장하는 가족애였다.

“전 빈켄티우스의 사람이에요.”

아테니아가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니 가르침대로, 제 가문을 위해 행동하는 겁니다.”

아테니아가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아버지, 당신께서 가르치신 대로 하고 있을 뿐이니 나는 찔릴 것이 없다는 태도였다.

쾅!

“빈켄티우스 대공이 네게 그리하라고 하더냐?!”

크리스나 백작이 탁자를 내리치며 분노했다.

아이레스가 후계자 자리에서 물러나면, 남은 크리스나의 핏줄은 아테니아와 셀레니아뿐이었다.

그러나 셀레니아는 아마도 그 성정상, 크리스나를 물려받으려고 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녀는 크리스나를 지긋지긋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건, 결국 아테니아가 크리스나의 모든 것을 물려받게 된다는 뜻이었다.

“네게 크리스나를 가져오라고, 그놈이 그렇게 꼬드기던?!”

크리스나 백작은 아테니아에게 크리스나가 넘어가는 순간, 그것이 모조리 빈켄티우스에게 흡수될 것이라 생각했다.

여자가 남자에게 속해 있다고 굳게 믿는 인물이었으니 겨우 그런 생각밖에 못 하는 것이었다.

“입조심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내가 빈켄티우스 대공비임을 알고 있다면.”

아테니아가 차분하고 싸늘한 어조로 크리스나 백작에게 경고했다.

백작이 순간 이를 악물었으나, 그녀는 쓸모없는 언쟁을 이어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제 아버지의 말을 얼른 가로챘다.

“어차피 아이레스의 후계자 자격을 박탈할 생각 따위 없으시잖아요?”

아테니아가 뻔히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그녀의 말에 크리스나 백작이 크게 움찔했다.

역시나, 아테니아의 생각대로였다.

그녀는 놀라지도 않고 준비해 둔 또 다른 서류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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