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특별한 결혼을 위하여-96화 (96/111)

96. 사랑이 흘러넘쳐서 (2)

발레리안이 아테니아를 돌아보며 설명해 주었다.

“그간, 웨일러스 후작에게 원로들의 동태를 살펴보도록 명령을 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원로들이 다녀간 이후, 곧바로 웨일러스 후작에게 이번 일의 주동자를 알아 오라고 사람을 보냈죠.”

발레리안은 자신이 가진 웨일러스 가문의 비리들로 웨일러스 후작을 그간 부려 왔다.

웨일러스 후작 가문은 대대로 빈켄티우스 가문의 교육을 맡아 왔기 때문에, 그들은 원로 중에서도 제법 영향력이 컸다.

게다가 본디 웨일러스 후작은 뼛속까지 혈통주의자였다.

그러니 원로들 또한 당연히 후작이 아테니아를 반대하는 쪽이리라 여기고 있었다.

그 덕에 웨일러스 후작은 쉬이 발레리안의 명령을 이행할 수 있었다.

“카마시얼 백작은 원로들이 앞에 내세운 자일뿐, 그들을 모아서 쳐들어오게 한 자는 따로 있을 거라고 여긴 거군요.”

아테니아가 발레리안의 의중을 짐작하고 말했다.

사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카마시얼 백작이 그 많은 원로를 규합시켜 대공성에 쳐들어왔다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긴 했다.

아테니아와 카마시얼 백작이 한참 대화를 나눌 때, 정작 함께 몰려와 놓고 백작을 뒤에 제대로 비호해 주는 원로는 없었으니까.

만약 정말로 백작이 원로 무리에서 중요한 사람이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터였다.

“그래서 누구였지?”

아테니아가 웨일러스 후작을 돌아보며 물었다.

“에킬레샤 자작이었습니다.”

에킬레샤 자작이라면, 아테니아가 아침에 증거 서류들을 제게 가져오라고 명령했던 그 사람이었다.

그러나 결혼 전 빈켄티우스의 가계도와 가신들을 모조리 외워 두었던 아테니아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에킬레샤 자작은 원로들 사이에서 그 정도 영향력은 없지 않나요?”

아테니아가 이번에는 발레리안에게 확인하듯이 물었다.

에킬레샤 자작은 원로들 중에서도 그 세력이 미미한 편이었다.

그랬기에 아테니아가 일부러 자작을 콕 집어 서류를 가져오라 명한 것이었다.

에킬레샤 자작 같은 사람일수록, 대공비의 말을 거역한다는 것에 부담감을 더욱 느끼기 마련이니까.

“테나의 말이 맞습니다. 본디, 에킬레샤 자작은 그럴 힘이 없죠.”

역시, 아테니아의 기억이 맞았던 듯 발레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는 것은 아무래도 누군가가 에킬레샤 자작을 도왔다는 말이었다.

“최근에 에킬레샤 자작과 자주 어울린 원로는 누가 있지?”

“지젤 백작, 아이엔 후작, 그리고….”

발레리안이 웨일러스 후작에게 묻자, 후작이 꽤 여러 이름을 늘어놓았다.

죄다 원로 중에서 상당히 세력이 있는 자들이었다.

이런 이들이 에킬레샤 자작의 편이 되어 줬다면, 자작이 다른 원료들을 규합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분명, 그들이 에킬레샤 자작에게 협조할 수밖에 없는 공통된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지젤 백작이나 아이엔 후작, 그리고 그 외의 원로들 또한 본래는 에킬레샤 자작과 그리 가까운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원로가 대번에 에킬레샤 자작과 친밀해지는 것은 공통된 무엇이 없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원로들에게는 숨기고 있던 듯합니다만, 최근 들어 다들 자금난에 시달리던 이들입니다.”

아테니아의 말에 발레리안이 빠르게 해당 원로들의 공통점을 짚어 냈다.

저번에 그림자 기사들에게 웨일러스 후작가에 대해 털어 오라고 지시한 이후, 그는 혹시 몰라 다른 원로들에 대한 정보도 차곡차곡 모아 놓은 터였다.

그 덕에 발레리안은 빠르게 공통점을 떠올릴 수 있었다.

북부 대부분의 귀족은 부유했으나, 애초에 상업이란 한순간에도 고꾸라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언제든, 누구에게나 자금난이 생긴다고 하여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에킬레샤 자작에게 그 돈을 대 준 것은 황태자 전하겠군요.”

아테니아가 말했다.

에킬레샤 자작에게는 꽤 여럿 되는 원로들의 자금난을 한 번에 해결해 줄 능력 따위 없었다.

그러니 아마도 에킬레샤 자작의 뒤에 정체를 숨긴 채, 황태자가 그들의 자금난을 해결해 주었을 터였다.

그렇게 해야만, 원로들이 자신의 뜻대로 아테니아를 빈켄티우스에서 몰아내도록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감히 황실 따위에 휘둘려서 빈켄티우스의 대공비 전하를 몰아내고자 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웨일러스 후작이 화가 나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혈통주의자인 것과는 별개로, 후작은 빈켄티우스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넘쳐 나는 사람이었다.

그가 빈켄티우스 핏줄의 스승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수많은 존경을 받고 사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렇기에 웨일러스 후작은 자신이 아테니아를 어떻게 생각하든 현 상황에 분노했다.

“이번 기회에 원로들을 완전히 정리해야겠습니다.”

발레리안이 결심한 듯 말했다.

아테니아와 함께 살아가기로 한 이상, 자신은 그녀가 최고의 것들만 누리도록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니 원로들이 저따위로 구는 것을 가만히 둘 순 없었다.

“웨일러스 원로, 그대가 날 도와야겠어.”

발레리안이 담담하게 웨일러스 후작에게 요구했다.

그게 지금까지 발레리안이 후작을 치우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둔 이유였으니까.

“예, 대공 전하.”

웨일러스 후작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쉬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애초에 후작에게는 그것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그 후, 대화가 조금 더 이어지다가 얼추 마무리되자 후작이 발레리안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먼저 자리를 떴다.

그 뒤, 아테니아가 말을 꺼냈다.

“리안, 아무래도 수도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수도에는 왜…?”

발레리안이 멈칫했다.

그는 이유도 듣기 전에 아테니아를 보내기 싫은 기색이었다.

솔직히, 이제 마음을 마음껏 드러내도 된다고 생각하니 조금도 그녀와 떨어지기 싫은 탓이었다.

“아무래도 아이레스를 만나 봐야겠거든요.”

원로들이 가져온 증거는 확실했다.

대운하 사업의 기밀을 빼돌린 것은 아이레스였다.

그러나 그를 어떻게 할지 정하기 전에, 아테니아는 어쩌면… 마지막으로 제 동생을 만나 보고 싶었다.

“그럼 같이….”

“리안, 당신은 여기에 있어야죠. 할 일이 있잖아요.”

아테니아와 같이 가고자 했던 발레리안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이 옳았다.

원로들을 정리하겠다고 한 것은 발레리안이었으므로, 그는 여기에 남아야만 했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십시오.”

발레리안이 아테니아의 허리에 두 팔을 감아 그녀를 끌어안으며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아테니아가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며 대답했다.

“그럼요, 저도 리안이랑 오래 떨어져 있기 싫은걸요.”

아테니아의 다정함에 발레리안이 응석을 부리듯 그녀의 목덜미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가 그녀의 귓가에 속살거렸다.

그로 인해 아테니아가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전 테나와 찰나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발레리안이 지금이라도 다녀오라는 말을 취소하고 싶은 것처럼 아테니아를 더욱 끌어안았다.

그녀의 살내음이 지나치게 가깝게 느껴지자, 그는 어떤 충동에 시달렸다.

발레리안은 애써 그 충동을 떨쳐 내려는 듯, 아테니아에게서 몸을 떨어트렸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가 그의 목에 제 팔을 감아 홱 끌어당겼다.

쪽.

두 입술이 가볍게 맞닿았다 떨어졌다.

그녀가 해사하게 웃으며 서로의 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똑같이 속살거렸다.

“저도 그 며칠 동안 아주 많이 당신이 그리울 거예요, 리안.”

아, 지나치게 달았다.

발레리안의 인생에서 이 순간은 너무나도 달았다.

그래서 그는 이 순간을 놓지 못하고 그대로 아테니아를 끌어당겼다.

잠시 떨어졌던 두 입술이 도로 겹쳐졌다.

그러나 아까와는 달리, 발레리안의 손이 아테니아의 머리칼 속을 파고들어 그녀의 뒤통수를 단단히 받쳐 왔다.

그로 인해 그녀는 아랫입술을 빨았다가 간지럽히며 부드럽게 눌러 오는 그의 혀를 피하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감당해야만 했다.

틈을 내어달라는 듯이 발레리안의 혀가 그녀의 입술 새를 간지럽히자, 아테니아의 두 눈이 스르륵 감기며 두 입술이 열렸다.

서로의 혀가 서로를 탐하여 얽혀 들었다.

그 후로 그곳에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서로를 탐하는 소리만이 울렸다.

***

다음 날, 아침에 아테니아가 수도로 떠나고 난 오후였다.

빈켄티우스의 성으로 발레리안이 소집한 원로 전원이 모여들었다.

“대공 전하께서 왜 모이시라고 한 겁니까?”

“아마도 며칠 전의 일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대공비 전하의 동생 되는 영식이 대운하 사업의 기밀 사항을 빼돌린 것 말이지요?”

“아무래도 전날, 그렇게 많은 원로가 그에 관하여 문제를 제기하였으니 대공 전하께서도 마냥 외면하실 수만은 없던 것 아니겠나.”

발레리안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원로들을 불러들였기 때문에, 원로들은 회의실에 모인 채로 서로 수군덕거리기에 바빴다.

그 속에서 오직 웨일러스 후작만이 조용했다.

그는 어리석게도 앞으로 일어날 일을 모르는 자들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쯧, 대공 전하께서 그깟 말 따위를 신경 쓰실 거라고 여기다니….”

웨일러스 후작이 남들에게는 들리지 않게 작게 중얼거렸다.

발레리안 빈켄티우스는 맹수 중에서도 그들의 왕이었다.

즉, 여태까지 그는 누구나 물어뜯어 죽일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웨일러스 후작은 이제는 자신이 수도에서 발레리안에게 그런 모욕을 당한 일조차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졌다.

그게 아니었다면, 오늘날 자신은 멍청하게 굴고 있는 다른 원로들과 전혀 다를 바 없었을 테니까.

“다들 모였군.”

그리고 그 순간, 마침내 발레리안이 자리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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