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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특별한 결혼을 위하여-88화 (88/111)

88. 남다른 그녀(6)

빈켄티우스의 결혼식인 만큼, 피로연에 참석한 손님 또한 셀 수 없이 많았다.

그 속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새 신부는 대체로 결혼식 전에 웨딩드레스 탓에 무언가를 먹질 못하기 때문에, 피로연쯤 되면 그들은 완전히 지치고는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테니아가 휴게실로 잠시 쉬러 간다는 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아테니아가 신부 전용 휴게실에서 쉬는 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가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왔다.

“황녀 전하를 뵙습니다.”

아테니아는 당황하지 않고 일어나 렉산드라에게 인사를 건넸다.

“제가 올 줄 알고 있었다는 얼굴이군요.”

대공과 대공비의 직위는 제국법상 동등한 신분이었다.

빈켄티우스 대공에게 하대하는 것은 황제와 황후, 황비뿐이었으므로 황녀는 당연하게도 아테니아에게 존대를 사용했다.

“황녀 전하께서 지금 상황에 대화를 나누시기에는 당연히 대공 전하보다 제가 더 쉬울 테니까요.”

그런 황녀의 태도에도 아테니아는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매끄럽게 대답했다.

지금부터는 자신이 보이는 태도가 모두 빈켄티우스의 일면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계속해서 제게 신호를 주셨잖습니까.”

렉산드라의 시선은 피로연 내내 아테니아에게 은근하게 향해 있었다.

물론, 남들이 알아차릴 만큼은 아니었으나 렉산드라가 발레리안에게 접촉했음을 아는 아테니아로서는 모를 수 없었다.

그리하여 렉산드라와 둘만 남을 시간을 만든 것이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죠?”

“그렇지 않아도 기사들을 시켜 황녀 전하 외에 그 누구도 여기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 두었습니다.”

아테니아의 대답에 렉산드라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테니아와 렉산드라가 서로 마주 앉자, 황녀가 말을 꺼냈다.

“빈켄티우스 대공 전하에게 접근한 것만으로도 제 의도를 알아차렸겠지만, 저는 황제가 되고자 합니다.”

존댓말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황녀에게서는 오만한 위엄이 흘러나왔다.

지금껏, 황태자의 뒤에서 숨죽이고 있던 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빈켄티우스와 크리스나에서 저를 지지해 줬으면 해요.”

렉산드라가 당당하게 아테니아에게 요구했다.

그럴 만도 했다.

이 제안은 황녀에게뿐만 아니라, 내내 황태자가 거슬리던 발레리안과 아테니아에게도 좋은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아테니아는 곧바로 황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테니아는 차를 우려내 렉산드라와 제 앞에 놓아둔 뒤에야,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저희가 왜 그래야만 하죠?”

렉산드라가 움찔했다.

아테니아에게서 이런 대답이 흘러나올 줄은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황태자는 그대와 대공 전하 모두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가 아니었던가요? 그런 자를 치우는 데 제가 앞장서겠다는 거예요.”

렉산드라가 자신을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아니요, 앞장서는 건 황녀 전하가 아니라 빈켄티우스와 크리스나가 되겠죠.”

그러나 아테니아는 황녀의 말에 담긴 허점을 놓치지 않았다.

“황비 전하의 가문이 여전히 그 위세가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고 하나, 현재 황제 폐하의 힘을 누를 정도는 아니기에 저희에게 이렇게 도움을 요청하시는 게 아니던가요?”

아테니아가 현 상황을 정확하게 꼬집었다.

애초에, 황후의 가문은 한미하기 그지없었고 황비의 가문은 후작가 중에서도 명문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황비가 겨우 황비 자리에 만족해야 했던 것은 황태자 시절, 지금의 황제가 자신을 사랑한 황비를 속였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황제는 현 황비 가문의 도움을 받아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 그 힘으로 사랑하던 여자를 현 황후 자리에 올렸다.

그러면서 저를 도왔던 황비 가문의 힘은 분산시켜 버린 터라, 황비에게는 현재 황제를 이길 힘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반면 황태자 전하를 누르는 일은, 사실 빈켄티우스라면 누구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가능하죠.”

어차피 지금은 아테니아와 렉산드라, 단 둘뿐이었다.

그러니 이런 발언도 못 할 이유가 없었다.

“아시다시피- 대공 전하께서 황태자 전하에게 적나라하게 황위에 관한 말을 언급해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하는 게 지금의 황가가 아니던가요.”

아테니아의 말에 렉산드라의 표정이 순간 잠시나마 굳었다.

황녀는 제 어머니 가문의 일과 황가의 현황을 꼬집는 그 태도가 가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황녀는 황태자와 달리, 곧 제 표정을 평이하게 바꾸었다.

확실히, 베르나도보다는 렉산드라가 황족으로서 훨씬 나아 보였다.

“내 앞에서 감히 황실을 두고 그렇게 대놓고 말해도 되나요?”

렉산드라가 짐짓 화가 난 양 말했다.

그러나 아테니아는 황녀의 기세에 밀리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있던 일을 발설하시겠다는 건, 황녀 전하께서 원하시던 지원을 포기하겠다는 뜻으로 알아들어도 될까요?”

아테니아의 질문에 렉산드라가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아테니아의 말이 옳았다.

황녀는 빈켄티우스와 크리스나에서 저를 지지해 주는 일이 마치 쌍방이 모두 똑같은 이득을 보는 것처럼 굴었다.

그러나 사실, 더 큰 이득을 보는 것은 황녀였다.

왜냐하면 이미 발레리안과 아테니아가 결합한 시점에서, 황태자가 그녀를 건드리기란 요원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크리스나 또한 이번에 사업을 무역 쪽으로 더 확장하면서, 빈켄티우스 상단 다음으로 제국에서 두 번째 가는 상단이 되었다.

황가의 입장에서는 크리스나 상단이 무역으로 벌어 올 외화와 그에 따른 세금 한 푼이 아쉬운 사정이었다.

그런 상황에 황실이 크리스나를 건드릴 수 있을 리 없었다.

상단들에게서 걷는 세금이 넉넉하면 모르겠으나, 황실은 빈켄티우스 상단에서 거의 세금을 걷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것은 건국 시부터 지금까지, 황실에게 북부의 전권을 위임받은 빈켄티우스가 북부에서 세금을 거둬 황실에 한 번에 내는 방식으로 행정이 진행되고 있는 탓이었다.

초기, 북부가 황폐한 땅에 불과했을 때는 그게 황실에 훨씬 이득이었다.

왜냐하면 황실에서 빈켄티우스에게 북부를 내팽개칠 때, 세율로 따지면 워낙 흉년이 가득한 북부에서 세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까 봐 세율이 아닌 황실이 지정한 일정 금액을 북부의 세금으로 내도록 했기 때문이다.

북부에서 거둬들인 세금이 넉넉지 않더라도 빈켄티우스에서는 황실이 정해 준 최소 한도의 금액은 맞춰야만 했다.

어차피 북부의 각 영지에서 세금을 얼마나 걷을지는 빈켄티우스가 정하는 일이었기에, 세율이 높더라도 원망은 그들이 받고 황실은 세금이라는 이득만 취하면 되었었다.

그 행정은 여태까지 이어지고 있었는데, 매년 세금 산정 방식을 논하는 자리에서 황실이 북부의 대변인에게 패한 탓이었다.

북부가 부유해지며 그들의 발언권이 지나치게 커졌으니, 황실에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빈켄티우스 가문에서는 북부의 상단들에게 일부러 적은 양의 세금만을 걷고 있었다.

북부의 귀족들이 이미 충분히 부유해진 터라, 그들에게 이전보다 높은 세금을 걷어도 그럴 여력이 충분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황실이 빈켄티우스 상단의 어마어마한 수익 중 가져갈 수 있는 돈은 아주 조금에 불과했다.

그런 상황에서 괜히 크리스나 상단을 건드리면 좋을 것이 없었다.

그들이 보호를 위해 빈켄티우스 상단 산하로 들어가기라도 하면, 황실은 크리스나에서 내는 세금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이 부유한 두 가문이 결합한 시점에서 황태자를 굳이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지 않더라도 억누를 방법은 많다는 것이었다.

“…대공비 전하께서 생각보다 현 정세를 확실히 알고 계시네요.”

렉산드라가 표정에서 힘을 풀며 한숨을 삼켰다.

그녀는 자신이 이 대화에서 아테니아에게 완벽히 말려 버렸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황태자가 방심하는 틈을 타 제 편으로 끌어들인 이들이 꽤 되었으나, 그들만으로 황태자의 자리를 빼앗으려면 상당한 고충을 겪어야만 할 터였다.

발레리안이 당장 대놓고 황태자에게 경고한 일이 아니더라도, 렉산드라는 발레리안을 언젠가 찾아왔을 터였다.

왜냐하면 황제와 황태자가 오래전부터 발레리안을 견제해 왔기에. 그녀는 그들을 억누르는 수단으로라도 발레리안이 자신을 사용하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어쨌든, 발레리안의 입장에서 황제와 황태자의 행태는 성가신 것이 분명했으니까.

게다가 오늘 마주한 발레리안은 렉산드라가 황위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그 틈을 타 어영부영 빈켄티우스 대공과의 거래를 밀어붙일 생각도 하고 있었다.

제가 내어줄 것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

그것이 거래의 기본이었으니까.

그러나 오늘, 아테니아가 렉산드라의 패를 모조리 까발림으로써 그런 무모한 계획도 끝이 난 것이다.

“그런데, 영애의 말은 제 어머니와 황제 폐하 사이의 일을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들리더군요. 그다지 유명한 건 아닐 텐데 어떻게 안 거죠?”

렉산드라가 의아함을 표출했다.

정치권에 없는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황제가 영애의 사랑을 이용하여 그 자리에 오른 후 뒤통수를 친 이야기는 남들 눈에 보기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황태자 시절, 현 황제는 황비와의 사이를 비밀에 부치기를 원했다.

사랑에 눈이 멀어 있던 황비는 제 아버지인 후작에게조차 현 황제와의 사이를 알리지 않았다.

그랬기에 당시 황후 자리에 한미한 가문의 영애가 오른 이후, 황비와 황제에 관한 소문은 사교계 몇몇 인사들의 추측으로 뒤에서만 암암리에 돌았을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나 거의 묻히다시피 한 이야기를 아테니아가 알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제가 황녀님께서 어떤 사람인지 기억하고 있었노라 하면, 대답이 되셨을까요?”

아테니아가 렉산드라로서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말을 꺼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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