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특별한 결혼을 위하여-84화 (84/111)

84. 남다른 그녀 (2)

크리스나 백작의 미간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아테니아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 몰랐기 때문이리라.

“테나, 잘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다. 이건 흔치 않은 기회니까.”

크리스나 백작이 아테니아를 설득하듯이 말했다.

그러나 백작이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는 제 안의 확신을 더해 갔다.

“그만하세요, 아버지. 전 생각 없으니까.”

아테니아는 재차 단호하게 거절했다.

크리스나 백작의 속셈에 놀아나는 꼴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백작은 제 딸이 자존심을 부린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테나, 네가 내게 서운한 게 있는 건 알겠다. 그렇지만….”

“아버지, 이제 제가 애칭으로 불릴 나이는 아닌 것 같네요.”

아테니아가 크리스나 백작의 말을 잘라 냈다.

백작의 행동이 그대로 완전히 굳어 버렸다.

애칭을 부르는 게 나이와 무슨 상관이겠는가.

아테니아는 그냥, 일전에 말했듯이 크리스나 백작에게 아버지와 딸 사이를 정리하자는 티를 재차 냈을 뿐이었다.

“아테니아! 내가 너한테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굳이 그런 식으로 나와야겠더냐. 이 못된 것 같으니라고!”

크리스나 백작이 울컥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시선이 어두워진 아테니아가 발레리안의 쪽을 한 번 바라봤다.

제 아버지가 무슨 속셈인 줄은 알고 있으나, 그것을 그의 앞에서 밝히고 싶지 않은 갈등 때문이었다.

“저는 잠시 나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테나.”

발레리안이 아테니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린 듯 담담하게 말했다.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리안이 들어도 괜찮아요.”

아테니아는 더는 발레리안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기로 했다.

그를 안심시켜 주고 싶었다.

발레리안이 어떤 치부를 지니고 있던, 살면서 치부가 있는 건 그뿐만이 아니라고.

“제가… 아버지께서 저한테 왜 향수 사업을 맡기려고 하시는지 모를 거 같아요?”

아테니아의 목소리에는 체념과 지긋지긋함이 가득했다.

“아이레스가 향수 사업을 맡아 나갈 능력이 없기 때문이잖아요.”

“누나!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아이레스가 아테니아의 발언에 발끈하여 소리쳤다.

“넌 입 닫아. 조용히 하고 있어.”

그러나 아테니아가 차분하게 아이레스의 말을 막아 버렸다.

아니, 그녀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장부 보는 법도 겨우 나한테 배운 네가, 사업을 어떻게 할 건데?”

아테니아는 참았던 울분을 드러냈다.

사실, 오늘 크리스나 백작이 그녀에게 뜬금없이 향수 사업을 맡으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않았더라도 이런 마음 같은 건 평생 속에 담고 살아갔을 터였다.

“아버지도 그래요. 어떻게 나한테 향수 사업을 맡겼다가 쟤한테 줄 생각을 해요?”

아테니아가 홱 크리스나 백작을 돌아봤다.

“그건…!”

크리스나 백작은 반사적으로 아테니아의 말에 반응했다가, 도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 반응과 이어지는 침묵으로 답은 충분했다.

그녀가 헛웃음을 지었다.

“무역으로 사업을 새롭게 확장하려니까, 정신이 없으셨겠죠.”

아테니아가 자신이 이런 추측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늘어놓았다.

사실, 그녀도 예전 같았으면 제 아버지가 이런 의도라고 의심하지 않았을 터였다.

아마 아버지의 뜻에 얌전히 따라 향수 사업을 키우다가, 나중에 사업을 고스란히 아이레스에게 내주었을 터였다.

너는 언젠가 시집갈 테고, 가문을 물려받을 아이레스가 상단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 훗날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 말에 애써 속상함과 억울함을 참아 가면서.

“그렇지만 무역이 잘 되려면, 우선 크리스나 상단의 기반이 되는 제국에서의 사업이 계속 튼튼하게 유지되어야만 했을 거고요. 거기에 적임자가 저뿐이었던 거예요.”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아테니아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나 백작이 아이레스에게 보이는 사랑은 자신이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지만 그걸 온전히 저한테 주실 생각은 단 하나도 없으셨잖아요? 애초에, 아버지가 가진 모든 것은 아이레스의 것이니까요.”

돈에 관하여 그토록 민감한 크리스나 백작이 왜 아이레스가 상단의 돈을 빼돌린 것만큼은 그토록 쉽게 용서해 주었을까.

아테니아는 억울해서라도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의외로 어렵지 않게 답을 찾아냈다.

어차피 크리스나 백작의 모든 것은 아이레스의 것이 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레스가 자신의 것을 제가 따로 쓴다는데, 굳이 크게 뭐라 할 이유가 무엇 있었겠는가.

“제가 향수 사업을 열심히 키워 놓는 사이, 아이레스에게 상단의 일을 배우게 하면 훗날 아버지가 은퇴하실 즈음에는 나아져 있으리라고 여기신 거죠?”

아테니아가 확신을 담아 물었다.

크리스나 백작의 입이 조개처럼 꽉 다물렸다.

그녀가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정말이지, 어쩌면 제 아버지에게는 아들인 아이레스만이 자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아테니아의 마음은 그렇게 제 아버지로부터 한 걸음 더 멀어졌다.

“됐어요, 애초에 아버지한테 더는 뭘 기대한 적도 없으니까요.”

아테니아가 담담히 말했다.

이제는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제 아버지의 사랑이 슬프지도 않았다.

“아테니아, 아이레스가 잘 되면 너한테도 좋은 거….”

크리스나 백작이 뻔히 들킨 제 속내를 애써 포장하려 들었다.

“라는 소리도 하실 줄 알았으니까 그만하세요. 저한테 자기보다 더 좋은 걸 주는 줄 알고 발끈하던 애가 잘 되어서, 제가 뭐가 좋겠어요?”

하지만 아테니아는 이번에도 크리스나 백작의 말을 끊어 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어지는 아버지의 말이 너무나 그녀가 예상했던 대로여서 더 들을 것도 없다 싶었다.

아테니아의 시선이 짧게 아이레스를 향했다.

그녀의 말투에는 제 동생에 대한 어떠한 서운함도 없었다.

마치, 아이레스가 원래 그런 사람인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게 그의 얼굴을 순식간에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누나, 나는… 그게 아니라….”

아이레스는 그제야 제 누나에게 보인 행동이 부끄러운 듯 두 입술 달싹이다가 도로 꾹 다물었다.

아테니아는 그에 대하여 결코 괜찮다고 말해 주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자리에서 일어날 뿐이었다.

“크리스나와 빈켄티우스 두 가문의 체면이 있으니, 아버지가 결혼식에는 오실 거라고 믿어요. 아마 그날이 제가 아버지에게 요구할 마지막 아버지 역할일 거예요.”

아테니아가 일어나자, 발레리안도 자연스럽게 그녀를 따라 일어났다.

아테니아는 마치 생판 남에게 인사하듯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럼 무탈하게 지내시고 안녕히 계세요, 크리스나 백작님.”

정말이지, 이제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군다는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

마차에 타자마자, 발레리안이 물었다.

“…테나, 괜찮습니까?”

그런 발레리안을 보며, 아테니아는 웃고 말았다.

“리안은 언제나 제 걱정뿐이네요.”

아테니아가 크리스나 저택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훨씬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발레리안은 늘 그녀를 이렇게 변화시키는 사람이었다.

아테니아에게 자꾸만 모진 말을 하게 만드는 가족들과는 달리.

“그거야 제가 걱정할 사람은 아테니아뿐이니까요.”

발레리안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왜요?”

아테니아가 일부러 반문했다.

“아버지나 동생을 상대로 모진 말을 한 건 저잖아요. 그런데 왜 리안은 늘 저를 걱정하나요?”

발레리안의 입이 다물렸다.

그는 요즘 들어 정말이지, 아테니아가 어려웠다.

그녀가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잖아요. 사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와 동생한테 그렇게까지 해야 했었냐고 할지도 모를 행동들이었으니까요.”

물론, 아테니아는 방금 보였던 자신의 태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아이레스는 그녀에게 그런 취급을 받을 만한 행동들을 지금껏 보여 왔다.

오히려 그들을 인내해 온 것은 아테니아였다.

하지만 남들은 아테니아가 지금까지 그들에게 당한 것이 있어 억울하든, 아니든 얼마든지 그녀를 비난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이레스가 아테니아의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사회는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든 상관 없이 때때로 무수한 이해를 강요하고는 하니까.

사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많은 일이 생판 남이었다면, 그 사람의 얼굴을 두 번은 보지 않을 그런 행동이어도 불구하고 말이다.

“저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조심하고 소중히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발레리안은 가족이란 이유로 아테니아가 크리스나 백작과 아이레스를 용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그녀를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아테니아가 예상했던 대로.

“타인에게는 못 할 행동이면서 자신을 아껴 주는 사람에게 하는 것은 그 상대의 마음을 이용하는 비겁한 행동이에요.”

발레리안은 오히려 아테니아의 손을 잡아 왔다.

마치, 그녀에게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는 듯.

“그러니 테나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발레리안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절대적인 아테니아의 편이었다.

그것을 확인하자, 발레리안이 이렇게 굴리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음이 사르륵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리안, 당신은 이렇듯 언제나 내 편이죠.”

아테니아가 발레리안의 손을 맞잡았다.

기대하지 않았어도, 저와 아이레스를 다르게 대하는 아버지를 보며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발레리안 덕에 금세 괜찮아졌다.

그녀는 그도 이런 기분을 알기를 바랐다.

“나도 언제나 당신 편이에요, 리안. 그걸 잊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아테니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설령 당신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그래서 남들에게는 이해받지 못할 행동을 할지라도…, 나는 당신을 이해할 거예요.”

발레리안이 더는 자신의 반응을 두려워하며 숨어 들지 않기를 바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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