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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특별한 결혼을 위하여-83화 (83/111)

83. 남다른 그녀 (1)

아테니아가 현재 추측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발레리안이 그녀와 결혼하지 않으려고 할 가장 큰 이유는 선선대 대공과 원로들이었다.

그가 말해 주지 않는 것을 아테니아가 독심술을 하는 것도 아닌데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차근차근 이유가 될 만한 것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

원로들에 관한 문제는 그중 가장 맨 처음이었다.

“결혼식 전에 원로님들을 모아 놓고 빈켄티우스 경께서 저를 직접 손주 며느리로 소개해 주세요.”

“그건….”

선선대 대공이 미간을 찌푸렸다.

겉으로 보기에 아테니아의 말은 전혀 문제 될 것도 무리한 것도 없었다.

시할아버지가 손주 며느리를 소개한다는데, 뭐가 문제 되겠는가.

그러나 그녀의 말에는 세 가지 계산이 깔려 있었다.

첫째, 표면만 보면 이 요구가 가벼워 보이기에 거절하기 힘들다는 것.

둘째, 선선대 대공이 원로들의 앞에서 아테니아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 선선대 대공이 그녀를 인정하는 말을 다수의 앞에서 꺼냄으로써 쉬이 말을 번복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선선대 대공도 아테니아의 이런 계산을 알아차렸다.

그렇지만 거절하기에는 명분이 마땅치 않았다.

엄연히 그녀에게 먼저 발레리안과 결혼하라고 한 것은 선선대 대공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도 해 주지 않는다면,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둘을 붙여 놨노라고 대놓고 말하는 셈이었다.

“…좋다. 그 정도야.”

그래서 선선대 대공은 알면서도 아테니아에게 져 주는 수밖에 없었다.

선선대 대공은 분명 그녀를 제멋대로 휘둘러, 빈켄티우스에서 못 버티고 스스로 뛰쳐나가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쩐지… 그게 절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선선대 대공을 마주했으니, 그다음 차례는 크리스나 백작이었다.

어쨌든, 귀족들이 보는 눈을 생각해서라도 크리스나 백작가나 아테니아나 서로 결혼식에 백작이 참석하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테니아와 발레리안은 마차를 타고 대공가의 타운하우스에서 크리스나 백작저로 향했다.

그렇게 하여 단둘이 남자, 발레리안이 마침내 말을 꺼냈다.

“…테나, 언제 그런 생각을 했습니까?”

아테니아가 단 한 마디도 없었기 때문에, 발레리안은 그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터였다.

“그것보다는 왜 이런 생각을 했냐고 묻는 게 맞지 않을까요?”

아테니아가 태연히 질문을 되돌려 주었다.

발레리안이 멈칫했다.

어쩐지, 그녀가 조금 달라진 느낌이었다.

“물어보면 대답해 주실 겁니까?”

“네.”

아테니아는 어렵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리안, 당신이 원한다면 난 뭐든지 답해 줄 거예요.”

아테니아의 어조가 확고했다.

발레리안이 궁금하다면 정말, 단 하나도 망설이지 않고 말해 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그 순간 아무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혹시 자신이 숨기고자 하던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다 알아도 아테니아만큼은 빈켄티우스의 끔찍함을 모르길 바랐다.

그래서 발레리안은 차마 묻지 못했다.

아테니아는 이미 웨일러스 후작을 만난 적이 있었다.

게다가 발레리안이 없는 사이에 선선대 대공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물론 이미 웨일러스 후작과 선선대 대공에게 몇 차례 경고를 남겼다지만, 그들을 완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정보를 얻을 곳은 많았고, 그리하여 발레리안이 숨기고 싶던 빈켄티우스의 깊은 일까지 알아냈을 수도 있었다.

만약 진짜로 아테니아가 그가 숨기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면, 발레리안에게 있어 그보다 끔찍한 일은 없으리라.

그 순간, 아테니아가 그의 손을 잡아 왔다.

“리안, 내가 그동안 당신을 많이 걱정시켰다는 거 알아요.”

아테니아가 조곤조곤하게 말을 꺼냈다.

아이를 안심시키듯이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녀도 그간, 자신이 발레리안에게 일방적으로 많이 의지했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졸업 후, 3년간 신부 수업만 받고 1년간 칼스이턴의 안주인으로만 살았다.

그 탓에 아테니아는 귀부인들끼리만 교류하는 고립된 세상에 살았고, 어느덧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이혼하려고 할 때가 되어서야 그녀는 알게 되었다.

아테니아는 자신이 4년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실상 시간이 흐르고 나니, 스스로의 손에는 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시댁이, 남편이, 가족이 아테니아에게 그들이 내키는 만큼 줄 때는 그녀의 것 같았는데 돌아보니 아니었다.

결국 아테니아가 4년간 가지고 있던 것들은 모두 그들이 선심 쓰듯 건넨 그들의 것이었다.

그들이 내키지 않아서 빼앗아 가도 그녀가 결국 찾아올 방도가 없는 그들의 것.

자신의 것이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것을 쌓아 온 결과였다.

그러니 아테니아도 아무것도 없는 자신을 발레리안이 한없이 약하게 봤던 것도 이제는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가 그녀와 재회한 후, 아테니아에게 돌려준 것은 그녀의 삶뿐만이 아니었다.

발레리안은 아테니아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는 방법 또한 다시 알려 줬다.

그 덕에, 그녀는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테니아는 변했다.

그러니까 이제 그녀는 발레리안에게 일방적으로 의지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자꾸만 뒤로 물러서는 이유가 무엇인지 몰라도,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 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빈켄티우스 경도, 원로분들도 무섭지 않아요.”

그래서 아테니아는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녀의 말에는 흔들림 따위 전혀 없었다.

발레리안도 알 수 있었다.

아테니아는 정말로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 그는 깨달았다.

선선대 대공과 원로들이 무슨 짓을 할까 봐 무서워하는 것은 발레리안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동이 끔찍하여 그녀가 자신에게서 저 멀리 밀려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리안, 당신이 내 힘이 되어 줄 거잖아요.”

그런 발레리안의 두려움을 마치 알고 달래 주는 것처럼, 아테니아가 그의 손을 잡아 왔다.

“난 그거면 돼요.”

발레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움츠렸다.

정말 그걸로 충분할까?

의문이 들었다.

어머니에게도 아버지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 어머니는 고통 속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한 것은 발레리안도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발레리안은 너무 이른 나이에 배워 버렸다.

그리고 그 이른 배움은 발레리안의 두려움이 되었다.

‘네놈이라고 네 아비와 다를 것 같으냐?’

발레리안의 귓가로 선선대 대공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발레리안은 아주 오래전 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노라, 그렇게 다짐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발레리안은 선선대 대공이 했던 말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발레리안은 선선대 대공의 말대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 제가 어느 날 아테니아를 상처 주게 될까 봐 그게 무서웠다.

발레리안이 무슨 대답을 내놓아야 할지 몰라 말을 고르고 고르며 망설이는 순간, 마차가 멈춰 섰다.

똑똑똑.

“크리스나 백작가에 도착했습니다.”

그 찰나에 마부석과 좌석 사이의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발레리안에게는 구명줄 같았다.

“이만 내려야겠습니다, 테나.”

발레리안이 급하게 마차에서 일어났다.

그가 평소와 다르게 조급한 걸음으로 마차에서 내렸다.

그러나 아테니아는 그를 채근하지도, 붙잡지도 않았다.

발레리안이 마차에서 내리는 그녀의 손을 잡아 주는 순간까지도, 아테니아는 그저 고맙다는 말을 덧붙일 뿐이었다.

발레리안은 그것이 당황스러우면서도… 그 스스로 답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에 안심이 되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

크리스나 백작과 아테니아 그리고 발레리안이 앉아 있는 응접실은 말 그대로 싸늘했다.

그녀가 아버지와 절연하겠노라고 선언한 후, 처음 있는 만남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크리스나 백작은 백작대로 생각이 많아 보였고, 아테니아는 아테니아대로 불편했다.

그녀라고 좋아서 제 아버지에게 절연을 선언했겠느냔 말이다.

그렇지만 이대로 날을 지새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아테니아는 자신이 먼저 말을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제 아버지의 고집이라면 먼저 말을 걸 리가 없을 것 같았다.

“테나, 네가 이번 향수 사업을 맡아서 이어 가 봐라.”

그러나 아테니아의 예상을 깨고 먼저 말을 건넨 것은 크리스나 백작이었다.

그것도 심지어 백작의 입에서 나온 것은 폭탄선언이었다.

“아버지!!!”

응접실 밖에서 말을 엿듣고 있던 아이레스가 참지 못하고 문을 벌컥 열고 응접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도 그럴 것이, 향수 사업은 현재 크리스나의 주력 사업 중 하나였다.

지금 크리스나 백작이 돌연 그것을 아테니아에게 맡아 보라고 한 것이다.

“너 이 녀석! 누가 그렇게 문을 함부로 열고 들어오랬어. 당장 나가!”

크리스나 백작이 아이레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집사와 시종들이 안절부절못하며 아이레스를 끌어내기 위하여 그를 붙잡고 매달렸다.

“도련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다들 이야기 중이시니 도련님께서는 있다가….”

그러나 모시는 도련님을 세게 붙잡을 수 없는 고용인들의 힘 따위, 아이레스는 가뿐하게 뿌리쳤다.

“아버지, 그걸 누나한테 주시면 저는 뭐가 돼요…!”

성큼성큼 크리스나 백작에게로 다가온 아이레스가 대뜸 따지고 들었다.

“누나랑 어떻게 풀어 보시려는 건 알겠는데, 그건 그거고 사업은 사업이죠…! 누나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사업을 해 본 적도 없는데, 누나가 뭘 안다고 저도 해 본 적 없는 상단의 주력 사업을 덜컥 맡겨요!”

아이레스의 말에 순간 아테니아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장부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놈을 겨우 장부를 볼 수 있게 가르쳐 놨더니, 아이레스가 아테니아에게 하는 소리가 겨우 저런 것이었다.

아이레스의 말은, 크리스나 백작이 아테니아와 나빠진 사이를 돌이키기 위해 능력도 없는 그녀에게 덜컥 커다란 사업을 쥐여 준다는 의미였다.

자신을 망설임 없이 깎아내리는 남동생의 작태가 정말이지 아테니아를 기가 막히게 만들었다.

“시끄러워, 이 녀석아! 빈켄티우스 대공 전하도 계신데, 이게 무슨 추태야! 빨리 안 나가! 집사, 당장 저 녀석 끌어내지 않고 뭐 하나!”

크리스나 백작이 재차 아이레스를 쫓아내라며 소리쳤다.

그것을 아테니아가 끊어 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저는 크리스나 상단의 일 같은 거, 맡지 않을 생각이니까요.”

아테니아의 눈에는 아버지가 제게 굳이 향수 사업을 하라고 하는 이유가 빤히 보였다.

그녀는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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