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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특별한 결혼을 위하여-81화 (81/111)

81. 우리가 될 수 없는 우리 (7)

발레리안은 그 순간, 분주하게 생각했다.

아테니아를 빈켄티우스라는 늪에서 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하여 빈켄티우스가 필요했다.

그러면, 아테니아를 보호할 필요가 없는 환경을 만들자.

황태자를 실각시키고, 황실이 아테니아에게 손을 뻗을 수 없도록.

“1년. 1년만…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고, 또 아테니아를 납득시킬 수 있어야만 했다.

지금까지 결혼을 거부해 왔던 발레리안이었다.

돌연 그녀를 구하고자 결혼하려 한다면, 정말로 아테니아는 현자의 탑으로 가 버릴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라면 발레리안이 그간 결혼을 기피했던 이유를 말해야만 하는데… 정말이지,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제가 얼마나 저주받은 핏줄인지, 발레리안은 아테니아에게는 절대 알리고 싶지 않았다.

발레리안도 할머니와 어머니의 죽음에서 무죄라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자신이 그녀와 결혼해야만 하는 다른 이유를 만들어 냈다.

“루이앙스 공작 영애가 야반도주를 하다가 들켜서 실패했다고 하더군요.”

아테니아의 두 눈이 커졌다.

루이앙스 공작 영애가 얼마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 했던가.

그런데 붙잡혔다니.

한 번 도주하려다가 들킨 이상, 루이앙스 공작가의 경비는 매우 삼엄해져 있을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평범한 귀족 영애가 다시 탈출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할아버님은 나를 테나나 루이앙스 공작 영애 중 한 사람과는 반드시 혼인시킬 생각입니다.”

발레리안은 진실에 거짓을 섞어 그것이 사실인 양 말했다.

차마, 역겹게도 제 할아버지가 아버지와 루이앙스 공작 영애를 결혼시키려 한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래 놓고는 몇 년 뒤, 갓 성인이 될 어린 영애들을 발레리안의 신부 후보로 두고 있다는 말 역시도.

“아마 할아버님이 나서셨으니, 원로들도 가만히 있지 않겠죠.”

현재, 원로들은 선선대 대공과 발레리안을 따르는 두 파벌로 나눠져 있는 상태였다.

그렇지만 사실 발레리안 손에는 저들을 정리할 구실이 이미 전부 쥐어져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사용하여 원로들이 아테니아의 손끝에도 닿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1년인가요?”

아테니아가 드레스 자락을 꽉 쥐며 물었다.

발레리안은 1년만 결혼하자는 조건을 내밀었다.

그렇다는 건 결국 이혼을 전제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녀는 순간 발레리안에게 그 정도로 자신과 결혼하기 싫은 것인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사람의 마지막 자존심은 인간이 바닥까지 솔직해지는 것을 막았다.

“…제가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고 말씀드렸었죠.”

발레리안은 이런 가문 따위가 더는 그 대를 이어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에 이어 어머니까지.

역겨운 빈켄티우스의 핏줄은 살아남고, 전부 그 안주인들만 잡아먹은 가문이었다.

발레리안은 진심으로 이 가문의 대가 끊기기를 바랐다.

“저는 제가 불임이라고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1년이면, 아이가 생기지 않아도 원로들이나 선선대 대공이 아테니아를 닦달하지 않을 적당한 짧은 기간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황태자를 실각시키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기도 했다.

발레리안은 그 모든 것을 계산하여 1년이라는 결혼 기간을 잡은 것이었다.

“1년은… 제가 불임인 척하고, 그것을 증명하기에 적당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발레리안은 그 1년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처럼 말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한 것처럼.

“…발레리안, 당신은 정말로… 결혼이 하기 싫었던 거군요.”

굳이, 이 상황까지 와서 이혼을 조건으로 결혼을 하고자 할 만큼.

아테니아는 이번에도 뒷말을 애써 삼켰다.

차마, 왜 그렇게 결혼이 싫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까지 왔음에도 그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 발레리안에게 매달려 캐물을 수도 없었으니까.

발레리안에게는 그녀가 필요하다.

그리고 아테니아 또한 그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이 상황을 타개할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자존심이 상하고 서글펐다.

이런 식으로 재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제가 도움이 된다면.”

아테니아가 마른 목구멍으로 애써 침을 삼켰다.

사실, 입안조차 메마른 듯하여 여전히 목구멍이 버석거리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할게요.”

그 달갑지 않은 감각을 애써 모른 척하며, 아테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결혼해요, 리안. 딱… 1년간만.”

***

발레리안과 아테니아의 결혼 소식은 사교계뿐 아니라 수도 전역을 온통 시끄럽게 달궈 놓았다.

그 탓에 발레리안과 아테니아의 대화가 끝나기 전에, 아테니아의 저택에 있던 크리스나 백작 부인이 먼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테나…! 결혼이라니, 이게 어떻게 된 거니. 응?”

그리하여 지금, 아테니아는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때아닌 소란에 잔뜩 놀라 있던 크리스나 백작 부인에게 붙들려야만 했다.

“어머니, 그게….”

아테니아가 난감한 얼굴로 두 눈을 굴렸다.

사실, 그녀에게도 갑작스러운 일이기는 매한가지라서 이 사태를 뭐라고 설명해 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어머니에게 대놓고 발레리안과 자신의 사정으로 1년만 사는 계약 결혼을 하기로 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크리스나 백작 부인,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때, 아테니아와 크리스나 백작 부인의 사이로 발레리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테니아가 순간적으로 홱, 그를 돌아봤다.

자신을 데려다주고 돌아간 줄 알았는데, 쫓아 들어온 모양이었다.

“…오랜만… 이군요, 빈켄티우스 대공 전하.”

크리스나 백작 부인이 주춤했다.

순간, 발레리안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그에게 전처럼 말을 낮춰야 할지 혹은 존댓말을 써야 할지 고민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백작 부인의 선택은 후자인 듯했지만.

“전처럼 편하게 불러 주십시오, 리안이면 족합니다.”

“제 딸과 헤어지신 마당에 제가 그럴 수는….”

발레리안의 말에 반박하던 크리스나 백작 부인이 멈칫했다.

이별했다고 하기에는 방금, 수도 전역에 결혼하기로 소문난 한 쌍이 아테니아와 발레리안이었다.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에 백작 부인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체,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 건지 전혀 모르겠군요. 솔직히 저는 제 딸아이와 대공 전하께서 인연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테니아와 그다지 넓지 않은 한 저택에 살다 보니, 크리스나 백작 부인은 제 딸이 한동안 발레리안을 만나러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 또한 아테니아를 찾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그게 뜻하는 게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백작 부인은 애써 묻지 않았다.

이별의 아픔으로 그렇지 않아도 속이 시끄러울 딸아이를 괜스레 건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이 엄마라는 이유로 딸아이에게 그런 걸 물을 자격이 있나 싶기도 했고.

그렇게 크리스나 백작 부인이 애써 답답함을 참던 와중에, 돌연 오늘과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간 심려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크리스나 백작 부인.”

발레리안이 대뜸 백작 부인을 향해 허리를 숙여 보였다.

그로 인해 잔뜩 당황한 크리스나 백작 부인이 어쩔 줄 모르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왜 이러십니까, 대공 전하. 이러지 마세요.”

“사실, 제가 한동안 테나의 속을 좀 썩였습니다.”

발레리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마치 그동안 준비라도 해 온 것처럼 매끄럽기 그지없었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이 오늘 급조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아테니아가 조금 어이가 없을 만큼.

하지만 변명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기에, 그녀는 모른 척 그가 뭐라고 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웨일러스 후작의 타운하우스에서 식사할 때까지만 해도 제가 결혼 생각이 없다고 말씀드렸으니, 아마 오늘 일이 더 당황스러우셨으리라 생각합니다만….”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다.

아테니아는 새삼 오늘 일이 제 어머니에게 얼마나 더 당황스럽고 어이없는 것이었을지를 깨달았다.

발레리안도 아마 그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먼저 선수를 친 것이리라.

“테나와 결별설이 난 이후, 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발레리안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지극히 사실만을 말하는 것처럼 흔들리지 않는 그의 목소리에 아테니아는 자신도 깜박 속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두 번 다시 테나와 헤어지기 싫다고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그 말을 하는 발레리안은 참 진실되어 보였다.

사실, 그게 그의 진심이긴 했지만.

발레리안은 자신이 할 수만 있다면 평생 아테니아의 곁에 있고 싶었다.

“그래서 제가 좀 성급하게 청혼했습니다. 올해 안으로 결혼하고 싶다고요.”

올해는 채 3달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귀족들의 결혼 준비를 하기에는 빠듯한 시간임이 확실했다.

“그렇지만 테나는 조심스러웠지요. 아무래도,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어느덧 크리스나 백작 부인은 제 딸과 발레리안의 연애담을 집중하여 듣고 있었다.

그것이 모조리 거짓임을 알고 있는 아테니아로서는 양심의 한구석이 콕콕 찔려 오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부끄럽지만, 제가 테나에게 저와 결혼하고 싶지 않은 거냐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어머….”

발레리안이 정말로 부끄러운 것처럼 모로 고개를 돌렸다.

크리스나 백작 부인이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작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렇게 행동하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사랑에 푹 빠진 사내와 같았으니까.

아테니아는 순간 입안이 씁쓸해졌다.

이 이야기가 진짜여서, 그들이 진짜로 이런 평범한 연애를 할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실제로 아테니아와 발레리안의 사이에 놓인 현실은 계약 결혼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다툼이 일어났고요. 그래서 한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솔직히, 얼마나 제 속이 탔는지 모릅니다.”

발레리안은 진실 섞인 거짓을 술술 뱉어 냈다.

모두 거짓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테니아와 완전히 이별한 뒤로, 그는 내내 그녀를 그리워했으니까.

“그런데 오늘, 황태자가 허튼수작을 부리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해 제가 이렇게 섣불리 행동하고 만 겁니다.”

그러더니 발레리안은 돌연 아테니아를 돌아봤다.

그가 성큼성큼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리안…!”

그 순간, 아테니아가 자신도 모르게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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