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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특별한 결혼을 위하여-73화 (73/111)

73. 강수 (3)

“…지금 설마, 루이앙스 공작 영애와 아버지를 혼인이라도 시키겠다는 겁니까?”

발레리안의 아버지인 안토니오 빈켄티우스의 나이는 올해로 45살이었다.

당연하지만, 안토니오의 나이대에는 그와 결혼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발레리안은 설마설마하며 선선대 대공에게 물었다.

“루이앙스 공작가의 영애가 얼마 전, 결혼하지 않으려고 몰래 야반도주를 하려다가 루이앙스 공작의 손에 딱 걸렸다더구나.”

무려 공작가의 영애가 야반도주라니.

알려진다면 수도가 떠들썩해질 일이었다.

“그래서, 루이앙스 공작가에서 그 영애를 하루빨리 혼인시키려고 안달이라도 났답니까? 저보다도 어린 영애가 제 아버지와 결혼해도 상관없을 만큼?”

“잘 아는구나. 네 아버지는 빈켄티우스다. 그깟 나이 차이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선선대 대공은 이 역겨운 상황에 대한 수치심도 없어 보였다.

“네놈이 빈켄티우스의 대를 끊어 버릴 듯이 구는데, 네 아비라도 대를 이어야지.”

선선대 대공은 뻔뻔하게도 말을 잘만 내뱉었다.

발레리안이 이를 악물며 물었다.

“선대 대공께서 그런 짓거리를 하겠답니까?”

“저가 내 말을 어찌 어길 것이야! 너는 아직도 네 아비를 그리 모르더냐?”

“압니다! 알다마다! 당신께 휘둘려서, 내 어머니가 죽도록 내버려 둔 것이 내 아버지니까요!”

황제의 사생아인 어머니.

그리고 그런 어머니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선선대 대공.

그런 아버지를 막지 못했던 유약한 선대 대공.

그들 사이에 일어난 비극을, 발레리안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또 그 모든 비극을 막아 보려던 단 한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까지도, 전부 다.

“그러니까 아테니아는 절대로 이 집안에 발도 못 들이게 할 겁니다. 이딴 곳에는 절대!”

발레리안이 발악하듯이 외쳤다.

선선대 대공은 그와 상반되게 제법 침착했다.

“그래, 그러니까 루이앙스 공작 영애와 결혼해라.”

선선대 대공이 재차 명령했다.

“그게, 나이 차이 나는 네 아버지와 결혼하는 것보다야 루이앙스 공작 영애에게도 낫지 않겠느냐?”

정말이지, 역겹기 그지없는 명령이었다.

선대 대공, 그러니까 발레리안의 아버지가 유일하게 괜찮은 점이 있었다면 그건 그가 제 부인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었다.

선선대 대공은 그런 아들을 알면서도, 발레리안이 혼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루이앙스 공작 영애와 발레리안의 아버지 두 사람 모두 불행해질 짓을 벌이겠다는 말이었다.

발레리안은 더는 참지 못했다.

그가 집무실로 달려가, 비밀 서랍에 있던 서류 뭉텅이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그것을 선선대 대공의 앞에 던져 놓았다.

“결혼, 그따위 거 안 합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십시오.”

“이 무슨 버릇없는 짓거리냐!”

“닥치고 그 서류들이나 보시지요.”

선선대 대공의 얼굴이 확 찌푸려졌다.

그러나 발레리안의 기색이 워낙 살벌했기에, 선선대 대공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며 그 서류들을 주워 들었다.

그리고 곧, 선선대 대공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네놈…!!!”

선선대 대공이 서류들을 북북 찢어 흩날렸다.

그 서류는 빈켄티우스가 세대를 걸쳐 저질러 온 각종 비리와 악행들을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해 놓은 것이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빈켄티우스 따위, 원하면 언제든지 무너트릴 수 있다고.”

발레리안이 선선대 대공을 아래로 내려다봤다.

늙은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으나, 발레리안은 그것이 단 하나도 안타깝지 않았다.

“네가 빈켄티우스를 무너트리면, 네게 앙금을 가진 황실 사람들에게서 크리스나 영애를 어떻게 지킬 거지?!”

이번에는 선선대 대공이 발악하듯이 말했다.

지난번과 같은 소리였다.

그러나 그사이에, 발레리안은 이미 답을 찾아낸 터였다.

왜냐하면 빈켄티우스의 서고에는 그들의 약점 말고도… 가문의 긴 역사 동안 내내 모아 온 다른 모든 가문의 약점이 적힌 기록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언컨대 그 무수한 가문 중 클레르폰도 예외는 아니었다.

“황실도 무너트리고, 빈켄티우스도 무너트려 버리면 될 일 아닙니까.”

발레리안은 그것이 더없이 완벽한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

크리스나 백작 부인은 현재 크리스나 백작과 별거 중이었다.

이혼하겠다고 백작에게 선언했으나, 백작 부인은 이혼하면 정말 큰일이 나는 줄 알고 살던 시대의 사람이었다.

이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런 그녀에게는 조금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우선 별거 중이었는데, 크리스나 백작 부인의 앞에서 백작이 급하게 사람을 보내온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좀처럼 인정하지 못하는 고집 센 크리스나 백작이 별거 이후 처음으로 보낸 사람이었다.

“테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 너희 결혼할 생각 없다고 하지 않았니?”

그리고 크리스나 백작 부인의 손에는 빈켄티우스에서 보낸 청혼서가 들려 있었다.

그녀가 잔뜩 당황한 얼굴로 제 딸에게 말했다.

“오늘 아침에, 크리스나 백작저로 이게 전달되었다고 하더구나. 네 아버지가 보내왔어.”

“…청혼서가 왔다고요?”

아테니아도 곤혹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크리스나 백작 부인의 손에서 청혼서를 건네받았다.

어제, 선선대 대공이 분명 크리스나 백작가로 혼담을 넣겠다고는 했었다.

그러나 그게 오늘 당장이라고는 말한 적 없는 데다가, 무엇보다 발레리안이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듯 청혼서가 들어와 있으니, 아테니아는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너도 모르는 일이란 말이야?”

크리스나 백작 부인이 제 딸의 표정을 보고는 황당해하며 물었다.

아테니아도 답을 줄 수가 없으니, 백작 부인은 상황을 알 수가 없어 괜스레 중얼거렸다.

“혹시 요즘은 이런 게 유행인가…? 갑작스럽게 청혼서로 프러포즈하고 그런…?”

크리스나 백작 부인은 이게 발레리안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가 아테니아를 놀래켜 주기 위해 비밀리에 청혼서를 보냈다고 추측하는 듯했다.

그러나 아테니아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어쩐지… 이 청혼서의 존재를 발레리안도 모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엄마, 아침은 혼자 드셔야겠어요.”

그래서 아테니아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려면, 결국 이 청혼서가 날아온 곳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번 결심한 아테니아는 거침이 없었고, 그녀는 황급히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후 제미니를 시켜 마차를 부르게 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이루어진 아테니아의 외출 준비에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크리스나 백작 부인의 두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백작 부인이 급하게 저택을 나서려는 아테니아의 팔을 붙잡았다.

“테나? 아침부터 어딜 가게!”

“다녀와서 말씀드릴게요, 엄마.”

그러나 아테니아는 자신을 붙잡은 크리스나 백작 부인의 손을 부드럽게 놓게 만들며, 기어코 설명도 없이 저택을 나가 버렸다.

물론 그녀도 제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리고 싶었으나, 그러기에는 자신도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테니아는 일의 전말을 알아내기 위해 마차에 올라 빈켄티우스의 타운하우스로 향했다.

뒤에 남은 백작 부인은 한동안 걱정 어린 얼굴로 제 딸이 떠나 버린 빈자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

아테니아는 빈켄티우스의 타운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응접실로 안내되었다.

이전까지 그녀가 타운하우스에 올 때면 기다렸던 응접실이 아닌, 선선대 대공이 따로 사용하는 응접실이었다.

발레리안은 아침부터 어딜 간 모양인지, 보이질 않았다.

“…어서 오게.”

그리고 마치 하루 만에 훅 늙어 버린 듯 눈 밑이 거뭇해진 선선대 대공이 아테니아를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아침부터 갑작스럽게 찾아오게 되어 죄송합니다, 빈켄티우스 경.”

아테니아가 선선대 대공과 마주하자마자 인사를 건네는 동시에 사과했다.

물론, 빈켄티우스 측에서 이 이른 아침부터 갑자기 청혼서를 보내는 소란을 피우지 않았더라면 없었을 일이기는 했다.

그래도 어쨌든, 아침 식사도 끝나지 않았을 이른 아침에 이렇게 방문한다는 게 잘한 짓은 아니었기에 한 사과였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선선대 대공은 아테니아의 무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자리를 권하기까지 했다.

“되었네. 일단, 자리에 앉게.”

“…무례를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빈켄티우스 경.”

어제, 아테니아에게 발레리안과 결혼하라고 할 때만 해도 선선대 대공은 오만한 태도였다.

그런데 하루 만에 그의 태도는 아주 누그러져 있었다.

“집사, 차를 내오게.”

집사는 아까부터 발레리안이 없는 상황에 아테니아와 선선대 대공이 마주하게 되자 이래저래 불안해하며 어쩔 줄 몰랐다.

그런데 선선대 대공은 마치 그런 세바스찬을 모르는 척, 아테니아를 응접실까지 안내해 준 집사를 방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다.

“밖에 시녀가 서 있을 겁니다. 그 아이를 시켜서….”

선선대 대공과 아테니아 둘만 같은 공간에 두었다고 하면 발레리안으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했다.

그래서 세바스찬은 응접실을 나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선선대 대공은 그런 얕은 수작 따위 통하지 않는다는 듯이, 단호하게 집사를 향해 말했다.

“집사. 나는 분명 자네에게 시켰던 것 같은데? 내 말이 말 같지 않나?”

선선대 대공의 노골적인 압박이었다.

그에 멈칫한 세바스찬이 자신도 모르게 아테니아를 쳐다봤다.

집사의 입장에서는 선선대 대공의 말을 더는 거부할 수도 없는데, 아테니아가 또 걱정되기는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본 선선대 대공의 태도를 생각하건대, 아테니아는 무슨 일이 크게 벌어질 것 같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세바스찬이 울 것 같은 얼굴로 얼른 차를 준비해 오겠다며 응접실을 나갔다.

그렇게 단둘이 남자마자, 선선대 대공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곧바로 입을 열었다.

“크리스나 영애, 발레리안과 결혼해 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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